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568화 (568/650)

568화 러시아 것이 필요하다

“세이지의 한진영 회장이 할 말이 있나 보군요. 좋습니다. 일어나서 이야기해 보시겠습니까?”

앨런 스팬서가 한진영에게 발언권을 줬다.

한진영은 앨런 스팬서의 허락이 떨어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리하고 있는 컨퍼런스의 멤버들을 돌아보고 입을 열었다.

“금리도 미뤄뒀고 양적 완화도 한동안 계속 열어놓기로 한 만큼 지수의 고점을 높게 잡았으면 합니다.”

“고점을 높게…… 생각해둔 지점이 있습니까?”

앨런 스팬서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궁금하다는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들도 지금보다 높은 자리를 생각하고 있기는 했지만, 도대체 어디를 이야기하려고 이렇게 일부러 자리에서 일어나서까지 높은 곳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잠시 뜸을 들여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끌어 올린 후 천천히 이야기했다.

“나스닥 기준으로 18,000, S&P500 기준으로 5,200까지 올렸으면 합니다.”

“얼마요?”

앨런 스팬서는 한진영의 말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여 다시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나스닥 기준 18,000, S&P500 기준 5,200입니다. 다우야 큰 의미가 없으니 다우지수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나스닥과 S&P500은 상장되어 있는 종목 구성이 조금 달라 동시에 고점을 찍지 못할 거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단지, 제가 원하는 추세는 지금보다 더욱 강력한 상방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회의장은 삽시간이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회의 내내 웃고 있던 게리 챈슬러도 말이 없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웃는 사람이라고는 한진영이 유일했다.

앨런 스팬서는 게리 챈슬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시선으로 게리 챈슬러를 바라본 것이었다.

“우리 미스터 한이 조금 욕심을 낸 것 같습니다.”

게리 챈슬러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진영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젊었을 때 말입니다.”

게리 챈슬러의 말에 굳었던 사람들의 표정에 웃음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게리 챈슬러는 자리의 분위기가 부드럽게 변한 것을 확인하고 한진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말했다.

“세이지가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나?”

게리 챈슬러의 질문에 한진영은 왜 지금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듯한 의아함이 담긴 얼굴로 대답했다.

“네.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의 상장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보십시오.”

게리 챈슬러는 한진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욕심이 날 만하지 않겠습니까?”

게리 챈슬러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한바탕 큰 웃음을 쏟아냈다.

상장이 예정된 만큼 강한 증시상황을 원할만하다는 이해가 된 것이었다.

게리 챈슬러는 한진영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 지수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 알지 않나? 나스닥은 10,000을 뚫지 못했고, S&P500도 3,300선에 자리하고 있어. 나스닥의 지난 저점을 6,600으로 본다면 18,000이라는 자리는 거의 3배에 달하는 지점이야. 지난 저점 대비 50%가 상승한 것이란 말일세. 그런데 자네가 말한 지점은…….”

게리 챈슬러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고는 한진영을 향해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거의 3배가 되는 지점이네. 3배야. 3배. 무슨 말인지 알겠나?”

게리 챈슬러는 한진영의 가슴에 손가락을 펴 보인 손을 얹었다.

“욕심이 나는 건 당연한데…… 우리 2배 선에서 만족하도록 하세나.”

“회장님.”

한진영은 불만이 많은 듯한 표정으로 게리 챈슬러를 바라봤다.

게리 챈슬러는 그런 한진영의 가슴에 얹은 손에 힘을 주어 누르며 설득했다.

“10,000선을 돌파하더라도 밀려날 거로 생각했던 시장의 예상에 비해 13,000선까지만 가도 그게 어디인가?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해. 지금부터도 30%가 더 오른다는 소리 아니겠나? 지수로 30%면 종목 당으로 놓고 봤을 때 200%, 300% 이상 오른다는 소리야. 게다가 우리가 집중적으로 키워나가려는 곳이 세이지와 연관이 많은 곳이니 이 정도에서 만족하게.”

