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45화 (444/650)

445화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따질 때가 아니다

대경TV가 일주일 전부터 광고하던 방송이 지금 TV를 통해 방송되고 있었다.

[세이지증권에게 묻는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크게 이야기되는 이슈를 당사자에게 직접 묻고 답을 듣겠다며 만든 방송이었다.

그리고 이 방송에는 예전부터 대경TV에 모습을 드러내던 최석영이 세이지증권의 상무라는 직함을 달고 대표로 나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제 날짜로 세이지증권이 내놓은 성장형 펀드에서 해지된 금액이 2,000억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담의 진행자로 특별히 대경TV에서 초대한 교수가 먼저 펀드 이탈 금액부터 이야기했다.

최석영은 교수의 말에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전체 금액의 10%가 넘는 금액으로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이 이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세이지증권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조명 아래 최석영의 얼굴은 초췌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성우는 그런 최석영의 얼굴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오늘 컨셉은 뭐냐? 병자야?”

한진영은 이성우의 딸인 서율이를 무릎에 앉힌 채로 대답했다.

“가슴 아프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대. 그런데 얘는 안 자냐?”

한진영은 품에 안겨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이성우의 딸을 내려다보고 이성우를 향해 물었다.

이성우는 흘깃 딸과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본 후 TV로 시선을 돌렸다.

“눈이 아직 졸린 눈이 아니야.”

“그런데 이 꼬맹이는 왜 데리고 왔어?”

한진영은 왜 데리고 왔냐면서도 잼잼거리는 것이 귀여운지 이서율과 장난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을 다시 흘깃 바라보고는 TV로 시선을 돌렸다.

“어쩌겠냐? 서율 엄마가 입덧이 심하게 왔으니 말이야.”

“너는 참 기운도 좋다. 애 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애를 또 가졌어?”

“그러게 말이다. 애 하나로도 벅차 죽겠는데 또 생겼다고 얼마나 뭐라고 하던지. 내가 완전히 죽일 놈 됐어.”

이성우도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듯이 머리를 양손으로 쓸어냈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후 이서율과 손장난 치는 것을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도 TV에서는 최석영의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왔다.

-저희는 고객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합니다. 저희는 고객에게 투자를 강요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아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아쉽다고요?

-네. 투자는 흑백논리로 설명이 불가능한 분야입니다. 매수와 매도만이 아니라 보류라는 다른 포지션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안 그래도 그걸 여쭙고 싶었습니다. 세이지증권은 한진영 사장의 이름으로 고객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요. 그 안에는 특이하게도 ‘보류’라는 포지션을 잡겠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보류’라는 포지션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교수의 질문에 최석영은 잠시 물을 마셔서 입안을 적신 뒤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개인 투자자분들은 매수와 매도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매수가 나오기 전 투자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에서 타이밍이 맞지 않게 된다면 잠시 투자를 보류하고 관망의 자세로 시장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석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얼굴 전체에 가득 담아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런 포지션은 쉽게 잡기 어려운 일이지요. 특히 저희같이 고객의 돈을 받아 운용하는 입장에서 전량 계좌를 비워놓은 채로 시장을 관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장을 그 정도로 안 좋게 보신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2,500은 코스피와 어울리지 않는 지수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매수 상태라는 건가요?

교수의 질문에 최석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의 평균 PER이 20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미래가치를 포함한 기대 PER도 18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삼선전자의 경우 PER 12를 넘어가지 않던 지난 시절과 달리 현재 PER 15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미래에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PER은 후행성 지표로 이야기되는 지표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시장을 보는데 가장 적합한 지표이니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PBR이라든지 ROE와 같은 기본적 분석은 물론이고 기술적 차트상으로도 2,500은 시장의 기대가 과도하다는 것이 저희 세이지의 판단입니다.

최석영은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보고 계속 이야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고객이 돈을 넣었다고 자금을 집행하는 것은 책임감이 없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최석영의 표정과 말에 교수는 살짝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세이지증권은 다른 곳과 달리 고객의 돈을 자기의 돈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저 아저씨 완전히 홀렸는데. 하여튼 저 양반 말솜씨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이성우는 감탄하고는 이제 이곳에 온 이유를 한진영에게 물어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 한진영이 먼저 이서율과 손장난 치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어?”

이성우는 자기가 보내는 시선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아는 것 같은 한진영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고는 질문에 대답했다.

“네 말대로 불화 폴리이미드하고 불화수소를 확보해 놓은 상태야.”

“그걸 가지고 한국으로 넘어왔어?”

“넘어오지는 않고 우선 일본에 있어.”

