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16화 (415/650)

416화 할인행사 때는 이유를 알기보다 장바구니에 집어넣는 게 먼저다

테라의 주가가 63달러 선을 깨느냐 마느냐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63달러가 깨지면 60달러 자리까지 후퇴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이야기에 힘이 실렸다.

그리고 60달러 자리마저 무너진다면 이제 회사의 벨류에이션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시장에 몰아치는 중이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테라를 바라보고 있을 때 테라에서 장 마감 후 공시 하나가 나왔다.

[테라 3자 배정 유상증자 결정. 총액 규모는 30억 달러이며 배정받을 곳은 특수목적 펀드]

사람들은 일주일을 마감하고 주말을 즐기기 위해 준비하는 중에 나온 뉴스에 당황하고 말았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유상증자 이야기는 사그라드는 불꽃과 같다고 이야기하던 시장이었다.

테라와 세이지증권 간의 협상은 결렬된 쪽으로 힘이 실려 테라의 미래를 걱정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온 협상 타결 소식에 시장참여자들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혼란스러워하고 말았다.

그리고 테라의 하락에 배팅한 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공시를 계속 쳐다봤다.

협상 타결에 관련된 낌새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그들은 포지션이 모두 묶여버린 것이 아니냐는 걱정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희망적인 뉴스가 공시가 끝난 뒤 흘러나왔다.

[유증 가격은 55달러로 세이지 증권과 마무리가 됐다고 한다. 이미 결정이 보름 전에 되었음에도 이제야 발표를 한 것은 펀드에 참여하는 기업과 단체가 정리가 안 되어서라는 이유를 테라 측이 전해왔다. 테라 측의 이야기로 보아 세이지증권의 한진영 사장이 협상 테이블에서 물러난 것은 협상 결렬이 아니라 협상이 완료되어 물러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펀드에 참여하는 곳 중 한 곳이 매우 특별하다는 말을 테라 측이 전해왔다. 사람들이 모두 놀랄만한 곳으로 조만간 참여 업체 측에서 직접 이야기하게 될 거라는 말도 더했다]

현 주가 대비 10% 이상 하락한 가격에 유증이 진행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공매도 포지션을 잡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것이었다.

통상 유상증자의 경우에는 할인가가 적용되고는 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특별했다.

뉴스 내용대로라면 협상이 마무리됐을 때쯤엔 60달러 후반에 주가가 머물러 있을 때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할인가가 20% 혹은 20% 이상이 적용됐다는 것인데, 이런 할인가 적용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유상증자 측이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으며, 테라 측도 상황이 안 좋았었기에 할인 폭을 높이더라도 어떻게든 자금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뜻을 유상증자 가격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공매도 세력들은 철렁했던 가슴을 조금은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할인가 적용이 이번 유상증자를 마냥 호재로만 받아들이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탈출할 충분한 여유가 있을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 유증 가격과 현재 거래되고 있는 가격 사이에 괴리가 있는 만큼 당장 정리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런 생각이 주가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유상증자 호재가 잠시 테라의 주가를 밀어 올리기는 했지만, 유상증자 가격이 55달러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주가는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환호를 지르던 주주들은 실망하고 말았다.

아직도 하락이 더 남았다는 사실에 풀이 죽은 얼굴로 테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승 탄력을 죽이는 이야기는 방송을 통해서도 계속됐다.

방송에는 유명 증권사의 투자전략가가 나와 이번 건에 관해 분석을 내놓으며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낸 것이었다.

-이번 유상증자 건을 자세히 분석하면 사람들이 놓칠만한 내용이 안에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숨겨져 있는 내용이요? 그게 무엇인가요?

투자전략가는 진행자의 말을 받아 차분한 목소리로 분석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현재 테라의 주가는 아직 높다는 것이 유상증자를 진행한 협상단의 공통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주가가 아직 높다? 이렇게 빠졌는데도 말씀입니까?

-적정주간의 산출에 하락률은 포함이 되지 않습니다. 기업이 가지고 있는 내재가치를 기준으로 하여 유상증자 가격을 정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테라의 지난 주가가 100달러를 넘나들었던 것은 오버슈팅이었다는 것이 모든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었고 그것이 협상 내용 안에 녹아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진행자의 말에 투자전략가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55달러에 유상증자가 진행되는 만큼 주가의 지지선은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규모 자금을 집행한 곳이 55달러를 지지하려는 모습을 보일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는 테라가 조달한 30억 달러로 무엇을, 어떻게, 잘 운영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주가는 달라질 겁니다. 그리고 유상증자는 기본적으로 주가의 상승에 발목을 잡는 일이기에 상승 여력 또한 높다고 볼 수 없고요.

