411화 실체가 없는 것에 더 두려움을 느낀다
노아 스미스의 기대와 달리 협상은 첫날부터 삐걱거렸다.
“정말 60달러를 포기하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한진영이 오게 된다면 무언가 다른 이야기가 오갈 줄 알았던 노아 스미스는 지난 협상 자리에서 들었던 똑같은 말에 황당함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우리는 60달러. 그 이상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지금 주가가 얼마인지는 아십니까?”
“그 주가가 계속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우리의 성장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성장을 의심하기보다 현실에 비중을 더 둔다고 생각해주십시오.”
한진영과 조금은 다른 대화를 나눌 줄 알았던 노아 스미스는 나창운과 했던 대화를 똑같이 하는 모습에 더는 협상 자리를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한진영이 피곤해할 것 같다는 말로 협상 자리를 마무리한 노아 스미스는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자리를 끝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는 조금 나은 대화를 나눌 것을 기대한다는 말을 남긴 뒤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노아 스미스의 기대는 일주일 뒤에 허무하게 끝이 났다.
“우리는 60달러. 더는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60달러가 양보라고요?”
데이비드 칼슨 CFO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아있는 한진영을 바라봤다.
“사장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어느 가격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잊어버리신 것 아니십니까? 60달러에 어떻게 양보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신 겁니까?”
“칼슨 CFO께서야말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모른다고요?”
“저희 입장에서는 60달러는 양보를 한 자리입니다.”
노아 스미스는 나창운보다 더 답답한 한진영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한 사장님께서는 협상하기 위해 오신 겁니까? 아니면 협상을 깨기 위해 오신 겁니까?”
노아 스미스의 말에 한진영은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이 먼 거리를 날아 이곳에 온 이유가 협상을 깨기 위해서는 아니겠지요. 정말 협상을 깨고 싶었다면 오지도 않고 여기 있는 나 본부장에게 그만 정리하고 돌아오라는 지시를 내리면 됐을 테니까요.”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협상할 마음은 있으신 겁니까?”
“저야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한진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양손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테라야말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계시는 겁니까?”
당당한 한진영의 말에 노아 스미스와 데이비드 칼슨은 서로를 마주 바라봤다.
혹시 자기들이 모르는 일이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냐는 것을 서로에게 물어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 뒤 말했다.
“얼마 전에 나온 기사 보지 못하셨습니까? 테라가 공매도의 타겟이 되어 있다는 것 말입니다.”
“아~ 그거 말씀이십니까?”
노아 스미스는 예상보다 별거 아닌 이야기에 웃고 말았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별거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테라는 공매도의 표적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유상증자에 성공하게 되면 다 물먹을 존재들에 불과하니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숏스퀴즈가 나와 오히려 주가를 폭등시킬 우리에게는 좋은 존재이니까요.”
노아 스미스는 공매도 세력 때문에 죽겠다는 소리를 이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유증이 성공했을 때 주가를 부양시킬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노아 스미스 입장에서는 그들도 잠재적인 매수 주체들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웃으며 이야기하는 노아 스미스에게 어두운 표정을 한 채로 고개를 저었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우리가 유상증자를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되겠지요.”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난 뒤 웃고 있던 노아 스미스는 한진영의 말에 급히 고개 돌려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유상증자를 당장 하지 않아도 된다니요?”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공매도 세력들이 주가를 눌러줄 텐데 왜 나서서 비싼 값을 치르냐 이 말입니다.”
“한 사장님!”
노아 스미스가 한진영의 말에 격한 반응을 보이려 하자 데이비드 칼슨이 노아 스미스 대신 먼저 나섰다.
“한 사장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들을 이용해야지요. 왜 그들의 뒤에 숨어서 이 좋은 기회를 날리려 하십니까?”
“뒤에 숨는다고 보신다면…… 뭐 이해합니다. 그렇게 보이실 수도 있겠네요.”
한진영은 데이비드 칼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노아 스미스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런 것은 사실 아닙니까? 유상증자에 호재가 사라져버리면 저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 이 호재를 안고도 가격이 제자리걸음을 보이고 있는데 호재가 사라지면 주가는 폭포수처럼 쏟아지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히려 루머가 현실화가 되었을 때의 폭발력을 생각한다면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절대 유상증자 가격 아래로 내려갈 일이 없습니다.”
데이비드 칼슨의 반박에 한진영은 고개를 돌려 데이비드 칼슨을 바라보고 물었다.
“혹 공매도 세력이 어디 어디인지 모르고 계시는 겁니까?”
