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화 공모가 인상
해리스 서머스는 자기를 향한 한진영의 시선을 느끼고 먼저 입을 열었다.
“상장 작업에 이번 일은 영향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잔뜩 화가 나 있던 바비 힉스는 해리스 서머스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직 투자자 모집에 다른 반응이 나오고 있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군요.”
레이 젠슨은 바비 힉스와 달리 차분한 모습으로 해리스 서머스의 말에 반응했다.
그러나 내심 그도 속으로는 크게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알게 모르게 이번 세이지 쇼크로 인해 코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모가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신 거죠?”
코인 그라운드의 설립자이자 CEO인 타일러 버드가 해리스 서머스에게 물었다.
“네. 변함이 없습니다. 40달러에 진행해도 흥행에 실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흥행에 실패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성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공. 가능합니까?”
바비 힉스가 한진영을 향했던 몸을 돌려 해리스 서머스를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해리스 서머스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몰린 것이 불편했던 지 자세를 고쳐 앉고는 대답했다.
“성공…… 가능합니다.”
“아니. 가능하다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바비 힉스가 계속 해리스 서머스를 독촉하려 하자 레이 젠슨이 손을 들어 바비 힉스를 막았다.
그리고 바비 힉스를 대신해서 질문했다.
“이번 일과 기업공개는 전혀 무관한 게 확실합니까? 가능성을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지기에는 너무 많은 걸음을 왔으니 말입니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빨리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무슨 조치를 취하든 할 수가 있습니다.”
레이 젠슨의 말에 바비 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 젠슨의 말 대로 여기까지 온 마당에 일이 잘못되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몰랐다.
지난 일본의 돈을 빌려 대한민국에 공매도했을 때보다 더 큰 규모의 자금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의 모습에 해리스 서머스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한진영을 돌아봤다.
“서로 의견을 교환한 상태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었습니까?”
“아니니 우리가 이러는 것 아닙니까?”
바비 힉스가 발끈하여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한진영을 노려보듯이 쳐다봤다.
한진영은 그런 바비 힉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리스 서머스를 향해 어서 이야기해달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 계시는 분들께서 저를 믿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시원하게 말씀해주시지요. 지금 상황이 어떤지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해리스 서머스는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세이지에서는 알고 행동하신 것이었군요?”
“그럼요. 알고 행동했지요.”
바비 힉스는 서로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 후 소리쳤다.
“아니. 뭘 알고 말고 한답니까?”
해리스 서머스는 한진영을 향해 가볍게 웃고는 바비 힉스와 레이 젠슨 그리고 지금까지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는 타일러 버드를 번갈아 바라본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냥 성공 가능하다고만 말씀드린 겁니다.”
“그렇게 알 듯 말 듯 이야기하지 말고 알아듣게 말 좀 하세요.”
버럭 화를 내는 바비 힉스의 모습에 해리스 서머스는 살짝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지금의 상황에 조금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말이 길어졌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오히려 IPO 흥행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저희는 파악했습니다.”
“도움이 된다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레이 젠슨이 놀란 듯이 물었다.
해리스 서머스는 레이 젠슨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실히 도움이 됐습니다.”
“뭘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레이 젠슨의 물음에 해리스 서머스는 자세하게 이유를 밝혔다.
“코인 그라운드에 대한 공모 문의 전화가 1.5배, 기업공개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고객이 1.8배, 수요예측의 상단이 60달러에서 70달러 선까지 올라간 것을 보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확실히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이번 일 때문이 아니라 공모가를 올리는 것이 어떤지에 관해 이야기 나누기 위해 온 겁니다.”
해리스 서머스의 대답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돌아봤다.
조금 전 해리스 서머스와의 대화에서 분명 한진영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일을 벌였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자기로 쏠린 시선을 돌아본 후 코인 그라운드의 타일러 버드를 향해 이야기했다.
“공모가를 올리도록 하시죠. 어떻습니까? JM모건이 상단을 70달러로 생각하고 있으니 60달러로 진행하는 것이 말입니다.”
“60달러…….”
타일러 버드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런 타일러 버드를 대신해서 바비 힉스가 한진영과 해리스 서머스를 번갈아 바라보고 물었다.
“정말입니까? 60달러에 공모가를 설정해도 수요가 있을 것 같습니까?”
