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화 명품 매장만으로는 쇼핑몰 운영이 안 된다
코인 그라운드의 본사는 테라가 자랑하는 알파 팩토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실리콘 밸리라고 부르는 캘리포니아의 대단위 공업 단지에 자리하고 있는 코인 그라운드는 그곳에서도 중심부에 위치한 곳에 사무실을 얻어 사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타일러 버드가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동양의 투자자를 모시고 왔다는 소리에 모든 직원이 타일러 버드 쪽에 관심을 보였다.
동양인 투자자는 잠시 사무실을 둘러본 후 회의실로 타일러 버드와 함께 들어가 현재 코인 그라운드의 상태에 관해 이야기 들었다.
“현재 코인 거래 시장의 일간 거래대금은 약 2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전세계 모든 코인을 통합했을 때의 금액입니까?”
한진영의 질문에 코인 그라운드의 IR 담당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
“코인 거래의 특성상 거래소마다 개개로 나뉘어 정확한 금액을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상이라는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그렇다면 집계 코인은 어느 범위까지로 제한을 둔 겁니까? 알트코인들까지 모두 더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일 텐데 말입니다.”
담당자는 땀을 훔치고는 타일러 버드를 돌아봤다.
투자자라고 하여 그냥 일반적인 수준의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
회사의 재무 건전성만을 확인하고 투자금의 쓰임새만 확인하는 정도가 아닐까 예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일반 투자자하고 수준이 달랐다.
재무제표는 물론이고 코인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장에서 가장 성장성이 높아 보이는 코인은 무엇입니까? 아니. 그것보다 그런 것들이 현재 코인 그라운드에 상장이 되어 있습니까? 상장된 코인들이 어떤 것들인지 보여주십시오. 왜 AAA코인은 상장이 되어 있지 않은 겁니까?”
코인에 대한 질문을 쏟아낼 때마다 담당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타일러 버드가 담당자를 대신하여 대답해야만 했다.
“우리 거래소는 철저한 검증을 통해 고객들에게 양질의 코인을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장 심사는 총 네 단계에 걸쳐지며 상장이 확정되더라도 우선 임시 거래소에서 거래를 진행하여 테스트한 후 정식 거래소에 상장하는 시스템을 취하고 있습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타일러 버드의 말에 한진영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해서는 코인판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확신에 찬 한진영의 말에 타일러 버드는 잠시 멈칫했다.
한진영은 재무적 투자자의 위치에 있었다.
코인 거래소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은 자신이었으며, 코인 그라운드의 직원들이 누구보다 더 코인판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시장을 바라보고 예상하는 것에서 오히려 자리에 있던 사람들보다 더 단호했다.
“코인 거래자들은 일반적인 금융시장의 참여자들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주식 시장보다 더 과감하고 수익에 대한 욕망이 큰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 앞에 심사를 거친 양질의 코인을 제공하려 한다? 그런 행위는 고객을 위험에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계속 뒤처지게 만드는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무 코인이나 상장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아무 코인이나 상장해야 합니다. 선택을 거래소가 하려 하지 마십시오. 선택은 고객의 몫입니다.”
“그러다 사고라도 터지면요?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타일러 버드가 한진영의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며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타일러 버드의 주장에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했다.
“사고는 코인이 아닌 거래소에서 나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타일러 버드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한진영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앉은 채로 계속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코인 시장에서의 사고는 대부분 거래소의 해킹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래소의 보안에 특히 주안점을 두라고 이야기했던 것이고요.”
“한 사장님의 지적에 보안을 이중 삼중으로 두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행히도 우리 거래소에서는 해킹 사고가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잘하셨습니다.”
한진영의 칭찬에 타일러 버드가 살짝 자부심이 느껴지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진영은 그런 타일러 버드의 긴장감을 다시 환기했다.
“그러나 여기서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보안을 첫째로 생각해서 더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해킹 시도는 더욱 많아지게 될 테니까요. 그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말입니다.”
한진영 말의 의도를 알아들은 타일러 버드는 얼굴을 굳혔다.
오프라인에서의 해킹은 직원의 범죄를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인 자체의 사고 보다 직원을 더 조심하라.
타일러 버드는 한진영의 말에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한진영은 자기 말을 진지하게 듣는 타일러 버드를 바라보고 지난 시절을 떠올렸다.
코인 시장에서 벌어진 갖가지 사건 사고의 중심에는 언제나 거래소가 끼어 있었다.
