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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21화 (420/650)

421화 뉴욕에서는 원수와도 함께 일한다

모임에 나가 여러 사람을 만났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세이지증권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연락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장님. 이번에 만나자고 연락해 온 곳은 뱅크 오브 캘리포니아입니다.”

“뱅크 오브 캘리포니아. 괜찮지. 만나자고 해.”

한진영이 허락하자 조지훈은 바로 스케줄을 확인했다.

“뱅크 오브 캘리포니아가 다음 주에 뉴욕에 넘어오겠다고 하는데 그때로 약속을 잡을까요?”

“그럴 필요 없다고 해. 다다음주에 우리가 캘리포니아에 넘어가서 테라와 계약을 맺는 일이 있으니까 그때 만나자고 해.”

“네. 알겠습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지시에 따라 스케줄을 조정했다.

조지훈은 그 뒤에도 한진영에게 연락해 온 곳을 이야기하고 스케줄을 잡아갔다.

이성우는 조용히 조지훈과 한진영의 대화를 들었다.

빡빡하게 느껴질 정도로 타이트하게 시간을 조정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성우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와서까지 워커홀릭처럼 일하는 한진영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스케줄을 조정하는 시간을 마친 후 조지훈이 자리를 떠나자 이성우가 한진영을 향해 힘들지 않냐는 투로 물었다.

“너 안 피곤하겠냐? 거의 분 단위 스케줄이잖아.”

“피곤하지. 그런데 지금 이렇게 미리 만나서 이야기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정리하기 더 힘드니 지금 피곤하더라도 하는 게 맞아.”

“나중에 정리한다니? 뭘 정리하려고?”

“내가 아니라 내 다음 사람을 위한 정리. 그래야 일이 쉬워질 테니까.”

“다음 사람?”

이성우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한진영이 웃으며 말했다.

“언제까지 내가 이곳에 있을 수는 없잖아.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중요한 일들을 정리하고 넘긴다면 내가 없더라도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거야.”

“너 설마 한국에 돌아가려고 그러는 거냐?”

“그럼 내가 여기서 평생 살 줄 알았어?”

한진영이 무슨 그런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냐는 듯이 이성우의 등을 한 차례 두드리고는 몸을 돌렸다.

급하게 구한 것치고 사무실은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었다.

비서실 직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서울에서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마무리를 해나가는 사무실을 바라보고 말했다.

“우선은 한국에 돌아가야 해. 거기도 벌여놓은 일들이 많이 있으니 거기부터 정리해야지. 그리고 다시 이곳에 와야지. 어쨌든 나중엔 이곳이 주 무대가 될 테니까.”

한진영은 크게 가슴을 펴고 미래를 기대하는 눈으로 이야기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힘들더라도 바삐 움직이는 거야. 내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내 일을 받아 진행할 사람이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말이야.”

한진영은 앞으로의 계획을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한 후 고개를 돌려 이성우를 바라봤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제일 필요한 게 뭔 줄 아냐?”

“뭔데?”

“자가용 비행기.”

“뭐? 자가용 비행기가 제일 필요하다고? 지금?”

이성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한진영을 바라봤다.

“널 대신해서 미국에서의 일을 잘 진행할 사람이 필요하다던 지 아니면 일을 진행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자가용 비행기가 제일 필요하다고?”

한진영의 생각도 못 한 말에 이성우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정말로 필요한 게 그거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앞으로 여기저기 많이 다닐 텐데 내 비행기 하나는 있어야지.”

“무슨 차 한 대 뽑아야겠다는 듯이 자가용 비행기를 그렇게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하냐?”

“이곳에서 활동하면 그 정도 레벨은 돼야지.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활동한다고 할 수 있겠냐? 여기는 금융시장의 메카인 뉴욕인데?”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는 반박할 수 없었다.

자가용 비행기는 서울 여의도에서 먹히지 않는 말이겠지만 이곳에서는 기업의 오너가 아니더라도 자가용 비행기를 소유할 수 있을 정도의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사장님.”

한진영이 이성우를 잡고 비행기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을 때 조지훈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한진영에게 이야기했다.

“레이 젠슨 회장님께서 뵙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레이 젠슨 브릿지랜드 어소시에이츠 회장님?”

곁에 있던 이성우가 오히려 조지훈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야 그분…… 큰손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이성우를 가만히 바라본 한진영은 고개를 저었다.

“너 이제 집에 가라.”

“어?”

“충분히 놀았잖아. 이제 그만 돌아가.”

