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화 부탁해야 하는 사람
주말 동안 예상했던 대로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생한 폐렴 이야기는 시장을 압박했다.
지수는 급락했으며 금값은 급등하는 불안을 보인 것이었다.
다우와 S&P 500는 1% 중반대의 하락을 보였다.
나스닥은 2%가 넘는 하락을 보여 이번 상승장에서 가장 크게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상승 기간 동안 0.8% 이상의 하락을 보여주지 않던 것을 생각한다면 나스닥의 2%가 넘는 하락은 폭락이라고 부를 정도로 시장을 휘청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락의 이유는 예상대로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생한 폐렴 때문이었다.
세계보건기구인 WHO가 우한 폐렴을 국제적인 비상사태로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추가 감염자가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 우려를 키웠다.
폐렴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도 우려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이대로라면 WHO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 전에 중국에서 먼저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시장을 휘감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우려가 괜한 것이 아니라는 듯이 중국이 후베이성 주요 도시로 이어진 대중교통을 잇달아 제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베이징 자금성을 비롯한 관광지 봉쇄 또한 곧바로 이어졌다.
과거 사스라고 불린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때처럼 중국 경제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시장의 급락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런 우려도 바로 다음 날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악재를 뚫어낸 실적이 힘을 발휘한 것이었다.
홍대민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조지훈에게 말을 걸었다.
“저는 최근에 꿈을 꾸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지훈은 홍대민의 말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가만히 웃었다.
홍대민은 그런 조지훈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원유 선물이 55달러를 오늘 깨고 내려갔습니다. 반등다운 반등 한번 없이요.”
“꽤 많이 벌었겠네요.”
조지훈의 맞장구에 홍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 실장님도 아시겠지만, 우리가 들고 있는 원유선물 물량이 10만 계약입니다. 10만 계약. 인버스 ETF 같은 건 따지지 않고요.”
홍대민은 말을 하고 나서도 떨리던지 잠시 말을 멈춘 뒤 입을 열었다.
“65달러에 들어갔으니 10달러 이득을 본 겁니다. 10만 계약을…… 오늘까지 벌어들인 돈이 우리나라 돈으로 1조 2,000억이에요. 1조 2,000억.”
조지훈도 홍대민의 말에 황당했던지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홍대민은 조지훈이 자기가 예상했던 반응을 보이자 신이 났던지 조금 커진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나오기 전에 ETF까지 더한 수익이 2조 가까이 찍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지요.”
“아니. 이번 일을 어떻게 예측하신 겁니까? 우한 폐렴으로 시장이 하락하다 바로 회복한다는 것은…… 도대체가 모르겠습니다.”
“전략분석실 보고 듣지 않으셨습니까? 그 자리에 홍 사장님도 있지 않았습니까?”
“있었지요. 있다 뿐입니까? 저는 전략분석실의 김 실장님과 매일 통화를 하고 보고서를 받는 입장입니다.”
조지훈은 의문이 얼굴 가득 담겨 있는 홍대민을 향해 가볍게 말을 던지듯이 이야기했다.
“김준하 실장님이 조로 이야기를 하지 않던가요?”
“조로요?”
홍대민은 조로라는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지훈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전략분석실이 데이터를 얻었다는 곳이…….”
“자산운용사에서도 조로를 통해 얻은 정보를 쏠쏠히 사용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략분석실이라고 조로의 데이터를 이용하지 않을까요? 제가 듣기로는 조로에서 직접 데이터를 떠와서 분석한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데이터를요.”
조지훈의 말에 홍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데이터.”
조지훈의 말에 수긍한 홍대민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모든 의문이 풀렸다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전략분석실이 어디서 데이터를 얻나 궁금했는데…… 조로라면 이야기가 되겠네요. 조로의 데이터라면 전락분석실의 능력으로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었을 겁니다.”
조지훈은 납득한 홍대민의 모습에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레이 젠슨 고문님께서 궁금해하셔서 고문님에게만 특별히 알린 내용입니다. 그러니 홍 사장님께서도 내색하지 마세요. 고객들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동의하기는 했지만, 그 정보를 이용해서 가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결코 좋은 말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누구보다 제가 그 일은 제일 잘 아니까요. 조로 측 데이터를 받는 조건으로 매 달 인베스트먼트에 상당 금액의 커미션을 주고 있으니까요.”
