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610화 (610/650)

610화 문제가 안 생기면 내가 곤란하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물끄러미 바라보고 말했다.

“수에즈 운하 때문에 하락했다고 생각해?”

“그게 아닙니까? 분명 방송에서는 그것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원유 가격이 상승해서 말입니다.”

“그건 핑계지.”

“핑계라고요?”

한진영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지훈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린 정도밖에 되지 않아.”

“하지만…….”

“수에즈 운하 사건으로 원유 가격이 오르면서 에너지 관련주들의 주가가 솟구쳤어. 물류 운송이 어려워지면서 운송비가 오르자 물류 회사들의 주가도 함께 오르고 있고…… 경기순환 관련주가 탄력을 받아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야. 이런 상황에서 수에즈 운하 때문에 하락했다? 그건 핑계지. 반대로 상승장이었어 봐. 에너지주와 운송 관련주의 상승을 이유로 시장이 올랐다고 할 게 분명해.”

한진영은 화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마침 그럴듯하게 들릴만한 이야기가 생겨서 가져다 붙인 것에 불과해. 큰 의미를 둘 필요 없어. 오히려 그것보다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용인한 듯한 모습이 오히려 더 시장을 압박하는 데 주된 요인이 되었을 거야.”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도 한진영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조지훈이 건넨 질문인 ‘수에즈 운하에서 사고가 날 줄 알았냐?’에 대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지훈은 한진영의 대답을 듣고 확신하게 됐다.

‘알고 있었어.’

어떻게 알았는지는 조지훈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진영은 수에즈 운하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가져다 붙인 것에 불과하다지만 그것에 의해 시장이 하락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매수 포지션 잡는 게 끝날 때까지 센터에 식사를 공급해주도록 해. 도시락 종류로 간단하게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말이야.”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도시락이요?”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너무 바빠 밥도 못 먹게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한진영은 슬쩍 조지훈을 돌아보고 말했다.

“먹는 건 중요한 일이니까 비서실에서 직접 마련해서 트레이딩 센터로 공급하도록 해. 돈 아끼지 말고 좋은 재료에 좋은 음식으로 만들어서 공급해. 여기는 한국하고 달라서 고기 안 먹는 사람도 있고, 알레르기 있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다 조사해서 각 직원에게 맞춤 도시락을 공급하도록 해.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보통은 홍대민이나 최수찬에게 직원들 식사를 잘 챙기라는 말 몇 마디만 해도 충분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한진영이 조지훈에게 직접 지시해서 회장 비서실을 통해 식사를 챙기려 했다.

그만큼 한진영이 이번 일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진영은 조지훈이 자기 말을 알아들은 것을 확인하고 화면으로 시선을 다시 돌렸다.

그곳에서는 투자 전문가가 나와 현재 시장을 분석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장은 점점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오셔서 시장 상황이 좋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진행자의 질문에 투자 전문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급히 지우고는 태연한 목소리로 진행자를 향해 말했다.

-그건 당시 상황에서 판단하여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인가요?

-맞습니다.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투자 전문가는 진행자의 질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이야기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수에즈 운하 사건을 아실 겁니다.

-네.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 아닙니까? 듣기로는 아직도 배를 빼내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게 시장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수에즈 운하 사건으로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운송비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일이 복합적으로 증시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장이 어디까지 빠질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진행자의 말에 깊은 고민을 하는 듯한 투자 전문가는 한참 동안 생각한 뒤 대답했다.

-아무래도 13,000을 깬 지금 12,000까지는 열어둬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12,000이라면 지난 하락의 저점인데요. 이번에도 12,000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건…….

투자 전문가는 어두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어렵습니다.

-어렵다고요? 그럼 깬다는 말씀입니까?

-깬다 아니다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방송을 보시는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드리면 열린다’를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두드리면 열린다? 12,000을 두드리고 있으니…… 열린다?

진행자는 놀란 얼굴로 투자 전문가를 바라봤다.

12,000의 하향 이탈을 은연중에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 전문가는 놀란 얼굴을 하는 진행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어려운 시장 속에서도 투자할 곳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희망적인 종목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종목은 아니지만, 굉장히 안정적인 상품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투자 전문가의 말에 진행자는 투자자의 한사람이 된 것처럼 밝은 얼굴로 투자 전문가에게 어떤 게 안정적인 투자처인지 물었다.