정부를 비롯한 기존 제도권의 품에 들어가지 않은 자유로움이 보안의 취약점을 드러냈고, 해커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거래소가 보유하고 있는 코인들을 탈취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것을 떠올렸다.
‘코인 그라운드에서도 탈취 사건이 일어났었지.’
코인 그라운드의 직원이 거래소가 보유하고 있는 시가 7,000억에 달하는 코인을 탈취하는 일을 기억하고 있던 한진영이었다.
그 일로 인해 코인 그라운드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었으며 코인 시장 또한 안전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퍼져 한동안 침체에 빠지고 말았었다.
그러나 운 좋게도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인 붐이 일어나며 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났었다.
‘이번에는 그 일이 일어나게 만들면 안 되지.’
지난 시절 코인 그라운드에서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코인 그라운드는 코인 시장에 더 높은 영향력을 행사했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시장의 지배자로 자리하고 다른 거래소와는 격이 다른 위치에 서 있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한진영은 생각했다.
하지만 코인 그라운드는 사고로 인해 사람들의 신뢰를 잃었고, 그로 인해 다른 거래소들과 경쟁하는 위치에서 치열하게 싸워야만 했다.
한진영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만들려 했다.
그래서 보안에 대해 강조했던 것이었다.
특히, 오프라인 해킹으로 이야기되는 직원이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타일러 버드의 머릿속에 주입하여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 한 것이 한진영의 의도였다.
그리고 한진영은 한 가지를 더 이야기했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 보자면…….”
보안에 관한 생각에 잠겨있던 타일러 버드는 한진영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한진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무조건 다른 곳들보다 많은 코인을 다루는 것을 추천합니다. 지금은 몇 개의 코인에 거래가 집중되어 있지만, 시장이 확대되고 투자에 적극적인 투자자들이 코인에 관심을 뒀을 때 지금 거래되고 있는 코인만으로는 그들을 끌어와 코인 그라운드에 앉히기에는 부족하니까요.”
한진영은 여전히 앞에 서 있는 담당자와 오른편에 앉아있는 타일러 버드를 번갈아 바라본 후 계속 이야기했다.
“코인 그라운드의 수익 구조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코인 그라운드에서 거래하여 거래대금이 높아졌을 때 거기에서 나오는 수수료로 먹고사는 구조이지요. 그렇다면 고객들에게 많은 상품을 보여주어야 그들이 거래할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명품 매장 몇 개만으로 쇼핑몰 운영이 안 되듯이 말입니다.”
“명품 매장만으로는 쇼핑몰 운영이 안 된다?”
타일러 버드는 머리를 때리는 듯한 한진영의 말에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그가 추구하는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한진영이 한 것이었다.
“너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요?”
앞에 서 있던 담당자가 타일러 버드와 마찬가지의 놀란 얼굴을 하고 물었다.
기술이 가장 앞에 서야 하는 곳에서 돈이 가장 먼저 이야기되는 것은 아니냐는 걱정에서 한 질문이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한 거니까요.”
“어떤 경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거래소 간의 경쟁 말입니다.”
한진영은 몸을 비스듬히 돌려 탁자에 손을 올리고 두 사람을 향해 설명했다.
“코인은 특이한 시장입니다. 주식과 채권을 비롯한 다른 금융 상품들과 다르게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지요. 그러다 보니 각각의 거래소에서 자체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고객들은 거래소를 골라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거래를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두 사람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덕분에 자기네들이 먹고살고 있음을 코인 그라운드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한진영은 두 사람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질 만한 이야기를 던진 후에도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다 보니 무한경쟁 체제에 속해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래도 세이지의 투자 덕분에 점유율을 크게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전세계 점유율의 50%. 제가 코인 그라운드에 원하는 것은 바로 전세계 점유율의 50%를 원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50%라니요? 이제 겨우 10%를 엿보는 수준인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매출이…….”
타일러 버드가 담당자를 바라보자 담당자가 급히 자료를 살피고는 타일러 버드가 원하는 값을 이야기했다.
“현재 기준인 거래대금 20억 달러로 계산 시 우리 코인 그라운드의 거래대금만 일간 10억 달러…… 라는 이야기입니다.”
담당자도 당황했던지 주춤거리고는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어서 다음을 이야기하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담당자는 한진영의 표정에 용기를 내 계속 계산을 이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거래대금의 0.2%를 수수료로 받기 때문에 하루 수수료 금액만 우리는 일…… 십…… 백…….”
