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화 주도권은 내가 쥐겠다
한진영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해외 스타가 내한 공연이라도 오는 줄 알겠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경제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회장님이 어떤 스타와도 비교가 안 될 겁니다.”
“내가 그들에게 스타라고? 왜?”
한진영이 조지훈의 말에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는 화면에서 고개를 돌렸다.
비행기 벽에 달린 커다란 화면에서는 대한민국에서 현재 방송되고 있는 뉴스화면이 나오는 중이었다.
그곳에서는 커다랗게 세이지 그룹의 한진영 회장이 한국에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한국에 돌아간다는 소식에 한국에 있는 모든 기업이 회장님과의 미팅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모든 기업이?”
“네. 삼선전자조차 회장님과 만나기를 바란다는 뜻을 비서실을 통해 전해왔습니다.”
“하하하. 삼선전자 그 양반이 날 보고 싶다고 해? 마지막에 만났을 때 썩 좋은 분위기로 헤어진 게 아닌데?”
한진영이 웃긴다는 듯이 팔걸이에 손을 걸치고 건너편에 앉아 있는 조지훈에게 물었다.
조지훈은 스튜어디스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 달라고 말한 뒤 한진영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언론에서는 회장님께서 돈을 푼다고 난리가 납니다.”
“내가?”
“아무래도 정부가 침체하여 있는 분위기를 회장님을 통해 반전시키고 싶어서 일부러 소식을 푼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쪽에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전한 것은 청와대가 유일하니까요.”
“침체하여 있는 분위기를 나를 통해 반전시키겠다?”
한진영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조지훈은 예상했던 대로 한진영의 반응이 나오자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청와대에 강력하게 항의할까요? 더는 회장님을 이용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됐어. 그만큼 상황이 안 좋다는 거겠지. 코로나19로 죽을 맛인 건 미국이나 대한민국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한진영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이해한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뭐라도 희망이 보인다면 실오라기 같은 끈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거야. 이해해.”
“그럼 어떻게 할까요?”
한진영은 등받이에 고개를 기댄 채로 조지훈을 돌아봤다.
“또 그렇다고 가만히 호구처럼 당할 수는 없겠지? 서준일보와 이야기해서 틀 한번 잘 짜봐. ‘투자는 하겠지만 선별하여서 할 계획이다. 어디에 투자할지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세이지 비서실에서 공식적으로 이야기 나오는 것 외에는 전부 거짓말이니 믿을 필요가 없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짜서 기사 내놓도록 해.”
한진영이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조지훈은 이야기의 내용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급히 앞에 놓인 태블릿에 한진영이 한 말들을 적어가며 물었다.
“주도권을 쥐실 생각이시군요?”
조지훈은 한진영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옆얼굴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주도권을 틀어쥐고 상황을 지켜보자고. 그리고 왔으니 아무런 소득 없이 갈 수는 없으니 재미도 좀 보도록 하고…….”
조지훈은 태블릿에 글을 적던 것을 멈추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럼 정말로 투자를 계획하고 계십니까?”
“흠…… 사실 투자를 꼭 할 생각은 없었는데…… 판이 깔렸으면 거기에 맞게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다만 시간이 부족하니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접어야지.”
“접는 한이 있어도 주도권은 확실하게 우리 쪽에서 잡자는 의미 시군요. 알겠습니다. 도착하는 대로 서준일보 측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한진영은 바로 움직이겠다는 조지훈의 말에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비행기 한쪽 편에 매우 불편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여자를 돌아보고 말했다.
“우선 돌아가거든 오랜만에 여자친구랑 좀 쉬고 그다음에 일을 하도록 해. 비행기 타고 먼 거리 가느라 힘이 들 테니 말이야.”
“아닙니다.”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펄쩍 뛰었다.
“이렇게 자리를 내어주신 것만으로 여자친구와 저는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굳이 여자친구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시지 않으셔도 됐었는데…… 죄송합니다. 괜한 말을 하는 바람에 회장님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조지훈이 여자친구가 있는 쪽을 돌아보고 한진영을 향해 고개 숙였다.
