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화 공포는 지난주가 아닌 바로 오늘이다
세이지의 최석영이 CNBC의 프라임 타임 방송에 나와 이야기한 것으로 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이어진 연방준비제도의 긴급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결과로 월요일 시장이 열리기 전까지 세이지는 뜨거운 감자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주말 저녁 연준은 위원들을 급히 소집하여 연방공개시장위원회 FOMC를 열었다.
FOMC 회의에서는 금리를 1% 인하하여 단번에 제로금리로 들어가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7,000억 달러의 양적완화(QE)와 시장에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초단기 자금으로 5,000억 달러를 시장에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시장의 예상대로 연준은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의 양대 카드였던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동원하는 대규모 부양책의 신호를 터트린 것이었다.
이는 코로나19 팬더믹 충격으로 패닉에 빠진 금융시장을 달래기 위한 조치였다.
미국 정부도 연준과 함께 발을 맞췄다.
코로나19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 등 취약 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8,000억 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추진한다는 발표가 나온 것이었다.
정부의 카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여당 상원의원들은 미국 성인에게 각각 1,000달러씩을 제공하는 직접적인 유동성 공급을 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연준과 정부의 대응책 발표에 시장은 술렁였다.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통해 지난 금요일의 상승이 가짜 상승이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부양책 발표가 아니었다.
-문제는 세이지의 이야기대로 부양책이 새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일요일 저녁 다가오는 월요일을 예상하는 자리에 나온 전문가는 부양책과 함께 세이지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는 지난 금융위기 때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금융위기에서 빠르게 살아났다는 것도 모두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이지의 말대로 이미 알고 있는 해결책이라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위기는 새로운 것인데 해결책이 새롭지 못하다면…… 세이지의 말대로 저점에 아직 도착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생각에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방송에 나온 다른 전문가들도 최석영의 말에 크게 흔들린 모습을 보였다.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기고문에서는 “금융위기 때의 정책은 금융위기를 위해 맞춰 디자인된 해결책이었다. 지금의 위기를 위해 디자인된 것이 아니다”라며 “팬더믹에 대응하는 새로운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세이지의 의견에 동조하는 주장이 월요일이 가까워질수록 힘을 받기 시작했다.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위기 속에서 금융위기 때만의 대책만으로 지금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사람들은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열렸다.
“시가가…… 7,392로 잡힙니다. -6.12% 하락 예상입니다.”
소식을 전한 이도 믿기지 않는 것인지 목소리가 떨려왔다.
“결국 시장은…… 자네의 손을 들어줬구먼.”
시가가 알려지자 레이 젠슨은 허탈한 듯이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한진영은 그런 레이 젠슨의 말에 가만히 웃어 보이고는 홍대민에게 급히 지시했다.
“우리 계획대로 갑니다.”
“네. 알겠습니다.”
큰 목소리로 시원하게 대답한 홍대민은 급히 각 팀에게 지시를 하달했다.
곁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최석영은 혀를 내두르며 한진영에게 이야기했다.
“서울에서 듣기는 했지만,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움직이는 금액도 서울에 있었을 때보다 달라졌으니까요.”
최석영은 확실히 달라진 위상에 혀를 내두르고는 트레이더들의 움직임을 구경했다.
-6%가 깨져서 시작한 시장은 하염없이 빠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세이지의 말이 맞았다는 것이 확인이 된 순간 위로 올라갈 이유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은 한차례의 반등도 허락하지 않았다.
“계좌들이 준비단계에 돌입했습니다.”
조지훈은 모니터링 화면에 보이는 세이지 자산운용사 산하의 각 계좌가 일제히 돌아갈 준비에 돌입한 것을 확인하고 이야기했다.
최석영은 그런 모습을 확인하고 한진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만으로는 버겁겠지?”
“버겁겠지요. 매도 총액이 이제 4,000억 달러에 달하니까요.”
“얼마?”
레이 젠슨은 놀란 듯이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한진영은 놀란 레이 젠슨의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시 대답했다.
“4,000억 달러요. 모르셨습니까?”
“그렇게나 많았나?”
“9,600 근처부터 잡아가던 계좌가 살이 붙고 또 붙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허허. 연준에서 알면 기절하겠구먼.”
“그러니 모르게 잘 해결해야죠.”
가만히 레이 젠슨과 한진영의 대화를 듣던 최석영은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다 처리를 할 수 있는 금액이기는 하냐?”
“다 처리해야죠. 처리하고 최소 3,000억 달러 정도는 매수를 해야 하니까요.”
레이 젠슨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황당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번에 잡는 매수포지션의 총액이 7,000억 달러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번에 연준이 양적완화에 얼마를 집행한다는지 이야기 들었지?”
