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63화 (463/650)

463화 무차별적인 청산

1,985에서 시작했던 지수가 계속 밀려 내려가 1,970대도 무너뜨리고 말았다.

-2%가 넘게 하락했으며, 삼선전자가 -5%가 넘게 무너져 지수의 하락을 견인했다.

하이식스 또한 하락세를 키워갔다.

-2%가 빠져 내려왔음에도 하락세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관들의 강력한 매도세에 결국 하락 속도는 점점 가팔라지기만 했다.

1,960까지 하락한 지수가 -3% 하락을 눈앞에 뒀을 때였다.

마치 지수가 도로 위의 요철을 만난 것처럼 주춤거렸다.

장 시작부터 빠져 내려온 것이 하락에 대한 저항이 나온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나올만한 속도 조절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시작부터 -3%까지 쉼 없이 빠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항으로 인한 하락 속도 완화가 아니었다.

홍대민은 상황판에 특이하게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이야기했다.

“매도세가 여전하네요.”

보통 저항이 나타나게 된다면 매도세가 줄어들며 하락 속도를 늦춰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매수세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곁에서 가만히 한진영과 홍대민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최수찬이 홍대민의 말에 반응했다.

홍대민은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최수찬에게 지시했다.

“지금 들어오고 있는 매수세가 어디인지 확인해봐.”

“네.”

최수찬은 홍대민의 지시에 급히 움직였다.

상황이 변화하려는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홍대민은 확인차 자리를 비운 최수찬이 떠나간 곳을 잠시 바라보다 한진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한진영은 이유를 알고 있는 것인지 여유로운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조 실장을 향해 이야기한 것도 홍대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유가 저기 보인다고 했지. 그런데 1억 달러짜리를 10억 달러를 주고 샀다고 했는데 그건 무슨 소리지?’

홍대민은 알 수 없는 한진영의 말에 직접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기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가만히 상황판을 지켜만 보고 있는 한진영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알려줄 이야기였으면 진작에 알려줬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본부장님.”

마침 최수찬이 확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홍대민에게 보고했다.

“외국계 계좌에서 물량이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외국계 계좌? 진짜 외국인들이야 아니면 외국계 계좌를 사용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야?”

“그게…….”

최수찬은 한진영 쪽을 슬쩍 돌아보고 홍대민의 질문에 대답했다.

“브릿지랜드와 홀리스의 계좌로 보이는 것들이 매수로 들어오고 있다는 전략실의 분석입니다.”

“뭐?”

홍대민은 최수찬의 보고에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돌아봤다.

한진영은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세 쌍의 눈 주인에게 손짓했다.

“가서 앉아서 이야기나 하죠.”

한진영은 천천히 몸을 돌려 조정실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회의실로 걸어갔다.

회의실은 바깥 풍경이 모두 보이는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한진영이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있었던 곳으로 세이지가 자산운용사부터 시작하여 증권사로까지 성장하며 수많은 회의를 진행했던 곳이었다.

한진영은 먼저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은 뒤 나머지 세 사람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그리고 투명한 유리 벽 너머에서 보이는 모니터링 화면을 바라보고 이야기했다.

“지금 이 시각부터 브릿지랜드와 홀리스의 공매도 청산 물량이 시장에 나올 겁니다.”

“공매도 청산 물량이…… 드디어 나오는 건가요?”

홍대민은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 높여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한진영은 홍대민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드디어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기관 쪽 공매도 청산 물량도 나오게 될 테고요.”

“네? 기관 쪽도요?”

홍대민과 최수찬은 깜짝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모두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는 것에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지을 뿐이었다.

한진영은 놀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는 두 사람과 여전히 궁금증을 모두 지우지 못하고 있는 조지훈을 향해 이야기했다.

“오늘 새벽에 브릿지랜드와 홀리스 측과 만났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서로 원하는 것에 근접하게 됐고, 그 결과 브릿지랜드와 홀리스의 공매도 포지션이 풀리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홍대민은 그제야 한진영이 자기 손을 막았던 이유를 알게 됐다.

원칙에 따라 물량을 정리했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할만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가만히 웃으며 조지훈을 돌아봤다.

“1억 달러짜리 물건을 1억 달러만 줬다면 이런 모습이 나오지 않았을 거야.”

“10억 달러를 주게 됨으로써 브릿지랜드 등이 공매도를 청산하는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내가 10억 달러를 쳐줘서 브릿지랜드와 홀리스가 공매도를 청산하기 시작한 거야.”