게리 챈슬러의 낮고 힘 있는 목소리로 한진영에게만 들릴만한 말을 건넸다.

“여기는 자네 욕심을 채우려고 만든 자리가 아니야.”

게리 챈슬러는 한진영에게 협박에 가까운 말을 건네고는 가슴에 얹은 손으로 한진영을 두드렸다.

그리고 어깨에 손을 두르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우선 지수의 최종 목표치를 나스닥 기준으로 13,000 정도로 보는 것으로 하고…….”

게리 챈슬러는 빠르게 지수 목표치에 관한 것을 정리한 뒤 활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조금 전 쉬는 시간에 미스터 한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세이지에서 오션 제로를 내놓겠다고 하더군요.”

“오션 제로…….”

“오션 제로라면 진단키트를 만드는 곳 아닌가? 돈을 쓸어 담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곳을 정말 내놓는다는 말인가?”

오션 제로가 매물로 나왔다는 것에 사람들은 조금 전까지 나누던 이야기를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오션 제로는 그들에게도 군침 흘릴만한 매물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라고 했지?”

“100억 달러입니다.”

“그래. 100억 달러. 여러분. 오션 제로를 100억 달러에 내놓겠다고 하더군요. 최근 오션 제로의 분기 실적을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오션 제로의 시장 장악력과 현재 흘러가는 흐름까지…… 100억 달러가 결코 나쁜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세이지의 영업사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게리 챈슬러는 한진영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오션 제로를 어필했다.

“오션 제로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파슨 메디슨도 지분을 내놓는다고 하더군요.”

“파슨 메디슨까지 말입니까?”

질문 속에 욕심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만큼 세이지가 내놓는다는 매물의 매력이 상당했던 것이었다.

“그동안 미스터 한에게 내놓기 어려운 것들만 요구해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겁니다. 자자. 세이지가 매물로 내놓으려는 것이 리스트 속에 있으니 다들 그걸 보고 원하는 것을 가격을 맞추어 잘 가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게리 챈슬러가 제이슨 서튼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슨 서튼이 블랙문의 직원들을 향해 손짓했다.

블랙문 직원들은 준비하고 있었던 리스트를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미리 조지훈에게 전달받은 것으로 조금 전 블랙문이 사기로 한 것들을 제외한 리스트였다.

사람들은 리스트를 확인하고 서로 살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살폈다.

그들의 눈에 탐욕이 가득 찰 정도로 리스트에 자리한 회사들은 매력적인 것들이었다.

코로나19로 어느 때보다 제약과 의약에 관련된 산업이 각광을 받는 시점에 세이지가 바로 그런 것들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게리 챈슬러는 여전히 불만을 품은 것 같은 한진영을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 욕심대로 100억 달러에 오션 제로를 넘길 수 있게 생겼네. 그리고 내가 나머지 것들도 원하는 가격을 받게 해줄 테니까 그만 욕심 버리게.”

“그래도…… 아쉽습니다.”

“시장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쉬움의 연속이지. 그때 왜 베팅을 하지 못했을까 혹은 왜 빠져나가지 못했을 까라는 고민이 계속 이어지니까.”

게리 챈슬러는 리스트에 고개를 파묻듯이 수그리고 종목을 고르는 사람들을 잠시 살핀 뒤 한진영에게 말했다.

“어디라고 했지? 러시아?”

한진영은 게리 챈슬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러시아의 CDS가 필요합니다.”

“러시아의 CDS만 필요한가?”

“러시아만 있으면 종목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한진영은 아쉬움을 털어낸 듯한 표정을 짓고 게리 챈슬러에게 말했다.

“다른 것들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지금 러시아의 CDS는 구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럴 만해. 러시아 채권을 산다는 사람이 없으니 CDS도 만들지 않은 거지.”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CDS만을 묶어 새로운 상품을 구성하려는 것에 차질을 빚고 있었습니다.”

