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화 교두보가 세워지다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관심을 보이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한진영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파티장 멀리 떨어져 로이드 블랭크페인과 한진영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모르는 사람들까지 로이드 블랭크페인 앞에 젊은 사람이 서서 단순한 인사가 아닌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 한진영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어느새 파티장의 중심이 한진영의 주변이 되어버렸다.
릭 앤더슨은 이런 모습에 신기하다는 듯한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이곳은 일반적인 파티장과는 수준이 다른 곳이었다.
파티가 열리는 곳은 파티장은 물론이고 파티장이 자리한 건물에 들어오는 것조차 신분이 확실한 사람이 아니면 들어오지 못했다.
그만큼 특별한 곳에서 열린 행사였다.
파티장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파티장에 초대된 사람들 또한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미국은 물론이고 전세계 시장을 움직이는 초거대 거물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자리였다.
그런 곳에서도 주눅 드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자기 주변으로 끌어모으는 능력까지도 갖추고 있었다.
순식간에 거물들의 자리에서도 자기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만들어 내고 말았다.
물론 사람들의 관심이 한진영에게 쏠린 것은 온전히 시장의 지배자 중 하나라고 불리는 로이드 블랭크페인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볼 수 있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관심을 가졌기에 사람들의 관심도 함께 따라온 것이었다.
그러나 로이드 블랭크페인의 관심을 끌어낸 것은 한진영의 능력 덕분이었다.
사람을 관심을 잡아끄는 매력.
그런 매력은 배운다고 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릭 앤더슨은 뉴욕의 거물들 가운데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한진영을 흥미로운 듯이 바라봤다.
“맞아요. 자기가 선택한 일을 가지고 남 탓을 하는 사람은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지요. 이곳은 그런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줄 만큼 녹록한 곳이 아닙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도 릭 앤더슨과 같은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로이드 블랭크페인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은 로이드 블랭크페인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저는 그 이야기에 동의할 수 없군요.”
모여있는 사람을 헤치고 은발의 노년 신사가 다가왔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존경의 시선을 보내며 길을 비켜줬다.
로이드 블랭크페인조차 자기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를 향해 존경심을 표할 정도로 그는 이곳에서도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레이 젠슨 브릿지랜드 어소시에이츠 CEO입니다.”
조지훈이 한진영의 곁에 다가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줬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가만히 고개만 끄덕인 채로 레이 젠슨을 바라보기만 했다.
“처음부터 거물이 찾아왔네.”
한진영은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고는 레이 젠슨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레이 젠슨은 그런 한진영의 시선을 마주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젊은 친구였군. 과감하다 못해 무모하다고 생각하여 어떤 사람인가 했더니 말이야.”
“소개하겠습니다. 여기 있는…….”
“아니야. 됐어.”
레이 젠슨은 릭 앤더슨의 소개에 손을 들어서 막았다.
그리고 릭 앤더슨을 바라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토미 랜스가 자네에게 이렇게 일하라고 가르치던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시장의 물을 흐리는 놈의 앞잡이가 되라고 시키더냐 이 말이야.”
쩌렁쩌렁 울리는 레이 젠슨의 말에 릭 앤더슨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레이 젠슨은 한심하다는 듯이 릭 앤더슨을 바라보고 고개를 돌려 로이드 블랭크페인을 바라봤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시장을 교란한 사람을 들일만큼 이곳의 물이 흐려진 겁니까?”
“저는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골드만삭스가 큰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 그러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브릿지랜드가 손해를 봤다고 이래서도 안 되지요.”
“골드만삭스도 블랙문과 함께 이 어린놈의 앞잡이가 되려 하시는 겁니까?”
“저는 오늘 여기 있는 젊은 친구를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앞잡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삼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치도 물러나지 않는 로이드 블랭크페인의 모습에 공격적인 말을 내뱉던 레이 젠슨도 한발 물러났다.
“좋습니다. 그럼 직접 제가 이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에게 물어봐야겠군요.”
레이 젠슨의 화살이 한진영에게로 향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레이 젠슨과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성우는 도대체 저 은발의 노신사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브릿지랜드인가 뭔가의 주인인 것 같은데 브릿지랜드가 어떤 곳이기에 골드만삭스하고도 당당히 서서 이야기하고 블랙문의 CIO의 고개를 숙이게 만든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이성우는 알만한 존재인 조지훈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구야?”
“레이 젠슨 회장이요?”
“그래. 레이 뭐시기…… 누군데 저러는 거야?”
조지훈은 이성우의 귀에 손을 가리고 입을 가져다 댄 채로 레이 젠슨에 관해 이야기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릿지랜드의 주인이에요.”
“세계 최대? 헤지펀드? 그러면 저기 있는 블랙문은 세계 최대가 아니야?”
