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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612화 (612/650)

612화 푹 쉬고, 시샘하길 원한다

세이지가 매수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지 사흘째가 되자 매도세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얼마를 던지든 다 받아내는 존재에 시장 참여자들은 세이지가 매수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확신이 생기자 관망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매수를 하기 시작했다.

12,000은 절대 뚫리지 않을 테니 세이지를 따라 매수하는 것이 시장의 흐름을 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2,000에서 멈춰있던 지수가 차츰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지수의 움직임에 힘을 보태는 존재가 나타났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는 컨퍼런스에 참석하여 인플레와 관련된 견해를 밝혔다.

물가 압력은 일시적이라고 이야기하며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이 해소된 뒤 안정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특히,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다시 하락세로 유도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다는 말로 시장을 안정시켰다.

인플레는 연준의 손안에 있으며 컨트롤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밝힌 것이었다.

연준 이사의 강조 뒤에 이어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 또한 같은 성격의 발언을 공식적으로 내놓았다.

현재 시장이 우려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성격의 것이라는 것이었다.

연준이 이렇게 인플레이션에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하는 사이 지구 반대편에 자리한 중국에서도 인플레와 관련된 정책이 나왔다.

원자재 시장이 들썩이는 만큼 원자재 투기 및 사재기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면서 강력한 단속 방침을 밝힌 것이었다.

연준과 중국 그리고 금리 인상을 이야기했던 정부까지 더하여 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자 들썩이던 인플레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리고 이런 잦아든 움직임에 증시와 가상화폐 시장이 큰 폭의 상승을 보였다.

홍대민과 최수찬이 한진영이 자리하고 있는 사무실로 찾아와 그동안의 일을 보고 했다.

“이번 박스권 매매를 통해 세이지 자산운용이 약 320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오랜만에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금액을 통해 파도타기를 하며 귀한 경험도 함께 얻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우리 세이지에는 큰 자산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자신 있는 홍대민의 말에도 한진영은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얼굴이 반쪽이 되셨습니다. 최 부사장님도 마찬가지고요.”

앞에 나란히 앉아있는 홍대민과 최수찬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한진영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석 달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집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옷도 못 갈아입으셨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세 번의 고점 매도와 세 번의 저점 매수를 통해 수익은 많이 올렸는데…… 트레이더들과 두 분의 건강은 잃은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씻지 않고 와서 초췌해 보이는 것뿐입니다. 안 그런가?”

홍대민이 최수찬을 급히 돌아보고 동의를 구하자 최수찬도 홍대민과 같은 말을 한진영에게 했다.

“맞습니다. 마지막 마무리 작업까지 마치는 것을 확인하고 회장님께 보고하기 위해 급히 오느라 초췌해 보인 것뿐입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최수찬은 자기 얼굴을 한번 손으로 쓸어낸 후 홍대민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씻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얼굴이 실제로 많이 상하기는 해 보였다.

최수찬은 머쓱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돌리자 한진영은 조지훈을 불렀다.

“내가 이야기한 거 잘 처리했나?”

“네. 호텔과 항공사 측과 협상을 마무리했습니다. 내일 계약을 체결하러 갈 계획입니다.”

“알았어.”

홍대민과 최수찬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한진영과 조지훈이 대화하는 것을 지켜봤다.

이야기하다 말고 한진영이 조지훈을 부른 것이기에 자기들의 대화와 어떤 연관이 있을 거로 생각됐다.

그러나 대화 속에 나온 호텔과 항공사가 자기들의 이야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두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다.

한진영은 조지훈과 대화를 마친 후 홍대민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민을 좀 했었습니다. 돈은 바로 얼마 전 분기 인센티브가 나간 상황이라 큰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걸 드리자니 마땅한 것이 생각나지도 않고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한진영은 조지훈이 건넨 것을 홍대민에게 그대로 다시 전했다.

홍대민은 앞에 놓인 것을 내려다보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이번 휴가 때 어디를 가든 비즈니스석으로 이용할 수 있는 왕복 항공권과 전 세계 모든 5성급 호텔의 숙소를 일주일 동안 이용할 수 있는 숙박권입니다.”

