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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557화 (557/650)

557화 돈을 너무 많이 번 게 죄가 된다

서울로 갈 때보다 뉴욕으로 돌아갈 때가 더 바빴던 한진영이었다.

한진영은 13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계속 뉴욕으로 돌아가 진행할 일을 살폈다.

“뉴욕 거래소에서는 뭐라고 했다고?”

“심의에 들어가 빠르면 석 달 안에 결론을 내려준다는 대답을 해왔습니다.”

“석 달? 흠…….”

한진영은 잠시 고개를 들어 날짜를 계산했다.

“석 달 후면 가을인데…… 시간이 너무 늦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혼잣말이 뜻하는 바를 깨닫고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조금 더 빨리 시간을 당겨달라고 할까요?”

“가능하겠어?”

한진영이 고개를 돌려 조지훈을 바라보자 조지훈의 무언가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이번에 새롭게 상장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담당자가 차남을 뉴욕에 있는 스톤하이스쿨에 입학시키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스톤하이스쿨의 설립자의 손자가 세이지 자산운용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바로 스톤하이스쿨의 설립자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이야기를 듣고는 가만히 웃었다.

조지훈은 말을 다 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한진영에게서 나오지 않자 잠시 생각하느라 치켜떴던 눈을 내려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니야. 뭐 그 정도 로비는 미국에서는 로비 축에도 들지 않으니까 상관없어. 그저 나는 이런 것까지 다 신경 쓰고 있는 조 실장이 신기할 뿐이야.”

칭찬이 담긴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머쓱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혹시 몰라 세이지 직원 중 특이 이력이나 집안, 그리고 친구와 같은 주요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에 관한 이력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필요한 부분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요.”

“잘했어. 아주 잘했어.”

한진영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습게도 로비가 금지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식으로 어려움을 해결하고는 하는데 로비가 합법인 미국에서는 안 써먹으면 바보인 거지. 그래. 그럼 스톤하이스쿨인지 뭔지 하고 이야기한 뒤 담당자하고 잘 엮어봐. 그래서…….”

한진영은 다시 시간을 머릿속으로 계산한 뒤 말했다.

“기왕이면 나스닥 상장 시점을 여름이 지나기 전으로 맞춰봐. 지금이 6월 초니까 8월까지로…….”

“무리가 없을 겁니다. 석 달을 이야기했는데 한 달로 줄이는 것도 아니라 약 보름 정도만 당기면 되는 일이니까요.”

조지훈은 그 정도면 무리가 없다는 듯이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한진영은 조지훈이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다음 주제로 이야기를 넘겼다.

“선밸리 일정은 나왔나?”

한진영의 질문에 조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기존 개최지에서 올해도 열린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습니다. 심지어 외부에는 올해 선밸리 컨퍼런스가 취소된다고 이야기되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없는 상태입니다.”

“30명이 모인다고?”

“네. 앨런 앤 컴퍼니 측에서 알려오기는 기존 300명의 모임에서 대폭 축소한 30명으로만 컨퍼런스를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한진영은 다리를 꼬고 앉아 스튜어디스가 건네는 샴페인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잠시 맛을 본 뒤 조지훈을 향해 물었다.

“300명도 아니라 30명에…… 기자들도 참석하지 않고 수행원도 최소한으로 해서 오라고 하지 않았나?”

“네. 둘 이상의 수행원을 동반해서 오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컨퍼런스가 돼?”

한진영은 다시 한번 샴페인을 마시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누굴 향해 이야기하고 누구와 의견을 나누라는 거야?”

“모이는 30명 만으로 가능하니까 한다는 것 아닐까요?”

한진영은 다 마신 샴페인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조지훈을 향해 더욱 몸을 틀고는 말했다.

“워낙에 유명한 행사이고 젠슨 고문님도 크게 기대하여 참가한다고는 했는데 도움이 될지는 의문인데 조 실장은 어떻게 생각해?”

“그래도 저는 그곳에 초대됐다는 것만으로 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큰 의의? 어떤 의의?”

한진영의 질문에 조지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300명이 모일 때도 초대된 사람 하나하나가 큰 화제를 불러 모으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선밸리에 초대됐다는 것만으로 세계적인 명사가 된 것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이무용 부회장만이 초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랬지.”

“그런데 이번에는 이무용 부회장도 초대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명단이 발표되지 않았다며?”

한진영이 어떻게 알았느냐는 얼굴로 조지훈에게 물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을 향해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궁금한 마음에 회장님께서 이무용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실 때 이무용 부회장의 수행 비서에게 확인했습니다. 7월 초의 이무용 부회장의 스케줄을 말입니다.”

“아~ 선밸리 시점에 이무용 부회장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는 말인가?”

“네.”

조지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무용 부회장의 수행 비서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협상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회장님과 또 만나 뵐 수 있으니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게 이무용 부회장의 7월 초 스케줄을 물었습니다. 자세히는 아니고 혹시 미국에 오실 일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하하하. 머리 잘 썼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던가?”