조지훈의 여자친구는 자기 때문에 조지훈이 한진영을 향해 혼이 난다고 생각한 것인지 자리에서 안절부절못했다.
한진영은 손을 들어 그런 조지훈의 여자친구를 안정시키고는 웃으며 말했다.
“조 실장이 그러면 여자친구 대한민국 땅 밟기 전에 쓰러지겠다. 여기엔 의사도 없는데 여자친구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농담 같은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얼른 여자친구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진영의 말대로 조지훈의 여자친구는 잿빛 얼굴을 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괜찮아. 이렇게 조 실장 여자친구 소개도 받고 좋지 뭐. 그리고 나도 가장 큰 궁금증을 풀어내서 시원하고 기분 좋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궁금증을 풀어내셨다고요?”
“그래. 나는 조 실장이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회장님. 설마 제가 회장님께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조지훈은 그럴 일이 없다며 큰소리로 부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진영은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얼굴로 조지훈과 여자친구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직접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건 마찬가지야.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아니. 조 실장은 몸이 두 개야? 도대체 언제 연애를 한 거야? 나 참…… 진짜 불가사의다 불가사의야.”
한진영은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고는 눈을 감았다.
“난 이제 쉴 테니까 조 실장은 여자친구랑 쉬도록 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가볍게 먹도록 하고…… 도착하려면 아직도 몇 시간 더 날아가야 할 테니까 편하게 있어. 그리고 도착하거든 깨워.”
한진영이 말을 마치고 몸을 돌리자 조지훈은 멀리서 떨어져 한진영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는 스튜어디스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비행기 안의 조명은 어두워졌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푹 쉴 수 있도록 담요를 정리해준 후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비행기는 조용히 하늘을 날아 아직 어둠에 갇혀있는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
한진영은 아직도 입이 나와 있는 이성우를 바라보고 귀찮은 듯이 말했다.
“들어올 거면 들어오고 안 들어올 거면 그냥 그대로 나가.”
얇은 카디건을 입고 문앞에 서 있던 한진영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이성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는 길 모르는 것 같으니까 내가 알려줄게. 왔던 대로 마당을 지나 죽~ 내려가다 보면 밖으로 나가는 문이 나올 거야. 그 문을 통해 밖에 나가면 이 사장님 차가 올 수 있는 길이 나올 테니 그곳에서 차를 불러 타고 돌아가면 돼. 알겠어?”
한진영이 말을 마치고 살짝 이성우의 등을 밀자 그제야 이성우의 입이 열렸다.
“너는 꼭 그래야겠냐?”
“야야. 소리치지 마. 침 튄다.”
한진영은 급히 마스크를 꺼내 입과 코를 가렸다.
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서로 조심해야지 너는 매너 없게…….”
이성우는 한진영의 모습에 정말로 섭섭함을 느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이성우의 모습을 보고 더는 장난치지 않고 이성우를 안으로 불렀다.
“알았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워서 장난친 거야. 들어와. 계속 문 열어놓고 있으면 미세먼지 들어오니까.”
한진영이 문앞에서 몸을 살짝 틀어 안에 들어올 것을 권하자 이성우는 여전히 섭섭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웃으며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널따란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광활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거실이 나왔다.
높다란 천정을 자랑하는 거실은 창을 통해 햇볕을 그대로 안에 비쳐 들어왔다.
이성우는 창문 쪽으로 걸어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봤다.
앞에 거칠 것이 없어 보이는 풍경 속의 창밖은 한남동에서도 가장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때 좋지?”
한진영은 하우스 키퍼에게 가벼운 음료를 내올 것을 부탁하고 이성우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살짝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여전히 울적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왜 이사하는 건데? 그냥 우리 윗집에 살아도 되잖아.”
이성우는 한진영이 새로 마련한 집이 불만인지 볼멘 목소리고 계속 투덜거렸다.