“우리가 포지션 잡으려는 금액과 같다고 하더군요.”
한진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레이 젠슨은 그런 환진영의 모습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는……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불가능해 보이십니까?”
“7,000억 달러는…….”
레이 젠슨이 한진영의 말에 반박하려 할 때 급작스러운 시장의 변화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습니다. 뉴욕 3대 증시 모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습니다.”
7%가 넘게 하락하게 되면 나오는 레벨1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것이었다.
한진영은 모두 멈춰버린 화면을 바라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늘 서킷브레이커는 두 번 발동 될 겁니다.”
“뭐가 두 번 발동된다고? 서킷브레이커가 두 번 발동된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서킷 브레이커가 왜 두 번 발동 돼.”
최석영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레이 젠슨이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설마 레벨2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된다는 말인가?”
“13%가 먼 곳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두고 보십시오. 그리고 그런 하락이 나온다면 시장은 물 반 고기 반인 곳이 될 테니 우리 물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1987년 터진 블랙먼데이 사태 이후 시장은 안전판을 몇 개나 만들어뒀다.
그중 하나가 단계별 서킷브레이커였다.
-7%에서만 서킷브레이커를 걸어두는 것이 아니라 -13%가 됐을 때 한 번 더 서킷브레이커를 걸어 시장을 진정시키는 안전판을 만들어뒀다.
그리고 만약 과거 블랙먼데이 때처럼 -20% 이상 하락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당일 모든 거래를 모두 정지시키고 시장을 다음 날로 넘기는 제도를 마련해뒀다.
하한가 개념이 없는 뉴욕 거래소에서 단번에 -20% 이상의 충격은 주지 않겠다는 거래소의 조치였다.
이런 여러 가지 안전판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아직 레벨2의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적도 없었던 시장이었다.
레벨1의 서킷브레이커도 손에 꼽을 정도로 나왔던 것을 생각한다면 레벨2의 서킷브레이커는 문서상에만 존재하는 안전판으로 사람들은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늘 벌어진다고 한진영이 이야기했다.
“공포는 지난주에 있었던 게 아니라 바로 오늘 벌어지는 이게 공포일 겁니다.”
한진영의 말이 끝나자 15분간의 멈춤이 끝이 났다.
서킷브레이커가 풀리며 다시 시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15분간 머리를 식히는 시간을 가졌음에도 시장의 하락은 계속 이어졌다.
상승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듯이 시장은 꾸준히 우하향을 보이며 계속 빠져 내려왔다.
“7,000선을 하향 이탈했습니다.”
결국 나스닥이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했음에도 7,000선 이탈을 막지 못했다.
“바로 갑시다.”
한진영이 홍대민을 향해 손짓하자 홍대민이 각 팀에 신호를 줬다.
이미 7,000을 이탈하는 순간부터 계좌를 돌리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산운용사 밑의 트레이더들은 기계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매도 계좌를 털어가기 시작했다.
“쭉쭉 줄어듭니다.”
모니커링 화면에는 현재 세이지의 매도 포지션 계좌가 숫자와 그래프로 그려져 있었다.
“저렇게 청산을 해대는데도 지수 하락이 멈추지 않는 거야?”
분당 수십억 달러가 줄어들었음에도 나스닥지수의 하락 각도를 눕히는 역할을 하지도 못했다.
기스가 나지도 않는다는 표현이 들어맞을 정도로 세이지의 청산 행위는 지수의 하락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 것이었다.
“제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물 반 고기 반이라고 말입니다. 시장에서는 우리 매도 포지션 청산 물량보다 기준값 이하로 떨어져 보유했던 물량을 청산하려는 물량이 더 많이 튀어나올 겁니다. 우리는 그 물량을 받아 우리 포지션을 정리해나가면 됩니다. 보십시오. 오히려 각도가 더 가팔라지지 않았습니까?”
한진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장은 하락에 가속도를 붙여 나갔다.
“300억 달러 청산 마무리됐습니다.”
“오늘 다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날 최대한 많이 정리하는 게 좋겠지요. 나오는 물량을 단계별로 깔아서 다 정리되도록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리할 가격대가 계산이 끝난 상황입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오늘 안으로 1,500억 이상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자신 있는 홍대민의 목소리에 한진영은 계속 진행할 것을 이야기했고 홍대민은 그 지시를 받아 트레이더들을 더욱 독려했다.
세이지의 미칠듯한 포지션 정리에도 불구하고 한진영의 예상대로 청산 물량은 그보다 더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결국 시장은 장 막판 더는 버틸 수 없다는 모습으로 양손을 들어 기브업을 선언했다.
