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18화 (417/650)

418화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만들어 간다

최석영은 CNBC와 능숙한 모습으로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다른 방송사의 토론 자리보다 이런 인터뷰 자리가 최석영의 진가를 더욱 잘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양반이 왜 저기 있어?”

이성우는 한진영의 곁에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

한진영은 편하게 이성우가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며 말했다.

“내가 나가라고 했어.”

“그거야 당연히 그렇겠지. 너희 회사 사람이니까. 그런데 웬 CNBC? 지난번에도 CNBC에 나가서 반응 좀 좋았다고 이번에도 외국 방송사하고 인터뷰하는 거야?”

“우리나라 방송사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야 하거든.”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나라 방송사에서 하기 어려운 말이 무엇일지 이성우로서는 상상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진영과 이성우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인터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진행자는 다리를 꼬고 편안한 자세로 자리에 앉아있는 최석영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테라의 승부수는 정말 멋졌습니다. 현재 숏스퀴즈가 터지며 단숨에 테라의 주가가 2배 가까이 올랐는데요. 이후의 전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항상 저희 사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회사는 100배가 오르더라도 과대평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100배요?

진행자는 최석영의 말에 놀란 듯이 맞장구를 쳤다.

최석영은 그런 진행자의 놀람을 받아 카메라를 바라보고 말했다.

-테라는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곳이라고 저희는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것이고요. 30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통해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공장을 증설할 계획입니다. 공장이 완성된다면 분기 생산 30만 대를 생산하여 시장에 공급될 거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현재 생산되는 숫자를 생각한다면 분기 30만 대라면 엄청난 도약을 하는 것인데요. 그렇지만 내연기관 자동차가 한 해 생산하는 자동차 숫자를 생각한다면 분기 30만 대로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진행자의 질문에 최석영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대답했다.

-물론 분기 생산량 30만 대는 국내 자동차 업체의 월 생산량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수치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걸 최종 목표가 아닌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기 30만 대 다음에는 분기 100만 대 그리고 나아가 한 해 생산량 1,000만 대를 목표로 계속 나아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분기 30만 대 생산은 하나의 긴 다리의 가장 앞에 부분에 있는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성우는 최석영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야 최 이사님 테라 직원이 다됐다.”

테라의 관한 청사진을 테라 직원보다 더 자세하게 방송에서 풀어낸 최석영을 본 이성우는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돌아봤다.

“그런데 저거 보려고 나 마중도 안 나온 거야? 최 이사님이 테라 이야기하는 거 보려고? 난 또 뭐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해서 뭔가 했는데…….”

이성우가 실망했다는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말했지만, 한진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마치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다는 듯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모습에 더는 투덜거리지 못한 채 다시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진행자가 최석영을 향해 테라에 관한 이야기를 묻는 중이었다.

테라의 미래와 그런 테라에 투자한 세이지증권의 계획 그리고 블랙문과의 관계 등을 정리한 진행자는 마지막으로 최석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번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펀드의 경우 고객을 모아 진행하는 것이 아닌 세이지증권의 자금만으로 진행한다고 하는데 제가 들은 게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최석영은 진행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번 경우에는 아직 유상증자가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며 큰 수익이 보장된 상황입니다. 그래서 단기간의 수익만 보고 펀드에 가입하려고 문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인부터 기업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이 펀드 가입에 관한 문의를 하였습니다.

이성우는 최석영의 말에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저런 말 방송에서 노골적으로 해도 되냐?”

“가만히 들어. 이제 하이라이트가 시작되려고 하니까.”

이성우는 턱까지 괴고 화면을 바라보는 한진영의 모습에 더는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그리고 화면에서는 그사이에도 최석영의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저희는 새롭게 펀드 고객을 모집하는 것이 아닌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금을 이용하여 유상증자에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는 테라와 먼 미래까지 계획하여 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기 투자 자금이 들어오게 된다면 회사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은 저희가 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차라리 우리의 여유자금을 이용하여 자금 문제로 테라가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하려 한 겁니다.

최석영의 말에 진행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입 뒤 바로 해지만 해도 2배 수익이 보장된 펀드였다.

이런 펀드라면 단기자금이 들어와 수익만 빼먹고 도망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고객을 모집한다면 혼란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세이지 증권의 이런 선택은 현명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최석영은 가만히 진행자를 바라보다 힘든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펀드에 가입시켜달라고 떼를 쓰는 곳이 있어 골치가 아픈 상황입니다.