“너 온다고 해서 내가 얼마나 기대했는데? 그런데 이렇게 나한테 말도 없이 이사했어야 했냐?”
“이사가 아니라 집을 새로 산 거지. 그 집 그대로 있다. 팔고 이곳으로 온 거 아니야.”
“그래도 너 여기서 머문다는 거 아니냐? 그럼 이사지.”
“그럼 어떡하냐?”
한진영은 거실 한쪽에 거치되어 있는 티비 화면을 손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저 봐라. 저러고 있는데 그럼 거기에 들어가야겠냐?”
티비 화면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뉴스 속의 기자는 한진영과 이성우가 사는 아파트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카메라를 통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기자 뒤로 수많은 사람이 보이는 것이 흡사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너 나올 때 못 봤어?”
“봤지.”
“난리다 난리야. 왜들이래? 내가 무슨 K-POP 스타라도 되는 거야?”
“K-POP 스타는 아니지만, 그들 못지않게 유명한 건 맞으니까.”
한진영은 하우스 키퍼가 가지고 온 음료수를 이성우에게 건넸다.
이성우는 음료를 받아 들고는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럼 좀 조용해지면 다시 돌아올 거야?”
“글쎄? 돌아가기는 하겠지. 하지만 거기가 주가 되기보다는 여기가 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살면서 전에 아파트는 세컨하우스처럼 사용하겠다는 이야기야?”
“그렇지.”
한진영은 이성우를 끌고 거실 한쪽에 놓여 있는 소파로 향했다.
그리고 이성우에게 앉을 것을 권하고는 이성우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이곳을 산 이유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에 마련한 거니까. 주변 주택 3개를 다 매입해서 연결했거든. 그래서 한 곳은 부모님께서 사용하고 다른 한 곳은 내가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은 업무용과 하우스키퍼들 숙소로 사용할 생각이야.”
“들어오면서 봤다. 도대체 너는 돈이 얼마나 많길래 한남동의 대저택을 세 개를 동시에 사서 연결할 생각을 했냐? 집 한 채당 1,000평은 되지 않아? 입구부터 여기까지 들어오는 데 한참 걸렸어. 나는 뭐 경복궁에 온 줄 알았다니까.”
이성우가 과장을 섞어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한진영의 저택이 큰 것은 사실이었다.
각 집이 소유하고 있는 마당을 연결하고 담을 허물어 막혀 있는 곳을 뚫어내어 더 크게 느껴질 만도 했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살며시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세 곳의 대지를 합치면 3,000평이 좀 넘어. 그리고 담 허물어서 조금 더 넓어진 것도 있고…… 마침 나온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팔리지 않아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가격도…… 나름 합리적이고…….”
“합리적? 여기가 합리적이야? 한 채당 수백억이 넘어가는데?”
“뉴욕보다는 합리적이야.”
뉴욕보다 합리적이라는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한진영이 지금 사는 뉴욕의 집이 얼마인지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뭐…… 뉴욕이랑 비교하면 합리적으로 느껴질 만도 하겠다. 여기 집 세 개를 합쳐봐야 1,000억이 좀 넘는 수준일 테니까. 뉴욕에 네가 사는 집 반값도 안 되겠다.”
“나는 으리으리한 곳에서 살면서 부모님보고 낡은 주택에 계속 사시라고 하실 수도 없고…… 그리고 마당이 있는 집에서 평생 사셔서 아파트는 불편해하시기도 해서 겸사겸사 마련한 집이다. 엄마가 자그마한 텃밭에 상추 같은 식물 키우는 거 좋아하시거든.”
“여기는 비닐하우스를 설치해도 되겠다.”
이성우는 널따란 마당이 보이는 곳을 돌아보고 말했다.
“하긴 네가 돈이 있는데 무슨 상관이겠어. 내가 아쉽지.”
“뭘 그렇게까지 아쉬워해?”
“아쉽지 그럼 안 아쉽겠냐? 너 온다고 해서 너희 집에 놀러 가 같이 놀 생각부터 했는데…….”
