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화 Fifty five
한진영을 태운 차는 테라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움직이는 차 안에서 한진영은 계속 테라의 주가를 확인했다.
“-8.5%까지 빠져 내렸습니다. 현재 나스닥이 강세를 보이는 와중에 급락이 나온 거라 체감 하락 폭은 숫자 이상으로 느껴질 게 분명합니다.”
“나스닥이 강세인 게 아쉽기는 하네요.”
“네. 맞습니다. 약세였다면 분명 -10% 이상의 하락 폭을 보였을 텐데 말입니다.”
나창운도 아쉬움은 마찬가지였던지 한진영의 말에 동의하는 말을 내놓았다.
한진영은 팔걸이에 손을 올린 채 손가락을 두드리며 계산했다.
“우리가 앞으로 20%는 더 빠져야 우리가 요구하는 60달러가 완성되겠네요.”
“65달러에 돌입해야 할인율 10% 정도를 적용하여 60달러에 계약이 체결될 수 있을 겁니다.”
나창운은 몇 번 이야기했던 상황을 다시 한번 환기한 뒤 한진영에게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사장님. 우리가 조금 양보하여 협상가를 65달러로 올리는 건 어떨까요?”
나창운의 말에 한진영은 팔걸이를 두드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돌아봤다.
“협상 가격을 조정하자는 이야기인가요?”
“네. 현재 80달러를 깬 70달러대에 주가가 자리하고 있으니 65달러 선까지는 테라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겠지요. 그래서 지금 애타게 저를 찾고 있는 걸 테고요.”
나창운은 한진영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사장님의 말씀은 테라도 65달러를 염두에 두고 이번 자리에서 제안할 거라는 건가요?”
“나 본부장님의 말씀이 가장 합리적인 생각이니까요. 우선은 70달러를 한 번 찔러본 뒤 우리가 거절하면 65달러를 제안하는 것으로 최종 마무리를 하려고 할 겁니다.”
한진영은 팔걸이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요. 카드는 우리가 쥐고 있는 만큼 물러설 이유는 없습니다.”
한진영은 가볍게 나창운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미 테라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한진영의 생각대로 테라는 한진영과 마주한 자리에서 바로 70달러를 이야기했다.
“좋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70달러까지 낮추겠습니다. 할인율 10% 적용한 가격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저희도 최선을 다하여 성의껏 제안한 가격이니 테라 측에서도 한 걸음만 양보해주십시오.”
“70달러요? 지금 주가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오늘 꽤 깊은 하락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걸 충분히 고려하여 계산한 겁니다.”
“다시 한번 확인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한진영이 데이비드 칼슨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몸을 뒤로 뺐다.
데이비드 칼슨은 한진영의 말에 의아한 듯 표정을 지으며 현재 주가를 확인했다.
“으음…….”
분명 오기 전에 확인했던 주가가 78달러였었다.
그러나 자리에 앉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 사이 주가는 75달러까지 빠져 내려와 있었다.
데이비드 칼슨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
그때 데이비드 칼슨을 대신하여 노아 스미스가 더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좋습니다. 65달러. 65달러에 합시다.”
노아 스미스는 손까지 흔들어 더는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여기에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 한다면…… 그냥 자리를 이쯤에서 마무리합시다.”
노아 스미스가 최후통첩에 가까운 말을 던졌다.
한 치도 물러설 생각이 없으며 여기서 더 가격을 낮추느니 협상을 접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건넨 말이었다.
노아 스미스의 이런 단호한 모습에 나창운은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바라봤다.
여기까지는 한진영과 대화하는 차 안에서 예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나창운은 이다음이 어떤 식으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고 싶다는 뜻으로 한진영을 바라본 것이었다.
한진영은 나창운의 시선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는 노아 스미스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여기서 마무리하시죠.”
“그래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칼슨 CFO께서는 서류를 정리하셔서 65달러에…….”
노아 스미스는 한진영이 65달러를 받아들이려 한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이고 데이비드 칼슨에게 계약서를 준비하도록 지시하려 했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진영을 보고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한진영의 모습을 보고 노아 스미스가 물었다.
“여기서 마무리하자는 말씀에 따르려는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노아 스미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네. 그러니까 여기서 마무리하고 계약을 체결하자는 것 아닙니까?”
“저는 취소하자는 말로 들었습니다만…….”
“아니. 취소는…….”
노아 스미스는 한진영을 향해 무슨 말을 하냐고 이야기하려다 말고 고개를 들어 한진영을 올려다봤다.
