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8화 오래된 곳은 자기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 날아온 소식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진영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 일본이 왜 한국을 향해 무역 제재를 하겠다는 것인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듯이 언론 또한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 수출 규제가 아닌 절차상의 구조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전문가는 판단]
[첨단 소재의 경우 일본 정부가 조금 더 엄격히 관리하겠다는 뜻이 아니겠냐는 의도로 파악돼]
[무역 분쟁으로 해석하는 것은 확대해석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에 업계 관계자들은 안도의 한숨 내쉬어]
언론의 설명에 사람들은 호들갑 떨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본의 내부 문제를 외부로 투사하기 위해 이상한 짓을 한가지 더하는 것일 뿐 일본과의 관계에서 변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외국인들의 매도 공세가 나오며 2,600위에서 2,700 나아가 2,800까지 단숨에 올라가려던 지수가 반대로 한 번에 2,600을 깨고 내려온 것이었다.
“이제는 눈치 보지 말고 때리라고 해. 총력전이야. 누가 먼저 때리냐가 더 좋은 가격을 잡는 거니까.”
홍대민이 조정실 실장 자리를 맡은 최수찬에게 지시했다.
최수찬은 그런 홍대민의 지시를 받아 각 팀에 지시를 전달했다.
한진영은 한걸음 뒤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조지훈에게 말했다.
“확실히 조용해지기는 했네.”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동안 분란을 일으킨 사람들과 팀을 위주로 정리한 만큼 앞으로 이상한 말이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리는 하지 않았지만 요주의 인물로 분류해 놓은 사람은 계속 관찰한 뒤 낌새가 보이면 정리할 생각입니다.”
“좋아. 그렇게 해.”
한진영은 조지훈의 뜻대로 하게 했다.
그리고 상황판을 바라본 뒤 조지훈과 마찬가지의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강선호 당 대표와의 만남을 오늘로 잡아.”
“안 그래도 강선호 의원 측에서 계속 연락해 오기는 했습니다.”
“그렇겠지. 미리 이야기 들었다고 해도 실제로 일이 벌어진 것에 당황하는 게 당연해.”
한진영은 가볍게 웃고 고개를 끄덕인 뒤 창밖을 바라보고 말했다.
“가볍게 저녁이나 하자고 해. 우리 회사 앞에서 말이야.”
“강선호 당 대표를 부르시는 건가요?”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으니 끌려다니지 말자. 이제 우리도 그 정도는 되잖아?”
한진영이 웃고 조지훈의 어깨를 두드리자 조지훈도 어색하게 웃었다.
이제는 여당 지도자를 부를 정도는 됐다는 말에 조지훈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던 것이었다.
그러나 조지훈의 걱정과 달리 생각 이상으로 주도권은 한진영에게 있었던 듯했다.
조지훈이 강선호 대표 측에 이곳으로 올 것을 이야기하자마자 그들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렇게 하겠다는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일을 마친 한진영은 조지훈을 통해 강선호 의원이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지런히 회사를 나섰다.
“그 양반 뭐 이렇게 일찍 왔어?”
이곳으로 오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도착할 줄 몰랐던 한진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시 옷매무새를 고치며 조지훈에게 물었다.
조지훈도 한진영의 옷을 고쳐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여섯 시에 약속을 잡았는데…….”
“당 대표나 돼서 다른 스케줄도 없나? 오늘 만나자는 연락을 했는데 뭐 한 시간이나 일찍 와?”
한진영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거울에 옷을 살피고는 내렸다.
“약속 장소는 어디야?”
“사장님이 오늘 청국장이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얼마 전에 알려 주신 청국장집으로 예약했습니다.”
“청국장집으로 약속 장소를 잡았다고?”
“네.”
조지훈은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모습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냐. 잘했어. 그래 주도권을 가지려면 확실하게 가지는 편이 좋지.”
한진영은 잘했다는 뜻으로 조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이 조지훈을 바라보고 물었다.
“그런데 그걸 알고도 당 대표씩이나 된 사람이 한 시간이나 먼저 왔다고? 청국장집에서 만나기로 한 걸 알고도?”
“네.”
“어지간히 마음 졸이고 있나 보네. 가자.”
한진영은 고개를 흔들고는 웃으며 약속 장소인 청국장집으로 향했다.