“왜 그래? 나 쫓아내는 거야?”

이성우가 불쌍한 듯이 얼굴을 찌푸리자 한진영은 이성우보다 더욱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내가 이제 바빠질 것 같아서 그래. 그러니 이제 그만 가. 너도 품속에 있는 그 명함들 처리하려면 빨리 돌아가는 편이 낫지 않아?”

한진영의 말에 품에 손을 가져다 댄 이성우는 슬쩍 웃으며 말했다.

“티 났냐?”

“티 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여기서는 네가 명함을 가지고 있는다고 뭐 바뀔 게 하나도 없으니까. 돌아가서 회사 차원에서 움직여야지 그 명함들이 진짜 값어치를 보일 수 있다는 건 어린아이도 아는 이야기 아니냐?”

“하긴. 나도 슬슬 돌아갈 시간이 되기는 했어. 우리 딸 얼굴이 자면서도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한진영은 딸 얼굴이 보고 싶다면서도 품에 손을 얹어놓고 있는 이성우를 보고 웃었다.

말은 딸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그의 몸이 솔직하게 빨리 받은 명함들을 처리하고 싶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이성우가 순순히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조지훈에게 지시했다.

“최대한 빠른 시간으로 잡아. 그게 오늘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조지훈이 한진영의 말을 듣고 브릿지랜드와 이야기하기 위해 떠나자 이성우가 한진영에게 슬쩍 물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왜 보자고 한지 아냐?”

“나를 보자고 한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지.”

“어떤 한가지?”

“나와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것. 그거 아니면 나를 만나겠다고 먼저 연락할 이유가 없어.”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 이상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너 때문에 크게 얻어맞았다며? 테라 공매도 쳤다가…… 그런데 너하고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할 거라고? 그 할아버지가? 진짜?”

“나한테 얻어맞은 사람이 그 회장님뿐인 줄 아냐? 파티장에서 헤지펀드 관련된 사람들은 테라로 다 나한테 얻어맞았다고 보는 게 맞아. 헤지펀드가 돈 버는 방법이 바로 테라 같은 기업을 공매도 치며 돈을 버는 거거든. 그리고 블랙문조차 완벽하게 피할 수가 없었는데 거기 있던 사람 중 누가 피했겠어?”

한진영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하긴 헤지펀드만이 아니다. 듣기로는 골드만삭스도 공매도로 좀 아프게 당했다고 했으니까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테라로 나한테 얻어맞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테라는 공매도의 놀이터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모든 공매도 세력의 표적이었으니까.”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한진영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너한테 만나자고 한 사람들이 모두 너에게 당한 사람들이었다는 거야? 파티장에서 얼굴 마주한 사람도 너한테 당한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은 배알도 없는 거냐? 너한테 당했는데 왜 너한테 만나자고 하고 너하고 같이 왜 일하자고 해?”

“성우야. 일은 자존심으로 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이곳은 특별해. 여기에서는 부모의 원수라고 하더라도 함께 했을 때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손잡고 함께 일하는 곳이 바로 여기야.”

한진영은 이상하다는 표정의 이성우에게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고는 다가오는 조지훈을 바라봤다.

조지훈은 브릿지랜드와 약속한 시간을 한진영에게 찾아와 보고했다.

“내일 점심 약속을 제안해서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잘했어.”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이성우를 돌아봤다.

이성우의 표정은 한진영의 이야기를 들은 뒤 복잡하게 변해 있었다.

돈이 최고라고 이정훈 회장에게 배운 이성우였다.

돈을 위해서라면 부모의 원수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게 이야기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지자 이성우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상상하던 것과 실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것에 이성우는 이곳이 무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성우와 달리 한진영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을 바라보며 뉴욕 월스트리트가 다른 세상이듯이 한진영 또한 다른 세상에 사는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

레이 젠슨과 약속한 식당은 한국 사람에게도 익숙한 스테이크 집이었다.

뉴욕으로 여행 가는 사람이 꼭 들리고는 한다는 뉴욕 3대 스테이크 가게 중 하나가 바로 1,200억 달러의 자산을 움직이는 사람과 점심을 먹기 위해 만나는 장소였다.

“괜찮을까요?”

조지훈은 입구에서 걱정되는 듯한 눈으로 안을 살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걱정을 자아내게 했기 때문이다.

“젠슨 회장님이 정한 곳 아니야?”

“네. 이곳에서 만나자고 하기는 했는데…….”