투자 전문가는 바로 지금을 기다렸다는 듯이 환한 표정을 한 채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말했다.

-많은 분이 들었을 이름입니다. 블랙 코인. 바로 블랙 코인이 안정적인 투자처로 등장했습니다.

-블랙 코인이요?

진행자는 투자 전문가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블랙 코인이라면 블랙문이 발행한 코인 아닙니까? 최근에 코인 시장이 다시 상승하는 듯하다 증시의 하락과 함께 꽤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안정적인 곳이 맞는 건가요?

-아직 소식이 늦으시군요. 코인 시장이 주식 시장보다 더 빨리 회복했고, 지금은 증시보다 더 잘 버티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저는 정말 전혀 몰랐습니다.

-관심이 없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시하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시장이 되었으니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가상화폐 시장이 투자 시장의 메인 프레임에 들어왔습니다.

투자 전문가는 진행자에게 조언을 건네고 다시 안정적인 투자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야기를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려 안정적인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안 그래도 저도 어떤 이유로 안정적인 투자처로 부각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블랙문과 코인 그라운드가 블랙 코인에 대한 업사이징을 단행했다는 것이 바로 안정적인 이유가 될 것입니다.

-업사이징이요?

진행자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투자 전문가가 자세하게 설명했다.

왜 사이즈가 커지면 안정적으로 되는지 그리고 그게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투자 전문가는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앞에 앉아있는 진행자와 화면을 통해 시청하는 시청자에게 설명했다.

화면을 바라보는 한진영에게도 이런 투자 전문가의 진심이 전해질 정도였다.

“엄청 열심이네. 블랙문 직원이야?”

한진영이 화면을 손가락질하고 조지훈에게 물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질문에 가만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하지만 소속만 아닐 뿐이지 블랙문의 영향을 받는 회사 직원인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직접 투자를 했던가요. 그런 이유가 없이 저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조 실장도 그렇게 생각하지? 나도 같은 생각이야. 저렇게까지 추앙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야.”

투자 전문가는 한참을 블랙 코인이 안정적인 이유를 이야기한 뒤 마지막 말을 건넸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치 이자율이 20%에서 30%로 올랐다는 겁니다.

-30%요?

-네. 일시적으로 30%까지 인상한다는 발표가 얼마 전에 나왔습니다.

놀란 진행자를 향해 투자 전문가는 은밀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한으로 예치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기간과 액수를 정해놓고 있습니다. 올해까지 1,000억 달러를 더 받은 뒤 한동안 예치를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직 올해가 많이 남아있지만, 금액이 한정된 만큼 먼저 모집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관심이 있는 분은 조금 더 서두르셔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요? 그럼 모집이 끝난 뒤에는 다시 가입이 안 되는 건가요?

-글쎄요 그건 저도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블랙문의 직원이 아니니까요.

한진영은 애매한 말로 상대를 자극하는 투자 전문가를 보고 박수를 쳤다.

짝짝짝.

“좋아. 이거로 끝났다.”

한진영은 TV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챈슬러 명예회장이 즐거워하겠어. 타일러 버드나 노아 스미스도 마찬가지일 테고…….”

한진영은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자금이 들어올 것을 조금 전 방송을 보고 확신하게 됐다.

조지훈은 여전히 화면이 켜진 방송을 바라보다 한진영을 향해 궁금했던 것을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회장님. 그런데 30%의 이자를 어떻게 준다는 겁니까?”

“벌어서 주겠다고 하잖아. 우리보고 그 일을 해달라고 했던 거고…….”

“30% 수익이…… 쉽게 나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조지훈은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한진영을 바라보고 의아한 듯이 물었다.

지난 20% 이자도 미쳤다는 의견이 많이 나올 정도인데, 30%를 준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평범한 자기 머리로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조지훈이었다.

물론 세이지를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세이지 펀드 가입자들이 가지고 가는 돈을 생각한다면 30%가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자의 장점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똑같은 이자가 지급된다는 것이었다.

어떤 천재지변이 일어나더라도 예치한 곳이 ‘망하지’ 않는 한 10년이고 100년이고 똑같은 이자를 지급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한진영도 게리 챈슬러 앞에서 감히 30% 수익을 보장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던 것이었다.

조지훈의 말에 한진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그들 머리에는 방법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어떻게든 이자가 지급되고 있고,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어떻게든 올리고 있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할 거야. 그리고 정~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 코인을 찍어내면 되는 일이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문제가 아닌 거지.”