“레벨2 서킷브레이커가 들어갔습니다. -13% 하락입니다.”
한진영은 상황판을 바라보고 어떠냐는 얼굴로 레이 젠슨을 돌아봤다.
레이 젠슨은 이제 허탈한 표정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상황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선을 아득히 넘어서고 만 것이었다.
“회장님.”
레벨2 서킷브레이커로 또다시 15분간 멈춰 선 시장을 바라보고 있는 한진영을 향해 조지훈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CNBC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또 나와줄 수 없느냐고 묻는 전화야?”
“네.”
한진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최석영을 돌아봤다.
“어떠세요? 또 나가보시겠어요?”
“나야 좋지. 이런 상황에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게 나 같은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일 아니겠냐? 맡겨만 줘. 내가 또 기가 막히게 뒤집어놓고 올 테니까.”
한진영은 자신 있어 하는 최석영의 모습에 만족한 미소를 짓고는 조지훈에게 지시했다.
“CNBC에 이야기해서 방송에 나가겠다고 해. 대신 오늘 나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거절한다고 해. 괜히 하루 이틀 시간 지난 뒤에 나가는 건 뒷북 치는 것처럼 보이니 우리는 사양하겠다고 해.”
“알겠습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지시를 받아 바로 CNBC와 연락을 하기 위해 떠났다.
그 사이 지수는 레벨2 서킷브레이커에서 풀려 다시 거래가 재개됐다.
시장은 오늘은 상승이 없다는 듯이 거래가 재개되었음에도 횡보만 보였다.
그리고 그런 횡보 속에서 세이지는 대량의 물량을 청산할 수 있었다.
***
미국이 5년 만에 제로금리 시대를 열었지만, 코로나19 확산 공포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3,000포인트 하락이라는 자랑스럽지 못한 기록을 써 내리고 말았다.
하락폭으로는 며칠 만에 지난 1987년 ‘블랙 먼데이’ 사태 이후 최악이라는 -13%를 기록하며 마무리했다.
한때 -15%까지 하락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장 막판 그래도 회복하기는 했지만 폭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
S&P 500 지수는 11.97% 324포인트, 나스닥 지수는 970포인트 하락한 12.32% 하락한 6,904로 장을 마감했다.
6거래일 동안 3번의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최악의 기록을 달성했다.
CNBC에서는 “뉴스가 계속해서 나빠지고 가격 행동(price action)이 지난 세기 동안 우리가 몇 번밖에 보지 못했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상황을 장기적으로 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우리는 단지 경제보다 더 큰 문제를 다루고 있다”라며 한숨 섞인 이야기로 지금의 시장을 말했다.
미국 대통령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가 8월에 끝날 수 있다고 밝혔다.
종료 시점을 말함으로써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의 생각과 달리 시장이 움직였다.
시장은 오히려 8월까지 이어지는 사태에 미국이 경기 침체를 맞을 수도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시장은 코로나19 사태를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 대통령의 말대로 사태가 7, 8월까지 간다면 미국은 2분기, 3분기 경제성장률의 수축을 경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것은 경기침체에 돌입한다는 의미라고 시장이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일요일 연준이 1%의 금리인하와 7,000억 달러 규모의 유동성 폭탄을 터트렸지만, 시장이 오히려 폭락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공황은 바로 이런 것”이라며 평가했다.
연준이 무엇을 하든, 무엇을 할 수 있었든 상관없이 시장 거래 활동은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연준은 지난 3주 동안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탄약을 소비하여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직 지금의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감소하는 것이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시장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두운 터널 안에서 드러눕고 말았다.
-이틀 만에 또 뵙게 되었습니다.
앵커는 최석영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최석영은 처음 데스크에 앉았을 때보다는 한결 편안한 모습으로 인사를 받았다.
-앵커님은 물론이고 시청자 여러분들도 원하지 않으셨겠지만…… 또 나오게 됐습니다.
-아닙니다. 원치 않았다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앵커는 급히 최석영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최대한 그가 지을 수 있는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최석영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엄청 여유롭구먼.”
“자주 있었던 일이니까요.”
“자주 있었다고?”
한진영과 함께 방송을 지켜보던 레이 젠슨이 의외라는 듯한 얼굴로 한진영을 돌아보고 물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최 부사장님에게는 저런 방송은 익숙한 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미 많이 경험했던 일이니 최 부사장님에게는 새로울 게 없는 일이지요.”
대한민국에서 많이 경험했다는 말이 레이 젠슨에게는 이상하게 들렸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고?’
아무도 모르는 시장을 예측하는 모습.
이게 익숙하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을 레이 젠슨은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한진영이 이렇게 젊은 나이에 지금의 자리에 올라오게 된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가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