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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62화 (462/650)

462화 상대는 한 방 역전을 노리고 있다

조지훈은 향을 음미하고 커피를 맛보는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그럼 코인머치를 인수하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인수하지 않기는. 당연히 인수해야지. 지금 내 목표는 RSCP가 아니고 코인머치야.”

한진영은 입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천천히 목을 통해 넘기고는 앞에 놓인 서류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곳에 오기 전에 조 실장이 정리한 브릿지랜드와 홀리스의 보유 종목을 살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아니었으면 코인머치가 있는 줄도 모르고 협상을 거절했을지도 모르니까.”

“그럼 처음 사장님의 생각은 저들의 제안을 거절하려는 것이었습니까?”

“당연하지.”

한진영은 커피잔을 들어 다시 커피 맛을 음미하고는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60억 달러야. 뭐 할인도 하고 조정도 한다면 그보다 적어지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50억 달러는 넘을 거라고. 그 돈이 지금 우리에게 있어? 비상금을 제외한 모든 자금이 싹~다 증시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 그럴 돈이 우리가 어디 있어? 협상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이잖아.”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의 말대로 지금 세이지증권은 모든 돈이 증시에 쓸려 들어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서 사실은 미안하게 됐다고 말하려고 했어. 이걸 보기 전까지는 말이지.”

한진영은 사랑스러운 눈으로 앞에 놓여 있는 서류를 내려다봤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조 실장에게 비서실에서 준비해 놓은 리스트 좀 가지고 오란 게 신의 한 수가 됐어.”

“코인머치가 그 정도입니까? 제가 알고 있기론 저들이 각각 투자한 금액이 1,000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하던데…… 차라리 시간을 가지고 전략실에 이야기해서 정확한 금액을 산출한 뒤에 협상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10억 달러는…… 너무 많은 금액을 지르신 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하하하. 1억 달러만 질러도 좋다고 하면서 넘길 텐데, 왜 10억 달러나 질렀냐고 욕하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와 손을 동시에 좌우로 저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올려다봤다.

“확실히 세이지증권의 지분을 100% 모두 보유하고 있으니 이런 면에서는 참 좋아. 상장되어있고, 기업공개가 된 상태에 다른 주주들까지 있었다면 배임행위를 했다면서 걸고넘어졌을 만한 일이니까.”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요?”

“아닐 것 같아?”

한진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자네 말대로 1억 달러면 충분할 것 같은 회사를 10억 달러나 주고 사려고 한다면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면서 화를 낼 게 분명해. 그들에게는 회사의 미래가치 같은 것은 숫자로 보이지 않는 막연한 거니까. 하지만 세이지증권이 온전히 다 내 거다 보니 그런 꼬투리 잡히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그래서 조금 아쉬워.”

“무엇이 말씀입니까?”

“이런 편안함이 사라지게 될 거라는 거 말이야.”

“그럼 결심하셨군요.”

조지훈이 한진영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조지훈과 달리 한진영은 태연한 모습을 유지한 채로 조지훈을 바라보고 웃기만 했다.

“뭘 그렇게 놀라?”

“상장을 말씀하셨으니까요? 제가 맞게 들은 거죠?”

“그래. 맞게 듣기는 했어. 그런데 내가 예전부터 상장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새삼스럽게 왜 그래?”

한진영의 예전부터라는 말에 조지훈은 무언가를 떠올리고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그럼 설마…… 나스닥에…….”

“뭘 알면서 물어? 당연히 나스닥과 차후에는 S&P에 상장해야지. 국내는…… 좁아.”

한진영은 찻잔의 손잡이 부분을 다시 쓰다듬으며 혼잣말처럼 낮게 읊조렸다.

“기왕지사 이런 좋은 이점도 버려가면서 기업공개를 할 생각이라면 해외에서 하는 편이 훨씬 좋아. 그것도 미국에서 말이야.”

한진영은 잠시 커피잔을 내려다보고 생각에 잠기다 고개를 들었다.

“어쨌든 그건 그렇고…… 왜 1억 달러면 될 회사를 10억 달러에 샀는지 그게 궁금하다고 했지?”

잠시 한진영의 말뜻을 이해하려 했던 조지훈은 한진영의 질문에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가자.”

“네?”

한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문을 향해 걸어가자 조지훈이 뒤를 따르며 한진영에게 물었다.

“어디를 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운용본부로 가자. 거기 가면 내가 왜 1억 달러짜리를 10억 달러에 주고 샀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겸사겸사 홍 본부장에게 말 못 한 것도 알려줘야 하고…….”

“홍 본부장에게 말 못 한 거요?”

“그래. 밤사이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한진영은 말을 하고 시계를 쳐다봤다.

벌써 8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확인한 한진영은 몸을 돌렸다.

“어서 가자. 늦었다가는 홍 본부장이 먼저 움직일지도 모르니까.”

