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화 공매도 물량은 어디로 갔는가?
한진영은 조지훈을 가만히 바라보다 혀를 찼다.
“아니. 타지에 나가 있는 자식을 부모가 잊어버리면 어떡해?”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조지훈이 화들짝 놀라 아니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조지훈을 바라봤다.
“잊어버렸는데 뭘.”
“아닙니다. 저는 그저…….”
“그저?”
“그저 잠시 더 중요한 일을 생각하느라…….”
“허 참. 뉴욕에서 우리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그 친구들이 들으면 무지하게 섭섭해할 이야기를 하네.”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알았어. 그렇다고 쳐.”
한진영이 멈췄던 걸음을 움직이자 조지훈이 급히 그의 뒤를 따라가며 변명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러거나 말거나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더욱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회사를 한 바퀴 돈 후 사장실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을 기다리던 비서실 직원이 다가왔다.
한진영은 사장실에 들어가기 전 곤란한 표정을 짓는 조지훈의 얼굴을 보고 손잡이를 잡은 채 조지훈에게 물었다.
“뭐야? 왜 그래?”
조지훈은 알겠다는 뜻을 비서실 직원에게 전한 후 한진영에게 이야기했다.
“잠시 들어가서 이야기를 들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데?”
“증권사 협회에서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증권사 협회?”
한진영은 코웃음을 치고는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조지훈이 한진영을 따라 들어와 한진영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린 후 한진영을 향해 보고했다.
“증권사 협회에서 주가를 부양시키는 것을 주의해 주기를 바란다는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뭘 어쩐다고?”
한진영은 오른쪽 뺨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조지훈에게 다시 물었다.
“뭘 주의해 달라고?”
“주가 부양을…… 하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뭔 미친 소리야?”
한진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고는 다리를 꼬고 증권사 협회에 관해 물었다.
“그런데 증권사 협회가 뭐야? 난 그런 협회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얼마 전에 몇몇 증권사들이 주축이 되어 증권사 협회를 구성했다고 합니다. 증권사들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단체를 만들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사장님과 제가 미국에 넘어가 있을 때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증권사 권익? 그런데 왜 우리는 가입이 안 돼 있어? 내가 모르는 것을 보니 아예 우리에게 단체에 가입하라는 요청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중심이 된 증권사들이 대형 증권사 위주라 소형 증권사들은 가입을 받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중에 협회가 안정되고 정상 궤도에 올라갔을 때 소형 증권사의 가입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지랄하고 있네.”
한진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고는 조지훈에게 지시했다.
“그럼 대형 증권사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해. 우리는 계속 갈 테니까 말이야.”
“사장님. 아무래도 대형 증권사들이 지난 공매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게 아니라면 우리에게 주가 부양에 신중 하라고 말했겠어?”
한진영은 팔걸이에 몸을 기울인 채로 웃었다.
“외국인들 뒤에 숨어서 공매도 때릴 때는 신났겠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모르고 말이야.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 그런데 꼬라지 보니까 아직 급한 것 같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그냥 가.”
“괜찮을까요?”
조지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한진영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조지훈에게 말했다.
“저들이 뭐라고 하면 이렇게 전해. ‘세이지증권은 가입되어 있지 않은 협회의 지시를 받을 이유가 없다’라고.”
“네?”
“대형 증권사들끼리 신나서 만들어놓고, 중소 증권사에게 무조건 따르라는 건 이치에 맞지 않지. 그리고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도 있고…… 괜찮아. 그냥 진행해. 고생 좀 해봐야 정신 좀 차릴 테니까.”
한진영은 공매도를 치고 난 뒤 오르는 주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대형증권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
지수가 단번에 2,000선에 근접하게 오르자 사람들은 오히려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환호가 끝이 나고 시장이 안정되어 갈수록 시장 참여자들은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과거 2,000을 넘고 2,500마저 넘어 역사적 고점을 찍을 때 경험했던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차분히 일본과의 무역 제재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하는 정부를 바라보기도 했으며 이번 일로 인해 얻을 하이식스의 이득을 감성이 아닌 이성의 영역으로 수치상 계산을 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간 시장에 사람들은 2,000위로 오를만한 타당한 이유를 찾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지난번과 같이 분위기에 휩쓸리고 감성의 영역이 아닌 이성의 영역에서 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머리에 한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공매도 물량들은 어떻게 됐지?