“가능합니다. 흥행몰이를 위해서는 조금 더 낮은 가격에 설정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 자금 유치를 위해서라면 60달러에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코인 그라운드에 관한 관심도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고요?”
바비 힉스는 한진영을 돌아봤다.
“설마 일부러 했다는 말이 바로 이런 상황이 일어날 걸 알고 일부러 했다는 뜻은 아니죠?”
“왜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방송에 나와 이야기한 겁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몇 번을 물으셔도 대답은 같습니다.”
믿기 어려운 말에 재차 물어본 바비 힉스였다.
한진영은 그런 바비힉스의 말에 못을 박아 버렸다.
바비 힉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레이 젠슨을 돌아봤다.
레이 젠슨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코인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가 코인 그라운드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것이었다.
한진영은 어이없어하는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 그리고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한 타일러 버드를 돌아본 뒤 이야기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JM모건에서 생각하는 상단을 넘긴 80달러에 공모받도록 하시죠.”
“80달러요?”
놀랄만한 한진영의 말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타일러 버드조차 정신을 차리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타일러 버드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80달러로 올려 기업공개를 해도 흥행에 성공할 겁니다.”
“너무 높은 가격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진영은 고개를 젓고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쓸어본 후 말했다.
“사람들이 코인과 코인 거래소를 나누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코인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코인 거래소는 코인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세이지가 원한 것이 그것이군요.”
“맞습니다. 저는 코인은 안 좋게 보지만 코인 거래소는 좋게 보니까요.”
코인과 세이지를 묶어서 생각하는 게 싫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걸 굳이 이야기하지 않은 한진영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 이야기는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말한 레이 젠슨을 향해 한진영은 계속 이야기했다.
“코인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거래소에는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거래소가 돈 버는 구조에 대해 분석을 하겠죠.”
사람들은 코인 그라운드의 타일러 버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이 코인 그라운드를 상장시키려는 이유가 바로 코인 그라운드의 미칠 듯한 영업이익률 때문이었다.
한진영은 타일러 버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코인 그라운드의 지난 분기 영업이익률이 몇 퍼센티지쯤 되죠?”
“83%입니다.”
코인 그라운드의 타일러 버드는 담담한 목소리로 한진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타일러 버드의 대답에 짧은 탄성을 질렀다.
모르고 있던 사실은 아니었지만 코인 그라운드의 CEO 입을 통해 이야기 들으니 다른 느낌으로 그들에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타일러 버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이번에 본사 이전을 하며 건물 구입과 내부공사에 쓰일 대금을 지불하고 나서 남은 돈이라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보통 90% 정도쯤 나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90%…….”
태연한 목소리의 타일러 버드였다.
그러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타일러 버드의 목소리에 소름이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천지에 영업이익률 90%를 찍는 업종이 있을 거로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타일러 버드의 대답에 만족한 듯이 이야기했다.
“코인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도대체 코인 거래소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영업이익률에 눈이 돌아가겠지요. 흥행은 성공할 겁니다. 80달러가 아니라 100달러, 120달러에 공모를 시작해도 사람들은 득달같이 달려들 겁니다. 성장성이 말도 안 되는 기업이니까요.”
한진영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너무 높은 가격에 공모했다가는 나중에 후폭풍에 휩쓸릴 수도 있으니 적당한 선에서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80달러입니다.”
“후폭풍이라니? 무슨 후폭풍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겁니까?”
한창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고 있던 바비 힉스는 후폭풍이라는 한진영의 말에 반응했다.
한진영은 그런 바비 힉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코인 가격이 폭락했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폭락이요? 폭락이라면…… 지금과 같은…….”
“아니요. 지금과 같은 10% 하락이 아닌 10,000달러 붕괴 나아가 5,000달러 붕괴 그 이하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멈춤 버튼을 누른 것처럼 한진영을 바라보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하던 사람 중 바비 힉스가 제일 먼저 한진영의 말에 반응했다.
“에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5,000달러 붕괴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바비 힉스가 그럴 일이 없다는 듯이 손과 고개를 저었다.
너무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라 화도 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레이 젠슨도 바비 힉스만큼은 아니지만 한진영의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인 듯 했다.