한진영은 조지훈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드리고 직접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모습에 정신을 차리고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

세이지증권의 운용본부, 그중에서도 조정실은 언제나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자자. 오늘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들고 있는 물량이 많으니까 신경 바짝 써. 여차해서 지수가 흔들리게 된다면 거기에 맞춰 포지션 나가야 하니까.”

홍대민 본부장은 조정실에 자리한 직원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최수찬 조정실장을 향해 지시했다.

“전략실의 김준하 실장에게 공식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박도하 센터장에게 프로그램에 이상이 없는지 다시 확인해.”

“어제 장 마감 후 확인했을 때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건 어저께고…… 오늘 말이야. 오늘 이상 없는지 확인하라고.”

어제 장 마감하고 이제 장이 시작하려는 사이에 무슨 이상한 일이 있었겠냐는 생각이 든 최수찬은 홍대민의 지시에 잠시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홍대민은 최수찬을 보고 잠시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나도 내가 괜히 오버하고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지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최수찬은 홍대민이 이상하다는 게 무엇인지 이해했다.

“증권사 협회 말씀이십니까?”

“그래.”

홍대민은 장전 예상지수의 하락과 함께 대형주에서 보여주고 있는 매도 잔량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봤다.

“2,000까지는 올라왔는데 증권사 협회 놈들의 물량이 튀어나오지 않고 있어. 분명 1,800대에서 그렇게 많이 공매도를 쳤으면 손해가 막심할 텐데도 아직 견디고 있다는 이야기야.”

홍대민은 고개를 돌려 최수찬을 바라보고 말했다.

“왜 그런 거 같아?”

“한 방을 노리고 있는 건가요?”

“그래. 한 방 역전. 저놈들은 분명 한 방 역전을 노리고 있어.”

홍대민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이야기했다.

“이대로 손실을 확정 짓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다는 이야기야. 그리고 그런 곳이 협회 단위로 존재하고…… 우리나라 시장은 외국인들의 포지션에 의해 시장의 방향이 정해진다지만, 그것도 기관들이 힘을 모으지 않았을 때 이야기야. 기관들이 힘을 모으면…… 지난 9.11 때 기억해?”

“무역센터 무너졌던 날이요?”

“그래.”

홍대민은 상황판을 노려보듯이 쳐다봤다.

그의 눈에서는 불안과 함께 실수하지 않겠다는 빛이 눈을 통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10여 년도 훨씬 전의 일이었지만, 바로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난 홍대민은 최수찬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9.11 테러가 터지자 증권사 사장들이 회의를 열어 당일 오전에 시장 문을 닫아 버렸어. 그리고 일주일 남은 만기에 사고가 터지지 않도록 서로 의견을 모은 뒤 그날 오후 문을 열자마자 콜을 집중적으로 매입한 후 다음 날부터 지수를 끌어 올렸어. 기억해?”

“기억하죠. 콜에서 수백 배짜리들이 마구 튀어나왔으니까요. 그래서 9.11 테러의 진짜 수혜자들은 9.11 테러가 터지기 전에 풋을 산 사람들이 아니라 사고 터지고 장이 열린 뒤 콜을 산 사람들이라고 했으니까요.”

“맞아. 500배가 터졌다는 극외가 풋의 실제 거래대금 자체는 몇십만 원에 불과했어. 한사람이 그 풋을 모두 거래했다고 하더라도 억 단위의 수익금 이상을 얻지 못했다는 뜻이야. 그리고 사실 한 사람이 그 모든 걸 거래하지도 못했을 테고…… 하지만 콜은 달랐어. 시장을 끌어올리며 수십억, 수백억의 수익이 콜에서 쏟아졌어. 만기 때 풋이 휴지가 된 건 덤이었고…….”

최수찬은 홍대민의 말에 당시를 떠올렸다.

약 15년 전의 일이었지만 최수찬은 당시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입 티를 완전히 벗지 못하고 있던 최수찬은 난리가 난 시장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실신 직전까지 갔었기 때문이다.

잊지 못할 당시를 떠올리고 있는 최수찬을 향해 홍대민은 계속 이야기했다.

“당시에 그런 상황이 벌어진 건 증권사 사장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야.”

“담합을 한 건가요?”

“물증 없이 심증만 있는 일이지만…… 난 그렇다고 생각해.”

“그럼 이번에도…….”

“당시만큼은 아닐 거야. 당시엔 모든 증권사가 모여 함께 움직였던 거니까. 하지만 지금 모여있는 여섯 개의 회사들을 생각한다면 힘은 당시 모든 증권사가 모였을 때 못지않거나 어쩌면 그때보다 더 강할지도 몰라. 어쨌든, 그때보다 회사와 자금의 규모 모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으니까.”

홍대민은 불안한 눈으로 상황판을 바라봤다.

