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64화 (464/650)

464화 뒤통수에 이어 허리를 얻어맞았다

조지훈은 바쁜 걸음으로 한진영이 자리한 사장실로 향했다.

똑똑.

“들어와.”

사무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조지훈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진영은 하던 것을 멈추고 들어오는 조지훈을 바라봤다.

“사장님. 도착했습니다.”

조지훈은 한진영 앞에 서기도 전에 이야기했다.

한진영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기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먼저 말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사무실을 나선 한진영은 성큼성큼 걸어가 레이 젠슨 등이 도착해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는 한진영과 계약을 맺기 위해 법률 대리인 등과 함께 세이지증권을 찾아와 한진영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한진영은 반갑게 인사하고 레이 젠슨의 맞은편에 앉았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맛있게 먹고 호텔에서 바로 이곳으로 왔습니다.”

처음 볼 때보다 한결 밝아진 표정의 레이 젠슨이었다.

한진영과 레이 젠슨 등은 세이지증권의 법률 대리인인 태훈로펌 측과 브릿지랜드와 홀리스의 법률 대리인인 대서양로펌이 서류를 정리하는 동안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너무 심하게 청산에 들어가셔서 코스피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세이지증권은 재미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네. 덕분에 저희야 큰 재미를 보는 중이지요. 하지만 저희 외에 다른 곳들은 곤란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정리하지 못해 곤란하다고 하던가요? 우리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빨리 정리하고 나가시는 편이 브릿지랜드와 홀리스에겐 나은 선택일 테니까요.”

한진영은 레이 젠슨의 말에 동의한 뒤 곁에 앉아 있는 태훈로펌을 쳐다보고 준비가 됐다는 뜻을 확인했다.

“자 그럼 계약을 진행하도록 하시죠. 기본 골자는 구두로 이야기한 대로입니다. 그걸 우선 우리 쪽에서 준비해봤습니다. 보시고 이상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바로 이 자리에서 교체하여 작성하도록 할 테니까요.”

한진영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이자 태훈로펌에서 준비한 서류를 대서양로펌에 건넸다.

대서양로펌은 건네받은 계약서 내용을 확인한 뒤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에게 넘겨 수정 사항이 필요한 부분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그것들을 정리하여 다시 태훈로펌 측에 건네 확인받는 단계를 진행했다.

이렇게 몇 차례 서류들이 오갔지만 커다랗게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중요한 부분은 한진영과 레이 젠슨 그리고 바비 힉스 등이 이야기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금 자리는 중요한 뼈대에 살을 붙이는 과정으로 사소한 조정과 그렇게 만들어진 계약서를 완성하는 자리였다.

큰 부분은 이미 이야기가 끝이 났기에 크게 부딪힐 일은 없었으며 자리는 순식간에 흘러가 계약서 초본을 만드는 과정까지 이루어지게 됐다.

완성된 계약서 초본을 서로 확인한 양측은 만족한 모습으로 악수한 뒤 다음에 만나면 계약을 체결할 것을 약속하고 자리를 마쳤다.

한진영은 떠나는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를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바라봤다.

“사장님. 진행할까요?”

뒤에 서 있던 조지훈이 조용히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한진영은 여전히 레이 젠슨 등을 바라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진행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브릿지랜드나 홀리스가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요?”

조지훈은 약간 걱정이 되는 듯한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저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세이지증권 마음대로 진행해도 되는지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걱정은 더욱더 커졌다.

혹시 브릿지랜드와 홀리스가 내일 신문을 보고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할지도 모른다고 조지훈은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지훈의 생각과 한진영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아니. 오히려 좋아할 거야.”

“좋아한다고요?”

“그래. 자기들은 단순히 장기판의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리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진행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니 싫어할 이유가 없지.”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안심했다.

한진영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기에 더는 의심을 하지 않은 채 한진영의 지시대로 일을 진행했다.

***

브릿지랜드의 레이 젠슨과 홀리스 인베스트먼트의 바비 힉스가 세이지증권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쪽 언론에서는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의 사진과 함께 기사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다.

두 사람이 세이지증권을 나서는 사진과 꽤 오랜 기간 한국에 머무는 것을 가지고 현재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적힌 기사였다.

