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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637화 (637/650)

637화 기다렸다 뭘 먹을 생각인가?

한진영의 사무실에는 한진영과 레이 젠슨 그리고 최석영 등이 자리하고 앉아 조금 뒤 시작될 연준 의장의 발표를 기다렸다.

“어떻게 예상해?”

최석영은 참지 못하고 한진영에게 연준 의장의 코멘트를 한진영에게 물었다.

한진영은 최석영의 질문을 받으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뻔하죠. 올해 남은 금리 결정 회의 때 금리 인상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양적 긴축(QT)도 조만간 시행하겠다. 뭐 이런 말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말입니다.”

“금리 인상과 동시에 대차대조표 축소도 진행한다고 이야기할 거라고?”

“그렇겠지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는 쪽으로 스탠스를 옮길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한진영이 오히려 최석영을 향해 되묻자 최석영은 움찔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지금 상황에서 당연히 금리 인상과 대차대조표 축소를 같이 진행하겠지.”

“그게 아니면 방법이 없습니다.”

한진영은 최석영에게서 시선을 돌려 화면을 바라본 채로 말했다.

“콜린스 이사의 말대로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으니 연준으로서는 선택이 제한되어 버렸으니까요. 작년 말에만 진행했어도 이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로라 콜린스 이사의 말이 결국 맞게 된 것이지요.”

“그건…… 우리가 콜린스 이사에게 알려준 것 아니야?”

최석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분명 최석영이 알고 있기에 로라 콜린스에게 세이지가 알려준 말을 로라 콜린스가 언론을 통해 이야기했다고 했다.

평소의 자기가 한 것처럼 말이다.

한진영은 최석영의 질문에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대답했다.

“누가 알려주었건 어쨌든 로라 콜린스 이사가 언론을 통해 처음 이야기했으니 로라 콜린스 이사가 한 말이 된 겁니다.”

“그건 한 회장의 말이 맞아.”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레이 젠슨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덕분에 연준 이사의 자리에 무리 없이 올라갈 거로 보이더군.”

“청문회에서 문제가 나오지 않은 건가요? 의회 청문회가 굉장히 어렵다고 이야기 들었었는데…….”

최석영이 레이 젠슨을 바라보고 물었다.

레이 젠슨도 한진영과 마찬가지로 화면을 바라본 채로 최석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문제가 나오지 않은 정도가 아니야. 여당이고 야당이고 청문회는 요식행위라고 생각하는 듯이 진행됐어. 로라 콜린스가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는 의원이 대신 대답해 주며 청문회가 진행될 정도였으니까.”

레이 젠슨은 잠시 청문회를 떠올리고는 최석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애초에 로라 콜린스 자체가 보수적인 인물이거든. 그랬으니 야당인 보수당이 싫어할 이유가 없지. 여당은 자기들이 뽑았으니 청문회에서 낙마시킬 이유도 없고…….”

“보수적인 인물을 왜 여당이 추천한 겁니까?”

최석영의 질문에 레이 젠슨이 슬쩍 한진영을 돌아보고 말했다.

“왜긴 왜야? 세이지 회장님께서 밀어주신 덕분에 현재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인물이 로라 콜린스였으니 그녀를 추천한 거지. 그래야 얼마 뒤 벌어질 총선에서 할 말이 있으니까. 통화정책에 여당이 최선을 다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으니까.”

“여당이 추천하고 야당이 좋아하는 인물. 청문회가 무리 없이 진행되는 게 어쩌면 당연하겠네요.”

레이 젠슨의 말에 최석영은 추임새를 넣고는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빙그레 웃었다.

너무나 순조롭게 연준 이사 자리에 올라가는 로라 콜린스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기 때문이다.

“혹시 나도 연준 이사에 올라갈 수 있는 거냐? 내가 만약 미국 시민권자라는 전제로 말이야. 나도 올려줄 수 있어?”

최석영의 질문에 한진영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최 사장님이 미국 시민권자이고 연준 이사 자리가 탐이 나 부탁을 했다면…… 네. 올려 드릴 수 있었을 겁니다.”

너무나 태연하게 대답한 한진영의 모습에 최석영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지금 한진영이라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기는 레이 젠슨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지금 시장에서 연준 의장만큼 큰 파워를 가진 사람이 한 회장이지.’

전 세계의 모든 눈과 귀를 화면 앞에 모이게 만든 연준 의장만큼이나 한진영의 파워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최석영을 연준 이사로 올리려 한다면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진영이 허풍을 떤 것이 아니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 것뿐이었다.

“시작하는군요.”

한진영의 말에 레이 젠슨과 최석영의 시선이 화면으로 모였다.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한진영 등과 마찬가지로 TV 앞에 모여 연준 의장의 말을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연준 의장이 마이크 앞에 서고 입을 열자 자막으로 FOMC 회의 결과가 나왔다.