증권사 협회라고 모여있는 그들이 지난 9.11 사태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2,000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버틴 뒤 힘을 모아 시장을 짓누르는 일.

엄청난 물량을 들고 있는 세이지증권으로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에 홍대민의 신경은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홍대민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장이 시작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바쁜데 미안합니다.”

날이 바짝 서 베일 것 같은 조정실로 한진영이 조지훈을 비롯한 수행비서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홍대민은 한진영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사장님. 이른 아침부터 어쩐 일이십니까?”

한진영은 홍대민의 인사를 받으며 홍대민을 위아래로 살폈다.

“홍 본부장님.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제 얼굴이 이상한가요?”

홍대민이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자 한진영은 홍대민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표정이 긴장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제가 이럴 줄 알고 찾아왔지요.”

한진영은 동시호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장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아 걱정하고 계신 겁니까?”

“제 표정에 다 드러났나 보네요.”

홍대민은 다시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한진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본부장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얼굴에 마음이 드러나게 해서 심려를 끼친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사람이 다 그런 거지요. 로봇도 아니고 어떻게 얼굴에 아무런 감정을 담아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진영은 괜찮다고 말하고 상황판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다만 이번에는 좀 과한 걱정을 하신 것 같습니다.”

“과하다고요?”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홍대민은 100가지의 이유를 들어서라도 한진영의 말을 반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한진영이 말한 것에 홍대민은 말없이 상황판을 바라보기만 했다.

2,000이 깨지고 시작할 것을 예고하고 있는 시장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하이식스의 장전시간외 매도 잔량이 100만 주가 넘었으며 예상 동시호가도 -2%를 가리키고 있었다.

삼선전자는 그보다 더했다.

매도 잔량은 5만 주로 100만 주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숫자였지만 금액으로 따지면 100만 주를 5만 주가 훌쩍 넘기는 수준이었다.

하락 폭도 하이식스보다 더 심했다.

-3%에 매수 대기 물량도 미미한 것이 더 큰 하락을 예고하고 있었다.

시장이 하이식스보다 삼선전자를 더욱 안 좋게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주식들도 마찬가지였다.

2,000까지 올라오며 시장의 선두에 서 있던 주식들이 깊은 하락을 예고했다.

마치 2,000으로 만족하고 다시 하락으로 시장을 찍어 누르겠다는 뜻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동시호가의 모습이었다.

홍대민은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이 운용에 대해 무지한 사람도 아니고 자기보다 몇 단계나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홍대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광경을 보고 과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홍대민은 알지 못했다.

홍대민의 눈에는 과한 게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질 겁니다.”

한진영은 양손을 비비고 이제 시작하려는 시장을 바라봤다.

동시호가의 예상대로 시가는 2,000 아래서 시작됐다.

-1.5% 하락한 1,985에서 시작한 코스피는 시작과 동시에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그러나 결국 장전시간외부터 시작하여 동시호가에서 보여주던 모습 그대로 하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하이식스 -3%, 삼선전자 -3.5% 하락입니다. 본부장님. 어떻게 할까요?”

최수찬의 질문에 홍대민이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을 끝낸 뒤 마이크를 잡은 채 지시를 내리려 했다.

“잠시만요.”

한진영은 마이크를 잡아가는 홍대민의 손을 잡았다.

홍대민은 마이크를 잡은 채로 한진영을 돌아봤다.

오늘 한진영은 평소와 달리 이상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 홍대민이었다.

평소의 한진영은 홍대민의 결정을 철저히 존중해줬다.

홍대민이 어떤 방식으로 운용을 하든지 간에 한진영은 한걸음 뒤에 물러나 홍대민의 결정을 지지해줬다.

물론 이런 믿음은 중요할 때마다 한진영과 홍대민이 이야기를 나눈 뒤 홍대민이 한진영의 뜻을 따라 움직였기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다.

홍대민의 움직임 속에 한진영의 의중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진영이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기본에 따라 움직이려 한 것이었다.

1차 목표치인 2,000에 도달한 만큼 일정 물량을 털어낸 뒤 다음 모습을 지켜보는 것.

매매 기본을 충실히 따라 움직이려 한 홍대민이었다.

그걸 한진영이 막은 것이었다.

“홍 본부장님. 조금 더 기다리세요. 굳이 지금 자리에서 팔지 않아도 됩니다.”

“혹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요?”

홍대민은 한진영이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에 이유가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는 듯이 한진영이 웃고는 조지훈을 돌아보고 말했다.

“내가 왜 1억 달러면 충분한 것을 10억 달러 사겠다고 했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조지훈은 갑작스러운 한진영의 질문에 깜짝 놀란 얼굴로 대답했다.

“네? 네. 궁금합니다.”

“잘 봐. 이제부터 그 이유가 저기 나올 테니까.”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상황판을 향해 턱짓했다.

조지훈과 홍대민은 상황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한진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특이한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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