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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61화 (461/650)

461화 모두 만족한 거래

한진영은 두 사람의 제안에 잠시 고민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상환전환우선주를 제안한 건 한진영의 예상 범위 내에 있는 일이었다.

그들이 자기에게 팔 가장 적당한 물건이 바로 그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했고 그걸 무엇으로 제시할지는 한진영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아시아채널을 내놓아?’

아시아채널을 내놓는다는 뜻은 두 회사 모두 아시아에서 장사를 접는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시아 시장을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시장 철수는 뜻밖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한진영은 팔짱을 낀 채로 두 사람을 향해 이야기했다.

“상환전환우선주야 가격이 정해져 있으니 계산하기 쉽지요. 두 분이 투자한 금액 10억 달러를 기준으로 해서 30% 할인한 가격에 인수하도록 하겠습니다.”

“30%라니……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계약이 체결…….”

바비 힉스는 한진영을 향해 할인 가격이 과하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레이 젠슨이 바비 힉스의 말을 막아 세웠다.

“우선 다 듣고. 한 사장님의 말을 다 들어본 다음에 나중에 따져보도록 하세. 어쨌든 한 사장님이 인수에 호의적인 것 같으니 말이야.”

레이 젠슨의 말에 그제야 바비 힉스는 한진영이 그들 제안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한진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진영은 조용해진 바비 힉스를 향해 살짝 웃어 보이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 생각한 가격은 30% 할인입니다. 저희 쪽에서도 기풍 등의 주식을 더 매수하는 것은 불편한 상황이니까요. 대주주 지위에 올라서면 법적으로 여러 가지 불편한 상황을 겪게 되니까요. 뭐 여하튼…… 그건 서로 논의해보면 될 일이기는 하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행입니다.”

“네. 그런데 문제는 두 회사가 가지고 있는 아시아채널을 넘긴다는 것인데…… 이건 값을 얼마를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우선 가격을 들어보고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레이 젠슨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장이라면 이야기가 통할 거로 생각했는데 확실히 합리적으로 판단하시는군요. 오늘 한 사장을 찾아온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다행입니다.”

간단한 말을 주고받은 레이 젠슨은 한진영에게 본격적인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는 세부적인 것은 따지는 자리가 아니니 그냥 합계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0억 달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진영은 레이 젠슨의 말에 잠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바비 힉스를 바라봤다.

바비 힉스는 침을 삼킨 뒤 천천히 자기가 생각했던 제안을 한진영에게 건넸다.

“우리는 브릿지랜드보다 조금 작습니다. 20억 달러면 충분합니다.”

한진영은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의 제안을 듣고 고개를 가만히 들어 올렸다.

“둘이 합계 50억 달러라…….”

한진영은 잠시 고개를 들어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혼잣말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RCPS까지 더한다면 약 6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7조라…….”

세이지증권이 조달하지 못할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고민 없이 지르기에는 굉장히 부담되는 돈이었다.

한진영은 선뜻 좋다는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바비 힉스는 생각이 길어지는 한진영의 모습에 점점 마음이 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레이 젠슨을 잠시 돌아보고는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한진영을 향해 새로운 제안을 건넸다.

“20억 달러가 부담되면 우리는 5억 달러를 낮출 의향이 있습니다.”

한진영은 천장을 향해 있던 시선을 떨궈 바비 힉스를 바라봤다.

바비 힉스는 겨우 자기를 향해 시선을 돌린 한진영을 향해 다급한 듯이 이야기했다.

“원하는 가격을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이야기를 들어보고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최대한 맞춰보도록 할 테니 말입니다.”

레이 젠슨은 바비 힉스의 모습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협상하는 상대에게 이렇게 다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협상 자리에서 지양해야 할 모습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상대에게 약점이 잡힐만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레이 젠슨은 아무리 급해도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바비 힉스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바비 힉스의 이런 모습이 이해되기도 했다.

홀리스 인베스트먼트는 이번 일로 인해 회사가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다는 바비 힉스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레이 젠슨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한진영에게 말했다.

“후우~ 그래요. 여기 있는 힉스 씨의 이야기대로 먼저 생각한 가격이 있다면 제시해보시구려. 들어보고 가격이 맞는다면 우리 브릿지랜드에서도 맞출 용의가 있으니 말입니다.”