2,000을 눈앞에 둔 시점에 사람들은 공매도 물량의 자취가 궁금해진 것이었다.
대규모 매수세가 들어오며 지수를 2,000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그러나 현실은 대규모 매수세보다는 매도세가 줄어들어 지수를 밀어 올렸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았다.
그리고 매수세 속에서 공매도의 청산은 일부만 이루어졌다는 것도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공매도 물량들은 어디로 갔는가?
사람들은 차분해진 눈으로 시장을 바라보며 공매도 물량의 자취를 찾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증권거래소에서 제공하는 주식별 공매도 잔량을 투자자들끼리 공유했다.
공매도 물량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정보를 공유하며 나온 결론이었다.
지난 상승 속에서 공매도 물량은 청산절차를 보이지 않은 채 지수가 1,800에서 2,000까지 오르는 동안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의아한 눈으로 공매도 물량을 바라봤다.
혹시 공매도 물량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지 유심히 주변을 살폈다.
일본과 무역 제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정부의 발표 속에 어떤 허점이 있는 것이 아닌지도 자세히 들여다봤다.
지수 10% 상승이라면 개별종목 특히 무역 제재에 영향을 받아 폭락했던 종목의 경우에는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 이상의 상승까지도 나왔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하이식스의 경우에는 2배에 가까운 상승 폭을 보여줬고, 앞으로도 더 오를 수 있는 여력이 있음을 시장에 뽐내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런 하이식스조차 공매도 물량이 대부분 남아 있음이 감지됐다.
사람들은 공매도 물량이 빠지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돌다리도 두드려본다는 심정으로 확인해 나갔다.
아무 생각 없이 광란으로 2,500을 넘긴 뒤 얻어맞은 충격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이상은 없었다.
한국에서 열린 무역 제재 관련 각 정부 관계자들의 회의에서 일본은 더는 무역 제재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을 테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매운동을 멈춰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언론 발표가 나왔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나라 정부는 불매운동은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운동이기에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태도를 유지했다고 했다.
그리고 기존 반도체 산업 원료를 다시 일본에서 구입하는 문제 또한 기업의 선택이기에 정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절대적으로 우리나라가 갑의 위치에서 일본 정부를 압박하고 있었고, 일본 정부는 무역 제재 전으로 상황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다시 상황이 악화하는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이미 대비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악화가 되는 경우는 딱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공매도 물량을 거둬들이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조심했고 2,000자리에서 지수도 멈추고 말았다.
이렇게 사람들이 조심하는 상황에서 시장의 슈퍼스타가 방송에 출연했다.
바로 지난 방송에서 사람들에게 매수 신호를 주며 개인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최석영이 방송에 나온 것이었다.
그것도 전체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공중파가 아닌 주식과 채권과 같은 돈과 관련 있는 이야기만 중점적으로 나오는 경제방송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로 최석영의 등장을 반겼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진행자는 최석영을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최석영은 진행자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 많은 분께서 좋아해 주셔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정말 개인투자자를 위해 많은 일을 하셨는데 말입니다.
최석영은 진행자의 말에 황급히 아니라며 온몸으로 반응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회사를 대표하여 화면에 나오는 것일 뿐입니다. 매수 신호를 준 것도 회사의 방침에 따라 한 것이고 오늘 이렇게 방송에 나온 것도 회사의 결정에 의해 나온 겁니다.
-그렇다는 말씀은 모든 결정은 한진영 사장님이 하신다는 이야기인가요?
-회사의 결정입니다.
최석영의 애매한 대답에 진행자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기회가 되면 한진영 사장님을 모시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글쎄요. 기회가 되면 나오시지 않을 이유가 없으시겠죠?
오히려 반문하는 최석영의 모습에 진행자는 크게 웃고는 오늘 최석영을 초대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오늘 이렇게 최석영 상무님을 방송에 모신 이유는 2,000에 멈추어진 증시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세이지증권의 의견을 묻고 싶어서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세이지증권이 바라보고 있는 시장의 뷰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괜찮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방송에 나온 이유는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니까요.