한진영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묻자 조지훈은 그때 상황을 되뇌며 대답했다.

“이무용 부회장는 7월 한 달간 유럽 일정이 잡혀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7월 초에는 독일 현지 법인장들은 물론이고 독일 차량회사들과의 릴레이 미팅이 잡혀있어 이무용 부회장이 움직이기는 힘들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무용 부회장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무용 부회장의 수행비서가 그 이야기를 했다는 말인가? 아직 계약에 대한 구두협상도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독일 자동차 회사들과 미팅을 잡아 놓았다고?”

한진영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NXF 인수 의지가 아주 불타올랐었구먼 그래.”

“그런 것으로 보였습니다. 수행비서는 이무용 부회장의 7월 초 스케줄을 이야기한 뒤 굳이 다음 만남 시간을 잡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결론이 나온다고?”

“네.”

한진영은 작정하고 자리에 온 이무용을 생각하고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았다.

아마 이무용은 한진영이 선택권을 주지 않고 삼선전자 주식만을 요구했어도 내어주었을지 모를 각오까지 하고 자리에 임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이무용은 NXF를 가지고 싶다는 의지가 대단한 것이었다.

‘하긴 그랬으니 50조를 제안한 뒤 NXF가 제안한 80조에도 고민을 했겠지.’

지난 시절 삼선전자와 NXF의 인수협상 과정을 떠올리고 한진영은 가만히 웃었다.

당시에도 삼선전자는 80조를 제안한 NXF를 인수할지에 관한 고민을 했었다.

물론 최종적으로 협상이 결렬되기는 했지만, 협상 자리만큼은 진지하게 임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였다.

그래서 한진영은 자신 있게 100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80조를 고민했던 삼선전자인데 한진영이 내민 조건까지 더해진 상황에서는 100조를 내놓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보다 나은 것도 한 가지 더 있었다.

“인수 의지가 강하다는 건 그만큼 회사를 키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는 뜻이니까 우리에게는 잘된 일이지. 기존에 삼선전자가 가지고 있던 노하우까지 더해지고 영업망까지 공유한다면 NXF는 날개를 단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100조에 팔아먹는 데 문제없겠어.”

삼선전자가 열심히 일해 NXF의 가치를 높이면 높일수록 세이지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한진영으로서는 마치 이무용이 자기를 위해 일을 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을 즐기듯이 생각했다.

즐거워하는 한진영과 달리 조지훈은 여전히 NXF의 기업가치가 어떻게 1년 만에 5배가 된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이해보다 마무리 지어야 할 이야기가 있기에 그 이야기를 하는 데 신경을 쏟았다.

“그래서 이무용 부회장은 선밸리 컨퍼런스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NXF 생각을 하던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다시 선밸리 쪽으로 생각을 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무용 부회장도 초대받지 못한 곳에 내가 초대됐다. 그리고 초대된 곳은 전세계에서 30명만이 모이는 곳이다.”

한진영은 혼잣말을 내뱉으며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렸다.

“유니크하기는 한데…… 과연 얼마나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

한진영은 말을 흐리고는 리모컨으로 비행기 안에 준비되어 있는 TV 화면을 틀었다.

그곳에서는 위성을 통해 받은 대한민국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세이지 재단은 공식적으로 출범되었습니다. 오소마스크의 매각대금 3,000억과 세이지와 한진영 회장이 각각 마련한 2,000억, 총 5,000억의 자산으로 마련된 세이지 재단은 앞으로 장학사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해 나갈 거라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세이지 재단의 공식 출범에 앞서 삼선전자의 NXF 인수협상 진행이 발표되었고 재무적 투자자로 세이지 인베스트먼트가 참여 했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인수대금은 한화로 약 20조에 해당하며 이는…….

방송에서는 한진영과 관련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세이지의 한진영이 대한민국에 들어와 약 50조에 가까운 투자를 진행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코로나19로 어려운 대한민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됐다는 말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했다.

한진영은 TV 화면에서 세이지를 칭찬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한 일을 가지고 칭찬까지 받으니 일거양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다.

***

“어쩐 일이십니까?”

공항에는 뜻밖에도 레이 젠슨 고문이 한진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 젠슨은 한진영을 향해 가볍게 인사하고는 공항에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피곤할 테지만 나와 함께 어디 좀 가세.”

“지금 말입니까?”

“그래.”

당황해 하는 한진영에게서 시선을 돌린 레이 젠슨은 조지훈을 바라보고 말했다.

“자네는 올 필요 없으니까 먼저 돌아가서 한 회장 짐 정리하도록 하게.”

“제가 갈 필요가 없다고요?”

조지훈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자기가 빠진 채로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을 레이 젠슨에게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조지훈은 레이 젠슨을 향해 자기의 뜻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한진영이 손을 들어 올려 이야기하려는 조지훈의 말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진영 또한 레이 젠슨과 같은 말을 조지훈에게 건넸다.

“고문님 말씀대로 조 실장은 먼저 돌아가도록 해. 그리고 서울에 계시는 부모님께 나 대신 잘 도착했다고 전화 좀 해줘. 나는 고문님과 볼일 좀 보고 오도록 할 테니까.”