한진영은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두 분께서는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오해라고요?”

레이 젠슨이 한진영의 말에 이질감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한진영은 그런 레이 젠슨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네. 제가 두 분 회사의 아시아채널을 인수하고 싶어 한다는 오해 말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다고요?”

“네.”

한진영은 짧게 대답하고 조지훈이 가지고 온 차를 들어 마셨다.

레이 젠슨은 한진영과 눈싸움을 하려는 듯이 한진영을 빤히 바라봤고 바비 힉스는 난감하다는 듯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한진영은 레이 젠슨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고 앉아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RCPS는 저희가 인수하겠습니다. 물론 두 분이 투자한 돈을 그대로 드리고 인수할 마음은 없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그것까지 인수하게 되면 저희도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시아채널 인수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채널이 눈에 차지 않아서 그런 겁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커서 인수하지 못하는 겁니다.”

“너무 커서?”

레이 젠슨은 지금의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던지 힘줬던 눈을 풀고 한진영을 다시 바라봤다.

한진영은 찻잔의 손잡이를 내려다본 채 손가락으로 손잡이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두 분이 알아야 할 사항은 아니지만 제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 같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말을 멈췄던 한진영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두 분의 아시아채널을 인수할 만큼의 돈은 저에게도 없습니다.”

“돈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거기에 쓸 돈이 없다는 뜻입니다.”

레이 젠슨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알 듯 말 듯 한 한진영의 말에 여전히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레이 젠슨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레이 젠슨의 모습에 설명을 조금 더 이어갔다.

“아시아채널을 인수해서 아시아지역에 사업을 확장할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가격이 적당하다면 해볼 만한 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50억 달러나 쏟아가며 하기에는…… 저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게 얼마라도 싫다는 말씀입니까?”

“네. 50억 달러에서 반 토막이 난 금액이라고 하더라도 저에게는 매력적인 금액이 아닙니다.”

확실하게 자기 뜻을 전한 한진영의 모습에 바비 힉스가 당혹해했다.

한진영이 쉽게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가격도 낮추고 열린 마음으로 협상 자리에 임한다면 적당한 선에서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바비 힉스였다.

그런데 단칼에 건넨 관심 없다는 말에 협상에 더는 진전이 없다는 것이 결정 나고 말았다.

바비 힉스는 눈앞이 깜깜해져 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어두운 바비 힉스의 눈앞을 깨우는 말이 한진영의 입에서 나왔다.

“대신 다른 걸 원합니다. 그리고 그게 잘 된다면 RSCP도 할인된 가격이 아닌 본래의 가격에 인수할 의향이 있습니다.”

바비 힉스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뭘 원하십니까?”

한진영은 바비 힉스를 바라보고 웃으며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세이지증권에서 나와 호텔에 도착한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는 한 방에 앉아 뜬 눈으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맞이했다.

한진영의 제안을 들은 두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못했다.

전혀 생각도 못 한 제안이었기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진영도 그런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의 태도를 이해했다.

그래서 호텔에서 쉬고 생각을 정리하자고 한 뒤 자리를 물렸다.

세이지증권이 잡아준 호텔에 도착한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지 않았다.

한진영과의 협상 자리는 물렸지만 아직 그들은 이야기할 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어떻게 알았는지가 중요한가?”

“중요하지요. 우리 투자처를 손바닥 위에 놓고 내려다보고 있다는 뜻인데 말입니다.”

바비 힉스는 놀란 마음을 여전히 진정시키지 못한 채 레이 젠슨을 바라봤다.

한진영에게 아시아채널 대신 원한다는 것을 이야기 들었을 때 놀랐던 것을 떠올리면 바비 힉스는 아직도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한진영의 제안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아직도 흥분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는 바비 힉스와 달리 레이 젠슨의 모습은 차분하기만 했다.

오히려 한진영의 제안이 다행이라는 듯한 얼굴로 세이지증권에 있을 때보다 더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차라리 잘 됐어.”

“잘 됐다고요?”

“그래. 코인 거래소 지분을 인수해준다면 우리로서는 환영이야.”

“그래도…….”

바비 힉스는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코인 거래소의 가치는 지금이 제일 낮다는 것이 바비 힉스의 생각이었다.

