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9화 세이지증권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나스닥이 11,000까지 돌파해내자 시장은 어디를 고점으로 잡아야 하는지 몰라 했다.
모두가 처음 느껴보는 세상에 감히 고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시장은 계속 우상향하여 올라갔다.
그리고 뒤를 이어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까지 하늘 높은 곳으로 치솟았다.
암호화폐까지 상승하는 것이 자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이 상승하는 기현상을 나타내는 중이었다.
시장은 유동성 파티를 벌이기 위한 초입 단계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이런 시장의 호황기를 이끈 것은 누가 뭐래도 세이지라고 할 수 있었다.
세이지는 몇 건의 대형 계약을 체결하며 본격적으로 시장 활성화에 실마리를 제공했다.
코인 그라운드의 지분을 블랙문에 615억 달러에 넘기는 초대형 계약을 이끌어내어 M&A 시장의 서막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뒤이어 채권 투자전문 회사인 루터 컴퍼니를 60억 달러에 인수하여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돈을 쓰는 것이 돈을 아끼는 길이라는 것을 시장에 알렸다.
세이지는 인수합병 분야에서만 두각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취업시장에도 본격적인 바람을 일으켰다.
코로나19로 인해 인력감축을 보이는 다른 곳과 달리 대규모 채용 계획을 발표하여 취업시장에 훈풍을 불러왔다.
세이지의 채용 계획 속에 채용 목표 인원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소문이 돌았다.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을 뽑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세이지의 채용규모는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가 시장에 돈 것이었다.
세이지의 인센티브는 이미 관련 업계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세이지가 설립된 이후 연봉보다 적은 인센티브를 받아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였다.
월스트리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세이지가 줬다는 인센티브와 자기의 연봉을 비교했고 세이지의 채용 계획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네도 지원해볼 거야?”
“나야 뭐…….”
장이 마감한 후 잠시 한숨을 돌리던 JM모건의 직원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왜 이래? 우리끼리? 나는 지원할 거야.”
“정말? 지원해볼 생각이야?”
“쉿. 조용히 해.”
손으로 놀란 동료의 입을 급히 막은 직원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이쪽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말했다.
“왜 놀라?”
“아니. 그냥.”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한 것이 머쓱했던지 잠시 뒤통수를 만지던 동료는 이직하겠다고 선언한 직원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로 지원할 생각이야?”
“당연하지.”
잠시 주변을 둘러본 JM모건의 직원은 낮은 목소리로 동료에게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일정 레벨에 자리한 사람은 그냥 다 뽑는다고 하더라. 우리 같은 경력직들은 프리패스고…….”
“일정 레벨을 다 뽑는다고? 다?”
“그래. 다 뽑는다고 그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이야. 우선 뽑고 안에서 정리한다고 하더라.”
지원자를 모두 다 뽑는다는 말에 이야기를 들은 동료의 눈동자도 흔들렸다.
세이지의 복지 및 연봉체계는 JM모건에 자리한 자기 귀에도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려 왔기 때문이다.
세이지에 지원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한 직원은 가슴을 크게 펴고 이야기했다.
“지금 들어갈 수 있을 때 들어가는 편이 좋아. 지금 한참 세이지가 확장 중이라 사람이 많이 필요해서 문턱이 낮아진 것 같으니까 말이야.”
“혹시 기존 직원과 신규 직원 간에 차별을 두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여기서? 뉴욕에서?”
세이지에 지원하려는 직원은 콧방귀를 꼈다.
“여기서 그랬다가는 회사 간판 내려야 해.”
“하긴 여기서 그랬다가는 난리가 나겠지.”
자기가 생각해도 우습다고 생각한 동료는 가만히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내 동생의 동창이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에 들어갔다고 해. 동생이 와서 한 말이 작년에 받은 인센티브만 20만 달러에 이번에 상장하면서 30만 달러의 주식을 받았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1년 만에 인센티브로만 50만 달러를 받았다고? 몇 년 차인데?”
세이지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한 직원이 동료를 향해 물었다.
동료는 몇 차례 눈을 끔뻑인 다음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작년 여름에 졸업하고 입사했다던데?”
“뭐? 그러니까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직원한테 인센티브로만 50만 달러를 풀었다고?”
“어.”
동료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이지에 가겠다는 직원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래?”
너무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에 동료가 놀란 얼굴로 물은 것이었다.
“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되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세이지에 찾아가 보려고.”
“세이지에? 세이지에 왜?”
자리를 정리하지도 않은 채 의자를 밀어 넣은 직원은 동료를 향해 말했다.
“왜긴 왜야? 입사하는 데 필요한 게 뭐가 있는지 물어보러 가야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 그는 여전히 앉아 있는 동료를 내려다봤다.