게리 챈슬러는 한진영으로 시선을 돌렸다.

“괜찮겠나? 지난 서브프라임 사태 때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는 상황이야. CDS만으로 상품을 묶는다고 했을 때 잘 팔릴지는 자신하기 어려운 시점 아닌가?”

“그래서 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건드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이거야말로 블루오션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아시다시피 유동성이 흘러 넘친다면 어딘가로든 돈이 가게 되어 있으니 파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

“하하하. 그래.”

게리 챈슬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젊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이지. 좋아. 우리가 만들어 주지.”

CDS와 같은 상품은 보장하는 곳에서 만들어야 상품으로서 거래가 가능한 것이었다.

그걸 한진영은 블랙문에 부탁한 것이었고 블랙문의 게리 챈슬러는 호탕한 모습으로 한진영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얼마나 필요한가?”

“우선…….”

한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계산한 뒤 게리 챈슬러를 향해 말했다.

“50억 달러 치가 필요합니다.”

“50억 달러면 상당한 물량이야. 150bp(100bp=1%)가 아니면 힘들 것 같은데?”

“100bp로 해주십시오. 지금 러시아의 CDS프리미엄 가격이 100bp 선에서 움직이지 않습니까?”

“하아~.”

게리 챈슬러는 잠시 곤란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CDS를 블랙문이 발행한다는 것은 블랙문이 CDS에 대해 보증을 해준다는 뜻이었다.

일이 잘못된다면 블랙문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만기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CDS 프리미엄 가격까지 얹은 값으로 추가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러시아는 UN 상임이사국이자 미국과 함께 한때 세계 중심에 섰던 나라였다.

지금도 러시아라고 한다면 미국의 반대편에 서서 세계를 끌어가는 나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과거 그들의 만행을 생각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모라토리엄이라도 발생하게 된다면 CDS 가격은 폭등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블랙문이 모든 책임을 멀어야 하는 것이었다.

‘모라토리엄이 또 일어나겠어?’

게리 챈슬러는 과거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세계정세와 지금은 상당히 다른 상황이었다.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을 때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한 직후에 벌어졌던 일이었다.

전년도 아시아에 불어 닥쳤던 외환위기 또한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었다.

20달러도 되지 않던 유가와 원자재들의 가격 폭락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을 부추겼다.

모든 상황이 러시아를 모라토리엄으로 밀어붙였던 당시였다.

러시아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지급유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시장은 그런 러시아의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러시아가 비록 미국과 양대 산맥으로 세계정세 속에 서 있을 때보다 힘이 많이 약해졌다지만 아직도 러시아는 러시아였다.

러시아의 힘은 여전히 강대했으며 외부 요인으로 러시아를 흔들만한 것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유가가 비록 마이너스 단위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그건 블랙문을 중심으로 한 멤버들의 결정에 의한 일시적인 가격 변화였다.

사우디를 비롯한 산유국들의 손을 봐준 이상 이제 남은 시간은 가격을 올리는 일만 남았다.

원자재도 유가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모든 게 러시아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러시아의 CSD 프리미엄 가격이 100bp에 자리하고 있다지만, 내려가면 내려가지 올라갈 일은 현재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저 50억 달러라는 물량이 부담되는 것일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최소 10억 달러에서 많으면 30~40억 달러까지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오히려 우리가 돈을 버는 일이기는 하지.’

게리 챈슬러는 아무리 봐도 블랙문에 유리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르는 척 어렵게 제안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연출했다.

“좋네. 어쩔 수 없지. 자네하고 함께 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해줘야 하는 일은 해줘야지. 다만…….”

게리 챈슬러는 한진영의 얼굴을 살피고는 아직도 리스트를 확인하는 사람들을 살피고 말했다.

“그래도 50억 달러는 부담이 되는 물량이야. 모라토리엄이라도 선언한다면 우리가 얼마를 물어줘야 할지 계산이 안 될 정도 아닌가?”