조지훈은 브릿지랜드에서 전달받은 주소와 스테이크집 주소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적합한 장소가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괜찮아. 주소가 맞으면 여기가 맞는 거겠지.”

한진영이 괜찮다고 조지훈의 어깨를 두드릴 때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한진영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혹시 미스터 한이 맞으십니까?”

“네. 제가 세이지의 한진영입니다.”

“들어가시지요. 회장님께서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레이 젠슨의 비서로 보이는 여자의 말에 한진영이 조지훈을 향해 살짝 웃어 보이고는 여자를 따라 카운터로 다가갔다.

“회장님 손님이십니다.”

“아 네. 따라오세요.”

앞치마를 입은 종업원은 익숙한 모습으로 한진영을 향해 따라오라고 손짓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한진영이 입구에 멈춰선 여자를 뒤로하고 종업원을 향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다른 종업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은발의 신사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왔네. 그럼 그렇게 주게.”

레이 젠슨은 미리 주문하고 있었던지 한진영을 보자마자 음식을 내올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앞에 놓인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복잡하니까 인사는 생략하고 바로 앉도록 하게.”

“네. 그럼.”

한진영은 레이 젠슨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비어있는 의자에 앉았다.

레이 젠슨은 한진영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으며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내가 만나자고 한 제안에 놀라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네. 사실인가?”

“예상하였으니까요.”

“예상했다? 그날 파티장에서 다시 보자는 말이 진심이었나 보군.”

“네. 다시 보게 된다는 느낌을 받아서 건넨 인사였습니다.”

“하하하.”

레이 젠슨은 한진영의 말에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는 식당을 둘러봤다.

“조금 시끄러운데 괜찮나?”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다행이네. 내가 이곳 식당을 좋아해서 이곳에서 보자고 한 거라네. 여기 스테이크를 오래전부터 먹어와서 꼭 집 밥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곳이거든. 그리고 이렇게 편한 곳에서 사람을 봐야 제대로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가지고 있기도 하고…….”

레이 젠슨은 말을 마치고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봤다.

한진영은 레이 젠슨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레이 젠슨은 그런 한진영을 바라보고 웃었다.

“그때 파티장에서 봤을 때도 느꼈지만 자네는 내가 보고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레이 젠슨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서류뭉치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레이 젠슨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게 한진영의 이야기가 적혀있는 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진영은 일부러 보여주려는 듯이 탁자 위에 서류를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두드리기까지 하는 레이 젠슨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래 봤자 회장님에 비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수준일 겁니다.”

“그렇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수준의 사람에게 내가 크게 당했지.”

레이 젠슨은 허탈한 듯한 웃음을 흘리고는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최근에 당한 것 중에 자네에게 당한 것이 가장 아파. 금액도 많고…….”

한진영은 가만히 레이 젠슨의 말을 들었다.

레이 젠슨은 한진영을 향해 투덜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테라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좋은 먹잇감밖에 되지 않는 존재였어. 거창한 계획은 있지만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의 회사는 언제가 됐건 망하고 마니까.”

레이 젠슨은 테라를 공매도 칠 때를 떠올리자 아쉽다는 느낌이 더욱더 강하게 드는 것인지 표정이 어두워져 갔다.

“우리가 계산한 테라의 생명줄은 1년이었어. 자네가 유상증자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말이지.”

레이 젠슨은 식전 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지금이라도 취소할 생각은 없나?”

한진영은 레이 젠슨이 바라보고 있는 식전 빵을 집어 먼저 레이 젠슨 앞의 접시에 놓은 후 자기 접시 위에도 놓았다.

그리고 버터를 발라 식전 빵을 맛본 후 레이 젠슨의 질문에 대답했다.

“회장님. 지금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만 해도 저는 앉아서 2배의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최소로 말입니다. 유상증자가 실패할 것을 기대하고 눌러놓은 주가가 체결 소식에 한 단계 점프를 하게 된다면 수익은 그보다 더 커질 텐데 제가 여기서 유상증자 진행을 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식전 빵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갓 구운 빵이라서 그런지 더 맛있네요.”

“맛있다니 다행이네.”

레이 젠슨은 한진영이 접시에 놓아준 빵을 집어 맛을 봤다.

한진영은 빵을 집어 입에 넣는 레이 젠슨을 향해 말했다.

“테라의 유상증자를 포기할 정도로 맛있는 이 식전 빵과 같은 제안이 있다면 혹시 모르겠네요. 제가 포기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레이 젠슨은 빵을 입에 넣은 채로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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