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554화 (554/650)

554화 내 돈은 눈먼 돈이 아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지시를 정리한 뒤 얼마 전부터 쏟아지는 요청을 한진영과 한진영의 아버지 앞에 이야기했다.

“회장님. 이사장님과 정리해야 할 사항이 한가지 있습니다.”

“정리해야 할 사항? 그게 뭔데?”

조지훈이 슬쩍 한진영의 아버지를 바라보고는 한진영에게 이야기했다.

“얼마 전부터 여러 사회단체에서 기부금을 언제 줄 건지에 관한 문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돈을 언제 주느냐고 문의를 한다니? 누가?”

한진영이 미간을 찌푸리고 조지훈을 바라보자 한진영의 아버지가 대신 나섰다.

“그건 내가 설명하는 게 났겠구나. 아무래도 문의를 받은 사람이 나다 보니 조 실장보다 더 정확하게 알 테니 말이다.”

한진영의 아버지가 조지훈을 대신하여 이야기할 것을 말하자 한진영이 고개를 돌렸다.

한진영의 아버지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설명했다.

“재단이 설립되면 지원금을 언제, 어떻게, 얼마나 지원해줄 건지에 관한 문의가 여러 단체에서 들어오고 있다.”

“그러니까 그걸 왜 재단에 문의한다는 겁니까?”

“아무래도 기존에 다른 곳이 했던 방식이 있어서 문의하는 것 같다.”

“기존 다른 곳이 했던 방식이요?”

한진영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기 위해 이번에는 조지훈을 돌아보고 물었다.

“기존에 하던 방식이 뭔데?”

한진영의 질문이 조지훈에게로 향하자 조지훈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진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보통은 재단이 후원단체를 선정하여 후원단체에 기부금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정된 단체는 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아 운영한 뒤 운영 내역 등을 재단에 보고하는 형식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회단체에 돈을 주고 사회단체는 그 돈을 가지고 운영을 하고?”

“네. 그런 식이었습니다.”

한진영은 이제 이해가 됐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우리가 움직일 돈이 꽤 크니 대한민국에 있다는 사회단체들이 다 꼬이고 있는 모양이다. 금액도 많으니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타내려고 혈안일 테고…….”

한진영의 말에 한진영 아버지가 맞는다는 듯이 한숨 섞인 말을 토해냈다.

“전화기에 불이 나더구나.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이야기해오는 곳도 있고……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우리나라에 사회단체들이 이렇게 많은 줄 말이다. 장애인 단체부터 시작해서 노동단체에 성 소수자 그리고 동물 보호단체까지…… 세상에 이렇게 많은 단체가 다들 어떻게 유지하는 것인지…….”

“눈먼 돈 먹고 살아갔겠죠.”

한진영은 비웃음이 담긴 말을 내뱉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 돈을 눈먼 돈으로 생각했나 보네요. 돈이 상당하니 10억, 20억은 우습게 지원 받고 때에 따라서는 건물 하나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기다리다 못해 연락한 것일 테고요.”

“연락 온 곳이 모두 다 그럴 리야 있겠느냐? 개중에 몇몇이 나쁜 곳이겠지.”

“그렇겠지요. 모두가 나쁜 곳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굳이 나쁜 곳과 좋은 곳을 선별하여 돈을 지원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이번에는 한진영 아버지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아버지를 향해 가만히 웃어 보이고는 조지훈에게 지시했다.

“우리는 장학사업을 위주로 운영할 거라고 해. 학비가 없어 배움을 이어가지 못하는 아이들 혹은 돈이 없어 배를 곯는 아이들 위주로 사업을 진행할 거라고 이야기하고 운영 또한 우리가 직접 하겠다고 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재단이라고 하지 않았니?”

“돈 때문에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과 돈이 없어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진짜 사회적 약자지요.”

당연하다는 듯한 한진영의 말에 한진영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진영의 말이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도 지원해주겠다고 해. 각 학교에 세이지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고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충족한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함께 해외 유학의 기회 또한 제공하겠다고 해. 공부와 관련된 것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돈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일이 없게 만드는 것이 재단의 목표라고 정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재단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노동자나 동물 보호단체 같은 경우에는…… 그들이 왜 자기네들은 지원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할 텐데 말입니다.”