“그러다 일이 잘못되면 큰일 아닙니까? 얼마 전에도 코인런이 발생할 뻔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그걸 방지하기 위해 업사이징을 한 건데…… 지금 상황이 똥물 튈 걸 걱정해서 몸을 피했다가 똥차가 덮쳐오는 걸 눈치 못 채는 상황이라고 할까? 뭐 그런 상황인 거야.”

“그렇다면 결국 코인런으로 무너지는 건가요?”

“그렇게 되겠지? 지금은 30%의 이자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시장이 혼란으로 빠진다면 30%의 이자는 감당하기 어려울 족쇄가 될 테니까.”

“시장이 혼란이 오는 건가요?”

조지훈은 급히 고개를 돌려 당장에라도 12,000을 깰 것처럼 무너져 내리는 지수를 바라봤다.

14,000 도전에 실패하자 나스닥이 다시 한번 꼬꾸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지금 뭐 하려고 해?”

당황한 조지훈을 향해 한진영이 한숨 섞인 질문을 던졌다.

그제야 조지훈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매수…… 하려고 합니다.”

“그래. 시장이 혼란스러워지는데 매수하려고 하겠어? 정신 차려.”

한진영은 조지훈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모니터링 화면 앞으로 가서 섰다.

“아직은 아니야. 시간이 조금 더 흘러야 해.”

조지훈은 한진영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문제가 생기나요?”

“문제가 안 생기면…… 내가 곤란해.”

한진영이 조지훈을 돌아보고 말했다.

“나는 저기가 꼭 쓰러졌으면 하는 사람이거든.”

한진영이 말을 하며 화면으로 손가락을 가리키자 그곳에서는 방송이 끝이 나고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모두와 함께하는 블랙문이 투자자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조지훈이 한진영의 손가락을 따라 바라본 화면에는 블랙문의 광고가 크게 화면에 떠 있었다.

***

13,000이 깨지고 12,000대를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지난번에 시장을 지지했던 12,000대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빠르게 투자자금을 회수해 나갔다.

그러나 그런 매도세를 한 곳에서 모두 받아나갔다.

[세이지가 매수를 하고 있다]

12,000을 기준으로 하여 바짝 붙은 상태에서 매수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시장에 빠르게 번져 나갔다.

이번에는 최석영이 방송에 나와 직접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세이지가 매수를 하고 있다는 정황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시장에서 빠져나가던 자금들이 급히 멈춰 섰다.

12,000이 안 깨지는 건가?

전문가들이 모두 입을 모아 깨진다고 하던 자리에서 세이지가 매수를 하자 사람들은 전문가들과 세이지를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했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양쪽의 상반된 의견 중간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과거처럼 무작정 뛰어들기에는 이번에는 정말로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정부에서 뜻밖의 발표가 나왔다.

정부는 1조 9,000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부양책에 이어 2조 달러 이상의 대규모 부양책을 발표한 것이었다.

-이건 시장의 추세를 바꾸지 못합니다. 2조 달러 이상의 인프라 투자 계획안이 담긴 이번 법안에는 야당의 반대가 당연시될만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법인세를 21%에서 28%로 인상하여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미 야당에서는 법안을 반대하겠다는 공식적인 의원들의 성명이 발표됐습니다. 법안이 통과되기도 어렵고 통과되더라도 증시에 악영향을 줄 뿐인 법안입니다.

12,000 붕괴를 이야기하던 전문가들은 일제히 정부 법안에 반대 의견을 한목소리로 냈다.

그리고 지난 부양책과 달리 이번 부양책은 시장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거라며 폄하하기 바빴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부양책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영향을 주었다.

12,000을 당장에라도 깰 것 같았던 지수가 발표가 나온 날 1.5%가 넘게 상승하며 위험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었다.

상승은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12,000을 깰 것 같았던 지수가 사흘 만에 13,000은 물론이고 13,500까지 뚫어내고 말았다.

인프라 부양책에 더해 발표할 때마다 좋아진 지표를 이야기하는 고용지표에 투자자들이 환호한 것이었다.

나스닥은 재차 14,000 돌파를 시도하는 자리까지 올라왔다.

S&P500과 다우는 신고가를 경신했다.

14,000에 돌파에 대한 3번째 시도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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