“항공권과 숙박권이 바로 이걸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까?”

“네.”

한진영은 앞에 놓인 종이를 살핀 뒤 천천히 고개를 드는 홍대민을 바라보고 말했다.

“금액적으로 본다면 몇 푼 안 될 겁니다. 끽해봐야 2~3만 달러 수준이지요. 트레이더들이 받는 돈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 돈으로 지난 석 달간의 노고를 보상하기에는 부족할 겁니다. 그래서 한 가지를 더했습니다.”

“여기에 더한 게 있다고요?”

“휴가 때 쓸 항공권과 숙박권이 있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정작 휴가가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일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기존에 트레이더들이 보유하고 있는 휴가에 올해는 특별히 열흘의 유급 휴가를 더하여 주도록 하려 합니다.”

“유급 휴가를 열흘이나 더해 주신다고요?”

홍대민은 깜짝 놀랐다.

비즈니스 왕복 항공권과 일주일의 호텔 숙박권이 한진영의 말처럼 보잘것없는 것이 아니었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원하는 때에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표와 묵을 수 있는 숙소는 돈 이상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휴가를 열흘이나 그것도 유급으로 준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열흘의 유급 휴가는 돈으로도 그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제 큰일은 당분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여름휴가를 마음껏 쓰도록 하세요.”

“감사합니다.”

홍대민은 한진영을 향해 크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세이지 자산운용사 직원들은 석 달 동안 피곤에 절어 버릴 정도로 일을 하면서 혹시 한진영이 이번에도 선물을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로 지금까지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일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홍대민은 걱정하게 됐다.

만약 한진영이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직원들의 노고를 모른 척하고 넘어간다면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꺾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홍대민은 혹시 몰라 따로 준비하기는 했었다.

현금으로 1만 달러의 돈을 직원들에게 수고했다는 명목으로 나누어줄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이 준비한 것이 훨씬 더 좋았다.

금액적으로 봐도 이 정도라면 누구도 싫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성의가 보였으며 무엇보다 열흘간의 유급 휴가라는 꿀과 같은 선물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홍대민과 최수찬은 몇 차례나 세이지 자산운용의 모든 직원을 대신하여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진영에게 건네고 사무실을 나섰다.

“회장님.”

떠난 홍대민과 최수찬을 배웅하고 돌아온 조지훈은 한진영을 향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산운용 외의 계열사 직원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요?”

“왜? 너무 큰 걸 준 것 같아서 그래?”

한진영이 모니터링 화면 앞에 서서 뒷짐을 진 채로 조지훈의 말에 되물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돈보다 열흘간의 휴가는…… 아무 때나 자기가 쓰고 싶을 때 쓰도록 해주신 것 아닙니까? 여차하면 기존 휴가에 붙여서 한 달은 자리를 비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괜히 걱정됩니다. 그리고 그걸 본 다른 계열사 직원들이 왜 자기들에게는 그런 것을 주지 않았냐며 불만을 토하지나 않을까 신경이 쓰입니다.”

“그러라고 준 거야.”

“네?”

한진영은 뒷짐을 진 채로 고개만 돌려 조지훈을 돌아보고 말했다.

“푹 쉬고, 시샘하라고 준 거야.”

한진영은 다시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보고 계속 이야기했다.

“자리에 더는 붙어 있지 말라고 준 거야. 그래야 괜히 이리저리 마음 흔들리지 않고 강제 홀딩이 돼 버리니까.”

지수가 어느새 12,000 중반대를 넘어 후반대에 올라서는 모습이 화면에 그려지고 있었다.

13,000에 바짝 붙어있는 지수는 이제 다시 한번 14,000에 대한 도전을 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 모습이었다.

“사람이란 게 그렇거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흔들려요. 확신하고 있는 나도 그런데 트레이더들은 어떻겠어? 14,000 오면 혹시 모르니까 반은 팔고 지켜보자고 할 거라고. 내가 아무리 팔지 말라고 하더라도 세 번이나 두드리고 내려와서 네 번째인데 머리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이지 않겠어?”