가지고 있으면 가지고 있을수록 계속 가치가 오를 것이고,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큰 돈을 벌어다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인 거래소에 투자했던 것이었는데, 한진영은 그걸 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이지증권은 분명 코인 그라운드의 투자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나도 들었네.”

“그런데 경쟁사인 코인머치의 지분을 원한다니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슨 상관이겠나.”

레이 젠슨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담배 연기를 길게 빨아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지분을 넘기고 돈을 받을 수 있으니 그거로 된 거야.”

“하지만 애초에 우리가 원하는 돈에는 한참 모자란 액수 아닙니까?”

바비 힉스는 레이 젠슨의 입에서 나온 연기를 따라 시선을 옮기며 이야기했다.

“50억 달러를 이야기했는데 각각 5억 달러씩 10억 달러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원래 우리가 원하던 가격의 1/5밖에 되지 않는 돈입니다.”

“대신 RSCP를 제값에 주고 산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도 절반도 되지 않는 돈입니다.”

“아시아채널을 지킬 수도 있다는 건 왜 생각하지 않나?”

레이 젠슨의 말에 바비 힉스는 가만히 입을 닫았다.

레이 젠슨은 이제야 조용해진 바비 힉스를 바라보고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리고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홀리스와 우리의 아시아채널을 총액 50억 달러에 넘긴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거저 넘기는 것과 마찬가지였어.”

“회장님.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돈이 없어 그런 것 아닙니까?”

“손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니까 그런 거지.”

“손실을 인정하지 않아서 그렇다고요?”

“그래.”

레이 젠슨은 피우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창밖으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말했다.

“우리가 공매도 친 돈이 제로가 된 건 아니지 않나?”

질문을 던졌지만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 곳으로 레이 젠슨은 고개를 돌렸다.

“RSCP를 정리하고 받은 돈에 코인머치를 정리한 돈까지 더한다면 현금은 얼추 확보되고, 나머지 돈은 공매도 포지션을 정리하며 마련할 수 있어. 그러니 그거로 손해를 인정하고 털고 나가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도 모자란 돈이…….”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해야지. 거기까지 우리를 엮어 들어가지 말게.”

바비 힉스는 레이 젠슨의 말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여기까지 브릿지랜드와 함께 진행한 것만으로도 바비 힉스 입장에서는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 젠슨은 시무룩해진 바비 힉스를 바라보고 표정을 풀었다.

“자네 마음이 어떤지 알아. 하지만 생각해보게. 코인머치에 자네나 내가 처음 투자했던 비용은 각각 1,000만 달러에 불과했어. 그걸 10억 달러에 사겠다고 하니 우리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거야. 2,000만 달러가 10억 달러가 되었으니 말이야. 게다가 RSCP도 우리가 투자한 금액 그대로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으니 세이지에서 얻을 수 있을 만큼 얻었다고 생각하게.”

레이 젠슨은 고개를 끄덕이는 바비 힉스에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시아채널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야. 돈을 메우겠다고 아시아채널까지 팔아넘겼다면 우리는 다시 아시아 시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거나 오랜 세월 많은 돈을 들여야 겨우 복구하는 수준이 되었을 테니까.”

레이 젠슨은 잠시 말을 멈추고 아름답게 보이는 일출의 광경을 감상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공매도를 정리하고 20억 달러를 손에 넣으면 우리 손해는 대충 마무리할 수 있어. 우리가 잃은 건 이차 전지라는 앞으로 먼 미래에나 시장이 활성화될 곳과 데이터쪼가리나 거래하는 자그마한 회사의 지분 정도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네. 이제와서 다른 방도가 없으니…… 알겠습니다.”

바비 힉스는 지금 와서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음에 레이 젠슨의 방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레이 젠슨은 자기의 말을 따르기로 마음먹은 바비 힉스를 슬쩍 돌아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한밤중에 달려와 아직 새벽녘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레이 젠슨은 개운함이 느껴졌다.

한국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레이 젠슨이 개운함을 느끼듯이 한진영도 마찬가지로 회사 사무실에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장님.”

진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진영 앞에 놓은 조지훈은 커피 향을 음미하는 한진영에게 물었다.

“사장님. RSCP와 코인머치의 인수자금을 준비해 놓으라고 지시해 놓을까요?”

“RSCP 10억 달러만 준비해 놔.”

“RSCP만요?”

조지훈은 여전히 커피 향을 음미하고 있는 한진영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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