한진영은 이서율의 손을 잡은 채 고개를 들었다.

“아직 일본에 있다고?”

“어. 배 타고 넘어오려면 허가받아야 하는데 허가가 좀 딜레이된 것 같아. 일본 측 회사에서는 다음 달까지는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어.”

“다음 달 안 돼. 무조건 이번 달 안에 받도록 해.”

“야 이번 달 벌써 반이나 지나갔어.”

이성우는 벌써 마지막 주에 접어든 날짜를 떠올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안 나오던 허가가 갑자기 며칠 안에 나와서 배에 싣고 넘어오는데도 다음 달은 돼야 해. 이번 달은 힘들어.”

“힘들어도 해야 해.”

이성우는 단호한 표정의 이성우를 보고 입을 내밀었다.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어. 그런데 이건 할 수 없는 거야.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 따질 때가 아니야. 무조건 이번 달 안에 받아. 그거 받지 못하면 앞으로 몇 년 동안 그 물건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게 될 테니 그렇게 알아.”

“어? 그게 무슨 소리야?”

한진영의 말에 계속 안 된다고 이야기하던 이성우가 놀란 듯이 물었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딸이 놀라지 않도록 품에 안은 후 이야기했다.

“내가 한 말 기억나지 않아?”

“네가 한 말이라면…… 일본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그래.”

“그럼…… 일본이 다음 달부터 수출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야?”

“아마 그렇게 될 거야.”

한진영은 TV 화면 옆에 자리하고 있는 모니터로 화면을 돌렸다.

그곳에는 현재 증시 상황이 요약되어 나오고 있었다.

지수는 결국 2,500을 돌파하여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2,100부터 주당 5~6%가 넘는 상승을 보였던 지난 시점과 달리 2,500을 넘어가면서 상승 각도가 완만해진 것이 새로운 시대에서의 바닥 다지기가 시작된 모습처럼 보일 정도였다.

개별종목들의 움직임은 더욱 단단해 보였다.

무턱대고 상승하며 묻지마 투자를 불러오는 것이 아닌 실적과 미래 기대에 의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반대로 실적이 따라주지 않는 종목은 뒷걸음질을 치기도 했다.

2,500이라는 새로운 숫자에 걸맞은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어 2,500이라는 지수대에 대한 타당성을 부여받기 위해 시장은 노력했다.

한진영은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에 주목했다.

외국인의 포지션에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탄핵 이슈로 인해 시장을 떠났던 외국인들이 돌아와 시장을 밀어 올리는 기폭제 역할을 수행했다.

시총 대형주를 위주로 성장주와 내수주 가릴 것 없이 외국인들은 주식을 매수했고, 그 힘으로 2,500 돌파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2,400이 넘어간 순간부터 외국인들의 매수세는 실종됐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매수하는 외국인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매수하는 외국인들은 여전했지만 반대로 그보다 많은 물량이 매도로 나오며 수치상으로 매수를 지워버렸던 것이었다.

2,500이 넘어가자 이런 모습은 더욱더 강하게 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매수세는 사라지고 매도세만 남게 됐다.

“오늘도 2,000억 매도 우위.”

한진영은 모니터로 보이는 외국인의 포지션에 주목했다.

“이미 외국인들은 공매도 포지션을 더욱 공고히 다지고 있어. 그리고 일본이 발표하면 그에 맞춰 물량을 쏟아 낼 거야.”

“네가 전에 말했던 일본의 공습이 시작된다는 이야기야?”

“공습? 공습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지. 공습을 당한 나라는 일본이니까.”

한진영은 아이 눈에는 커다랗게만 보이는 손가락을 잡기 위해 손을 뻗는 서율이와 장난을 치며 이야기했다.

“공습이라기보다는 발악? 혹은 꼬장? 뭐 이렇게 표현하는 편이 낫겠다.”

“꺄르르르.”

잡힐 듯 잡히지 않던 한진영의 손가락을 잡은 이성우의 딸은 듣는 사람이 맛있게 느껴질 만큼 맑은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한진영은 잡힌 손가락을 통해 전해오는 아이의 보드라운 손을 느끼며 잠시 같이 웃어줬다.

그리고 이서율이 손을 가지고 놀 수 있도록 맡기고는 고개를 들어 이성우를 바라보고 말했다.

“준비를 했으니 일본이 움직이겠지. 그 전에 그들이 하려는 것을 먼저 확보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이미 계약이 끝난 물건도 항구에서 묶어 버릴 테니까.”