시원하게 대답한 최석영은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고 말했다.
-현재 시장은 공매도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진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희는 공매도 물량이 시장을 폭발시킬 뇌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행자의 질문에 짧게 대답한 최석영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짧지 않았다.
듣는 사람에게 있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킬만한 내용이 함축되어 최석영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었다.
-저기…… 그러니까. 공매도 물량이…….
생각도 못 한 최석영의 대답에 말을 더듬는 진행자를 향해 최석영은 웃는 표정으로 조금 더 설명을 더 했다.
-간단합니다. 2,000까지는 버틸 수 있겠지만, 공매도 물량들도 그 이상의 지수대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게 현실일 겁니다. 특히, 1,800대 초반 1,800 붕괴를 노리고 들어간 물량의 경우에는 지금 한계에 다다른 상태일 겁니다. 그들도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석영의 말은 벌집을 쑤신 듯이 시장에 강렬한 반응을 끌어냈다.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만 해오던 것이 최석영의 입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자 사람들은 공매도 물량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됐다.
바로 자기들을 찍어 누르는 몹쓸 세력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잡힌 물고기와 같이 그들이 개인투자자들 눈에 보인 것이었다.
여기서 더 쳐올린다면 저들도 견디지 못하고 청산 움직임이 나올 테고 그게 바로 주가를 하늘 높이 쏘아 올리는 추진체가 된다고 생각했다.
개인투자자들의 매수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나왔다.
2,000을 넘으며 돌다리도 두드려본다는 신중한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최석영의 말대로 공매도 물량들에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고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개인투자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기관투자자들은 미치고 팔짝 뛰는 상황에 빠져든 것에 서로 눈치만 보기 바빴다.
***
“그냥 여기서 우리 모두 공매도를 한 번 더 때립시다. 막말로 공매도에 한계가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차라리 그러기보다는 찌라시를 풀어 주가를 무너뜨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런저런 방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속에서 한 사람이 눈치를 살피다 조심히 이야기했다.
“그냥 세이지증권에 다시 부탁하는 게 어떻습니까?”
조심스러운 말이었건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에 발작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제정신입니까?”
“쯧쯧. 그런 정신머리니 회사도 언제 매각이 될지 모른 상태로 그룹의 천덕꾸러기가 돼 있는 상태 아닙니까?”
“다시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뭐라고요? 지금 비싼 쌀밥 드시고 하신 말씀이 맞습니까?”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날 선 질문들에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세이지증권에게 부탁해보자는 말은 더는 꺼낼 수가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증권사 협회는 오르는 주가에 머리를 맞대는 중이었다.
세이지증권의 방송 이후 코스피 지수는 결국 2,000을 뚫고 말았다.
상승엔 탄력이 붙었으며 엉덩이가 무겁기로 소문난 삼선전자마저 상승 폭을 키우며 저점 대비 20%에 가까운 상승을 보이는 중이었다.
삼선전자의 상승은 시장에서 매우 고무적인 평가가 나오는 부분이었다.
무역 제재가 끝이 났지만 어쨌든 삼선전자는 피해를 받을만한 종목으로 분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라인이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으며 라인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삼선전자의 실적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주가가 상승했다는 이야기는 삼선전자의 실적 부분보다 삼선전자를 공매도 친 세력의 물량을 잡아먹는 것에 사람들의 관심이 더 쏠렸다는 이야기였다.
삼선전자가 이런 상태이니 다른 곳은 더 볼 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공매도 물량이 시장에 튀어나오길 기대하며 매수 포지션을 유지하기 바빴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상황이 쉽사리 사그라지지 못할 것으로 보이자 증권사 협회는 모처에 모여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우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공매도를 더 때려 박아 주가를 뺀다고 해도 외국인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외국인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우리가 공매도를 칠 때 외국인들도 함께 공매도를 쳐줘야 합니다.”
“외국 증권사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아는 분은 없습니까?”
개인투자자는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래알처럼 뭉치는 힘이 부족한 개인투자자는 그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외국 증권사였다.
자금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기에 증권사 협회의 회원사들은 외국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저쪽도 손해가 막심하다고 합니다.”
남부증권이 아직도 허공에 맴돌고 있는 질문을 향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