“블랙문은 자산운용사이고요. 브릿지랜드는 헤지펀드예요.”
이성우는 조지훈에게 두 개가 뭔 차이가 있냐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조지훈은 이성우에게 답답하다는 듯이 짧게 설명했다.
“자산운용사가 헤지펀드를 품고 있다고 보면 돼요. 브릿지랜드같이 특별한 경우에는 일반 자산운용사의 수준을 까마득히 넘어서기도 하니까 꼭 자산운용사가 더 크고 헤지펀드가 작다고 볼 수는 없어요. 그저 개념적으로 더 상위에 있다고 보는 편이 이해하기 쉬워요.”
“브릿지랜드 같은 경우는 상위개념을 뛰어넘을 정도의 존재라는 거 아냐? 얼마나 큰 곳이기에 그래?”
“정확한 규모가 알려진 게 없지만 대충 1,200억 달러 정도를 운용한다고 예상해요.”
“얼마?”
“1,200억 달러요.”
“170조? 170조를 굴리고 있다고?”
“네. 그것도 최소 금액으로 예상했을 때 그렇다는 거예요. 실제로는 더 많은 돈을 굴린다는 말도 있어요.”
이성우는 조지훈의 말에 기겁하고는 레이 젠슨과 마주하고 서 있는 한진영을 바라봤다.
달과 반딧불만큼이나 차이를 보이는 상대를 눈앞에 둔 한진영은 마치 이런 사실을 모른다는 듯이 당당히 레이 젠슨 앞에 서 있었다.
***
레이 젠슨은 한진영에게 마치 테라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것처럼 블러핑을 치고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일은 신사가 할만한 일은 아니라며 윽박질렀다.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며 일을 진행하는 것이 이곳의 룰이건만 아무것도 모르는 타국의 어린애가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한진영은 그런 레이 젠슨의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어떤 반박도 그렇다고 어떤 변명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편안한 표정으로 서서 레이 젠슨의 이야기를 듣기만 한 것이었다.
레이 젠슨은 마치 벽을 보고 말을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아서인지 한진영을 향해 극도의 분노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한진영을 이곳에 부른 이들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레이 젠슨이라는 사람이 가지는 위치와 그가 쌓은 업적은 이곳에서 그가 이런 행동을 하더라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10만 달러의 투자금을 40년 동안 1,200억 달러로 만들어낸 그의 입지전적인 성과가 누구도 그의 행동을 말리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유치해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가 이러는 이유를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시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시지요.”
로이드 블랭크페인의 말에 레이 젠슨은 화를 내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 로이드 블랭크페인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야기 듣기로는 테라스에도 자리를 마련해 놨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서 잠시 찬바람 좀 맞고 오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5분 전에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이런 말을 했다면 레이 젠슨은 자리에서 펄쩍 뛰며 화를 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진영을 향해 삿대질했다.
“내가 지켜볼 테니까 그리 알아.”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적의를 담은 지켜보겠다는 말에 한진영은 다음에 또 만나자는 말을 건넸다.
레이 젠슨은 그런 한진영의 말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는 몸을 돌렸다.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레이 젠슨의 모습에 곁에 있는 사람에게 눈짓을 건넸다.
레이 젠슨을 따라가라는 뜻을 눈짓으로 전한 것이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CEO는 멀어져 가는 레이 젠슨 브릿지랜드 CEO를 바라보고 웃었다.
“저분도 많이 늙었어. 예전 같았으면 10분은 넘게 소리를 질렀을 텐데 말이야.”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빠르게 흘러간 세월이 야속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한 사장님께서 이해하세요. 저분이 저러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꽤 큰 금액을 테라에 공매도 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알고 있었군요.”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대화에 테라 공매도로 한 사장에게 화를 낼 사람은 이곳에 있지 않을 거라는 대화를 한 것이 무색하게 바로 나타나서 민망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뭐…… 저분이라면 그럴 만한 분이니까요. 한 사장이 이해하도록 하세요.”
“아닙니다. 저분도 저분 나름 대로 저를 배려하여서 한 행동이니 제가 화를 낼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저분이 진심으로 저에게 화가 나서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 블랭크페인 씨께서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요?”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내려놓고 한진영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정말 알고 있는 겁니까?”
“그러니 화를 내시는 동안 내내 제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것이지요. 저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한진영을 위아래로 다시 살폈다.
그리고 나지막한 웃음을 낮게 흘리고는 한진영의 팔을 가만히 잡았다.
“나중에 다시 봅시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한진영이 레이 젠슨 브릿지랜드 CEO에게 건넸던 인사를 로이드 블랭크페인 CEO에도 건넸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CEO는 그런 한진영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릭 앤더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가 오간 것은 아니지만 마치 눈빛으로 대화를 나눈 듯한 두 사람이었다.