-하단 지지선은 확보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상승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니라는 것이 투자전략가님의 시각이라고 봐도 될까요?

-네. 그게 저를 비롯하여 시장에서 큰 자금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테라를 보는 시각입니다.

투자전략가는 말을 마치고 비장한 표정까지도 지어 보였다.

테라가 마냥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걸 방송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겠다는 듯한 그의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TV에 나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숨어있었다.

바로 그가 속한 투자그룹 또한 테라 공매도에 묶여 어떻게든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에 엮여버린 상태였던 것이었다.

방송에 나와 테라의 상황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고 떠든 투자전략가 외에도 리포트를 통해 테라의 현 상황을 호재로만 볼 수는 없다는 증권사도 수두룩하게 튀어나왔다.

유상증자 타결이라는 호재 소식이 나온 다음 날 이번 유상증자는 호재가 아니라는 리포트만 15개가 쏟아져 나오며 부정적 시각을 주는 이야기가 유상증자 호재를 덮어버릴 지경이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리포트를 쏟아낸 곳은 모두 테라 공매도에 참여했던 곳들이었다.

그들은 테라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걸 그들이 보유하고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이용하여 테라 주가가 오르는 것을 막아내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테라 주가는 발표만 된다면 호재라는 공시가 나왔음에도 올라가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

한진영은 시끄러운 전화기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야!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전화기 스피커를 통해 이성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지금 네가 아는지 모르겠는데 여기 난리야.

“뭐가 또 그렇게 난리인데?”

-너 모르지? 알면 이렇게 반응할 리가 없지.

“왜? 너 둘째라도 가진 거냐?”

-너 무슨 큰일 날 소리를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해? 둘째라니?

“애국하는 길은 다른 게 아니다. 아이 많이 낳으면 그게 애국이야. 나를 대신해서 내 몫까지 애국해라.”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펄쩍 뛰었다.

-애국은 나만 하냐? 너야말로 빨리 결혼해서 나라에 이바지해.

“난 틀렸어.”

한진영이 씁쓸한 말을 내뱉자 스피커를 통해 이성우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우리 회사 주가 어떻게 할 거야? 그거나 말해봐.

“주가? 주가가 왜?”

한진영이 말을 하며 잠시 기풍홀딩스의 주가를 확인했다.

“주가 아주 좋은 자리에 있네.”

-아주 좋은 자리? 너 우리 회사 주가 보고 있는 거 맞냐? 벌써 이번 주에만 10%가 넘게 빠졌는데 어떻게 좋은 자리에 있는 거야?

“10% 가지고 뭘 그래? 주식시장에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한진영의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에 이성우는 황당해했다.

-야 이번 주에만 10%야. 지난주에 지지난 주 그리고 그전까지…… 그러니까 유상증자 이야기가 나왔던 때까지 합치면 고점 대비 거의 20%가 빠져 내려온 거라고…….

이성우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네가 진행하는 유상증자에 참여했다는 이야기에 반짝 오르기도 했는데 그 전에 유상증자가 실패하면 테라가 휘청일 수도 있다는 말에 함께 빠진 거 생각하면 오른 것도 아니야. 게다가 유상증자가 좋은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또 빠져 내려오고 있고…… 주주들이 난리다 난리.

“주주가 아니라 회장님이 난리인 게 아니고?”

-회장님도 주주 아니냐? 그러니까 주주가 난리 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지.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웃으며 기풍홀딩스 차트를 확인한 뒤 이성우에게 말했다.

“일주일. 일주일 동안 네가 긁어모을 수 있을 만큼 긁어모아.”

-긁어모으라니? 뭘?

“지금 우리가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냐?”

-우리 회사 그러니까 기풍홀딩스 주가 이야기하고 있었지.

“그래. 그러니까 내가 긁어모으라는 건 뭘 긁어모으라는 이야기겠어?”

전화기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성우는 생각에 잠긴 것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숨소리만 내뱉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흐른 전화기에서 살짝 떨리는 이성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모을까?

이유를 물을 만한데도 이유가 아닌 모으는 양부터 물어본 이성우였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가만히 웃으며 천천히 이성우가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이야기했다.

“모을 수 있을 만큼 다 모아.”

-다? 내가 투입할 수 있는 자금을 모두 집어넣어서?