“그래서…….”

“그래. 그래서 그냥 모니터 앞에 앉아있지 말고 떠나버리라고 휴가 준 거야. 그리고…….”

한진영은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의 주가 흐름이 그려지고 있는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 번의 14,000 돌파 시도가 실패하고 지수는 내려왔지만,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의 주가는 완만한 상승을 계속 이어갔다.

20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어느새 시총 4,000억 달러를 눈앞에 둔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한진영은 14,000 돌파가 성공한다면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의 200달러 돌파 또한 성공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조지훈에게 말했다.

“세이지 인베스트먼트는 물론이고 다른 자회사의 직원들이 똑똑히 알았으면 좋겠어. 고생 뒤에는 항상 보답이 있고, 그 보답은 모두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임을…….”

“계열사 직원들이 보고 자기들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기를 바라셔서 그런 것이군요.”

“그래.”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돈 외에도 주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면 더 좋지. 맨날 돈만 주면 식상하잖아. 받는 사람도 처음 받았을 때야 기쁘고 좋지 그게 두 번, 세 번이 되면 처음만 한 기쁨이 오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러셨군요.”

조지훈은 이제야 한진영의 큰 뜻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은 이해할수록 부끄러움이 더 커지는 듯한 모습의 조지훈을 보고 말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자네도 이번 여름은 푹 쉬도록 해. 자네도 열흘간 휴가 가.”

“저도 말씀입니까?”

조지훈이 깜짝 놀라자 한진영이 조지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니까. 도대체 조 실장은 여자친구를 언제 만나는 거야? 나하고 거의 24시간 붙어 있지 않아?”

“거의이지 완전히는 아니지 않습니까? 빈 시간에 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야?”

한진영이 믿기 어렵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조지훈을 바라봤다.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지근거리에서 자기를 보필하는 조지훈이 데이트할 시간이 있다는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것이었다.

“지난번에 자네 여자친구를 보지 못했다면 믿지 못했을 거야. 그런데…… 내 눈으로 직접 봤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니냐고 생각하며 한진영은 잠시 고개를 저었다.

“뭐 그건 그렇고…… 자네도 이번 여름은 여자친구하고 놀러도 다니고 재미있게 지내도록 해. 그리고 그동안 모아 놓은 돈도 좀 쓰고 말이야. 자네도 일하느라 돈도 못 썼을 거 아니야?”

“그거야 회장님께서도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그래서 나도 이번 여름에는 돈 좀 쓰려고 해. 그러니까 나 신경 쓰지 말고 자네는 재미있게 놀도록 해. 알았어?”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한진영의 곁에 있으며 열흘 이상을 떠나서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정말 없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무슨 어린애야?”

“그래도…… 제가 없으면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그거야 바빠서 그런 거지. 안 바쁜데 내가 내 손으로 밥도 안 차려 먹을까 봐 그래? 혼자 있으면 다 해.”

한진영은 큰소리치고 조지훈의 등을 밀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손길에 못 미더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 섞인 표정을 지었다.

여자친구를 만난 이후 회사 걱정을 하지 않고 온전히 둘만을 위한 시간을 쓴 게 손에 꼽혔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지?’

조지훈은 한진영의 허락이 떨어지자 어디로 여행을 갈지부터 생각했다.

어디를 가든지 비즈니스석 항공권이 나오고, 어디를 가든 5성급 호텔 숙박권이 나오는 만큼 어디를 가는지만 생각하면 됐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기대에 찬 표정을 짓는 조지훈을 바라보고 웃었다.

그리고 슬며시 고개를 돌려 나스닥 지수가 나타나고 있는 화면을 바라봤다.

그곳에 보이는 나스닥 지수는 13,000을 뚫을 준비를 모두 마친 모습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나스닥 상승세는 앞에 보였던 상승 때보다 완만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승에 대한 힘이 많이 떨어진 게 아니냐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도 13,000을 뚫자 지수는 아래보다 위를 향해 계속 나아갔다.

지난 몇 번의 박스권 장세에서 보여줬던 14,000 고점을 향해 다시 한번 나아간 것이었다.