“어디인지 알고 계십니까?”
굳어진 노아 스미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진영은 다시 노아 스미스에게 시선을 돌린 뒤 빤히 노아 스미스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살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노아 스미스에게 말했다.
“정말 모르고 계셨군요. 하긴 그러셨으니 그리 자신하고 계셨던 것이겠지요.”
한진영은 노아 스미스를 비롯한 테라의 사람들이 유증 성공 이후 주가 상승을 자신했던 이유가 이해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노아 스미스와 데이비드 칼슨 그리고 그 외의 테라 직원들이 의아한 모습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테라 사람들을 마주 보고 고개를 저은 뒤 말했다.
“우선 이야기를 진행하기 전에 먼저 공매도 세력이 어디인지 알아보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어디입니까?”
“제가 여기서 이야기한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 같으니 먼저 알아보시고 다음에 만나 다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우선은 유상증자 가격을 이야기하기보다 그게 먼저인 것 같으니까요.”
한진영이 자리를 마무리하자는 말을 던졌지만, 테라 측에서는 누구도 한진영을 잡지 못했다.
한진영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공매도 세력이 예상치 못한 곳들이 섞여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협상 자리 또한 아무런 성과 없이 마무리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진영은 조지훈에게 한 가지 일을 지시했다.
“블랙문에 연락해서 시작해도 된다고 말해.”
“네. 알겠습니다.”
한진영은 팔걸이에 몸을 기대고 웃었다.
“다음에 만날 때 테라 애들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네.”
“많이 놀라겠지요?”
“놀라서 심장이 튀어나오지 않으면 다행일 거야. 본래 사람이란 실체가 없는 것보다 실체가 있는 것에 더 큰 두려움을 가지기 마련이니까. 그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면 높은 사람일수록 말이야.”
나창운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경험했던 노아 스미스라는 인물이라면 한진영의 말대로 놀랄 것이 분명했다.
상대가 자기가 어쩔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블랙문이라는 사실이 노아 스미스를 옥죌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의 예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따르릉.
사흘 뒤 한진영을 비롯하여 협상단이 모여 차후 진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테라에서 연락이 왔다.
-괜찮으시면 오늘 바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이요?”
조지훈은 시계를 올려다봤다.
시계는 벌써 저녁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세이지와 테라의 사람들이 아무리 서둘러 자리를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테이블이 차려지기까지 최소 두 시간은 걸렸다.
게다가 준비하고 가는 시간까지 더한다면 첫 이야기가 나오는 시간이 저녁 열 시라는 것이었다.
보통 한번 마주하고 자리하게 된다면 대여섯 시간은 우습게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열 시라는 시작 시각은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조지훈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진영에게 테라 측의 이야기를 전했다.
“제대로 알아봤나 보네. 그러니 이야기가 끝이 나면 해가 뜰지도 모르는 시간에 보자고 하지.”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냥 내일 보자고 해. 시간 너무 늦었다고 말이야.”
“괜찮을까요?”
“괜찮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벌을 받는 건 당연한 거야.”
조지훈은 한진영의 반응에 할 수 없다는 한숨을 내쉬고는 기다리고 있는 수화기 너머의 테라 측 담당자에게 이야기했다.
“내일 오전에 새로 자리를 마련하기를 바란다고 하십니다.”
수화기 너머에서도 지금 상황을 대략 예상한 것인지 놀라기보다는 세이지를 설득하기 위한 말을 건넸다.
-저희 측에서 자리가 모두 마련되어 있으니 지금 바로 오시면 이야기를 나누실 수 있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 나누지 않도록 하신다고 하니 지금 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테라 측의 다급한 반응에 한진영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저녁에 다른 스케줄이 있다고 전해. 나 본부장님. 나 본부장님이 조 실장을 대신하여 거절 의사를 전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한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조지훈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조 실장은 나하고 좀 함께 가자.”
조지훈은 받고 있던 전화를 나창운에게 건네고는 한진영을 따라 일어났다.
“지금 시간에 어딜 가시려고요?”
“그냥 조용히 따라 와. 나 본부장님이 나 찾거든 나 볼일 있어서 나갔다고만 전해.”
곁에 앉아 있던 협상단의 직원에게 이야기를 전한 한진영이 앞서 나갔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뒤를 따라 급히 따라붙었다.
“사장님 어디 가려고 하십니까?”
조지훈은 갑작스럽게 가자는 한진영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배를 손등으로 두드리며 대답했다.