한진영은 가볍게 회의 탁자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고개를 돌려 상황판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하락이 멈춘 지수가 보여지고 있었다.

치열하게 매수와 매도세가 1,960을 가운데 놓고 싸우고 있었다.

어느 한 곳이라도 힘이 빠지게 되면 그대로 밀물처럼 쓸려나갈 것처럼 양측의 공방은 치열하기만 했다.

한진영은 유리벽 너머로 시선을 둔 채로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1억 달러로는 저들이 공매도의 손실을 인정하고 손을 털 수 있게 만들지 못해. 돈이 더 필요하고 그 돈을 만들 때까지 공매도 포지션을 쥔 채로 버틸 게 분명하지.”

“그렇다면 사장님께서 브릿지랜드 등이 정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거군요.”

“그래.”

한진영은 밝은 표정으로 조지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맞췄어. 저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고 이쯤에서 털고 나갈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준 거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진영은 입맛을 다신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코인머치를 인수하는 자금은 내 주머니에서 나갈 건 아니니까 내 입장에서 코인머치의 가치가 1억 달러이건 10억 달러이건 상관이 없지.”

조지훈은 한진영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이유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궁금증은 잠시 접어 안쪽 주머니에 넣어뒀다.

지금 당장 중요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홍 본부장님.”

“네.”

홍대민은 이 모든 것이 한진영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바짝 긴장한 상태로 한진영의 말에 대답했다.

한진영은 그런 홍대민의 모습에 가볍게 웃고 말았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제가 사장님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포지션을 정리할지도 몰랐다는 사실에 스스로 부끄럼을 느끼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본부장님의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단지 오늘 새벽에 급히 이루어진 일로 인해 조금 상황이 바뀐 것뿐이니 그렇게 자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진영은 홍대민에게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을 건넨 후 차분히 다음에 이어질 상황을 설명했다.

“이제 브릿지랜드와 홀리스의 공매도 청산으로 인해 시장이 요동칠 겁니다.”

“그 말씀은…… 숏스퀴즈가…… 나온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한진영은 다시 고개를 돌려 현재 지수의 상태를 살폈다.

1,960을 두고 벌어진 공방의 승자는 매수가 된 듯했다.

지수는 야금야금 올라와 1,970선을 회복한 모습을 보였다.

한진영은 화면 속에 점점 힘이 약해지는 매도세를 바라보고 말했다.

“브릿지랜드와 홀리스는 이제 손실을 확정 짓기 위해 무차별적인 청산을 진행할 겁니다.”

“무차별적으로요? 계획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작업 없이 말입니까?”

홍대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무차별적인 청산은 오랜 시간 시장에 있었던 홍대민도 몇 번 보지 못한 극히 드문 경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브릿지랜드와 같은 곳이 진행할 줄은 생각도 못 한 홍대민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 어려운 일이 이번에 일어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네. 그렇게 될 겁니다. 몇 가지 이유로 그렇습니다.”

“이유가 몇 가지나 되는 겁니까?”

“하하하. 네. 몇 가지나 됩니다.”

한진영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우선 첫 번째 이유로 더는 손실을 두고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 나누었던 이야기로 브릿지랜드와 홀리스는 그냥 손실을 확정하고 이곳을 떠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굳이 버티고 앉아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손실을 지켜보는 것보다 빠르게 확정 짓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이 된 것이지요.”

홍대민은 어째서 그런 것인지 묻지 않았다.

흘러가는 분위기로 보아 1억 달러라느니 10억 달러라느니 이야기가 오가는 그것이 그들의 손실을 메워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가만히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홍대민을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것저것 설명할 것 없이 핵심 이야기만 듣겠다는 홍대민의 모습이 보기 좋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차분히 두 번째 이유를 이야기했다.

“두 번째로는 그들 외에도 많은 공매도 물량이 시장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기관 물량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물량이 바로 시장을 폭발시킬 뇌관으로 변할 겁니다.”

“설마 그들도 계획 없는 청산을 진행할 것으로 생각하신 겁니까?”

홍대민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유리 벽 너머의 모니터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아직 시장은 홍대민이 생각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저 조금 더 매수세가 강해져 1,980까지 지수가 회복한 정도에 불과한 정도였다.

홍대민이 안심한 것 같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한진영은 홍대민의 머릿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계획 없는 청산 수준이 아닌 난장이 벌어질 겁니다.”