용기를 내기는 했지만 용기만으로 당황한 마음을 날려낼 순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담당자는 단순한 수학에 불과한 것을 손가락까지 들어서 계산했다.
계산을 마친 담당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우리 코인 그라운드의 하루 수수료만 200만 달러입니다.”
“200만 달러?”
타일러 버드는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러나 한진영은 전혀 감흥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렇게 돼서는 안 됩니다.”
“네? 그렇게 돼서는 안 되다니요?”
타일러 버드는 놀란 얼굴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하루 수수료 200만 달러라는 꿈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도대체 뭐가 안 된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타일러 버드였다.
“1년이면 7억 달러라는 말입니다. 7억 달러는…… 제가 목표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한진영은 타일러 버드의 말에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그걸 목표하지 않았습니다.”
한진영은 타일러 버드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시장은 앞으로 2배, 3배는 물론이고 5배에서 10배까지 커질 수 있습니다. 10배까지 시장이 커진다면 전세계 하루 거래대금은 200억 달러, 거기의 절반인 100억 달러가 코인 그라운드의 거래소에서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타일러 버드는 한진영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면 우리의 하루 수수료는…….”
“2,000만 달러. 연간으로 따졌을 때 70억 달러가 되겠지요.”
“70억 달러…….”
타일러 버드는 자리에 선 채로 한진영이 한 말을 멍한 얼굴로 되뇌었다.
거래소의 특성상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출액의 80% 이상이 영업이익으로 치환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업이익의 대부분이 순이익으로 재무제표상에 적히고는 했다.
“70억 달러 중 최소…… 50억 달러가 순이익으로 잡힐 텐데…….”
“맞습니다. 매출이 70억 달러가 나온다면 미니멈으로 따져도 50억 달러가 순이익으로 잡히겠지요.”
“50억 달러라는……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도움을 주고 곁에서 방향을 가르쳐 줬는데도 하지 못한다면 그건 타일러 버드 씨의 능력이 제 생각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한진영은 노골적으로 타일러 버드를 향해 네가 나를 따라오기만 하면 그 자리에 올려놓겠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언뜻 들으면 기분이 나쁠 만한 이야기임에도 타일러 버드의 표정은 황홀함을 가진 채 고개를 끄덕이고만 했었다.
“해야지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70억 달러. 70억 달러를 만들어 내야지요.”
타일러 버드는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같은 말만 계속 내뱉었다.
그만큼 그에게 지금 이야기는 강렬하게 다가왔다는 뜻이었다.
“기억하세요.”
한진영은 자리에서 서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속도, 안정성 그리고 보안. 이게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탕이 된 상태에서 사람들을 잡아끌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코인들. 365일 24시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서버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래가 재미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환경. 그걸 모두 만들어 놓고 판을 벌인다면 고객들은 알아서 찾아오게 되어있습니다. 코인 그라운드는 고객을 컨트롤하려 하지 말고, 고객이 코인 그라운드에서 알아서 놀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코인 그라운드는 자연스레 코인판의 가장 큰 거래소가 될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타일러 버드는 복음을 들은 것처럼 황홀해했다.
한진영이 코인 그라운드를 나와 차에 탈 때까지 타일러 버드는 한진영의 곁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수수료 금액으로만 70억 달러를 올릴 수 있을지 한진영을 향해 계속 질문했다.
한진영이 차에 올라타 차가 보이지 않게 됐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타일러 버드를 룸미러로 본 조지훈은 한진영을 향해 슬쩍 물었다.
“사장님. 정말 70억 달러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건가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코인 거래소가 뭐라고 일 년 매출이 70억 달러가 나온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해가 가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내가 말한 70억 달러가 최소 금액을 이야기했음을 알게 될 테고…….”
“최소 금액이요?”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놀란 듯이 룸미러로 뒷좌석을 바라봤다.
타일러 버드는 최대 목표가 70억 달러로 이해했지만, 한진영은 그것조차도 최소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지훈은 나중에 이해가 될 거라는 말에 더는 의문을 품지 않았다.
한진영의 곁에서 지낸 세월을 통해 경험한 바로는 이렇게 이야기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한진영이 말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핸들을 잡은 채로 운전하며 화제를 바꿨다.
“사장님. 한국에서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소식? 무슨 소식?”
“탄핵이 가결됐다고 합니다.”
“그래?”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됐네.”
한진영은 조지훈에게 돌아갈 준비를 지시하고 말없이 창밖을 가만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