각도가 완만한 만큼 이번 상승으로 14,000을 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런 모습에 투자 전문가들이 기름을 끼얹는 주장을 방송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했다.

-이번 상승으로 절대 14,000을 넘지 못할 겁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14,000에서 주저앉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힘의 속도로는 14,000을 뚫지 못합니다. 설혹 뚫어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내 12,000을 향해 곤두박질칠 겁니다. 14,000에서는 보유하고 있는 물량을 정리하는 편이 좋습니다.

-14,000은…….

-14,000…….

방송에 나온 전문가들은 지난번과 비교하며 14,000 이상으로 지수가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고 넘긴다고 하더라도 얼마 안 가 12,000을 향해 주저앉을 것으로 이야기했다.

이미 시장은 박스권에 갇혀버린 상태이기에 14,000 이상은 새로운 상승 모멘텀이 생기지 않는 한 올라가기 불가능한 곳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때 오랜만에 세이지의 최석영이 방송에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했다.

“조 실장은 어디로 갈 생각이야?”

“가까운 맥키노섬으로 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맥키노섬? 맥키노섬이 어디 있는데?”

거울에 비친 넥타이를 손으로 만지던 최석영이 조지훈을 돌아보고 물었다.

최석영의 어깨에 묻어있는 먼지를 떼어 낸 조지훈은 최석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미시간호와 휴런호가 만나는 곳에 있는 여름 휴양지입니다. 파스텔톤 상점들과 오래된 바닷가 레저를 즐길 수 있는 한가한 섬이라고 해서…… 그곳으로 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한가한~ 한가한 좋지.”

조지훈의 말에 ‘한가한’이라는 단어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최석영은 조지훈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래. 잘 생각했어. 휴가는 조용한 곳에 가서 둘만 있는 게 최고야. 그리고 그런 기분은 연애할 때 외에는 못 느끼니까 충분히 즐기도록 해. 나중에 결혼하면…….”

최석영은 둘렀던 팔을 내리고 갑자기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조지훈은 최석영의 양복을 손으로 털어주며 물었다.

“최 사장님은 어디로 가시기로 하셨습니까?”

“나는…… 한국.”

“한국이요?”

“애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농사를 지으셔. 그래서 농약 치러 가야 해.”

“농약이요?”

“그래. 이맘때 논에 농약 쳐야 하거든. 나는 휴가가 휴가가 아니다. 14시간을 날아가서 농약을 쳐야 해. 뙤약볕 아래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피곤이 밀려왔던지 최석영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조지훈은 잠시 제작진이 있는 쪽을 살피고는 최석영에게 물었다.

“아이들은요?”

“아이들은 여기 있겠지. 농약 치러 14시간 비행기 타고 시골 가자고 할 수 있겠어? 애들 엄마한테 아이들 데리고 어디라도 놀러 갔다 오라고 해야지 뭐. 어휴~ 14시간 비행기 타고 가서 농약이라니…… 그러고도 다시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야 하잖아. 상상만 해도 어질어질하다.”

“열흘 내내 농약 치시는 건 아니시잖아요.”

“어?”

질색하던 최석영은 조지훈의 말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표정을 지었다.

조지훈은 제작진에서 이제 들어오라는 손짓을 보고 최석영의 등을 밀며 말했다.

“저도 친구 따라 시골에 가서 농약 쳐봤는데 하루 이틀이면 농약 치는 거 다 끝나잖아요. 그리고 남은 시간 사모님과 아이들 없이 노셔도 되지 않아요? 14시간이나 걸리는 곳에 사장님 찾으러 오지도 않을 테고…… 숙박권도 한 장은 사장님 몫으로 아무 곳에서 쓰셔도 되니 남은 시간 서울에 올라가서 즐기셔도 될 것 같은데요?”

최석영은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표정으로 조지훈을 돌아봤다.

“그러니 이제 들어가서 오늘 일만 잘 마무리하세요. 그럼 남은 휴가는 즐거운 일만 남아 있을 테니까요.”

최석영은 조지훈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알겠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제작진의 손짓을 따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스튜디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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