홍대민은 자기도 조지훈이 걱정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알겠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그리고 모든 의문이 해결되어 그런 것인지 한결 밝아진 말투로 이야기했다.
“확실히 조로 데이터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기는 하지요. 참 그런 거 보면 회장님께서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조로를 인수하신 것도 그렇고 그 조로를 이용하여 이런 데이터를 만들어 내시는 것도 그렇고…… 먼 미래에 세상이 어떻게 움직일지 일찍 깨닫고 전략분석실이라는 특별한 곳을 만들어내신 것도 그렇고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더 대단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 더 있다는 말씀이세요?”
“네.”
조지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닫힌 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지금 저 안에 누가 있는 줄 아십니까?”
“안 그래도 궁금했습니다. 누가 있는 겁니까?”
“나 사장님과…… 오소마스크의 강 부장님이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오소마스크라면…….”
“지난 임원회의 때 마지막에 발표하신 분 있지 않습니까? 회장님 아버님의…….”
“아 그 오소마스크요?”
홍대민은 이제 생각이 났다는 듯이 무릎을 쳤다.
그리고 의아한 듯이 조지훈을 향해 나지막이 물었다.
“그때도 이상했는데 오소마스크가 왜 여기 온 겁니까? 뉴욕까지 말입니다.”
조지훈은 홍대민의 질문에 문을 바라본 채로 대답했다.
“지금 갑작스럽게 마스크가 동이 나고 있다고 합니다. 우한 폐렴을 진단하는 진단키트도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고요.”
“얼마나 잘 팔리기에 직접 여기까지 날라와 보고하는 겁니까?”
“잘 팔리는 거라면 여기에 오지 않았겠지요.”
“그러면…….”
홍대민은 잘 팔려서 온 게 아니라는 말에 의아한 듯이 물었다.
조지훈은 그런 홍대민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각국 정부에서 보유분을 자기네들에게 다 넘기라고 압박한다고 합니다. 수량 관계없이…… 가격도 상관없이…… 거기에 우리나라 정부도 다른 나라에 팔지 말고 우리나라에 먼저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하고 있고…… 기업 대 기업이 아니라 나라가 치고 들어와 요구하니 어쩌지를 못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나라가요?”
“중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물론이고 일본과 유럽까지…… 아주 난리라고 합니다.”
조지훈은 홍대민에게 지금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간단하게 말하고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봤다.
조지훈은 홍대민이 던졌던 전략분석실이 어떻게 이 상황을 예측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준비해놓은 상태였었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으면 이런 식으로 대답하면 된다고 한진영에게 언질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꿰맞추기식으로 레이 젠슨에게 한진영이 했던 방식을 사용했고, 그것만으로도 설명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 안에 자리한 오소마스크의 강출식과 관련된 이야기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기만 했다.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기 이미 몇 달 전 망해 쓰러져가는 고모부의 회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다른 망한 곳들의 기계를 인수하여 대규모 확장을 진행했다.
마스크 원단을 확보해 창고에 쌓아놓았으며, 주문받지 않았음에도 생산에 박차를 가해 재고를 확보했다.
마치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모두 해놓은 채 지금의 상황이 벌어지길 바라고 있는 모습 그 자체였다.
‘분명 미래에서 왔어. 그렇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아.’
조지훈은 한진영이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전제만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몇 달 만에 이런 극적인 상황이 연출된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저 망한 고모부의 회사를 한진영의 아버지가 인수했고, 한진영의 도움으로 우연히 마스크 사업을 해보려다가 지금 상황까지 왔다고 알리는 것을 비서실은 준비해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지훈은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넘어 뉴욕이 그리고 전 세계가 이제 한진영의 손안에서 논다는 것을…….
그리고 조지훈은 또 하나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홍 사장님.”
“네?”
조지훈과 마찬가지로 회장실 문을 바라보고 있던 홍대민은 조지훈의 부름에 시선을 조지훈에게로 돌렸다.
조지훈은 여전히 회장실 문을 바라본 채로 말했다.
“회장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신 것 같습니다.”
“대단한 분이시죠. 뉴욕에서도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고 계시니까요.”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습니다.”
“뭐가 말씀입니까?”
조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홍대민을 바라보고 말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진영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거야 지금도 테라의 최대 주주라는 것으로 주식시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회장님 이름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요. 그렇게 단순히 돈 많은 사람 말고요.”
