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47화 (447/650)

447화 계약 파기

한진영을 한참 바라보던 고효상은 곁에 있는 최경민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뭐가?”

“너무 자신 있게 숏포지션을 잡았잖아. 물론 헤지를 걸어놓기는 했지만 그것도 솔리드하게 걸어놓았다고 볼 수도 없는 수준이고…….”

한진영을 바라보던 고효상의 말에 최경민은 깊은 고민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되는 건 사실이야. 잘 봐.”

왼손바닥을 펼치고 오른손가락으로 손바닥을 두드리고는 계속 이야기했다.

“지수가 상승기에 돌입한 상황이야. 하락할 낌새는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고 외부 요인들 또한 모두 괜찮아. 이런 상황에서는 만약 이벤트가 발생하더라도 빠져나올 시간이 충분해. 오히려 잘못 물려 들어가다 슈팅에 걸리게 되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될 텐데 뭐 하러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숏포지션을 잡겠어?

최경민의 말에 고효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도 최경민의 말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경민은 고효상이 자기 말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여기 리스크관리 센터가 얼마나 빡빡하냐? 일간, 주간, 월간 단위로 다 손해분을 계산해서 적용하고 있잖아. 그리고 범위도 타이트하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이고…….”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불만이 많아. 벌써 튕겨 나갈 라인이 사정권에 들어왔다고 말이야.”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렇게 타이트하게 잡아놓은 상황에서 하방을 보라? 이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거야.”

말을 마친 최경민과 고효상은 모두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유라도 명확히 설명해주면 모르겠는데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무조건 하방이야.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겠다. 여기 성과금이 엄청나다고 해서 들어온 건데…… 솔직히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는 게 낫지 않냐는 생각이 들어. 괜히 이상한 일에 휩쓸려 버리기 전에 말이야.”

“이상한 일이라니?”

“뭘 물어봐? 너도 알잖아. 이대로 휩쓸려서 상방 슈팅 나오고 그게 일주일 동안 계속되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야.”

“하방 포지션 다 무너지겠지.”

“그뿐이야? 펀드런 나와. 지금 남아있다는 1조 3,000억짜리 신규펀드는 물론이고 전에 받았던 펀드 가입자들까지 다 썰물처럼 빠져나갈 거라고.”

고효상은 최경민의 말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설마? 신규 펀드야 아무것도 투자를 안 해서 불만이 있다지만 예전 펀드에 가입한 사람들은 수익이 이렇게 나오는데 펀드를 해지할까? 나는 해지 안 할 거 같은데?”

“모르는 소리 마.”

최경민이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의심은 사소한 거에서 시작해. 그리고 신뢰를 깨트리는 건 그렇게 싹튼 의심으로 인해 비롯되고…….”

한진영을 바라보는 최경민의 시선에는 부정적인 기운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는 더는 한진영을 신뢰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 이야기했다.

“이미 기존 펀드 가입자들도 흔들리고 있을 거야. 그런 상황에서 슈팅까지 나온다면 100% 펀드런이 나와. 그럼 어떻게 될 거 같아? 이렇게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들은 그날로 망하는 거야.”

“망한다고?”

“너 어디서 왔다고 했지?”

“나 형신자산운용.”

“형신…… 모를 수도 있겠네. 거긴 그래도 좀 탄탄한 곳이니까. 운용 금액도 5,000억은 넘지 않나?”

“어. 총액으로 따지면 5,000억은 넘었어.”

최경민은 고효상의 말에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우리 팀은 한설자산운용하고 B스테레오 자산운용에 있었어.”

“한설하고? B스테레오?”

고효상은 최경민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바로 최경민 앞에서 놀란 표정을 짓는 게 실례라는 것을 깨닫고 표정을 지웠다.

최경민은 짧은 시간에 표정이 몇 번이나 바뀐 고효상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내가 잘못한 게 아니고 우리 팀이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미안. 내가 너무 티 나게 놀란 것 같아.”

“괜찮다니까. 회사 망한 건 우리 같은 운용직의 사람들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회사를 경영하는 윗선에서의 잘못 판단 때문에 그런 거지.”

최경민은 마치 자기가 있었던 곳의 경영진과 한진영을 동일시한다는 듯한 눈빛으로 한진영의 등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런데 저 사람도 같은 사람인 것 같아.”

“같은 사람이라니?”

최경민을 따라 고효상은 한진영의 등을 바라보고 물었다.

최경민은 한진영의 등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 사람도 전에 내가 다닌 곳의 경영진이랑 똑같은 것 같아. 자기 고집에 의해서 회사를 망친 사람. 그러니 여기 오래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

고효상은 최경민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두 번이나 경험하고 느낀 건 아닌 것 같으면 잽싸게 정리하라는 거야. 여긴 정리해야 할 곳이야. 우리 팀은 결정했어.”