“어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이 중요한 거야.”
“지금이 중요하다고요? 지금이 왜요?”
조지훈은 한진영에게 가볍게 맞은 배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을 향해 웃으며 설명했다.
“테라가 저대로 그냥 오라고 하고 말 것 같아?”
“오라는 것으로 끝이 나지 않으면요?”
“당연히 찾아오겠지. 그리고 이곳에서 회의하자고 하든가 아니면 나를 어떤 식으로든 끌고 가려 하겠지.”
“아~ 그래서 아예 자리를 피하시려고요?”
“그래. 그래야 잔뜩 독이 오를 거 아냐. 그리고…….”
한진영은 건물에서 나와 시원해진 오후 공기에 잠시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말했다.
“서울에 전화 넣어서 내일은 우리도 함께 공격하라고 해.”
“우리까지 말입니까?”
“그래야 조금 더 자극적이지 않겠어? 테라도 현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확실하게 알 게 될 테고…… 전략실의 정보에 따라 마음 놓고 때리라고 해. 이쪽은 블랙문이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으니 문제 될 것 없으니까.”
한진영은 내일 있을 일을 떠올리자 웃음을 참지 못하겠는지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을 하다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조지훈을 향해 돌아보고 말했다.
“조 실장. 말이 나온 김에 야식이나 먹으러 가자. 기왕이면 자극적이고 매콤한 것으로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차이나타운 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아~ 마라탕? 좋지. 마라 맛이 상당히 자극적이니까. 가자.”
한진영은 즐거운지 연신 웃음을 흘리며 차가 서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
한진영의 예상대로 테라는 한진영을 데리고 가기 위해 숙소로 직접 찾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한진영이 급히 볼일을 보러 나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연락되지 않는 전화기를 붙잡고 밖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고 다시 떠오를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진영을 보며 그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막 일어난 세이지의 직원을 향해 한진영이 돌아오면 테라로 바로 와달라는 말을 전하고 돌아갔다.
그날 점심 때쯤 한진영은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창운에게 현재 테라 상태를 보고 받으며 테라로 향할 준비를 했다.
“현재 테라는 -7%가 넘는 하락을 보이고 있습니다. 공매도 세력에 블랙문이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하락 폭은 점점 커지는 모습입니다.”
“블랙문 외에 또 다른 곳은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블랙문은…….”
나창운은 잠시 주변을 둘러본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흘린 덕분에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지 그 외에는 모든 운용사가 침묵으로 일관하여 공식적으로 알려진 곳이 없습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곳이 없다?”
한진영은 옷을 갈아입으며 조지훈을 향해 지시했다.
“대충 유명한 증권사들 이름 몇 개 언론에 흘려.”
“대충이요?”
“그래.”
한진영은 거울에 비친 옷을 잠시 살피고는 조지훈을 돌아봤다.
“다들 침묵으로 일관한다며? 그럼 다들 공매도를 치고 있다는 거야. 그게 금액이 많냐 작냐의 차이일 뿐이지. 그러니 우리가 정보를 흘려도 그들은 계속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어. 사실을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니까. 게다가 첫 질문에 침묵을 택한 순간 그들은 계속 입을 닫고 있을 수밖에 없어.”
“알겠습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바로 대답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이런 이야기는 최대한 빠르게 전하는 편이 좋았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통화하기 위해 잠시 다른 방으로 이동한 조지훈에게서 시선을 다시 나창운에게로 옮겼다.
“그래서 정확하게 지금 테라의 가격이 얼마입니까?”
나창운은 한진영이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질 줄 알았는지 가지고 온 태블릿으로 가격을 확인했다.
“현 시각 기준으로…… 79달러입니다.”
조지훈의 대답에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하락에 가속도가 붙고 있네요.”
“네. 공매도 주체가 알려진 순간 사람들은 일방적인 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진영이 만족스럽게 미소 지을 때 조지훈이 들어갔던 방에서 나오며 한진영을 향해 보고했다.
“사장님. 연락 넣었습니다. 우선 인터넷판을 통해 루머라는 전제로 테라에 대한 공매도 실체가 점차 밝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좋아. 그러면 얼추 다 됐으니 천천히 가볼까?”
한진영은 조지훈의 보고를 듣고는 입고 있는 옷을 한번 털어냈다.
그 와중에도 조지훈의 전화기로 쉬지 않고 테라에서 연락이 쏟아졌다.
한진영을 애타게 찾는 테라의 마음이 조지훈의 전화기 벨소리에서 그대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