더는 듣기 싫다며 고개를 돌린 바비 힉스를 대신하여 이야기했다.
“나도 코인이 이대로 계속 갈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5,000달러 이하라니 그건 지난 시대로의 회귀를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이 상승이 나오기 전. 바로 그때로 회귀할 것을 대비해야 합니다.”
“코인에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시장 또한 안 좋게 보고 있는 것 이해합니다. 하지만 시장이 성숙한 뒤에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건 시장의 몰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건 성숙기에 돌입하지 못한 시장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고요. 코인 시장이 성숙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글쎄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은 다르니,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저는 그걸 남에게 강요하거나 반대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생각을 고치고 싶지 않으니까요.”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의 생각을 맞대는 것조차 하기 싫다며 벽을 쳐버린 한진영이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런 한진영의 모습에 모두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방송에 나와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 게 오히려 순화된 모습이었구나.’
한진영을 바라본 사람들은 모두 코인에 대한 부정적인 한진영의 모습이 오히려 순화되어 표현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진영은 놀란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이야기했다.
“뭐 코인에 대한 제 생각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 그건 접어두시고…… 코인 그라운드 이야기나 마저 하도록 하시죠.”
한진영의 말에 사람들은 지금 당장 급한 내용이 무엇임을 깨닫고 한진영과 코인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뒀다.
JM모건의 해리스 서머스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공모가 인상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모가가 올라간다면 자기들에게 떨어지는 이득도 많은 만큼 JM모건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코인 그라운드의 타일러 버드 또한 공모가 인상에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어쨌든 회사에 흘러 들어오는 자금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기에 타일러 버드도 공모가 인상에 동의했다.
해리스 서머스와 타일러 버드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찬성표를 던졌다.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공모가 인상을 두 사람이 제일 바라 마지않았기 때문이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동의하자 80달러로의 공모가 인상은 결정됐다.
“그럼 바로 공모가를 인상하여 다음 달 초에 공모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JM모건의 해리스 서머스는 결론을 내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돌아갔다.
해리스 서머스가 떠난 뒤 타일러 버드가 다음에 볼 것을 기약하며 떠났다.
레이 젠슨과 바비 힉스는 떠나는 타일러 버드를 배웅한 뒤 마지막으로 세이지를 나섰다.
그들은 떠나기 전 한진영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공모 전에 지분 투자를 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그들이 투자했던 코인 그라운드의 가격은 주당 10달러였다.
그것이 오늘 자리로 인해 80달러가 됐음에 그들은 감사 인사를 잊지 않고 한진영에게 건넨 것이었다.
한진영은 가볍게 그들의 감사 인사를 받은 뒤 떠나는 그들을 향해 손까지 흔들어 줬다.
“사장님. 아차. 죄송합니다. 회장님인데 실수했습니다.”
모두가 떠나는 것을 한진영의 곁에서 지켜보던 조지훈이 말실수했음을 깨닫고 급히 한진영을 향해 사과했다.
한진영은 흔들던 손을 내리고는 조지훈을 향해 웃었다.
“괜찮아. 나도 아직 어색하니까. 그런데 왜?”
조지훈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한진영을 향해 다시 한번 고개 숙이고는 한진영을 부른 이유를 이야기했다.
“회장님. 다름이 아니라…… 분명 코인 그라운드와의 관계도 이번에 바뀔 거라고 말씀하셨었는데 타일러 버드가 그대로 떠나버려서 말입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말없이 미소 지었다.
한진영은 최석영이 방송에 나온 이후 벌어질 상황에 대해 미리 조지훈에게 언질을 줬었다.
그래서 JM모건의 해리스 서머스도 이곳에 오게 한 것이었고, 코인 그라운드의 타일러 버드 또한 캘리포니아에서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귀찮게 따로따로 만나지 않고 일이 터진 김에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때 언질을 줬던 것 중의 하나가 코인 그라운드와의 관계가 변하게 될 테니 지분 정리를 해놓으라는 것이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차가 들어오는 곳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기 오네.”
조지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들어오는 차를 보고 한진영은 턱짓했다.
“이제 2라운드가 시작하니까 준비해.”
타일러 버드가 조금 전 타고 떠난 차가 다시 한진영의 세이지 인베스트먼트가 자리하고 있는 건물로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