기자는 현재 대한민국 시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중심에 두 곳이 자리하고 있으며 결국 실패로 끝난 일에 두 곳이 엄청난 손실을 본다는 이야기가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그리고 정리하기 위해 세이지증권을 찾았으며 익명의 관계자 증언을 통해 두 곳과 세이지가 진행하는 계약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는 것까지 함께 알렸다.

기사에는 정확하게 어떤 계약이 진행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적혀있지 않았다.

다만 계약은 브릿지랜드와 홀리스의 손실을 줄이기 위한 계약으로 예상되며 그 돈을 일본이 지원한 돈을 갚는 데 사용할 거라는 것 정도가 예상됐다.

“보셨습니까?”

증권사 협회에 모인 각 대표는 자리에 앉은 채로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남부증권 대표의 말에 코리아투자증권의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아 있는 다른 증권사 대표들을 돌아본 뒤 입을 열었다.

“브릿지랜드의 공매도 청산이 공식화된 것에 다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불리한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겠지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에서는 아직도 청산 물량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하락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으로 형성이 될 겁니다. 실제로 지금 시장의 흐름도 같은 상황이고요.”

“이거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 겁니까?”

회의 자리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먼 곳까지 코스피 지수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2,000이 무너지며 하락을 보일 것 같던 지수가 당일 2,000을 회복한 것도 모자라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이 2,050까지 올라간 것에 공매도를 친 증권사들은 가슴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브릿지랜드 등의 공매도 청산이 진행 중이라는 기사가 나오자마자 지수는 재차 폭등하여 2,100까지 오르고 말았다.

증권사 협회 회원사들은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1,800부터 손을 잡고 포지션을 청산하지 말자는 것이 2,100까지 올라온 것에 그들의 손실은 말도 못 하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릿지랜드 등의 이야기가 공식화되자 그들은 결국 참지 못했다.

2,100이 아니라 더 높은 곳까지 지수가 오를 수 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다시 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모인 증권사 대표들은 위기를 타개할 방도를 이야기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 모임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음을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바로 그들이 모인 진짜 이유는 대놓고 지수를 찍어 누르자는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였던 것이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만 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걸 먼저 입 밖으로 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모두 같은 포지션을 잡는 것을 대놓고 이렇게 자리에 모여 이야기 나누는 것은 위법행위에 해당했다.

특히 고객의 돈을 투자 받아 진행하는 증권사의 입장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이야기한 사람은 주동자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행위를 적발당했을 때 주동자는 가장 큰 철퇴를 얻어맞았기에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알면서도 서로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이 이야기해주기만을 바라는 중이었다.

“그런데 메리트증권 대표는 오지 않는 겁니까?”

가만히 서로 눈치를 보던 남부증권의 대표가 다른 증권사 대표들을 향해 물었다.

자리에 있던 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 뒤 고개를 저었다.

“남부증권에서 연락하지 않으셨습니까?”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메리트증권과 연락한 분이 있습니까?”

“저희는 남부증권에서 연락을 한 줄 알았는데요. 저에게 만나자고 연락한 곳도 남부증권이었으니까요.”

암묵적으로 자의 반 타의 반 협회를 이끌어가던 남부증권이었기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남부증권이 연락한 곳이 없느냐는 말에 오히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남부증권의 대표는 인상을 쓰며 한쪽 편에 대기하고 있던 비서를 향해 지시했다.

“메리트증권에 연락해서 아직 오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오늘 자리하지 않을 건지 확인해봐.”

비서가 떠나는 모습을 본 코리아투자증권의 대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메리트증권 대표야 오나 마나 한 사람 아닙니까? 보니까 마케팅 쪽에 있었던 사람이라는데, 그런 사람이 여기 자리에 와서 중요한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나 있겠습니까? 차라리 이참에 새로운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 자리에 오지 않은 것이 이상하니 우선 그것부터 확인해보고 대표 교체를 요청할지 말지를 이야기해보도록 하십시다.”

남부증권의 대표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고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마침 남은 시간을 활용하여 시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확인했다.

“또 오르고 있군.”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한 종합주가지수는 오늘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2,130입니다. 삼선전자는 2% 올라가 있고요. 하이식스는…… 다들 하이식스 공매도친 건 괜찮으신 겁니까? 저희만 넥라인에 걸려있는 건가요?”

“저희라고 뭐 다르겠습니까?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더 오르면 증거금을 더 넣어야 할 판입니다.”