“결정하다니 뭘?”

“며칠 내로 정리할 거야.”

최경민은 고개를 돌려 고효상을 바라보고 충고했다.

“너도 오래 고민하지 마. 오래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나갈 타이밍만 늦어질 뿐이니까.”

고효상은 최경민의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진영의 등을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한진영은 직원들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아침부터 상황판 앞에 서 있었다.

오히려 곁에 있는 조지훈이 불편해하기만 했다.

“홍 본부장에게 직원 관리에 대해 주의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상황판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한진영은 고개를 돌려 조지훈을 바라봤다.

“주의? 무슨 주의?”

“사장님을 대하는 게 아무래도 불손하게 느껴져서요.”

“내가 무슨 왕도 아니고…… 괜찮아 그럴 수 있어.”

한진영이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조지훈은 강경하기만 했다.

“그래도 명색이 세이지증권의 한 식구인데, 식구의 부모와 같은 사장님을 향해 불만을 가득 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의 정신교육이라도 홍 본부장에게 주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진영은 조지훈을 가만히 바라보다 혀를 찼다.

“왜 그렇게 꼰대야? 나이도 나보다 어리면서 말이야. 요새 젊은 꼰대가 많다고 하던데 조 실장이 딱 젊은 꼰대 느낌이 나.”

“사장님. 이건 꼰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 쓰지 마.”

한진영은 단칼에 조지훈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슬쩍 자기를 몰래 훔쳐보고 있는 직원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직원들은 한진영이 자기를 바라본다는 것을 느끼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한진영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는 직원들을 바라본 채로 말했다.

“어차피 계약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이야. 충성심이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해.”

한진영은 짧게 미소 짓고는 다시 조지훈을 바라봤다.

“팀 단위로 묶여서 실적에 따라 계약이 연장되거나 소멸하는 관계야. 그런데 나한테 불만을 가지는 게 무슨 상관이야? 나한테 불만을 가지든 쌍욕을 하든 돈만 잘 벌어다 주면 그거로 끝인걸.”

“그래도…….”

“내 최우선 원칙이 뭐라고 했어? 나는 돈만 많이 벌면 돼. 사회적 통념이 어떻건 내 명성이 어떻건 그런 건 관심 없어.”

조지훈이 최근 시장에 돌고 있는 여러 가지 안 좋은 소문으로 인해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한진영은 알았다.

그래서 세이지증권 내부에서 이야기 나오는 것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최소한 내부에서는 한진영을 지지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조지훈은 불만을 품었던 것이었다.

한진영의 이런 말에도 여전히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지훈을 보고 이야기했다.

“하긴 조 실장 말대로 그냥 모른 척하기에도 불편하기는 하지. 저런 친구들이 회사 분위기를 흐리니까.”

한진영은 여전히 자기를 향해 슬쩍슬쩍 눈길을 보내는 최경민 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비서실에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파악할 수 있어? 그것도 최단기간 내에 말이야.”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미 파악은 마쳐 놓은 상태입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대답에 돌아보고 웃었다.

“기다리고 있었나 보네?”

“죄송합니다. 불만의 목소리가 커져 제 귀에까지 들어오기에…… 혹시 몰라 정리해 놓기는 했습니다.”

“잘했어. 내 귀에도 들릴 정도였으니 자네 귀에는 얼마나 크게 들렸겠어?”

한진영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준비한 조지훈을 향해 칭찬의 말을 건네고 지시했다.

“명단을 미리 파악해 놓은 것을 보니 오늘 내에 마무리 지을 수도 있겠네?”

조지훈은 한진영이 말한 마무리라는 것이 계약 파기라는 것을 알아들었다.

조지훈이 원한 것이 바로 불만을 품은 자들을 정리하여 회사에서 내보내는 것이기에 한진영의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네. 언제라도 내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이기에 오늘 안에도 다 정리를 할 수 있습니다. 계약을 맺을 시에 미리 작성해뒀던 조건대로 진행한다면 계약 파기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조지훈은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대답하고 난 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생겼다.

“저 사장님. 그런데 오늘 내로 정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건가요? 준비가 다 돼 있기는 하지만 이대로 오늘 정리를 한다면 계약 파기에 대한 위약금을 일정부분 회사에서 내주어야 합니다. 차라리 그것보다 파악된 명단의 팀들과 따로 논의를 이어간다면 그쪽에서 위약금 없이 나간다고 나올 것도 같은데…… 제가 괜히 조급한 마음을 사장님께 보인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괜히 자기 때문에 한진영이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 걱정이 되어 말한 조지훈이었다.