“회장님.”

조지훈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화장실을 갈 때조차도 따라가 문 앞을 지키고 섰던 조지훈이었기에 한진영이 혼자 간다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조지훈을 향해 웃었다.

“내가 애도 아니고 뭘 그렇게 걱정해? 괜찮아.”

한진영은 다시 한번 괜찮다는 뜻을 조지훈에게 건네고 레이 젠슨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시죠.”

레이 젠슨은 잠시 조지훈과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본 뒤 몸을 돌렸다.

“가세.”

레이 젠슨이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한진영은 가볍게 조지훈의 등을 두드리고 레이 젠슨의 뒤를 따랐다.

조지훈은 더는 따라가겠다고 고집부리지 못하고 멀어져 가는 한진영의 등을 바라보기만 했다.

레이 젠슨은 전용기를 사용하는 VIP들을 위한 게이트를 빠져나와 건물 밖에 대기하고 있는 차에 올라탔다.

한진영은 레이 젠슨의 뒤를 이어 차에 올라탔고 두 사람이 모두 차에 타자 차는 바로 정해진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진영은 멀어져 가는 공항을 잠시 바라본 뒤 레이 젠슨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어디를 가는 겁니까?”

한진영이 고개를 돌려 레이 젠슨을 바라보자 레이 젠슨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적절한 시기에 잘 돌아왔네. 아마 하루 이틀 더 늦었다면 내가 먼저 들어오라고 연락했을지도 몰랐네.”

“들어오라고 연락을 하셨을 거라고요? 설마…….”

한진영은 레이 젠슨이 빨리 뉴욕으로 돌아오라는 연락이 올 만한 일을 떠올렸다.

레이 젠슨은 한진영을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니길 빌었던 일이 생각보다 빠르게 벌어졌다네.”

뉴욕을 떠나 대한민국에 들어가기 전에 레이 젠슨과 나누었던 대화를 한진영은 떠올렸다.

대한민국에서 최대한 빨리 돌아와 뉴욕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고 레이 젠슨이 이야기했었다.

바로 한진영의 등을 찌르겠다고 누군가가 덤벼들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제 등을 찌르려는 놈이 나타난 겁니까?”

날카로운 목소리의 한진영이었다.

하지만 날카로움 속에는 차분함이 담겨 있다는 것을 레이 젠슨은 알 수 있었다.

레이 젠슨은 눈에서 불꽃이 튀어 오르는 한진영을 슬쩍 바라보고 말했다.

“현재 증권거래 위원회가 세이지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소문이 있네.”

“SEC가요?”

“그래.”

레이 젠슨은 한진영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려 앉은 뒤 설명을 이어갔다.

“오랜만에 만났던 SEC의 전임 시장 규제국 국장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네. SEC가 세이지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고 말이야.”

“이유가 뭐라고 합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저희가 SEC가 휘두르는 철퇴를 맞을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한진영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의문만 더욱 쌓인다는 얼굴로 레이 젠슨을 향해 말했다.

“타국에서 온데다 피부색까지 다르다는 이유로 허무맹랑한 꼬투리에 발목이 잡힐까 걱정했던 건 고문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법이 정한 테두리 이상으로 빡빡하게 운용했습니다. 숨기는 것 없이 모든 것을 공개하려 노력했고요. 그뿐입니까? 뉴욕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지역사회에 내놓은 기부금만 해도 수억 달러에 달합니다. 대한민국에 세운 재단 못지않은데…… 도대체 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눈 이유가 무엇이랍니까?”

“너무 많은 돈을 단기간에 벌었어.”

“너무 많은 돈을 번 게 문제라는 겁니까?”

한진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유가 하찮다 못해 논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한진영과 달리 레이 젠슨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자네가 온 곳은 어떨지 모르지만…… 여기는 그래. 피부색이 다른 외부인이 들어와 돈을 너무 많이 버는 게 죄가 되는 곳이네.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는 말일세.”

한진영은 코웃음을 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레이 젠슨의 말을 반박할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월스트리트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전설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데 외국에서 찾아와 이제 2~3년 차에 불과한 자기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창문 밖을 바라봤다.

“뭐 그건 알겠습니다. 죄가 된다고 하니 그런 것이겠지요. 그건 그렇고 지금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제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공항에서 데리고 가시는 거라면 중요한 곳일 것 같은데 말입니다.”

“맞네. 중요한 곳에 가는 거네. 바로 그 죄를 해결해줄 사람에게 찾아가는 거네.”

“그 말도 안 되는 죄를 해결해주는 사람에게 간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누구입니까?”

“블랙문의 게리 챈슬러 명예회장에게 가는 길이네.”

“게리 챈슬러 명예회장에게 가신다고요?”

한진영은 SEC가 철퇴를 휘두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욱 크게 놀란 얼굴로 레이 젠슨을 바라봤다.

게리 챈슬러는 월스트리트에서 신으로까지 추앙받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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