“난장이라면…….”

“서로 매수하기 위해 박 터지는 싸움이 벌어질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홍대민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진영이 말한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본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해도 떠오르는 장면이 없었다.

그만큼 두 번째 경우는 첫 번째보다 더욱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홍대민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사장님. 제가 웬만한 것은 사장님의 말씀을 이해하겠는데 이번 건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뭐가 그렇게 이해가 가지 않으신 겁니까?”

“제가 알고 있기로 대규모로 공매도를 집행한 곳들이 바로 증권사 협회의 여섯 업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래서 그들이 공매도에서 받은 피해를 확정 짓지 않고 시장을 짓누르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서로 짜고 시장을 조종하지 않을까 걱정하신 거군요.”

“맞습니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말입니다.”

한진영은 홍대민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돈독한 관계도 이득을 볼 때나 가능한 겁니다. 손해를 볼 때는 내가 더 중요한 법이라서 주변을 보지 않습니다.”

“먼저 털고 나간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먼저 나가는 사람이 승자인 상황이 벌어지게 될 테니까요.”

똑똑.

한진영은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김준하 전략실 실장을 보고 들어오라는 손짓을 보였다.

김준하는 투명한 유리문 너머에서 보이는 한진영의 손짓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나왔습니까?”

김준하 전략실 실장은 한진영에게 다가가 종이를 한 장 건넸다.

“네. 지시하신 내용을 확인한 것입니다.”

한진영은 종이 내용에 쓰여 있는 것을 확인하고 환하게 웃었다.

홍대민을 비롯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한진영이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분명 한진영이 말하는 숏스퀴즈의 중요한 내용이 그 안에 쓰여 있을 거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김준하에게 수고했다는 뜻의 눈빛을 건네고는 홍대민을 바라봤다.

“세 번째 이유가 확인됐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일본에서 자금을 회수하려 한다는 내용이 조금 전 전략실의 보고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홍대민은 세 번째 이유를 듣자 모든 것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브릿지랜드와 홀리스는 청산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고 빠져나갈 구멍을 한진영이 만들어줬다.

그리고 빨리 빠져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뒤에 펼쳐져 있다.

뒤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은 빠져나가는 브릿지랜드와 홀리스를 바라보고는 서로 다음으로 빠져나가기 위한 상황이 벌어진다.

“절대 팔면 안 되겠군요.”

“지금은 절대 팔면 안 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느긋이 잡고 배 두드리며 귀 파고 있을 만한 순간도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폭발적인 매수세에 의해 호가 공백이 벌어지고 그렇게 주가가 튀어 오를 때.”

“정리하시면 됩니다.”

홍대민은 생각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광경에 눈빛을 반짝였다.

한진영은 그런 홍대민의 모습을 보고 이제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느꼈다.

한진영과 홍대민 등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지수는 어느새 2,000선까지 회복하고 말았다.

-5%가 넘게 하락했던 삼선전자가 약보합 수준까지 치고 올라가며 긴꼬리를 만들었다.

하이식스는 플러스권을 넘나드는 것이 언제 하락을 보였냐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코스피가 외국인들의 폭발적인 매수세에 힘입어 하락을 모두 회복한 모습을 보였다.

***

1조가 넘는 외국인의 매수세에 -3% 가까이 빠졌던 코스피가 보합으로 마감했다는 이야기는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2,000을 무너뜨렸다가도 바로 회복하는 것이 우리나라 시장에 대한 상승탄력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1,800에서 2,000까지 올라온 것이 단순한 반발 매수세에 의해 올라온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매수한 것의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가지게 됐다.

그러나 희망보다는 환희에 가까운 소식이 전해지며 시장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지난 1조의 매수세는 외국인 공매도 청산 물량으로 밝혀져]

[외국인 공매도 손실을 인정하고 청산을 진행할 거라는 소식이 업계에 전해지고 있어]

[공매도 청산 잔량은 약 7조에서 10조 정도로 보여 앞으로도 당분간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

시장은 드디어 기다리던 외국인 공매도 청산 물량이 튀어나온다는 것에 환호를 질렀다.

그리고 기대한 것 이상의 시장 움직임에 개인투자자들은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코스피 지수가 단숨에 2,050선을 넘겨 2,100을 향해 달려갔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들어오는 외국인의 1조를 넘나드는 청산 물량에 지수는 정신없이 위로 치고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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