진행자는 마지막 클로징 멘트를 준비하던 참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최석영의 말에 들고 있던 큐 카드를 내리고 최석영을 바라봤다.

-떼를 쓰는 곳이 있다고요?

-네. 그런 곳들이 있어서 지금 매우 곤란한 상황입니다.

-마치 응하지 않았을 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곳에서 압박하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혹시 지금 그런 압박을 받고 계시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최석영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성우는 화면을 바라보고 눈을 끔벅거렸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전화기를 내밀었다.

이성우는 전화기를 내려다보고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전화기는 왜?”

“저거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하지 않냐?”

“어?”

이성우가 한진영을 올려다봤을 때 한진영은 화면을 향해 턱짓하고 있었다.

이성우는 한진영과 전화기 그리고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급히 문서영을 향해 전화를 걸었다.

***

한창 저녁을 지나서 밤으로 향하는 시각의 서울에 뉴스 하나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다.

[현 여권의 국회의원 A씨와 B씨 세이지증권에 압박을 가한 정황 포착]

CNBC의 인터뷰 후 곧바로 이어 나온 서준일보의 단독보도였다.

기사에선 여권의 유력인사인 국회의원 A씨와 B씨가 펀드 가입과 관련하여 세이지증권에 압박을 가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펀드에 가입하게만 해준다면 세무조사를 비롯하여 국책사업에 특혜를 주겠다는 내용을 세이지증권에 전했다고 했다.

그리고 반대로 자기들의 가입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경기증권 인수부터 시작하여 펀드 가입자 유치 시에 벌어졌던 모든 일을 조사하겠다는 협박을 했다고 했다.

세이지는 이런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했다.

그러나 사장이 탄핵정국의 주인공으로부터 핍박받아 해외로 유배당하다시피 쫓겨갔다는 것에 이어 현 여권의 강도 높은 압박에 회사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압박에 견디지 못한 세이지는 진지하게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기사에서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서준일보 기사에 밤사이 크게 분노했다.

그리고 서준일보가 이야기한 여권의 A씨와 B씨가 누구인지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세이지증권의 해외 이전 소식은 주식시장에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코스피 시장에서 절대적인 수익률을 보이고 있으며 해외 시장에서도 성장성 높은 기업을 발굴하여 투자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회사가 한국 시장을 버리고 떠나려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펀드 가입자는 물론이고 시장참여자들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새끼야?”

세이지의 해외 이전 검토 소식에 코스피가 3%가 넘는 하락을 보이자 증권사 객장에는 세이지증권에 압박을 가한 국회의원을 향해 내뱉는 욕지거리가 난무했다.

인터넷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권이라고 했으니 당은 좁혀졌고, 세이지증권에 이야기할만한 사람은 중진급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 대통령 때문에 난리가 난 상황에서 세이지증권을 해 먹으려고 하는 것을 보니 이 사태를 만든 사람과 같은 사람인 것 같다. 무조건 찾자.

-나 세이지증권 펀드로 지금 달달하게 잘 먹고 있었는데 해외로 넘어가면 안 된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국회의원 찾아서 주둥이를…….

인터넷상에서는 험악한 표현이 마구 쏟아졌다.

그리고 세이지증권을 압박한 것으로 보이는 국회의원 명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언급된 국회의원들이 급히 자기가 아니라는 성명서를 내기 바빴다.

가뜩이나 탄핵정국 속에서 폭탄 맞은 여당에 세이지증권 이야기까지 돌자 여당 내에서도 도대체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며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당 차원의 강력한 조사와 재발 방지를 약속하겠다]

여당의 당 대표가 직접 언론에 나와 세이지증권과 관련된 일을 사과했다.

그리고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국민 여러분이 합당해 할만한 조치도 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한민국에서는 탄핵과 함께 세이지의 이야기가 최대의 화두가 되어 연일 언론을 때려댔다.

이성우는 미국에서도 화제가 된 한국 이야기를 전하는 방송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주 난리다 난리야. 이러다 우리나라 망하는 거 아니냐?”

옆에 이성우가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조지훈에게 지시를 내린 한진영은 이성우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이성우 곁에 앉았다.

“뭐 재미있는 이야기 있어?”

“재미있는 이야기? 온통 방송에서는 네 이야기 천지다. 나 이곳에 오기 전에도 네 이야기 듣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미국 와서도 마찬가지네. 미국 방송에서도 온통 네 이야기야.”

이성우는 마침 방송을 통해 한진영의 파파라치 사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손가락질했다.

“저거 네가 흘린 거지?”