자그마한 간판에 문 또한 간판만큼이나 작은 청국장집은 떠들썩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강선호 의원님. 내 이야기 좀 들어줘. 우리 집에 땅이 하나 있는데. 아 글쎄 여기에 도로를 깔고 싶은데 그러려면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지 뭐라나? 근데 알다시피 공무원 놈들이 어디 일을 빠릿빠릿하게 하던가? 민원 넣은 지 벌써 두 달이 넘어가는데 감감무소식이야. 강 의원. 이것 좀 해결해줘.”
“강 의원. 내 부탁은 간단해. 동네에 파출소가 너무 작아. 여기는 회사도 많은데 어찌 파출소가 저렇게 작은 거 하나로 되겠나? 경찰서를 원하는데 거기까지는 무리인 것 같고 그냥 파출소 규모만 좀 늘려줘. 기왕에 할 거라면 CCTV하고 순찰도 좀 많이 하도록 하고…….”
“강 의원 나는…….”
강선호를 둘러싸고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민원을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강선호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고 억지로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웃으며 강선호 쪽을 턱짓했다.
“가서 좀 도와줘. 국회의원 그것도 당 대표라는 사람이 민원인을 내쫓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함께 데리고 온 비서들과 함께 강선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강선호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을 정리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약속이 있어서요. 약속이 끝나고 한 분 한 분 이야기를 다 듣도록 할 테니 이해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선호는 조지훈 등에 의해 정리가 되는 사람들을 향해 잊지 않고 인사했다.
정치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게 이미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강선호였다.
“당 대표가 됐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한창 인사를 하던 강선호는 한진영을 보자 반가운 듯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너무나 반갑게 맞이하는 강선호의 반응에 한진영은 가만히 웃기만 했다.
“우선 앉으시지요.”
강선호는 앉을 것을 권하고는 손을 들었다.
“여기 청국장 2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소주도 두 병 함께 주세요.”
여당 대표가 직접 손을 들어 주문했다.
그리고 나온 소주를 직접 손으로 받아 뚜껑을 연 뒤 한진영을 향해 내밀었다.
“우선 한잔하고 시작하도록 하시죠.”
강선호는 한진영의 술잔에 술을 가득 담고는 직접 자기 잔에도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 잔을 내밀어 한진영과 가볍게 술잔을 부딪친 후 소주를 입에 털어냈다.
“크~”
강선호는 입에서 쓴소리를 내뱉은 뒤 오이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기를 바라보고만 있는 한진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식사 나오기 전에 바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한진영은 들고 있던 술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경청하겠다는 표정으로 강선호를 바라봤다.
강선호는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고 이야기했다.
“일본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 기다려야 하는 게 맞습니까? 기다리면 해결이 되는 겁니까?”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견디기 쉽지 않으신 겁니까?”
한진영의 말에 강선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소연에 가까운 말을 하기 시작했다.
***
강선호가 떠나고 나자 청국장집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던 곳이기에 강선호라는 유명인이 떠나자 시끄러움도 함께 따라 떠나고 만 것이었다.
“다시 데워 드릴까?”
주인이자 이곳에서 40년이 넘게 청국장을 팔아온 할머니가 한진영 앞에 놓인 다 식어버린 청국장을 가리키고 물었다.
한진영은 앉은 채로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네. 다시 데워주시고 똑같은 거 하나 더 내주세요. 그리고…….”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손짓하고는 자기 앞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것만 치워주세요. 수저와 젓가락 다시 부탁드릴게요. 아 그리고 새로 하신 건 저기 다 따로 준비해주세요.”
한진영은 할머니에게 부탁하고는 조지훈에게 말했다.
“조 실장은 앞에 앉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저기 앉아 식사하고 가도록 해.”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함께 왔던 비서실 직원들에게 식사할 것을 지시하고 한진영 맞은편에 앉았다.
“청국장 손도 안 댔으니까 우리는 그거로 먹자. 청국장 괜찮지?”
“저야 청국장 좋아하죠. 할머니께서 끓여주시던 청국장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도 괜찮아.”
지난 시절에 자주 오던 집이라 한진영은 이곳에 대한 맛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시절과 다르지 않은 집과 주인 할머니의 모습에 한진영은 맛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조지훈은 한진영과 청국장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먼저 조심스럽게 조금 전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잘 참을까요?”
“누구? 강 대표?”
한진영은 조금 전까지 강선호가 먹던 오이를 집어 먹으며 물었다.
“강 대표도 강 대표고 여당과 대통령실까지…… 잘 견딜지 그게 걱정입니다. 괜히 못 견디겠다면서 일본에 먼저 고개를 숙이는 건 아닐까 해서요.”
“아니야. 잘 견딜 거야.”
“사장님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강선호가 당 대표니까.”
