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7화 언제 어디서든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한진영은 노아 스미스와 함께 3개 층을 모두 덮고 있는 통유리창 앞에 선 채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진영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노아 스미스에게 한가지 사전작업을 하려 했다.
바로 노아 스미스의 무의식에 한 가지 생각을 주입할 수 있는 빈틈을 보았기 때문이다.
조금 뒤 협상 자리는 말 한마디에 조 단위 금액이 왔다 갔다 하는 자리였다.
그곳에 상대편으로 앉을 노아 스미스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을 주입할 수만 있다면 협상 자리는 세이지에 매우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 분명했다.
한진영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빈틈을 발견했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노아 스미스를 통유리창 앞으로 이끈 것이었다.
한진영은 압도적인 크기에 기가 질려버린 얼굴을 하는 노아 스미스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치 왕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어떻습니까? 느껴지십니까?”
“네. 느껴집니다. 정말 뉴욕이 제 발아래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노아 스미스는 진짜로 자기가 뉴욕의 왕이 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얼굴에 감격한 표정까지 지어 보였다.
한진영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를 이야기하기 전부터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는 노아 스미스를 보고 가만히 웃었다.
“제가 이곳을 얼마를 주고 샀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이야기만 들었지 이곳 가격이 얼마인지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비싸다는 것만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이렇게 대단한 곳이 얼마인지 궁금했던 노아 스미스였다.
노아 스미스는 먼저 이야기해주겠다는 한진영을 향해 얼굴을 살짝 내밀고 한진영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2억 5,000만 달러를 주고 샀습니다.”
“2억 5,000만 달러요?”
노아 스미스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되물었다.
비싸다는 것은 예상했지만 2억 5,000만 달러라는 가격은 예상 밖의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놀라기는 이릅니다.”
한진영의 웃고 있는 얼굴을 돌려 창밖을 내려다보고는 계속 이야기했다.
“2억 5,000만 달러는 제가 들어올 때의 가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격이 달라져 있습니다.”
노아 스미스는 한진영의 말에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설마 2억 5,000만 달러에서 더 올라갔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것도 제가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만에 가격이 올랐습니다.”
2억 5,000만 달러에서 가격이 더 올랐다는 것도 놀랍건만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올랐다는 이야기에 노아 스미스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런 큰 규모의 부동산은 가격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 이상으로 가격 또한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이 한진영의 집과 같은 곳이 가진 특징이었다.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부동산 시장이 급락할 때도 이런 류의 부동산은 꿈쩍도 하지 않았으며, 반대로 그 전에 부동산 폭등 시기에도 이런 류의 부동산은 대부분 오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른 가격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이었기에 주변 시세와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런 류의 부동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부동산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한진영의 펜트하우스가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만에 가격이 움직였다는 사실에 노아 스미스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한진영에게 물었다.
“단순히 1,000만이나 2,000만 달러가 올랐다면 저에게 이런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 달 만에 올라봤자 얼마나 올랐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이런 류의 부동산을 몇 번 거래해봐서 알지만, 가격은 하늘이 매겨준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종잡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도대체 얼마나 오른 겁니까?”
한진영은 손가락 다섯 개를 들어 올리고 말했다.
“5억 달러까지 올랐습니다.”
“5억 달러요?”
예상을 완전히 넘어서는 가격의 상승에 노아 스미스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진영은 너무 놀라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노아 스미스를 향해 말했다.
“그게 타이밍이라는 것이죠. 이곳을 누가 살까 하는 생각에 가격 변동이 일어나지 않던 곳에 주인이 나타나자 지켜만 보고 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뉴욕에서 가장 높은 곳, 모든 것을 내려다본다는 희소성이 가격을 밀어 올려버린 것이죠. 그래서 한 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이 집을 구매하고 싶다며 5억 달러를 제시한 곳까지 나타났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제가 노아 스미스 CEO께 아무 이유 없이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돌아가서 자세히 알아보시면 제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아시게 될 겁니다.”
노아 스미스는 한진영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허풍을 자기에게 떨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이제 확연히 보이는 노아 스미스의 빈틈 속에 준비해놨던 말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타이밍이라는 것이죠.”
“타이밍이요?”
“네. 저는 타이밍을 제대로 잡은 것이고, 반대로 이곳에 관심을 두고 있었으면서도 가격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타이밍을 놓친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노아 스미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은 차츰 자기 말에 젖어 드는 노아 스미스를 보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놓친 것만으로 끝이 났다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또 있는 건가요?”
“보통 이렇게 가지고 싶던 것을 놓치게 된다면 패닉 바잉을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지요.”
“그렇다면 5억까지 밀어 올린 게…….”