[연준 0.25% 금리 인상 결정]

한진영은 자막이 나오는 순간 나스닥 움직임을 확인했다.

나스닥은 마치 로켓을 쏘아 올린 것처럼 FOMC의 결과가 나오자 하늘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올랐다.

“한 번에 200포인트가 올랐네.”

“시장 기대치에 부합하니까요.”

한진영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연준 의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연준 의장의 발표는 한진영의 예상 그대로였다.

현재 인플레이션의 공격이 시장을 덮치고 있는 만큼 금리 인상은 올해 내내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남아 있는 6번의 회의에서 모두 금리를 인상할 것이며, 대차대조표를 축소하는 양적 긴축을 이르면 5월부터 시작할 거라고 밝혔다.

연준은 인플레이션과 싸울 준비가 되었으며, 인플레이션을 잡을 자신이 있다는 말을 남기며 시장에 강한 이미지를 보였다.

“상당히 자신감이 있는 것 같은데? 최종 기준금리를 2.0%에서 막을 자신이 있나 봐.”

최석영은 한진영과 레이 젠슨을 번갈아 바라본 뒤 말했다.

“지금 기준금리가 0.25~0.5%니까 6번 남은 회의를 모두 올린다고 하면 0.25%씩 앞으로 1.5% 더 올린다는 이야기잖아. 그럼 최종 기준금리는 1.75~2.0%가 되는 거네? 그럼 최종 기준금리 2.0% 맞네?”

최석영이 연준 의장의 말을 가만히 계산하고는 한진영을 바라봤다.

연준 의장이 지금까지 시장이 예상해 온 금리의 추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한 것에 한진영의 생각을 묻기 위해서였다.

“제가 좋아하는 복싱 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한진영은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최석영을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의 표정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연준도 계획은 있겠죠. 하지만 계획이 언제나 맞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계획이 어긋났을 땐…… 타격은 두 배, 세 배로 다가오겠죠. 우리는 그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기다렸다 뭘 먹을 생각인가?”

가만히 한진영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레이 젠슨이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한진영은 마침 TV에 나오는 것을 턱짓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저걸 먹을 생각입니다.”

레이 젠슨은 한진영이 대답을 하고 화면을 턱짓으로 가리키자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걸 먹는다고? 저걸?”

너무 놀란 최석영이 손을 들어 화면을 가리켰다.

레이 젠슨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화면에서 나오는 것은 바로 블랙문이었기 때문이다.

[코인 그라운드를 제외한 3대 거래소 블랙문에게 블랙 코인 예치와 관련된 자료 증빙 요청. 코인 거래소들은 블랙문이 자료 요청을 거절할 시 블랙 코인과 알론 코인의 거래소 퇴출을 결정할 것으로 보여]

한동안 가상화폐 시장에 훈풍이 불어 잠잠했던 블랙 코인과 관련된 이야기가 뉴스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

연준의 자신 있는 모습에 나스닥은 상승으로 화답했다.

13,000을 뚫고 내려갔던 지수가 나흘 동안 1,280포인트, 10%가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부는 증시의 훈풍에 얼어붙었던 투자시장이 날씨처럼 봄기운이 부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러나 봄바람이 부는 곳에서 가상화폐 시장은 제외됐다.

갑작스러운 블랙 코인에 관한 거래소들의 조사에 증시와 달리 시장이 얼어붙고 만 것이었다.

“네 놈이 한 짓이냐?”

한진영의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게리 챈슬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추태야?”

레이 젠슨이 화가 난 게리 챈슬러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게리 챈슬러는 화를 가라앉히기보다 오히려 더욱 길길이 날뛰며 소리를 질렀다.

“네가 시킨 짓이냐? 오~ 그래. 네 놈이 저놈보고 하라고 했나 보구나. 애초에 나에게 접근했던 것도 다 이러려고 그런 거였어.”

“정신 차려.”

레이 젠슨은 게리 챈슬러를 향해 소리 질렀다.

“천하의 블랙문 명예회장이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천하의 블랙문 명예회장?”

게리 챈슬러가 문가에 놓여 있는 화분을 집어 들고 모니터링 화면이 있는 곳에 던졌다.

와장창.

벽에 걸려 있는 모니터링 화면 서너 개가 떨어져 내리며 부서졌다.

게리 챈슬러는 이런 모습에도 만족하지 못했던지 다른 던질 것을 찾으려 했다.

“회장님.”

보다 못한 게리 챈슬러의 비서인 제이슨 서튼이 말리고 나섰다.

“회장님. 참으십시오.”

“참으라고? 나보고 지금 참으라고 한 거야? 놔.”