“그건 알 바 아니지. 내 돈 가지고 내가 기부하고 도움을 주겠다는 데 왜 도움을 강요하고 있어?”

한진영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디에 기부하고 어떻게 돈을 쓸지도 재단이 알아서 하고 재단이 모든 것을 정하겠다고 해.”

“우리가 다 정한다고?”

놀란 듯이 이야기한 아버지를 향해 한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쭙잖은 단체 끼지 말고 재단이 모든 걸 움직이도록 하죠. 그래야 날파리들이 들러붙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하기에는…… 일이 너무 많지 않겠니?”

“일이 많으면 직원을 많이 뽑으면 되죠.”

한진영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 재단이라고 이야기한 곳들 대부분이 기업들 딴 주머니 차던 곳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직원도 극소수로 뽑고 운영도 다른 단체에 맡겨 버린 거겠죠. 100억의 돈을 운영하는 곳이라면 1억을 사회단체에 기부해서 재단이 운영되는 것처럼 하고 99억은 오너 주머니에 들어가고…… 아마 지금까지 재단이라고 하는 곳이 대부분 이렇게 운영됐을 거예요.”

한진영의 말에 한진영의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수긍했다.

마치 맡긴 돈 달라는 듯이 전화하는 그들의 모습과 수천억을 움직이는 재단에 직원 10명 정도면 충분하다는 조언을 듣고 아들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한진영은 자기의 말을 이해한 듯한 아버지에게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니 사회단체라는 곳에 가는 1억이라는 돈을 신경이나 썼겠어요? 내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 99억에 신경 쓰느라 1억을 어떻게 쓰든 관심이 없었던 거죠. 사회단체들은 그럴 또 이용했을 테고요.”

“많이 빼먹었겠구나.”

한진영의 말에 아버지가 맞장구쳤다.

그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한진영의 어머니는 한진영의 말에 잠시 끼어들어 한진영에게 물었다.

“모든 곳이 다 그러지는 않을 것 아니니? 양심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곳도 있을 거 같은데?”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그곳을 선별하고 감시하여 돈을 잘 쓰는지 살필 이유가 없어요. 우리는 돈을 빼먹기 위해 재단을 설립한 게 아니니까요. 우리가 직접 직원을 채용하고, 직접 돈을 운용하면 돼요.”

“지원 대상은? 왜 학생들이니?”

“제가 그러고 싶으니까요.”

어머니의 질문에 한진영은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는 얼굴로 말했다.

“저는 학생, 아이들이 가장 불쌍해요. 다 큰 뒤에 일어난 일은 본인의 책임이지만 어린아이들에게 펼쳐진 상황은 자기 책임이 아니니까요. 아이들을 배 곯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재단을 만들고 사회사업을 하려는 거예요.”

한진영은 조지훈을 올려다보고 정리하는 말을 건넸다.

“굳이 다른 사람들 부를 필요 없고 우리끼리만 기념식 치를 거라고 이야기 해. 그리고 재단 운영은 직접 챙길 테니 쓸데없는 단체에서 기부해 달라고 이야기 오는 거 다 쳐내도록 해. 그리고 우리의 사회사업 방향은 조금 전 이야기한 대로 정리해서 발표하고…….”

“네. 알겠습니다.”

“내 돈 가지고 내가 하겠다는 거니까 이것저것 충고를 가장한 간섭은 사양하겠다고 말해. 그런데도 심하게 이야기하는 곳은 경고를 하든 고소를 하든 하고…… 서준일보에 이야기해서 언론 방향도 처음부터 잘 잡아가도록 조치해.”

한진영의 말에 한진영 아버지는 걱정되는 얼굴로 물었다.

“아직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는 데 언론까지 먼저 움직일 필요가 있겠니?”

“아니요. 처음에 자리를 잘 잡아 놓는 게 중요해요.”