“2억 5,000만에도 주저하던 사람들이 5억을 주고라도 사겠다고 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지요. 아무리 희소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한진영은 은은한 미소와 함께 노아 스미스 곁으로 다가갔다.
“타이밍을 잡은 저는 이곳을 5억 달러에 팔아도 되고 팔지 않아도 되는 상황입니다. 이미 5억 달러가 공식적으로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이곳 가격은 이제 5억 달러가 되었으니까요. 은행에 이곳을 담보로 대출을 받게 되더라도 이곳의 기준값은 5억 달러가 된 겁니다.”
한진영은 통유리창 너머 발아래 자리한 뉴욕의 모습을 바라보던 노아 스미스를 안으로 안내했다.
“이곳을 보며 저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한진영의 질문에 안으로 따라 들어가며 노아 스미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는 뉴욕을 내려다보는 집보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집값이 2억 5,000만 달러가 올라버린 이야기가 가득 채워졌다.
한진영은 자기의 이야기가 노아 스미스의 머리에 잘 스며든 것을 느끼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노아 스미스에게 소파에 앉을 것을 권했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시지요. 오늘 저를 찾은 이유는 분명 투자 건 때문에 오신 것이겠죠?”
한진영의 말에 노아 스미스는 소파에 앉으며 대답했다.
“네. 일주일 전에 약속한 투자 건 때문에 회장님을 찾아왔습니다.”
“셧다운이 걸려서 오시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고생하셨습니다.”
“네? 아 네. 뭐…… 고생이랄 건 없었습니다.”
잠시 정신이 나간 표정을 짓던 노아 스미스는 머리를 급히 좌우로 흔들어 잡념을 털어내려 했다.
앞으로 하는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노아 스미스는 이야기에 집중하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노아 스미스가 털어내려는 잡념이 아직 노아 스미스의 머리에 달라붙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노아 스미스의 표정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노아 스미스를 향해 가볍게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거절하려고 오신 것은 아니실 테고…… 투자를 받기를 바라고 계신 겁니까?”
한진영은 테라의 주가가 보이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그곳에는 80달러 선을 무너뜨리고 지수의 하락과 함께 무너져 내린 테라의 주가가 쓰여 있었다.
***
시장이 힘이 빠져 투자자들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물량을 던져댔다.
심각하게 망가진 포트폴리오에 계속 들고 가는 것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펀드들도 재정비라는 핑계를 대며 물량을 정리해갔다.
시장에서는 매수를 하는 존재가 세이지만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두가 다 매도만을 바라본 채로 시장이 죽어가는 것을 기다리기만 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세이지도 더는 버티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세이지 주머니가 요술 주머니도 아니고 언젠가는 세이지 또한 매수를 할 수 있는 여력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세이지의 하루 매수 물량은 300억에서 400억 달한다고 했다.
서킷브레이커가 터진 날에는 하루 만에 700억 달러가 넘는 물량을 받아내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알려진 매수량은 실제보다 축소되어 알려진 게 아니냐고 시장참여자들은 생각했다.
통상 외부로 알려진 것보다 실제가 더 많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이지가 견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에 다들 동의했다.
세이지가 담을 수 있는 물량을 최대한으로 잡는다고 해도 3,000억 달러를 넘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이지가 모든 물량을 담아낸 뒤에도 시장이 빠져 내려간다면 세이지 또한 견디지 못하고 물량을 토해낼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때가 진정 시장이 저점이 잡히는 지점일 것으로 생각했다.
한 번에 세이지가 담아낸 물량 수천억 달러의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게 되면 그때 세이지가 뱉어낸 물량을 담아내며 시장의 하락을 마무리할 것을 시장 참여자들은 기대했다.
세이지 손절 물량을 받아낸 뒤 시장이 돌아 나간다.
시장 참여자들이 기대한 저점을 만드는 순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장참여자들의 기대보다 정부의 발표가 먼저였다.
의회에서 갑작스러운 부양책 합의 소식이 전해진 것이었다.
부양책은 알려진 대로 2조 달러 규모였다.
미국인 전체에 현금 1,200달러를 지급하는 방안과 기업과 지방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5,000억 달러,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3,670억 달러, 실업급여에 1,500억 달러 병원 지원에 1,300억 달러 등이 지원되는 부양책이었다.
야당이 주장을 어느 정도 수용한 부양책으로 정부의 빠른 통과 의지가 부양책 안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부양책에 의회 지도부는 합의 기대감을 높이는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여당의 발목을 항상 잡았던 하원의장이 몇 시간 내에 의회가 부양책 합의안에 도달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할 정도로 야당조차 지금의 부양책은 반대할 수가 없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졌다.