게리 챈슬러가 제이슨 서튼을 밀어냈다.

와장창.

또다시 화면 두어 개가 떨어져 나갔다.

게리 챈슬러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인지 이제는 의자까지 집어 창문을 향해 다가갔다.

레이 젠슨은 이대로 놔둬야 하는 건지 묻기 위해 한진영을 돌아봤다.

한진영은 레이 젠슨의 시선에 팔짱을 낀 채로 게리 챈슬러에게 말했다.

“그걸 집어 던지는 순간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바로 인터넷을 통해 공개가 될 겁니다.”

게리 챈슬러는 의자를 집어 던지려던 자세 그대로 한진영을 돌아봤다.

한진영은 그런 게리 챈슬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의 식당에서 있었던 일 기억하시죠? 그걸 막기 위해 블랙문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보다 충격이 더 클 것 같은데…… 자신 있으시면 던져보십시오.”

게리 챈슬러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다.

“역시 네놈이 퍼트린 거였던 거냐?”

“전에는 모르겠고, 이번만큼은 확실히 제가 퍼트릴 생각입니다. 그러니 자신 있으시면 던져보십시오.”

한진영이 팔짱을 낀 채로 턱을 까딱였다.

레이 젠슨은 게리 챈슬러가 화를 참지 못하고 의자를 집어 던질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게리 챈슬러는 몇 차례나 의자를 집어 던질 듯이 팔을 휘두르려다 다시 한번 말리는 제이슨 서튼의 말에 의자를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의자를 내려놓은 채 숨을 골랐다.

“후우~ 후우~”

숨을 크게 고르고 마음을 안정시킨 게리 챈슬러는 내려놓은 의자 등받이에 손을 대고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더는 우리 블랙문과 블랙 코인에 허튼짓할 생각하지 마. 그러지 않으면 내가 네놈을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니까.”

“참으로 한가하십니다.”

“뭐?”

“저한테 이 말을 하려고 지금같이 중요한 시기에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한진영은 팔짱을 풀지 않은 채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화면이 깜박거리는 모니터 화면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저 같으면 지금 여기서 이럴 시간에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안 그러면 블랙 코인이 날아가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여기서 이럴 시간이 있으시다는 게 대단하십니다.”

놀리는 듯한 한진영의 말에 의자를 잡은 게리 챈슬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다고 한진영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기에 게리 챈슬러는 한진영을 향해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돌아가셔서 거래소에 자료를 줘야 할지 아니면 자료를 주지 않는다면 어떤 변명을 해야 할지 그걸 고민하십시오. 안 그랬다가는…….”

한진영은 껌벅 이다 이제는 화면이 나가버린 모니터를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피해가 눈덩이 굴러가듯이 굴러갈 테니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게리 챈슬러는 짚고 있던 의자를 벽에 던졌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삿대질했다.

“마지막 경고다. 가만히 있어.”

“나 참.”

한진영은 팔짱 낀 손을 풀고 양손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제가 뭘 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가만히 있겠습니다. 됐습니까?”

한진영을 손가락으로 찌르듯이 가리킨 게리 챈슬러는 몸을 돌려 한진영의 사무실을 나갔다.

제이슨 서튼은 난장판이 된 한진영의 사무실을 둘러본 뒤 한진영과 레이 젠슨을 향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회장님께서 이번 일로 예민해지셔서 폐를 끼친 것 같습니다. 피해액을 알려주시면 저희가 보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됐습니다. 우리끼리 뭐 이런 걸 가지고 돈을 청구하고 하겠습니까? 돌아가셔서 명예회장님 마음이나 잘 추스르도록 도와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제이슨 서튼은 한진영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난장판으로 변한 사무실을 둘러본 레이 젠슨이 한진영을 바라보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알고 저러는 건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시장에서 활동하며 느낀 본능이 우리와 상관이 있다고 이야기해서 이곳으로 뛰어온 것이겠지요.”

한진영은 책상에 걸터앉은 채로 말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게리 챈슬러라는 시장의 절대자가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모습이 말입니다.”

“자네가 챈슬러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줄은 몰랐네.”

게리 챈슬러라는 사람을 수십 년 동안 알고 지낸 레이 젠슨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평범하다 못해 시장에 막 참가한 초짜들이나 보여줄 감정 기복을 게리 챈슬러가 보여줄 거로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끌어낸 것에 한진영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제 시작이지요.”

“이제 시작?”

“네.”

한진영은 널브러진 바닥을 내려다보고 혼잣말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바닥 밑에 지하실 그리고 그 밑의 심해로 가라앉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번처럼 제가 그렇게 만들 생각이고요.”

한진영의 말에 게리 챈슬러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게리 챈슬러와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레이 젠슨은 궁금한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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