한진영은 당연하다는 듯이 조지훈에게 질문하고는 오이를 집어 먹던 손을 털었다.
그리고 여전히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조지훈을 바라보고 설명했다.
“선대 위원장으로 발이 땀이 나게 뛰어다녀 결국 서규철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이야. 물론 강선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선대 위원장이었어도 서규철이 대통령이 되었겠지. 하지만 강선호처럼 압도적인 결과를 받아내지는 못했을 거야.”
“압도적 이기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아무리 반대쪽이 큰 삽질을 했다고 하더라도 기존 지지층이 존재하는 만큼 30% 정도의 득표율은 나오지 않겠냐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래.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됐어? 겨우 20%를 넘는 게 전부일 정도로 압도적이었어. 상대측 본거지라고 불리는 지역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득표를 얻었고, 몇몇 지역은 빼앗기까지 했어. 이건 그냥 승리로 이야기하기엔 부족할 정도로 큰 업적이야. 그걸 강선호가 만들어낸 거나 마찬가지야. 저 육중한 몸을 가지고 직접 뛰어다니면서 말이야.”
한진영은 다시 뜨겁게 데워 가지고 온 청국장을 바라보고 군침을 흘렸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어 맛을 보고는 만족한 듯이 웃었다.
“먹어봐. 죽인다.”
조지훈도 숟가락을 들어 청국장 맛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씀대로 정말 좋은데요. 괜히 여의도 골목에서 40년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니었네요.”
“그래. 어디든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면 남들은 모르는 자기만의 노하우가 생기기 마련이야. 그게 이런 골목식당이 되었건 저 커다란 정치판이 되었건 말이야.”
“그 말씀은…….”
“강선호의 당 장악력은 생각 이상이야. 게다가 선거를 막 끝마친 지금 이 시점의 장악력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을 정도야. 그런 그가 위에서 찍어 누르는데 흔들린다? 그럴 일은 없어. 오히려 야당의 공세를 막아낼 테니까 두고 보라고.”
한진영은 호언장담한 뒤 청국장에 밥을 비벼 먹기 시작했다.
***
일본에서 전해진 소식은 시간이 갈수록 파괴력을 더해 시장에 충격을 전해줬다.
별일 아닐 것 같던 이야기가 사실은 큰 문제를 품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무역 제재를 풀지 않으면 석 달 내에 반도체 공장 불이 꺼질 것으로 예상]
[삼선전자,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물량으로 견딜 수 있는 것은 한 달뿐. 정치권에 SOS 요청]
[하이식스, 다음 주부터 물량 출하 조절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
[반도체 가격 일제히 급등. 전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단순히 몇 가지 품목을 막은 것으로 우리나라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중에서 특히 반도체의 경우에는 피해가 막심했다.
공장을 세우거나 출하 조절을 해야 할 정도로 일본의 무역 제재는 우리나라 시장의 핵심을 파고들었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는 일제히 신임 정부에 비판의 목소리를 키웠다.
“아마추어 정부가 들어서서 이렇게 된 겁니다. 어서 지금이라도 일본에 사과하고 무역 제재를 풀어야 합니다.”
야당은 공세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 또한 이런 이야기에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사과하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뭐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겁니까? 저들이 일방적으로 수출 금지를 때렸는데 우리가 왜 저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까?”
“이게 다 쓸데없이 지난 시절을 반성하라느니 사과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일본 정부를 자극해서 일어난 일 아닙니까?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는데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이웃 나라와 좋게 지내도 모자랄 판에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국민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쓸데없이? 아직도 피해자 어르신들이 살아계시는데 쓸데없이 라는 말이 나오는 겁니까?”
“살아 계셔봤자 몇 명이나 살아있다고…….”
“뭐요? 지금 뭐라고 그랬습니까?”
국회에서는 이번 일을 정치싸움으로 몰아갔다.
야당에서는 무조건 일본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여당은 잘못을 저들이 했는데 왜 우리가 사과해야 하냐면서 일본에 고개 숙이라는 야당을 비난했다.
정치권은 이 문제를 가지고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일본은 소통을 거절한 채 무기한 제재를 진행하겠다는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이런 일본의 모습에 산업은 시름 하기 시작했다.
당장 한 달 이상의 자재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한 달 뒤에 벌어질 일에 공포심을 가지기까지 한 것이었다.
모든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반도체.
그 반도체를 만드는 세계 1, 2위의 기업인 대한민국의 삼선전자와 하이식스가 동시에 멈추어 설지도 모르는 상황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