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화 지금은 기회의 순간이다
어디에서 처음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세이지와 정부가 블랙문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시장은 이런 소식에 반가움을 표시했다.
시장에서 가장 듣고 싶어 하던 이야기가 바로 세이지의 블랙문 인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시장은 매각 협상 루머에 반색하여 반등을 보였다.
나스닥의 경우 10,000선을 깨고 떨어져 내렸던 지수가 하루 만에 3%가 넘게 오르며 10,000선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회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루머에 대한 확인을 양측에서 해주지 않은 상황에서 부정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세이지가 블랙문을 인수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데 그건 희망에 불과합니다. 세이지가 왜 부실 덩어리인 블랙문을 인수한다는 말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머치 버치킨스는 오늘도 잘 다려진 양복을 입고 나와 방송에서 현재 시장에 관해 이야기했다.
-만약 정말 세이지가 인수한다면 정부를 비롯한 채권자들은 큰 출혈을 감내해야 할 겁니다. 채무를 조정해 주고 예탁금의 일정 부분을 손해로 확정 지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세이지가 블랙문을 인수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런 조건이라면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마냥 호재로만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출혈은 그대로 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머치 버치킨스의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는 자기 말이 맞는다는 주장에 힘을 실을만한 증거를 제시했다.
-시장이 힘이 든 상황에 나온 쓸데없는 루머인데…… 이런 말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습니다. 설혹 진짜로 협상이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는 뜻이니 큰 기대를 걸 필요가 없습니다. 협상이 잘 흘러갔다면 정부가 이야기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정부는 시장을 가라앉혔다는 시그널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협상은 분명 제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머치 버치킨스부터 시작된 부정적인 이야기가 언론 사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머치 버치킨스의 주장이 루머 속의 기대보다 더욱 신뢰 있게 들렸던 것이었다.
방송에서는 협상이 부정적이라는 뜻으로 이야기 나왔다.
과거 매각 협상의 경우 하루 이틀 만에 협상이 완료됐었던 것에 비교해 지금의 협상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그 이유라고 이야기했다.
시장의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도 양측은 입을 꾹 닫았다.
진행 중인지 아닌지만 확인해달라는 말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양쪽이 모두 입을 다물자 결국 추측은 부정적인 쪽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10,000선을 회복했던 나스닥이 다시 급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나흘 연속 서킷 브레이커라는 기록적인 하락을 보인 다음 반등을 했던 지수가 다시 서킷 브레이커를 보여주며 시장을 나락으로 보내고 말았다.
나스닥은 9,000선마저 깨졌다.
변동성 지수인 VIX는 90이라는 숫자를 보여주며 시장의 붕괴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전 세계가 다시 무너져 내렸다.
세이지마저 블랙문 인수를 포기할 경우 멈췄던 파산 절차가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힘을 받았다.
그리고 정부가 보장한다는 고객 보호 조치도 실현 가능성이 작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선거가 코앞이라 유권자를 위한 선심성 발언을 내놓은 것일 뿐 현실성이 없다는 분석까지 나온 것이었다.
연준의 정책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힘을 받았다.
금리 인상을 통해 유동성을 흡수하여 시장을 안정시킨다는 계획 자체가 시작부터 무너졌기에 연준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터져버렸다는 평가였다.
파산에 관한 공포가 이제는 붕괴로 바뀌어 시장을 덮쳤다.
걱정하며 이야기하던 일이 현실이 된 것에 시장은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 버렸다.
펀드런이 블랙문에 국한되지 않았다.
모든 자산운용사가 사정권에 들어가 펀드런이 나오고 말았다.
-오늘 하루에만 2,00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증시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자산운용사 12곳이 문을 닫았으며 예금 인출 거부 사태가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장은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앵커는 다급한 모습으로 현재 시장 상황을 이야기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주식시장의 휴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서브프라임과 지난 코로나19 시기에도 문을 닫지 않았던 거래소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휴장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단기간에 고점 대비 50%가 하락한 것도 모자라 끝나지 않은 악재의 연속에 이대로 모두가 파멸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위기가 시장을 덮쳤기 때문이다.
오히려 투자자들이 증시의 휴장을 요청할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다 죽으니 차라리 문을 닫고 블랙문 사태가 끝이 나거든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 투자자들의 주장이었다.
이런 요청은 개인 투자자만 내놓은 것이 아니었다.
기관 투자자들도 개인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휴장을 요청했다.
자산규모 1,000억 달러 이상의 대형 자산운용사의 파산 루머까지 도는 마당에 이대로 계속 증시의 문을 열어 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불만 섞인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코로나19 때와 달리 손을 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이런 사태를 만들어 낸 원흉을 향해 분노를 뿜어냈다.