릭 앤더슨은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자리를 떠나자 한진영에게 다가왔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짜고짜 축하 인사를 건넨 릭 앤더슨이었다.
그런데 그런 릭 앤더슨을 향해 한진영은 뭘 축하하는 거냐고 묻지 않은 채 감사하다는 말로 축하 인사를 받을 뿐이었다.
릭 앤더슨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기가 찬다는 듯이 웃으며 물었다.
“제가 뭘 축하하는지 아십니까?”
“미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세워진 것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는데요.”
“허허.”
릭 앤더슨은 자기가 알려주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한진영의 모습에 허탈하게 웃었다.
“다 알고 있으니 따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자리를 잘 즐기도록 하십시오. 이제 많은 사람이 한 사장님께 모일 테니 그들과도 이야기를 잘 나눠보도록 하시고요. 그럼 저는 오늘 할 일을 다 한 것 같으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만간 감사 인사를 드리러 회사로 찾아가겠습니다.”
“하하하.”
릭 앤더슨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음에 펼쳐질 일을 이야기한 것인데 한진영은 그조차도 알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을 보였다.
릭 앤더슨은 못 이기겠다는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웃어 보이고는 곧 다시 보자는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이성우는 한진영과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자 한진영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세 사람이 자리를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이성우만이 아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클라임 자산운용의 투자전략가를 맡은…….”
“안녕하십니까? 저는 볼 인슈어런스에서 투자책임을 맡은…….”
“뵙고 싶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한 사장님의 이름이 아시아 쪽에서는 많이 회자가 되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홍콩 투자은행의…….”
한진영을 향해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먼저 명함을 내밀고 한진영과 인사를 나눴다.
그들은 한진영과 한마디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
한진영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는 기색이 역력한 그들이었다.
한진영은 찾아온 사람들을 향해 반갑게 인사한 후 이성우를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사하시지요. 기풍의 이성우 사장입니다. 기풍의 차기 승계가 가장 유력한 사람입니다.”
한진영의 소개에 사람들은 이성우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다.
블랙문이 초대하고 골드만삭스가 관심을 보이며 브릿지랜드의 전설적인 투자자와 다툼을 보였던 사내가 소개한 것에 그들은 이성우에게도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성우가 최근 시장의 화두와 마찬가지인 테라의 주요 거래처의 차기 오너라는 사실에 이성우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성우는 부담스러운 시선에 쭈뼛거렸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한진영이 소개할 때마다 그에 맞춰 자신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렇게 파티장에서 한진영과 이성우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휴우~”
이성우는 땀에 흠뻑 젖은 옷을 털며 한숨을 내쉬었다.
늦은 시간까지 파티장에서 인사를 나눈 이성우는 한진영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겨우 땀을 식힐 수가 있었다.
“정신없었다. 이거 봐.”
이성우는 자기 손에 들린 명함을 한진영에게 내어 보이고는 말했다.
“파티장에서 받은 명함들이야. 그것도 하나하나 다 대단한 사람들의 것으로 말이야.”
한진영은 들어 올린 이성우의 손을 가만히 눌러 내리게 했다.
“그런 자랑은 서울에 돌아가거든 다른 사람들에게 해. 나는 네가 받은 것들보다 더 많은 걸 받았으니까.”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는 멋쩍은 듯이 웃으며 품속에 명함을 집어넣었다.
“자랑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서 그러는 거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너한테 인사하려고 안달 낸 거냐? 뭐 덕분에 나도 큰 수확을 얻었지만…….”
이성우가 궁금하다는 듯이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한진영은 삐져나온 이성우의 옷자락을 잡아 집어 넣도록 만들고 대답했다.
“뉴욕은 명성이 중요해. 그 사람이 어떤 학교를 나오고 배경이 어떤지보다 지금 누구와 대화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거야. 그래서 릭 앤더슨 블랙문 CIO가 나를 제일 먼저 로이드 블랭크페인에게 데려간 거야. 그리고 결정타로 레이 젠슨 회장이 찾아온 덕분에 일이 쉬워진 거지.”
“그런데 아까 네 이야기 들어보니 레이 젠슨 회장은 너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그런데 왜 너를 도와줘? 레이 젠슨 회장이 너와 소란을 일으킨 게 너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한 행동이라며?”
“그러게 왜 그랬을까? 어렴풋이 예상하는 게 있기는 한데…….”
한진영은 말을 다 끝마치지 않은 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성우는 한진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웃고만 있는 것을 보면서도 재촉하지 않았다.
자기가 알아야 할 이야기라면 한진영이 알아서 먼저 이야기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지금 이성우에게는 조금 전 받아온 명함들이 더 중요했기에 이성우는 품에 담긴 명함들을 손으로 두드리고 한진영과 나란히 길을 걷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