“설마 65달러도 받아들이지 못하시겠다는 겁니까?”
노아 스미스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단숨에 5달러를 낮춰 상대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가격을 제안했건만 그조차도 싫다는 한진영의 모습이 너무나 어이없게 느껴진 노아 스미스였다.
“처음 우리가 얼마를 제시했는지 아십니까?”
“100달러조차도 손해 보고 제안한 거라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때 상황에서는 100달러도 많이 양보하여 내놓은 가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세이지가 얼마를 제안했는지 아십니까?”
“제가 65달러를 목표가격으로 잡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노아 스미스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래요. 65달러. 그때 세이지에서 제안한 금액이 65달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65달러를 받아들인 우리의 말에 뭐요? 협상 테이블을 물리자는 말이 나옵니까?”
“상황이 바뀌었으니까요.”
한진영은 나창운을 비롯한 세이지 협상단에게 일어날 것을 지시하며 말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테라도 100달러에서 65달러까지 낮춘 것 아닙니까? 그에 비해 우리는 어떻습니까? 줄곧 60달러 가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록 처음에 65달러를 주장하기는 했지만 60달러로 내린 뒤 테라가 65달러까지 몇 차례나 가격을 낮추는 동안에도 뒤로 물러남 없이 계속 같은 가격을 유지했습니다.”
“지금 그게 일관된 가격을 주장했다고 이야기하는 근거가 되는 겁니까? 애초에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처음 이야기 나왔을 때는 터무니없게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도 터무니없게 느껴지고 있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노아 스미스는 반박하지 못했다.
65달러까지 낮춘 마당에 60달러라는 가격이 터무니없게 느껴질 정도로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60달러입니다. 가격을 낮추는 한이 있어도 가격을 올릴 일은 없습니다.”
한진영을 따라 나창운을 비롯한 협상단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진영은 앉아있는 노아 스미스를 내려다보고 마지막 말을 건넨 뒤 몸을 돌렸다.
“주당 5달러라는 푼돈에 기회를 놓치는 사람일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호의를 가지고 기회를 줬는데도 욕심에 눈이 먼 사람이었다니 제가 사람을 잘못 봤나 봅니다.”
한진영은 가타부타 말없이 바로 협상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러자 뒤를 이어 나창운 등의 협상단도 한진영의 뒤를 따랐다.
“사장님.”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지훈이 한진영이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을 확인하고 빠르게 한진영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차를 준비할까요?”
“아니. 잠깐 천천히 걷자.”
한진영은 무빙워크가 아닌 일반 바닥 위를 천천히 걸어 나갔다.
조지훈은 나창운에게 눈으로 무슨 의미냐고 물었지만, 나창운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진영의 의도는 멀지 않은 순간 드러났다.
“한 사장님.”
무빙워크를 타고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달려온 노아 스미스의 비서는 한진영에게 노아 스미스의 말을 전했다.
“한 사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쩐 일이십니까?”
“한 사장님을 잠시만 뵙자고 하십니다.”
한진영은 일반 바닥 위에 천천히 걷는 한진영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 오히려 무빙워크를 거꾸로 걷는 노아 스미스의 비서를 보고 물었다.
“누가요? 노아 스미스 CEO께서 저를 보자고 하던가요?”
“네. 따로 둘만 이야기를 나누기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둘만요?”
“네. 사무실에서 두 분이 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배제한 채 둘이서 담판을 짓자고 하시니 잠시만…….”
노아 스미스 비서는 중간에 비어있는 통로를 통해 한진영 앞으로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마지막 말을 꺼냈다.
“잠시만 돌아와 주셨으면 한다는 게 저희 사장님의 말씀이셨습니다.”
“담판을 짓자. 둘이서…….”
한진영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조지훈의 등을 한 대 때렸다.
그리고 기억나지 않냐는 듯이 눈썹을 들어 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가시죠.”
한진영은 알겠다며 발걸음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조지훈과 나창운은 그런 한진영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노아 스미스를 잡으면 협상이 끝난다는 게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가요?”
“뭐가 됐건 이번 대화로 지루했던 협상이 단번에 끝이 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60달러가 아니라 더 낮은 가격에 협상이 마무리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60달러보다 더 낮은 가격에요? 설마요?”
조지훈은 놀란 표정으로 나창운을 바라봤다.
60달러까지 겨우겨우 끌고 온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창운이 하는 말이라는 것에 더욱 놀란 조지훈이었다.