“안 가?”
“어?”
“여기에 계속 앉아 있을 거야?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직원에게 인센티브로 50만 달러를 주는 곳이 직원을 채용한다는 데 여기 계속 앉아 있을 생각이냔 말이야.”
“아~”
동료도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때를 놓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 그도 들었기 때문이다.
장 마감 후 이런 모습은 JM모건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도 있었으며 보면 또 어떠냐는 사람도 있었다.
주니어 급부터 시작하여 임원급까지 가리지 않고 모두 뽑는다는 세이지의 말에 JM모건의 이사 몇몇도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JM모건이 아니라 월스트리트 전체로 퍼져나갔다.
***
“지원 서류가 몇 장이나 왔다고?”
한진영은 오랜만에 한국에서 건너온 서준일보를 읽어가며 조지훈에게 질문을 던졌다.
조지훈은 책상 앞에 서서 가지고 온 것들을 내려다보고 보고했다.
“세이지 증권과 세이지 인베스트먼트, 세이지 자산운용 그리고 루터 컴퍼니와 같은 금융 관련 사업체에 지원한 지원자는 총 2만 명이었습니다. 이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 모두를 포함한 숫자입니다. 또한, 미래해운과 SOOM 그리고 조로 및 세이지 인베스트먼트 산하의 자회사들에 지원한 지원자들은 약 3만 명이 넘습니다.”
“좋아. 좋아.”
“회장님. 한 번에 5만 명이나 채용하는 건데 괜찮을까요?”
“괜찮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5만 명이 다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거기서 거르면 잘해야 2만에 1만 안팎이 예상 숫자 아니야?”
신문을 넘겨보던 한진영이 고개를 들어 조지훈을 바라봤다.
조지훈은 조수아에게 건네 들은 숫자와 정확히 같은 말을 하는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봤다.
한진영은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지금 아니면 사람 뽑는 거 어려워질 거야. 그러니까 너무 문턱 높여서 거르지 말라고 해.”
“임원 면접은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직접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됐어.”
한진영은 신문을 반으로 접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봐서 뭐 해? 어차피 홍 사장하고 나 사장이 데려다 쓸 사람인데 말이야. 루터 사장도 한국에서 돌아오면 알아서 정리하라고 해. 그런데 지금 아이는 좀 어떻대?”
한진영이 신규 채용보다 존 루터의 딸이 더 신경 쓰인다는 모습으로 조지훈에게 물었다.
조지훈은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려뜨리고 들어오기 전에 확인했던 이야기를 한진영에게 전했다.
“예후가 굉장히 좋다고 합니다. 존 루터 사장의 부인 되는 분도 생각보다 빠른 호전을 보이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들 일이 잘 진행되고 있구먼.”
한진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하고는 신문을 내려놓았다.
신문은 한쪽 면이 접힌 채로 책상에 놓였다.
“그런데 이건 무슨 소리야?”
한진영이 손가락으로 접혀 올려진 신문을 두드렸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가리킨 신문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지금 한창 한국에서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쓰여 있었다.
[대한민국 10대 주식 부자 순위]
“내가 1위라고?”
한진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하지 조지훈은 신문에 쓰여 있는 커다란 글씨들을 빠르게 읽었다.
[대한민국 주식 부자 1위를 차지한 것은 혜성처럼 등장한 세이지 그룹의 한진영 회장이다. 한 회장은 세이지증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세이지증권 산하에는 15개가 넘는 기업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 얼마 전 상장한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의 기업 가치를 기준으로 봤을 때 한진영 회장의 세이지증권 주식 가치는 2,00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240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다른 경쟁자들을 모두 더한 것보다 많은 것으로 한진영 회장의 순위는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조지훈은 쓰여있는 내용을 잠시 내려다본 뒤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한 눈으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제가 보기엔 다 맞는 말들인 것 같은데요?”
이상할 것이 없는 기사 내용에 조지훈은 갸우뚱했다.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서준일보는 한진영과 인연이 깊은 곳이었다.
서준일보 대주주의 남편과는 지금도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안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분이 깊었다.
예전부터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서준일보에게 도움을 받고 도움을 줬다.
그래서 세이지에 안 좋은 기사를 쓸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이번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한진영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자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제 한진영의 재산 규모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세계 수준에서 따져야 할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내가 1위는 아니지.”
한진영은 고개를 저었다.
“엄연히 따져서 세이지증권은 상장이 되어 있지 않아. 그래서 이건 추정일 뿐이지. 실제가 아니잖아.”