의회 합의의 기대감 속에서 미국 대통령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거들었다.
미국 대통령은 현재 각 주가 셧다운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지만 부활절 이전 셧다운이 풀리는 것은 물론이고 차질이 생긴 경제활동도 재개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내놓은 것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지만 시장은 ‘그렇게 만들 것이다’로 받아들였다.
미국 대통령의 말로 정부의 목표가 드러났음에 시장은 터널의 끝을 확인한 것으로 여겼다.
어둠만이 가득했던 터널에 끝이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 세계가 환호했다.
지난 금융위기에 비해 다른 것이 없다면서 시장을 무너뜨렸던 말이 이번에는 먹히지 않았다.
부양책이 통과되기 전까지 4개월이 걸렸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일주일 만에 의회 통과가 눈앞에 있는 상태였다.
규모도 2조 달러 이상으로 1조 5,000억 달러였던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대기업 위주라는 이야기도 통하지 않게 이번에는 가계와 소상공인을 직접 지원하는 방안도 부양책 안에 들어 있었다.
전례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이번 부양책은 파격적이었다.
다를 것이 없는 대책만 내놓고 있다는 평가를 무색하게 만들었고, 시장은 이런 모습에 빠르게 화답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11.37%, S&P 500과 나스닥 지수가 9.38%, 8.12%가 올랐다.
이런 상승률은 1933년 이래 최대치로 수치만을 놓고 봤을 때 역대 가장 큰 폭의 상승을 보여주었다.
이번 상승은 하락장에서 나온 지난 상승과는 모습이 조금은 달랐다.
지난 상승의 경우에는 상승의 이유가 확실하지 않았다.
기대감을 등에 업고 오른 것들로 기대감이 꺾였을 때 오른 폭 이상으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그러나 이번은 기대감이 아닌 실제 정부의 대책에 오른 상승이었다.
상승의 힘은 지난 몇 번의 하락장 속에서의 상승과 힘에서부터 다른 모습이었다.
***
“노아 스미스 CEO가 엄청 화가 나 있을 것 같은데요.”
비서실 직원이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그는 노아 스미스가 사인한 계약서를 손에 든 채로 마치 자기가 노아 스미스가 된 것처럼 인상을 쓴 얼굴로 말했다.
“며칠만 버텼다면 최소한 30억 달러는 지켰을 테니까요.”
옆에서 이야기 듣던 다른 직원이 처음 이야기한 직원의 말을 반박했다.
“그렇지 않지. 며칠만 버텼다면 아예 투자받지 못했겠지. 회장님과 약속한 건 그날까지였으니까. 차라리 할 거였으면 코인 그라운드처럼 처음 회장님이 제안한 그날 제안을 받아들였어야지. 자기 욕심이 그렇게 만든 거니 누굴 탓하겠어.”
“그렇긴 한데…… 그건 결과론적인 거고…… 그런 걸 다 알면 얼마나 일이 편하겠어. 그걸 모르니까 지금 이 상황이 벌어진 거지.”
그는 20%가 오른 테라 주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단숨에 90달러를 넘겼어. 내가 노아 스미스였다면 잠 못 잤을 거야. 저걸 80달러에 3억 주 매각 협상을 했으니 말이야. 10달러에 3억 주면 30억 달러야. 30억 달러. 잠깐만 숨 참고 버텼다면 30억 달러를 더 받아낼 수 있었을 텐데…….”
비서실 직원은 자기 손에 들려 있는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조지훈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 계약서를 들고 있는 직원을 향해 지시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어서 언론에 발표하기나 해. 지금은 그게 더 중요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계약서를 들고 있던 직원은 조지훈의 지시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때 곁에 있던 직원이 조지훈에게 물었다.
“계약서 내용 어디까지를 발표해야 하는 건가요?”
조지훈은 비서실 직원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조지훈 또한 한진영에게서 계약서를 건네받았을 때 한진영에게 같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잠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진영이 자기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직원에게 되돌려 줬다.
“외부에 발표는 언제든 우리가 테라에 되팔 수 있는 풋옵션이 걸려있다는 것까지만 발표해.”
“그럼 풋옵션 내용은…….”
“이야기하지 마.”
조지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상세 내용까지 발표할 이유는 없어. 그저 풋옵션이 있다는 것만 알리고 테라 또한 원할 시에 언제든 우리에게서 지분을 되찾을 수 있다는 옵션이 걸려 있다는 것만 알리면 돼. 그 외의 것들은 지금 알릴 필요가 없어.”
“네. 알겠습니다.”
조지훈 앞에 서 있던 두 직원은 조지훈의 지시에 고개 숙여 대답하고는 언론에 이번 계약 사실을 알리기 위해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