한진영은 아버지의 말에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히 틈을 줄 필요 없어요. 돈이 한두 푼 걸린 일이 아니라서 분명히 이리저리 시어머니 흉내 내려는 놈들이 득실득실 나타날 거예요. 그런 놈들에게 휘둘리느니 아예 싹을 잘라놓는 게 좋죠.”

“그래. 뭐…… 그렇다면…… 알아서 하도록 해라.”

한진영 아버지는 더는 한진영의 말에 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아들이 이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아버지의 눈에는 모자라 보이는 구석이 많았지만 어쨌든 한진영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를 그의 아버지 또한 모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여전히 한진영이 모자라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얼추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진영 어머니는 조지훈을 불렀다.

“조 실장 잠시만 와봐요.”

한진영 어머니의 부름에 조지훈은 몸을 반쯤 숙이고 어머니가 앉아있는 소파 곁으로 다가갔다.

“부르셨습니까?”

한진영의 어머니는 조지훈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조지훈의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여자친구가 생겼다고요?”

조지훈은 당황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진영이한테 들었어요.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가씨라고요?”

“네.”

조지훈은 한진영의 눈치를 살폈다.

한진영의 어머니는 그런 조지훈의 손을 더욱 잡아당겨 자기를 보게 한 후 말했다.

“얼마나 잘했는지 몰라요. 할머니께서 좋아하시죠?”

“네. 좋아하시기는 하시는데…… 그걸 왜 물어보시는지…….”

“내가 다 기뻐서 그래요.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나가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여자친구까지 떡 하니 데리고 왔으니 말이에요. 그래.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에요?”

조지훈은 한진영 어머니의 말을 다 듣고 나서야 그녀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살짝 눈꼬리가 올라간 표정으로 웃음을 지은 채 한진영의 어머니 질문에 대답했다.

“아직 학생이라서 결혼은 아직 생각하지 않았고…… 대신 차차 함께 지내며 알아갈 생각입니다.”

“그래요. 그래. 잘 생각했어요. 그렇게 둘이 도우면서 지내면면 얼마나 좋아요. 안 그러니?”

어머니의 질문에 한진영은 가만히 웃기만 했다.

한진영도 어머니가 어떤 의미로 조지훈을 불러 이런 대화를 나누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의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는 모습이 더욱 탐탁지 않았는지 표정을 점점 굳혀가며 말했다.

“너는 어떻게 조 실장님보다 못하니?”

“저는 바쁘잖아요.”

“조 실장님은 뭐 한가해서 연애도 하고 그런 거겠니? 아무렴 네 뒷바라지를 여기 있는 조 실장님이 다 하는데 너보다 바쁘면 바쁘지 너보다 못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남들이 다 하는 그 연애 한번을 못하니?”

“아 거참.”

한진영 아버지가 한진영을 대신해서 나서려 했다.

그러나 한진영 아버지는 입을 열어 한진영을 두둔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세 글자만 내뱉었는데도 흘겨보는 어머니의 눈에 아버지는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잘 해보라는 듯이 한진영을 향해 눈짓하고는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눈빛만으로 아버지를 제압한 한진영 어머니는 한진영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재단이고 일이고 나는 다 모르겠으니까 아가씨 데려와.”

“아니. 데려오란다고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데려와요?”

“그건 난 모르겠고…….”

어머니는 한진영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이 손을 휘젓고 말했다.

“내가 이야기했지? 아빠하고 나는 노란 머리든 빨간 머리든 괜찮다. 어차피 네가 있는 곳이 코쟁이들이 사는 곳이니 그곳에서 조 실장님처럼 한국 사람을 만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 알고 있다. 네가 조 실장님보다 나은 게 없는데 그런 것까지 기대하면 안 되겠지.”

“엄마.”

“엄마고 할머니고 간에 알았으니까. 아가씨 데려와. 안 그러면 나 여기서 안 살아.”

한진영의 어머니는 널따란 거실을 손으로 휘저으며 말했다.

“이 넓은 집에서 뭐 하러 사니? 며느리도 없고 손주도 없이 말이야?”

“며느리하고 손주 있어도 여기서 같이 살지는 않아요.”

“그래도 저기 보이는 옆집에서는 살 것 아니니?”