이미 마음이 떠난 그들이기에 시간만 조금 주어진다면 그들 스스로가 나가겠다고 나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위약금을 주지 않아도 되었고, 내보내는 것도 지금보다 더 스무스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조지훈은 막상 내보내란 말을 듣자 자책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을 듣고 날짜가 보이는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지훈에게 날짜가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내보내려면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 오늘이 디데이야.”

“오늘이요?”

“오늘이 올해 반기의 시작인 7월 1일이잖아.”

한진영은 지난 시절을 떠올렸다.

연도는 분명 지난 시절과는 차이가 났다.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고 한참 지난 뒤에 일어난 일이 지금은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고 바로 일어나려 하는 것이었다.

하지면 연도가 다르다고 하여 반기의 첫날 일이 터지는 것까지 바뀐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인의 특성상 이번에도 일이 터진다면 반기 정책의 변화를 첫날 공표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곧 일어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바로 어제 2,610까지 지수가 빠져 내려오는 도중 외국인들의 매도 물량이 1조 원을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장이 끝나고 발표가 나올 거야. 그러니 바로 정리해야지. 오늘 발표가 나온 다음이라면 위약금 주겠다고 해도 싫다면서 뻐기고 앉아 있을 테니까. 그리고 마치 자기들 또한 우리가 이루어낸 업적에 손을 보탰다고 말할 게 분명해. 나는 그 꼴 못 봐.”

한진영은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꼴 보느니 차라리 몇 푼 주고 내보내는 편이 좋아. 그러니 바로 정리해. 무조건 오늘 내에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

조지훈은 한진영이 가리킨 달력으로 시선을 돌렸다.

7월 1일.

한진영이 날짜까지 정확하게 짚어 말하는 것에 정말로 오늘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지훈이 머릿속으로 정리할 순서를 생각하는 사이 한진영은 외국인 매도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상황판을 바라보고 말했다.

“선강에 물건은 잘 전달됐나?”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네. 약 1년 치의 물량을 확보했다는 확인을 받았습니다. 이성우 사장님은 나머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독일 쪽으로 넘어가셨다고 합니다.”

“성우가 고생이네. 하긴 고생이랄 것도 없지. 몇 배를 쳐준다고?”

“통상 거래 가격의 5배를 약속했다고 들었습니다.”

“5배.”

한진영은 가만히 혼잣말을 내뱉고는 웃었다.

“쏠쏠하겠네.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신뢰 관계를 쌓는 게 중요했지만 뭐 겸사겸사 돈도 벌면 좋은 일이니까.”

“네. 기풍도 그래서 전력을 다해 독일 쪽 라인을 뚫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만약 독일 쪽 라인까지 뚫으면 잘 버무려서 기풍 이야기도 내보내면 좋을 것으로 보여.”

한진영이 말을 하고는 조지훈을 은근한 눈으로 바라봤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 급히 대답했다.

“네. 비서실에서 좋은 기사를 하나 작성해 언론에 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기왕이면 서준일보에게 넘겨줘. 아무렴 처갓집에서 이야기하는 편이 더 크게 이야기하기 좋아질 테니까.”

“그것도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됐으니까 이제 가봐. 오늘 내에 정리를 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할 테니까.”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인사를 한 뒤 조정실을 빠져나갔다.

그날 오후 최경민이 속한 팀은 조지훈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계약 파기.

팀 단위로 맺은 계약을 세이지증권 차원에서 파기하겠다는 통보였다.

최경민의 팀은 오히려 세이지에서 먼저 계약 파기를 이야기하는 것에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그들은 잘됐다는 생각에 쌍수를 들어 세이지증권의 통보를 받아들였다.

세이지증권이 먼저 이야기한 만큼 세이지증권에서 계약 파기에 대한 위약금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망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곳에서 도망치는 것도 모자라 돈까지 주면서 나가라고 한다고 하니 최경민과 그가 속한 팀은 돌아볼 것도 없이 짐을 싸 세이지증권을 나갔다.

그렇게 하루 만에 약 200명의 인원이 정리됐다.

팀 단위로 보았을 때 약 10여 개 팀이 정리된 것으로 그들이 나간 것만으로 조지훈은 회사가 조용해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효상은 떠난 최경민을 배웅하고 돌아와 퇴근을 준비했다.

최경민이 먼저 나갈 테니 자기에게도 어서 도망가라는 말을 전한 것을 되뇌고 있을 때, 그의 눈으로 사무실 곳곳에 놓인 상황판 속의 속보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 정부 한국 대상 첨단 소재 수출 제재 공식화]

갑작스러운 일본의 대한민국 무역 제재 소식이 전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