“저희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사장님은 협회에서 빨리 결론 내리라고 저를 잡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결론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군요.”

다들 결론이란 게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서로 눈치를 살피며 총대를 멜 사람이 나오기를 바라는 눈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전무님.”

조금 전 남부증권 대표의 지시를 받고 메리트증권에 확인하러 갔던 비서가 남부증권 대표에게로 다가왔다.

“그래? 뭐라고 그러던가?”

남부증권 대표의 말에 비서는 잠시 자리에 있던 다른 증권사 대표들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남부증권 대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남부증권의 대표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남부증권 대표는 왜 갑자기 귓속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게는 표정을 짓다 점점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들은 뒤 비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게 좋은 것 같다고 말씀드려. 그리고 사장님께 나는 최대한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말도 빠트리지 말고.”

“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비서는 남부증권 대표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가만히 남부증권 대표와 비서의 대화를 듣던 사람들은 비서가 떠나자 남부증권 대표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지 물었다.

남부증권 대표는 자기를 향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별거 아닙니다. 본사에서 연락이 와서요. 사장님이 저의 의견을 물어보시기에 동의한다고 전한 것뿐입니다.”

“메리트증권 이야기가 아니고요?”

“어…… 아닙니다. 메리트증권 이야기는 아닙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남부증권 대표의 어색한 표정과 말투에 이상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남부증권 대표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강하게 쏘아 보냈다.

남부증권 대표는 이런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이 된 것인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에 중요한 일이 생겨 저는 먼저 가봐야겠습니다.”

“오늘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고 이대로 자리를 마치자는 말씀입니까?”

코리아투자증권 대표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남부증권 대표를 바라봤다.

나머지 대표들도 마찬가지였다.

호스트와 같은 역할을 하는 남부증권이 오늘 자리를 소집했건만 먼저 자리를 떠나겠다는 이야기에 증권사 대표들은 황당함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남부증권은 다른 증권사의 결정을 존중하니 충분히 의견을 나누시고 결정된 것을 알려주십시오. 확인한 뒤 이상이 없으면 저희도 따를 테니 말입니다.”

“확인한 뒤 이상하다고 판단되면 따르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볼 문제 같군요. 저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본사에서 정말 중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어서 들어가서 회의에 참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자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단 말입니까?”

남부증권의 이상한 태도에 사람들이 한마디씩을 던져댔다.

그러나 남부증권 대표는 그런 그들의 질문에 그저 고개만 숙여 인사할 뿐 제대로 된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부리나케 자리를 떠나기 바빴다.

자리에 있던 네 명은 떠난 남부증권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고 각자의 비서들을 불렀다.

“메리트증권 좀 확인해봐. 어떻게 된 건지 말이야.”

분명 메리트증권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 코리아투자증권 대표의 지시에 다른 증권사 대표들도 같은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메리트증권이 공매도를 청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자리에 있던 증권사 대표들은 너도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우리는 메리트증권에게 뒤통수를 맞고 남부증권에게 허리를 맞았군요. 각자도생하도록 합시다.”

“좋습니다. 함께 한다는 건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뵐 수 있게 되면 뵙도록 하지요. 그럼 저는 이만…….”

증권사 대표는 이곳에서 오랜 시간 이야기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에 간단하게 인사하고 바로 비서에게 지시했다.

“본사에 연락해서 그냥 다 던지라고 해.”

“다 말씀입니까? 오늘 협의는…….”

“협의는 무슨 협의? 서로 뒤통수치려고 안달 난 놈들만 모여있는데 무슨 협의가 있겠어? 사장님 말씀대로 협의 진행하기 전에 그냥 다 던졌어야 했어. 한시라도 급해. 다른 놈들보다 먼저 던져야 하니까 빨리 던지라고 말씀드려. 여차하면 시가에라도 던져야 한다고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지시를 내린 코리아투자증권의 대표는 고개를 돌려 멀어지는 다른 증권사 대표들을 바라봤다.

그들 또한 자기가 내린 지시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게 듣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협회는 끝났어.’

모래알보다 못한 결집력에 협회의 존재 의의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모두 힘을 모아 함께 헤쳐나가겠다는 이들이 지금은 서로 먼저 던지지 못해 안달이 난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모습이 코스피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코스피 지수가 브릿지랜드 등의 공매도 청산에 이어 기관들의 공매도 청산까지 들어오며 폭발적인 상승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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