한진영의 어머니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한진영의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가로막고 있는 담을 허물어서 한진영이 사용하는 집도 거실 창문을 통해 보이게 된 것이었다.

한진영의 어머니는 한진영이 머무는 집을 바라보고 말했다.

“너는 저기 저렇게 큰 집에서 혼자서 늙어갈 생각이니?”

“혼자기는요? 어머니, 아버지께서 계시잖아요.”

“우린 이제 곧 늙어 사라질 사람들이고…….”

한진영의 어머니는 한진영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말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지면 뭐하니? 혼자 늙어가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그러니…….”

한진영의 어머니는 이제 충분히 몰아붙였다고 생각했는지 주섬주섬 등 뒤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

“정 네가 못하겠다면 어쩌겠니. 엄마가 도와줘야지. 너 한국에 온 김에 여기 있는 아가씨들이나 만나봐. 엄마가 다 고르고 고른 아가씨들이라서 네가 선택만 하면 엄마는 무조건 마음에 든다. 아빠도 마음에 드신다고 하셨어. 안 그래요?”

“어? 어. 그랬지. 그래. 만나나 봐. 결혼하라는 것도 아니고 만나는 건데 그게 뭐 크게 어려운 일이겠니?”

한진영의 어머니가 옆구리를 찌르자 아버지가 급히 정신을 차리고 어머니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어머니는 그만하면 잘했다는 뜻으로 아버지의 팔을 토닥이고는 사진을 한진영 앞에 늘어놓았다.

“골라봐라. 아주 내가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아가씨들을 싹 다 긁어 모아 왔어. 이 중에 분명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을 거다. 그러니 골라서 만나보고…….”

조지훈을 불러 잘했다고 이야기하고 누구든 데리고 오라는 것이 바로 선 자리를 위한 빌드업이었다.

한진영은 계속 이곳에 있다가는 정말로 선 자리에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지훈에게 급히 눈치를 줬다.

그러자 조지훈이 한진영의 눈짓을 보고 바로 알아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회장님. 대한정유 회장님 만나 뵐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을 듣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자기 앞에 늘어놓은 사진에 눈길도 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시계를 확인했다.

“하이고 벌써 이렇게 됐네. 엄마 나머지 이야기는 다녀와서 이야기해요.”

“다녀와서 이야기하기는 무슨 이야기를 해? 어서 와서 마저 이야기 마무리해.”

“지금 대한정유 회장님과 만날 시간이 다 됐다고 하잖아요. 대한정유 회장님 기다리라고 할까요?”

“그래도…….”

“저 어디 안 가잖아요. 바로 저기 저 집에서 자니까 이따 저녁때 돌아와서 나머지 이야기해요.”

한진영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집을 가리켰다.

한진영의 어머니는 그 모습에 탐탁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예전하고 달리 바로 눈앞에 사니…… 그렇게 하자. 대신 이따가는 확실하게 결론을 내야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한진영은 어머니를 한번 꼭 안아주며 말했다.

“돌아오면 다시 이야기해요. 돌아와서요.”

한진영은 어머니에게 웃으며 약속하고는 아버지를 향해 눈인사를 건네고 부모님께서 사는 집을 나왔다.

조지훈은 마당을 지나며 인사를 해오는 하우스키퍼들을 지나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따가는 정말 결론을 내실 생각입니까?”

“집에 돌아오면 이야기를 하자고 했으니…… 집이 안 들어오려고.”

“집에 안 들어오신다고요? 그럼…… 호텔 방을 잡을까요?”

“호텔을 왜 잡아? 내가 집에 여기만 있어?”

“아~.”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그제야 원래 살던 곳을 떠올렸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내가 이곳에 부모님과 함께 지낼 집을 샀으면서도 기존에 있는 집을 왜 정리 안 한 줄 알아? 다~ 이런 때를 위해 미리 준비한 거야.”

한진영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타기 전에 조지훈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거기서 잘 테니까 준비해놓고 성우한테도 이야기해 놔. 내가 조카들 보고 싶어 한다고 말이야. 나는 결혼은 별로인데 아기들은 좋더라.”

한진영은 가볍게 웃고는 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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