“회장님. 여기서는 세이지증권 이야기만 했는데 사실 테라 지분만 해도 수십 조는 가뿐히 넘지 않습니까? 그 외에 LZ신소재 지분 같은 건 따지지 않아도 테라 만으로도 1등이실 것 같은데…… 혹 테라 지분이 더해지지 않아 기분이 언짢으셔서 그러십니까? 제가 서준 일보에 연락해서 정정기사를 내라고 할까요? 사실은 재산이 더 많다고 말입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오히려 재산을 낮춰 이야기한 것에 기분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말을 건넸다.
그러나 한진영의 대답은 조지훈의 생각과 다르게 나왔다.
“그래. 테라 이야기를 했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세이지증권의 가치를 추정하여 계산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내 재산을 이야기하면 안 되지.”
“그럼 기분이 언짢으신 게…….”
“사실에 따라서 기사를 써야지. 추정은 뭐야? 추정이…….”
한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 말했다.
“2,000억 달러라니? 세이지증권이 온전히 내 것도 아닌데 세이지증권이 보유한 주식을 다 내 재산으로 집어넣는 건 사람들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마음대로 쓴 기사밖에 되지 않아.”
한진영은 탐탁지 않은 눈으로 기사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정정 기사까지 요구하는 건 조금 보기 이상하니까 앞으로 이런 식의 기사 내보낼 때 내 이름은 빼라고 해. 아니면 정 넣고 싶다면 추정치와 추정 근거들을 써서 사람들이 보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해. 세이지증권이 다 내 거라니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이상한 듯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회장님. 세이지증권이 회장님 거라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이 사람도 큰일 날 소리 하네.”
한진영은 조심하라는 말투로 말했다.
“어디 가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마. 다른 사람도 아니라 조 실장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야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진짜로 생각될 테니까.”
“진짜가…… 아닙니까?”
“당연히 아니지.”
한진영은 두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세이지증권에 지분이 가장 많은 건 나지만, 다른 직원한테도 지분이 다 있어. 세이지증권은 나를 포함한 임직원 모두의 것이야.”
“지분이요? 공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세이지증권을 여기까지 키워낸 것에 대한 공로 말입니다.”
조지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일 뿐이지 실제로 지분은 회장님께서 100% 가지고 계신 것 아닙니까?”
“지금이야 지분 100%가 내 것이지.”
“지금까지요?”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 속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그럼 앞으로는 아니라는 이야기십니까?”
“회사를 키우는 데 힘을 쓴 사람들에게 나눠줄 생각이야. 물론 그렇다고 내 지위를 빼앗겨서는 안 되니까 51% 이상의 지분은 어떻게든 확보하고 있어야지. 하지만 나머지는 직원들에게 나눠줄 생각이야. 세이지 인베스트먼트 때처럼 말이야.”
“그걸…… 나눠주신다고요? 지분 49%를 모두 말입니까?”
조지훈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처럼 이야기했다.
“다 줄 수는 없지.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나? 나는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돈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내 돈을 아무렇게나 뿌리겠어?”
한진영은 큰일 날 소리 한다면서 펄쩍 뛴 뒤 말했다.
“대략 20%쯤? 그보다 조금 안 될 수도 있지만, 최대한 20% 정도를 맞춰볼 생각이야. 그걸 회사 입사 이후 회사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나눠줄 생각이야. 아무렇게나 일괄적으로 나눈다면 그것만큼 무성의한 게 없으니까. 그리고 분명 회사에 기여한 공로가 다들 다른 데 일괄적으로 얘도 1,000주 쟤도 1,000주 이렇게 나눠줄 수는 없잖아. 그래서 업무평가를 다각도로 진행한 거고…….”
조지훈은 세이지증권 직원들의 업무평가가 타사의 평가보다 더욱 강하고 가혹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내부에서는 반발이 이따금 나오기도 했지만, 업무평가 이후 나오는 인센티브에 불만은 금방 잠잠해지고는 했다.
조지훈은 이런 평가가 다 이유가 있었단 것을 떠올리고 놀랐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누가 뭐라고 그래도 조 실장이 공신 순위 최상단에 올라가 있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걱정하지 마.”
“걱정이라니요? 아닙니다.”
조지훈은 급히 손을 젓고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회장님. 그 지분을 그렇게 나눠주셔도 괜찮으십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내가 이야기했지.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이 어디서 나오는지 말이야. 주인의식을 만들어주는데 이만한 것도 없어. 그리고 나는 그 20% 없어도 충분한 사람이니까 괜찮아.”
한진영은 손가락으로 서준일보를 두드렸다.
“여기 서준일보에서 말하는 거에 따르면 그렇게 지분을 나누고 나서도 내 재산이 170조쯤 된다는 거 아니야? 이래도 대한민국 1위에는 문제가 없으니까.”
한진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조지훈은 돈을 좋아한다고 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