“그래. 핑계 대기 좋잖아. 주가 방어 차원에서 특수관계인인 이성우 사장이 주식을 매입하겠다. 기풍의 가치는 훼손된 게 없으며 앞으로도 더 나은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주가의 하락은 과도하게 빠진 상태이다. 기풍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한진영의 말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듯이 이성우의 펜 소리가 들려왔다.

한진영은 이성우가 자기 말을 다 적을 때까지 기다려준 후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로 내일부터 움직여. 그리고 공시 띄우고 공공연하게 현재 주가는 과도하게 하락했다는 것을 이야기해.”

-알았어. 네 말대로 그렇게 할게. 그런데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뭔데? 물어봐.”

-저…… 너 혹시 우리 회사 주식 매수했냐?

한진영은 이성우의 질문에 잠시 웃음을 터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맞아. 홍 본부장 통해서 너희는 물론이고 테라 이슈로 하락한 나머지 두 곳의 주식도 계속 매입하는 중이야.”

-뭐 있구나.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기쁜 듯이 소리쳤다.

그리고 원망 섞인 말도 내뱉었다.

-야 미리 알려줘야지. 그랬으면 괜히 시간 아깝게 너하고 이런 통화도 하지 않았을 것 아냐. 회장님한테 혼도 안 났을 테고…….

“회장님한테 혼났어?”

-아유 말도 마라.

이제는 기분이 풀어졌는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성우의 목소리가 톤이 올라가 있었다.

-얼마나 뭐라고 했는지 몰라.

“왜?”

-왜긴 왜야? 펀드에 들어가는 거. 그 돈 괜히 날리는 거 아니냐고…… 그뿐인 줄 아냐? 테라 잘못되는 거 아니냐고 걱정으로 산을 쌓고 있더라. 그것 때문에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불려가는지 몰라.

한진영은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정훈 회장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만했기 때문이다.

“이해해. 하지만 이런 때 큰 거 터진다.”

-얼마나 큰데?

이성우는 잔뜩 궁금해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나 큰지 궁금해할 지금 이 시각에 너는 주식이나 끌어모아. 지금 할인행사 중인데 할인행사 이유를 알 시간이 어디 있어? 우선 장바구니에 집어넣은 뒤 결제한 뒤에 알아봐도 늦지 않은데 말이야.”

-그래 네 말이 맞다. 지금 그럴 시간이 없겠다. 오케이 땡큐. 한몫 잡으면 내가 한턱낼게.

“한턱 안 내도 되니까 쓸데없는 걱정으로 전화나 하지 마.”

-전화해서 좋은 정보 알게 됐잖아. 내가 전화 안 했으면 주식 매수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겠어? 덕분에 이런 이야기도 듣고 좋은 거지.

“그래. 잘했다. 네 말이 더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다. 어쨌든 신경 끄고 너는 할 일이나 해.”

-그래. 내가 또 전화할게.

처음 전화했을 때와 완전히 다른 목소리로 전화를 끊은 이성우를 보며 한진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대기하고 있는 조지훈을 향해 이야기했다.

“전화 내용 다 들었지?”

“네. 블랙문 측에 우리는 일주일 뒤가 좋다는 말을 전하겠습니다.”

한진영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조지훈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한 가지 말을 덧붙였다.

“워딩을 너무 강하게 하지는 말라고 해. 괜히 사람들 놀라니까.”

“네. 그것도 전하겠습니다.”

한진영은 블랙문이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걸 알면서도 건넨 지시였다.

그래야 나중에 만났을 때 블랙문에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지시를 마치고 다시 모니터링 화면을 조정하여 테라 주가를 확인했다.

테라는 재차 하락을 이어가며 60달러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호재라고 생각했던 유상증자가 오히려 악재가 되어 시장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

시장이 60달러 붕괴를 일주일째 막아냈을 무렵이었다.

블랙문의 앤드류 볼튼 글로벌 투자 전략 헤드가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블랙문이라는 거대한 그룹의 투자 방향과 앞으로 시장의 움직임 등과 같은 이야기를 주제로 마련된 자리였다.

블랙문의 경우에는 이런 자리가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있을 만큼 특별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저 시장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장참여자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한다는 일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과 같은 인터뷰 자리였다.

그런 인터뷰 자리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바로 테라의 유상증자에 블랙문이 참여했다는 것이었다.

시장은 블랙문의 이야기에 발작하듯이 반응하고 말았다.

공매도의 가장 선두에 서서 테라를 찍어 누르던 블랙문이 공매도를 푼 것도 모자라 유상증자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공매도 참여자들은 모두 패닉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 주가는 단숨에 70달러를 돌파하는 폭등을 보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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