이성우는 일본이 그 정도로 무도한 놈들일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한진영의 흐트러지지 않는 확신에 우선 한진영의 말을 듣는 게 맞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지금까지 한진영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았어. 내가 웃돈을 주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물건을 빼 오도록 할게.”

“돈 몇 푼을 아끼려 노력하지 마. 선강그룹과 좋은 관계를 맺을 기회니까.”

“알고 있어. 네가 원자재 관련해서는 우리가 최고라고 이야기해준 덕분에 선강에서 우리에게 의뢰한 거라는 거. 그리고 이걸 기회로 잡아 선강과 계속 인연을 이어 나갈 수도 있을 테고…….”

“이차전지 관련해서 대한에너지가 가장 선두에 서 있지만 선강 또한 만만치 않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사업에도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런 곳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너희는 대한과 선강이라는 이차전지의 선두 기업 두 곳을 양손에 쥐게 되는 거야.”

한진영은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대한과는 동맹이라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한 상태로 선강에게 호의를 베푼다. 기풍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는 없다고 여겨질 만큼 상황이 좋게 흘러가고 있으니 돈 몇 푼에 욕심부리지 마.”

“그래. 고맙다. 네 말대로 무조건 물건을 빼 오는 것부터 신경을 써야겠다.”

“내가 정부에 이야기해놓을 테니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물건을 빼 오도록 해.”

“정부가 도와준다고?”

“정부와 여당이 도와줄 거야. 이번 일은 그들의 도움도 필요하니까.”

이성우는 정부가 도와준다는 말에 쓸데없는 생각을 모두 날려버렸다.

그리고 기회가 비단 선강과의 관계 개선만으로 끝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성우는 내일부터 일본에서 물건을 빼 오는 데 모든 집중을 다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기회의 규모와 크기로 따지자면, 사실 이번 일로 가장 크게 이득을 보는 사람은 선강과 기풍이 아니었다.

바로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준비를 한 한진영이 가장 큰 이득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수혜에 관한 밑바탕이 될 이야기가 TV 화면 속의 최석영의 입을 통해 이야기됐다.

-안타깝게도 해지하신 분들의 경우에는 재가입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마감이 된 펀드이며 세팅이 완료된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재가입을 하기 위해서는 3차나 4차 판매에 가입해주시는 방법밖에는 지금 도와드릴 것이 없습니다.

-세팅이라고 해도 지금 아무것도 진행하지 않으니 괜찮은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금액에 맞게 움직이고 비율을 정하는 문제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차수를 정하여 판매하는 것이지요. 해지와 가입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굳이 차수를 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해지 수수료를 받지 않을 이유도 없었고요.

최석영의 말에 교수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 상무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차수를 나눠놓고 해지 수수료를 받지 않은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해지하길 당부드립니다. 물론 조만간 3차 펀드 출시가 이루어지겠지만 그 안에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 말씀은 조만간 자금의 집행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다만 2,500은 투자하면 안 되는 지점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만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2,500은 투자하면 안 되는 지점이다. 세이지증권의 한진영 사장님이 고객에 보낸 편지 속에 들어 있는 말인데……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 같습니다.

일반적인 시장 관계자와 달리 포지션에 대한 확고한 모습을 보이는 최석영의 모습에 교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시장을 다시 한번 보는 게 맞지 않냐는 생각에서였다.

화면 속의 최석영은 교수를 잠시 바라본 뒤 카메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제발 알아달라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

최석영이 대경TV에 나와 이야기 한 것으로 인해 시장은 물론 정치권까지 떠들썩해졌다.

지난 정권과 달리 희망차게 시작하려는 현 정권을 물 먹이려 한다며 세이지증권을 단번에 적폐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세이지증권의 한진영 사장이 누굽니까? 지난 정권에서 경제수석에 이름이 오르내렸던 사람입니다. 지난 정권의 하수인 중 하나였다는 것이지요. 그런 그가 현 정권을 좋지 못하게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래서 나온 발언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 관련 토론방송에서는 연일 한진영을 욕하는 이야기가 계속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난 정권에 맞서 싸우며 투사 이미지를 씌웠던 방송이 이제는 지난 정권과 붙어먹었던 존재로 세이지증권의 한진영을 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새롭게 시작하는 현 정부를 못마땅해하는 구태의연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세이지증권은 그런 구태의연한 존재가 만든 대한민국 경제에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쓰레기 증권사로 표현됐다.

방송과 신문은 이런 존재가 만든 펀드는 가입할 가치가 없으니 해지해야 한다며 열을 올려댔다.

해지하고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언론은 한진영을 죽이기 위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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