[게리 챈슬러를 잡아 죽이자]
뉴욕 지하철에서 배포되는 타블로이드 첫 면에 살벌한 글귀가 쓰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도 이런 글귀가 과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할 수만 있다면 자택에서 구금된 게리 챈슬러를 끄집어내 거리에서 화형식이라도 하고 싶어 할 정도로 투자의 민심은 게리 챈슬러를 향해 들끓었다.
그리고 들끓은 사람들의 마음은 그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했다.
집 안에서 이야기하기보다 직접 밖에 나와 소리 높여 이야기해야 무언가라도 바뀌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블랙문 사태는 이제 단순한 금융 위기 수준을 넘어갔다.
***
“회장님. 조금 전 목표로 한 금액의 80%를 채웠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뒷짐을 지고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 한진영을 향해 조지훈이 전화기를 든 채로 보고했다.
그리고 창문 너머에서 보이는 빽빽한 인파의 물결을 바라보고는 조지훈은 걱정된다는 목소리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이대로 거래소로 들어가지는 않겠죠?”
“글쎄? 여기까지 왔는데 거래소를 습격해서 직접 셧다운 시키려 할 수도 있지.”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한진영이었다.
그러나 조지훈은 시위대가 거래소에 들어가 셧다운을 시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폭동.
평화롭게 모여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폭도로 변하게 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잘 알고 있었던 조지훈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진영은 놀란 표정의 조지훈을 슬쩍 바라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뭘 그렇게 놀라고 있어?”
“그렇게 되면 큰일 아닙니까?”
“큰일이지. 정부 입장에서는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 그런 모습일 테니까. 그리고 나도 그런 모습이 펼쳐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한진영은 다시 말을 멈추고 거래소를 둘러싸고 있는 시위대를 내려다봤다.
시위대는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게리 챈슬러를 끌어내 광장에 매달아 놓아야 한다는 구호도 나오고 있었다.
허공을 향해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크기는 점점 커져만 갔다.
“시장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시장이 붕괴해서는 절대 안 돼. 물이 있어야 헤엄을 칠 수 있는데 물이 말라버리면 우리도 같이 죽어버릴 수밖에 없으니까.”
한진영은 시위대를 바라보고 짧은 말을 남긴 뒤 조지훈을 다시 돌아봤다.
“협상장은 어때?”
한진영의 질문에 조지훈은 급히 협상장에서 전해온 소식을 이야기했다.
“조수아 부사장이 전해온 이야기로는 주당 10달러 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루 이틀 더 시간이 지나면 8달러까지도 내릴 수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10달러면 약 40억 달러에 인수가 가능하다는 건가?”
“네. 30달러에 123억 달러였으니 10달러면 40억 달러를 살짝 넘는 금액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대답을 듣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우리 입장에서는 123억 달러나 40억 달러나 크게 상관이 없지. 채권단 채무 800억 달러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123억 달러나 40억 달러나 거기서 거기니까.”
세이지가 인수 가격을 가지고 협상을 벌인 이유는 시장에서 물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게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다.
800억 달러를 지출해야 하는 입장에서 123억 달러나 40억 달러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었다.
“현재 블랙문의 자산가치가 3조 아래로 떨어졌다고 했지?”
“네. 오늘 오전 기준으로 2조 9,000억입니다.”
한진영은 뒷짐 지고 있던 손을 앞으로 옮겨 팔짱을 꼈다.
“여기서 더 떨어지면 불편한 상황이 나올 수도 있을 테니 여기서 정리하도록 하자.”
“아직 목표로 한 물량에서 80%밖에 채우지 못했는데 여기서 멈추는 건가요?”
팔짱을 낀 한진영은 거래소를 내려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80% 확보했으면 됐어. 괜히 욕심부리다가는 우리가 살 물까지 다 말라버릴지도 모르니까 조 부사장님에게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이야기해.”
“그럼 정부에 이제 발표해도 된다고 이야기할까요?”
“그래. 아마 저쪽은 피가 마르는 기분일 테니까 빨리 알려주고 이제 좀 편해지라고 해.”
“네. 그럼 바로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지시에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한진영은 떠나는 조지훈의 뒷모습을 슬쩍 돌아보고는 다시 창밖에 보이는 시위대를 내려다봤다.
시위대의 구호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시위대 안에서 누군가가 거래소로 뛰어 들어가자는 말 한마디만 나와도 시위대가 단숨에 폭도로 변할 것만 같았다.
시위의 분위기가 점점 날카로워져만 갔다.
***
미국 재무부에서 긴급 발표가 나왔다.
[세이지가 블랙문을 인수, 인수 가격은 주당 10달러로 약 40억 달러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
[블랙문의 모든 고객 예탁금은 세이지가 책임질 것]
[채권단 채무 800억 달러는 인수가 확정되는 대로 세이지 측에서 바로 정리하겠다고 약속]
재무부 장관은 발표를 마치고 마지막에 세이지에 건네는 말을 꺼냈다.