“모라토리엄을 또 선언하기야 하겠습니까? 처음이야 그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갈 만하다지만 두 번째부터는 러시아의 위상이 추락해버리는 일이 될 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모르는 거 아닌가?”

게리 챈슬러는 물러나지 않는 얼굴로 이야기하고는 리스트를 바라보고 말했다.

“우리도 위험부담을 안고 하는 일이니 자네도 더 내놔야 할 걸 세.”

“150bp는 저희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100bp도 프리미엄이 얹어진 가격인데 150bp는 저희가 계획했던 가격에 50%가 넘는 프리미엄이 얹어진 가격이 아닙니까? 그렇게 된다면 국가 간의 CDS를 묶어 상품으로 판매하려 한다는 계획 자체가 무너져 내립니다.”

“나도 알고 있네. 그렇게 된다면 세이지가 하려는 일 자체가 망가질 수도 있다는 걸 말일 세. 그래서 나도 그걸 달라고 할 생각은 아니네.”

“그럼…….”

“대신 저걸 주게.”

한진영은 게리 챈슬러가 가리킨 리스트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로 물었다.

“이미 원하시는 것들은 정리해서 가지고 가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그것들을 빼서 저기 리스트에 넣어서 다른 사람들은 블랙문이 먼저 알짜를 가지고 갔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인데…… 어떤 걸 더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저기에 없는 것 중 하나를 주게.”

“저기에 없는 것이요?”

“코인. 난 코인 그라운드를 가지고 싶네.”

“코인 그라운드…….”

한진영은 낮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괴롭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고개 숙인 한진영의 얼굴에는 미소가 옅게 지어지고 있음을 게리 챈슬러는 알지 못했다.

***

일주일간의 선밸리 일정이 끝나고 세이지의 전용기는 아이다호를 떠나 뉴욕으로 향했다.

“아무리 리조트가 고급이라고 해도 여기가 더 편하다.”

“이곳에서는 시달리는 사람이 없으셔서 더 그러실 겁니다.”

한진영이 전용기 안에서 느긋하게 누워 조지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잘 정리해서 진행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선밸리에서 세이지가 가장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찾아와 거래하고 싶다는 멤버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거래도 가장 많이 진행했다.

블랙문과 진행하기로 한 CDS와 코인 그라운드의 지분 거래를 제외하고도 약 30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이 세이지와 멤버 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조지훈은 거래내역을 톰슨과 정리한 후 한진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회장님.”

“어? 왜?”

발을 쭉 뻗은 채로 누워있던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비스듬히 누웠다.

조지훈은 한진영을 향해 조금 가까이 다가간 후 물었다.

“그런데 정리하고 보니 거래라고 하는 게 대부분 우리가 물건을 내놓고 저들이 사간 게 전부였습니다.”

조지훈은 아직도 정리하고 있는 톰슨 쪽을 슬쩍 돌아본 뒤 다시 말했다.

“이게 맞는 겁니까?”

한진영은 비스듬히 누운 채로 웃었다.

“그게 맞아.”

“제 생각에는…… 이번 회의가 우리를 나누어 먹는 자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맞아. 이번 회의의 주제 중 하나가 세이지를 토막 내 먹자는 거였으니까.”

“회장님!”

“그걸 알면서도 왜 당하고만 있었냐고 물어보고 싶지?”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표정을 보고 웃으며 비스듬히 누웠던 몸을 똑바로 바꿨다.

“알고 있는데 내가 당할 사람처럼 보여? 물건을 내놓은 건 우리뿐이고 가격 또한 시가 이상을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결국 우리가 가장 큰 승자가 된 거야. 그건…….”

“두고 보면 알게 되는 건가요?”

“하하하. 맞아. 바로 그거지.”

똑바로 누운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눈을 감았다.

뉴욕까지 가는 다섯 시간의 비행 동안만이라도 푹 쉬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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