조지훈은 나창운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걸어가는 도중 수시로 돌아보는 노아 스미스 비서의 눈빛에 나창운에게 궁금한 것을 묻지 못했다.
그가 나누는 대화를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말 속에서 전해지는 뉘앙스까지 숨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진영과 세이지 협상단은 조용히 노아 스미스 비서의 뒤를 따라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
한진영이 홀로 찾아간 사무실에 노아 스미스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앉아 있었다.
“오셔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도록 하지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는 노아 스미스를 보며 한진영은 낮게 웃었다.
그리고 노아 스미스의 반대편으로 돌아가 직접 의자를 빼 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는 말씀이십니까?”
“협상 말입니다. 그걸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야지요.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여기로 돌아오는 사이 가격이 바뀌었습니다.”
“네?”
한진영이 낮게 숫자를 다시 불렀다.
“Fifty five.”
노아 스미스는 한진영의 말에 가만히 한진영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설마 55달러에 유증을 참여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기존에 참여하겠다고 제안했던 가격에서 5달러 낮췄습니다.”
“지금 제가 바짓가랑이를 잡는다고 생각해서 저랑 장난하는 겁니까?”
노아 스미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Fifty five라는 말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으면 당장 사무실에서 꺼지라고 말했을 노아 스미스였다.
그러나 상대는 자기를 제외한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한 2대 주주였다.
그가 가지고 있는 지분이 솔직히 공매도보다 더 무서울 정도로 한진영의 지분율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노아 스미스는 부들거리는 손을 꽉 움켜잡았다.
최대한 분노를 가라앉히려는 모습의 노아 스미스를 보며 한진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가격이 바뀌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한진영의 말에 노아 스미스는 화를 최대한 눌러 담은 뒤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 이유는 꼭 들어봐야겠습니다.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말입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유를 듣고 난 뒤에는 가격이 바뀐 상황을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자신 있는 한진영의 말에 노아 스미스는 주먹을 쥔 채로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이유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한진영은 자기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노아 스미스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블랙문 자산운용과 이야기했습니다.”
“누구와 이야기했다고요?”
“블랙문 자산운용. 테라의 최대 공매도 지분을 가지고 있는 그곳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CIO 최고 투자책임자인 릭 앤더슨 씨와 말입니다.”
“누구와 이야기했다고요?”
같은 말을 내뱉은 노아 스미스였지만 첫 번째의 놀람과 두 번째의 놀람은 다른 수준을 보여줬다.
꽉 쥐었던 주먹은 어느새 펴졌으며 의자에 무겁게 앉아있던 엉덩이는 반쯤 떨어진 상태로 한진영을 향해 당장에라도 덤벼들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진영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노아 스미스를 바라보고 환하게 웃었다.
“어떻습니까? 가격이 변한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으십니까?”
“그 이야기는 우선 뒤로 미루고…… 블랙문의 릭 앤더슨 CIO와 정말 대화를 하신 겁니까?”
“대화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면 뭘 더 이야기하셨습니까?”
한진영은 이제는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운 노아 스미스를 살짝 올려다보고 대답했다.
“테라의 미래를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약속했습니다.”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화를 낼 때보다 더욱 빨갛게 달아오른 노아 스미스를 향해 이야기했다.
“공매도를 철회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잘 풀리면 공매도가 아니라 블랙문 펀드에 테라를 편입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긍정적인 분위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통화하며 받았습니다.”
한진영은 이제 완전히 자리에서 일어난 노아 스미스를 바라보고 물었다.
“어떻습니까? 55달러. 제가 욕심을 내서 원하는 가격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유증이 마무리되는 순간 블랙문의 펀드에 편입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유증을 통해 환경이 개선되어 주가가 오르는 걸 기대하는 것보다 더욱 확실한 주가 상승 여건을 갖추게 되는 겁니다. 게다가 블랙문 자산운용이라는 든든한 친구까지 얻게 되니 앞으로 공매도의 공격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건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그리고 하나 더 약속드리지요.”
한진영은 반쯤은 정신이 나간 듯한 노아 스미스를 향해 계속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투자금 총액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유증 가격이 바뀌었다고 하여 투자금이 바뀌지 않게 처음 이야기한 금액을 그대로 투자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뀌는 것은 가격과 주식 수뿐입니다. 총액은 그대로 30억 달러.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노아 스미스는 투자금 총액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에 그대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제 한진영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더는 남아있지 않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