-시장의 안정을 위해 세이지가 큰 양보를 한 것에 정부 관계자를 떠나 개인적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는 바입니다. 블랙문을 인수한 세이지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빕니다.
공식적인 발표 자리에서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는 평범하지 않은 광경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본 누구도 재무부 장관인 월리 해치슨을 향해 가볍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식적인 자리기에 이 정도 표현을 한 거라는 생각이 나올 정도였다.
세이지에 대한 감사는 백 번 해도 모자랄 정도였기 때문이다.
시장은 정부의 발표에 두 팔을 올려 환호했다.
세이지가 블랙문을 인수한 덕분에 시장에 3조 달러라는 폭탄이 터지지 않게 됐다.
게다가 블랙문 고객을 책임지겠다는 세이지의 발표에 펀드런을 걱정했던 블랙문 고객들은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됐다.
그뿐이 아니었다.
800억 달러라는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세이지의 모습에 도미노 파산 걱정도 덜게 됐다.
세이지의 결정에 모든 걱정이 한 번에 해결된 것이었다.
그러나 불안을 모두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장은 이런 통 큰 결정을 한 세이지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세이지 입장에서는 잃은 게 너무 많은 협상이었다.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양보하며 계약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주당 10달러가 아니라 1달러에 인수하겠다고 해도 상대는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을 시장 참여자들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은 세이지가 너무 큰 양보를 한 게 아니냐고 생각했다.
***
CNBC는 인수 발표가 나오자마자 세이지의 최석영을 초대하여 이번 인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 자리에서 지금 의문으로 이야기되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겠다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하여 시청자를 TV 앞으로 모이게 했다.
-최 사장님. 우선 저도 시장 참여자 중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앵커는 최석영을 향해 아시아식으로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건넸다.
최석영은 그런 앵커의 모습에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할 만큼 저희가 큰일을 한 건 아닙니다.
-큰일이 아니긴요? 큰일 맞습니다. 세이지가 큰 희생을 하여 시장을 회복시키지 않았습니까?
앵커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들어 올리고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을 이야기했다.
이번 인수 과정에서 나온 것들로 사람들이 입안이 마르게 칭찬하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한 앵커는 최석영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말했다.
-아직 시장이 열리지 않아 내일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아시아 시장에서부터 세이지의 결정에 환호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니케이가 10%가 넘게 상승했으며 홍콩, 중국, 한국 등등 지금 폭등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승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게 모두 세이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이라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최석영은 손까지 휘저어 앵커의 말을 부정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을 한 채로 앵커를 향해 이야기했다.
-이 자리를 빌려 오해를 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해요?
감사 인사를 하던 앵커는 오해를 풀겠다는 최석영의 말에 갸웃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상황에서 오해가 무엇이 있을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의 앵커였다.
최석영은 모르겠다는 앵커를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이지는 희생을 한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계산하여 세이지에 도움이 될 거라는 결과가 나와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세이지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앵커는 최석영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자기들이 희생했다는 포지션을 잡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세이지는 오히려 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자기들은 희생을 한 것이 아니니 감사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세이지의 모습에 앵커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최석영이 먼저 입을 열어 세이지에 어떤 이득이 있는 것인지 먼저 이야기했다.
-고객들의 예탁금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건 계산에 포함하지 않겠습니다. 채무의 경우에는 세이지가 얻게 될 이득을 생각한다면 800억 달러라는 자금이 결코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희는 블랙문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통해 얻는 수익이 800억 달러는 가볍게 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싼 가격에 인수할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지지부진하게 협상을 끌었다가는 시장이 붕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물고기가 물이 말라버린 곳에서 살 수는 없는 법 아닙니까?
최석영의 말에 앵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석영의 말대로 자칫 시간을 끌었다가는 시장이 붕괴하여 물이 모두 말라버렸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저희는 그것보다 지금 상황에서 블랙문의 자산을 이용하여 돈을 벌 기회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시스템과 블랙문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자산운용사 세계 1등이라는 위치가 합쳐진다면 그 시너지는 800억 달러가 아닌 8,000억 달러, 8조 달러도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블랙문을 인수한 것입니다. 희생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에서 나온 투자라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히는 바입니다.
최석영은 앵커를 보던 시선을 돌려 카메라를 향해 나머지 말을 했다.
-세이지는 지금 시장에 기회가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블랙 먼데이가 터졌을 때 발가벗고 나와 춤을 추고 싶었다는 어느 투자자의 말처럼 지금이 바로 그런 기회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돈 몇십억 달러를 아끼기 위해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최석영의 말이 끝나자 카메라는 최석영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았다.
그의 단호하고 확신에 찬 얼굴이 카메라에 가득 담겼다.
지금이 기회라는 그의 말이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시청자에게 그대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