“키 줄까? 제수씨하고 싸우면 우리 집 가서 좀 놀다가 내려갈래?”
“됐다. 너도 없는데 너희 집에 내가 왜 가냐?”
이성우는 됐다고 말한 뒤 소파에 몸을 뉘었다.
한진영은 포기했다는 듯이 널브러진 이성우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정 나랑 떨어지는 게 아쉬우면 옆에 집으로 이사와. 여기 옆에도 집 나왔더라.”
“그래? 얼마에 나왔는데?”
“한…… 300억? 200억? 정확히는 나도 기억이 안 나. 아마 조 실장이 알 거야.”
누워있던 이성우는 옆집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얼마 안 한다는 듯한 한진영의 이야기를 듣고 황당하다는 웃음을 보였다.
“너는 몇백억을 무슨 몇백 원 이야기하듯이 말한다. 야 내가 200억, 300억이 어디 있어?”
“왜 이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기풍그룹 후계자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 요새 너희 회사 재미 많이 보고 있잖아. 안 그래?”
“아니 뭐…… 그렇긴 한데…… 그게 어디 내 돈이냐? 우리 기풍 식구들과 함께 일군 돈이지?”
“너희 회사는 주식도 함께 공유하냐? 네가 가지고 있는 기풍 주식 일부만 떼어내도 300억 마련하는 건 일도 아니잖아.”
“어이구. 얘가 큰일 날 소리 한다. 기풍 주식 한 주라도 팔았다가는 난 아버지 손에 제 명에 못 살아.”
“그럼 내가 너희 주식 사줄까? 나라면 좀 더 안심되지 않겠어?”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예전이었다면 네가 사준다는 말에 얼씨구나 하고 팔았을 거다. 그런데 이제는 안 돼.”
“왜 안 된다는 거야?”
“그걸 몰라서 묻냐? 너희 회사가 보유한 우리 회사 지분이 몇 퍼센티지인 줄은 알아? 잘못하다가는 회사가 네 손에 넘어갈지도 몰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이성우를 향해 한진영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내가 언제 너희 회사 탐내더냐? 안 탐내. 그러니까 그런 걱정하지 마. 아무렴 내가 친구 회사를 쓱싹하겠냐?”
이성우는 한진영을 향해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그리고 한진영의 진심을 알아보겠다는 듯이 한진영의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하지만 그런다고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에이~”
이성우는 귀찮다는 듯이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을 풀고 다시 몸을 소파에 뉘었다.
그리고 높다란 천장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그래. 믿어야지. 이제 와서 안 믿으면 어쩔 거냐?”
“그만큼 너희 회사가 좋다는 뜻이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투자했던 만큼 말이야.”
“아버지께서 보자고 하신다.”
이성우는 고개만 살짝 틀어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너 바쁜 거 아는데 아버지가 잠깐만 시간 내달래. 괜찮지?”
“나 보고 싶어서 온 줄 알았더니 그 이야기 하러 온 거구먼. 그러면서 뭘 이사했다고 그렇게 뾰로통해 있어?”
“온 김에 이야기 전한 거야. 그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게 아니라.”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은 가볍게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성우의 곁으로 다가가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알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부탁하는 건 들어줘야지. 이야기해놓을게. 그러니 일어나.”
“일어나라고?”
이성우는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진영을 올려다봤다.
한진영은 눈으로 이유를 물어보는 이성우를 향해 손으로 밖을 가리켰다.
“나가자.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집에 있으면 뭐 해?”
“나가자고? 어디 가게?”
“너 조 실장 여자친구 봤냐?”
“지훈이가 여자친구가 있어?”
이성우의 눈에는 장난기가 어렸다.
“이게 미국에 일하러 간 줄 알았는데 연애하러 갔구먼. 가자. 지훈이 어디 있대?”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팔을 걷어붙이고 밖으로 나가며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한진영은 웃음을 참지 못한 얼굴로 이제 관심사가 완전히 다른 곳으로 향한 이성우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