“그럼 어떤 사람으로 알려진다는 말씀입니까?”
“부탁해야 하는 사람으로 알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탁해야 하는 사람이요?”
홍대민은 조지훈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조지훈은 홍대민을 향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저 문 안에서 이미 그것에 관한 이야기가 나누어질 거라 생각 들었기 때문이다.
***
한진영은 연신 땀을 훔치고 있는 오소마스크의 강출식 부장을 바라보고 웃었다.
“왜 그렇게 긴장하십니까?”
“저는……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한진영은 어쩔 줄 몰라 하는 강출식에게 티슈를 건넸다.
강출식은 한진영이 건넨 티슈로 손과 이마를 닦아냈다.
한진영은 강출식이 땀을 다 닦아낼 때까지 기다려준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장당 200원을 제시했고, 일본에선 500원을…… 그리고 미국에서는 1,000원을 제시했다는 말입니까?”
“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나창운이 조심스럽게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제안을 한 곳이 모두 대사관을 통해 각국 정부가 제안했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마스크를 제공하지 않은 곳에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습니다.”
나창운의 말에 강출식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들도 그 문제를 걱정하여 이곳에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소마스크의 진짜 주인이 한진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직원들은 없었다.
기계를 구입하고 원단을 확보하는 모든 일을 세이지 주도하에 한진영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진행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하자 제일 먼저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지금의 문제는 진짜 주인이 알고 처리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창운은 핵심을 꿰뚫어 보고 한진영에게 이야기했다.
“현재 진단키트 문제로 오션제로도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연락이 많이 왔나요?”
“많이 온 정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진단키트를 배정받기 위해 각국 정부가 위협을 보이기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위협이라…….”
한진영은 나창운의 말에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 나창운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유럽 쪽과 북미 쪽에서는 물량을 제공하지 않으면 수출을 막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출을 막겠다는 건 이번에 물량 주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는 협박이란 건가요?”
“네. 그리고 그 협박이…… 생각보다 강하게 들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소마스크의 강출식을 돌아본 나창운은 오소마스크도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오션제로에서 부탁받은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오션제로에서는 이대로 계속 버틸 수는 없다고 합니다. 어느 곳이 되었던 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요. 그러니 회장님께서 물건 출하를 막고 물량을 쌓아놓으라는 지시를 풀어주기 바란다고 저에게 이야기 잘해달라고 부탁해왔습니다.”
“어느 곳이 되었건 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이야기 같네요. 그렇습니까?”
오션제로와 마찬가지 입장에 처해 있는 오소마스크의 강출식을 향해 한진영이 질문했다.
강출식은 한진영의 질문에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소마스크 같이 작은 회사의 경우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압박입니다. 감히 얼굴 마주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고요.”
“대사관을 통해 이야기했는데도 또 다른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보면 확실히 작은 회사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인 같은 사람이 찾아오나 봅니다. 맞습니까?”
“네.”
강출식은 알고 있었느냐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올려다봤다.
한진영은 그런 강출식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제 눈에는 그것만이 이유가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혹시 들어오는 제안이 상당하니 그냥 이쯤에서 손 털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것 아닙니까?”
한진영이 강출식을 향해 묻자 강출식은 고개를 떨궜다.
그들은 상당한 금액을 제안했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한진영은 절대 물건을 마음대로 풀지 말 것을 지시해놓은 상태였다.
강출식을 비롯한 오소마스크 직원들은 압박에서 그만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과 함께 이렇게 큰돈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함께 공존한 상태였다.
강출식은 한진영의 말에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솔직히 그런 마음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개당 1,000원은 원가를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가격이기는 합니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처음 보는 가격입니다. 회장님께서 미리 재고를 만들어놓으라고 지시하셔서 창고에 물건들도 엄청나게 쌓여 있으니 그걸 1,000원에…… 아니. 500원에만 팔아도 회장님께서 투자하신 돈은 모두 회수할 수 있으실 겁니다.”
“회수라니요?”
한진영은 무슨 소리냐며 이야기했다.
“지금 보고 받기로는 창고에 쌓인 물량만 7,000만 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강출식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은 강출식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500원에 7,000만 장이라면 350억입니다. 제가 오소마스크에 350억이나 투자하지는 않았습니다.”
강출식의 고개는 더욱 깊게 숙였다.
한진영의 말을 듣는 순간 한진영이 물건을 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