“티 나냐?”

한진영이 웃으며 인정하자 이성우는 한진영을 향해 얼굴을 찡그렸다.

“너~~무 멋있게 나왔잖아.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완전 딴판이야.”

이성우는 갖춰 입은 옷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손에 들려있는 커피잔과 옆구리에 끼어있는 신문을 보고 혀를 찼다.

“완전 설정 아니냐?”

“설정 맞아. 사진도 멀리서 줌으로 당겨 찍으며 자연스럽게 포커스를 날린 덕분에 내 실루엣만 보이고 실제로 얼굴은 보이지 않도록 설정 잡아서 찍은 거야.”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이성우의 질문에 한진영은 당연한 이야기를 묻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곳은 대한민국이 아니고 미국이야. 초상권이고 뭐고 사진 찍고 언론에 내고 보는 나라라고. 너도 헐리웃 스타들 후줄근한 모습으로 사진 찍힌 거 많이 봤을 거 아냐?”

“네가 헐리웃 스타는 아니잖아.”

“아니지. 그런데 너도 방금 그러지 않았어? 내 이야기 지겹게 들린다고 말이야.”

“그렇긴 하지. 그게 사실이니까.”

“그러니까.”

한진영은 바로 그게 이유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일부로 설정 잡고 컨셉대로 사진 찍어서 내 손으로 방송에 내보낸 거야. 갑자기 들이닥쳐서 얼굴을 찍어 언론에 나온다면…… 피곤해지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잘 찍은 사진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너는…….”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말을 하려다 만 이성우였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행동했다면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이겠지만 한진영이 한 일이라면 쓸데없는 짓에도 의미가 부여된다는 것을 곁에서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성우는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화면을 바라본 채로 이야기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은 가만히 웃고는 이성우와 같이 화면을 바라본 채 이야기했다.

“우선 날 괴롭힌 놈들부터 정리하고 생각해보려고.”

“정말 해외로 본사를 옮길 건 아니지?”

“그러지는 않지.”

한진영은 이성우의 어깨를 한번 두드리고 이야기했다.

“너도 기업 하는 사람이라서 알잖아. 대한민국만큼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없어. 오히려 미국이 더 힘들어. 돈 많이 벌면 많이 번다고 여러 가지 규제를 두들겨 맞는 곳이 이곳이거든. 하다못해 블랙문만 봐라. 수백조, 수천조의 돈을 움직이면서도 자산운용사로 계속 남아있는 이유가 뭐겠어? 괜히 욕심부리고 어쭙잖게 몸집 불렸다가는 갈기갈기 회사가 찢어지고 마니까 그냥 조용히 한 업종에만 자리 잡고 있는 거야. 실제로 회사가 찢긴 경우가 수두룩하니까.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이 기업 하기에는 천국이야. 그런데 내가 왜 회사를 옮기겠어? 그저 제스처만 취하는 것뿐이지.”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한진영이 제스처를 취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한진영의 행동에 대한민국에서 바로 반응이 나왔다.

[세이지증권에 압력을 가한 의원으로 보이는 의원들이 금일 저녁 사과 기자회견을 자청]

[여당에서는 사과와 관계없이 관련 의원들을 제명 조치에 들어감]

[검찰에서는 압력을 행사하며 위법을 저질렀는지 파악한 후 위법 사항이 발견될 시 바로 기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세이지증권에 압력을 가한 국회의원을 찾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사건이었기에 여당에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압력을 가했던 국회의원들은 여론과 당내의 분위기에 스스로 자백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소문의 국회의원이 외부로 모습을 드러냈다.

탄핵정국으로 무너져 내려가던 여당은 자백했음에도 관련 국회의원들을 바로 제명 처리했다.

또한, 내규를 고쳐 제명된 국회의원들이 다시 복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하게 선을 그어버리기까지 했다.

가뜩이나 사람들에게 미움을 산 상태인데 이런 일로까지 사람들에게서 멀어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움직이자 검찰도 바로 움직였다.

압력행사에 위법행위를 찾아내어 기소하겠다는 의견은 언론을 통해 이야기하며 검찰에 대한 신뢰를 쌓으려 한 것이었다.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탄핵정국과 맞물려 검찰에 대한 신뢰도가 시민들에게 급상승하는 기회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세이지증권의 반응에 주목했다.

세이지증권에 압력을 행사한 국회의원이 잡히고, 제명되고, 검찰 수사까지 받는 마당에 정말 대한민국을 떠나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시선으로 세이지증권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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