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7화 그동안 재미있었다
조지훈은 문밖에 연방수사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게리 챈슬러에게 한진영은 철천지원수나 마찬가지였다.
게리 챈슬러를 망하게 한 것도 모자라 평생을 일궈온 블랙문이라는 회사도 한진영이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홀로 들어가겠다는 것을 우겨 함께 들어온 것이었다.
80을 눈앞에 둔 노인이었지만 이곳이 미국인만큼 영화에서처럼 숨겨놓은 총을 꺼내 한진영을 겨눌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조지훈과 달리 태연하기만 했다.
한진영은 몸을 돌리고 있는데도 노골적으로 적의가 드러나고 있는 게리 챈슬러를 향해 앉은 채로 태연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시니 대답하겠습니다. 확실히 전에 앉아 있던 곳과 다르기는 합니다. 어제는 연준 의장과 티타임을 가졌고, 내일은 재무부 장관과 함께 백악관에 들어가기로 약속이 돼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이 다르고 그들과 하는 이야기가 달라지니…… 마치 전 세계 금융 시장을 제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이 듭니다.”
한진영의 말에 게리 챈슬러의 어깨가 움찔했다.
한진영은 그런 게리 챈슬러의 모습을 바라보며 계속 이야기했다.
“확실히 명예회장님께서 왜 이 자리에 집착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앉아보니 탐을 낼 만한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집착한 이유를 알겠다는 말에 게리 챈슬러의 몸이 다시 한진영을 향해 돌았다.
한진영의 이야기는 게리 챈슬러가 몸을 돌려 다시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계속됐다.
“제 결정에 따라 금리 인상의 폭과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연준이 제게 도움을 바라고 있고요. 세상의 누가 미국 연준에게 부탁받겠습니까? 임기 4년짜리 대통령도 연임을 해야 8년 동안 연준에 영향력을 끼칠 뿐인데 저는…… 제가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평생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으니 제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기를 머금은 한진영은 게리 챈슬러가 그랬던 것처럼 상대를 향해 다가가 말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셨죠? 좋습니다. 다시 내려오고 싶지 않을 정도로요.”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 숙였던 몸을 펴고 뒤로 뉘었다.
한진영의 활짝 웃는 얼굴에 반비례하여 게리 챈슬러의 얼굴이 구겨졌다.
처음 한진영이 방에 들어왔을 때 보여주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런 모습에 가면을 쓰고 있었던 듯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얼굴을 하고 한진영을 바라본 게리 챈슬러였다.
게리 챈슬러는 콧잔등까지 일그러뜨린 표정을 한 채로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내 자리를 뺏어 가 놓고 그렇게 재미있나?”
“뺏어 갔다느니, 뺏지 않았다느니 같은 이야기로 시간을 소비하실 생각입니까?”
한진영은 고개를 돌려 벽 한쪽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봤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입니다. 쓸데없이 감정 소모하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시고 생산적인 이야기를 하도록 하시죠.”
한진영의 말에 게리 챈슬러의 손등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화를 주체하지 못해 의자 팔걸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지훈의 가슴은 더 세차게 뛰었다.
자극받은 게리 챈슬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오히려 이런 광경을 즐기는 듯이 편안한 모습으로 이야기할 뿐이었다.
“블랙문을 인수하여 현재 세이지의 총자산은 6조 달러를 넘겼습니다.”
“내가 그게 궁금하다고 했던가?”
“궁금해하실 것 같아 이야기한 겁니다.”
“나에게 자랑하려고 이야기한 건 아니고?”
“뭐…… 그런 마음도 있었습니다. 명예회장님께서 자랑하시는 블랙문의 자산보다 세이지가 두 배 더 많은 자산을 가지게 됐다는 것을 꼭 알리고 싶어서요.”
한진영은 두 배라는 말을 하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렸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모습을 말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하게 됐다.
이대로 계속 게리 챈슬러를 자극하다가는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조지훈의 생각과 달리 한진영의 자극은 멈추지 않았다.
“조만간 법원에서 연락이 갈 겁니다. 정식으로 과거의 소송이 다시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소송의 결과는 정해져 있습니다. 명예회장님께서 보유하신 10%의 지분이 안젤라 랜스 여사님 몫으로 이전될 겁니다.”
“이제 소송이 시작된다면서 결과까지 알고 있는 건가?”
“아시지 않습니까?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다고 말입니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게리 챈슬러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진영은 그런 게리 챈슬러의 웃음에 즐거워하며 계속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지분은 저에게 귀속될 겁니다.”
“자네가 지분을 샀나?”
“네. 1억 달러에 랜스 여사님의 권리를 샀습니다.”
“하하. 1억 달러? 겨우 1억 달러에 블랙문 지분 10%를 확보한다고? 겨우 1억 달러에?”
“랜스 여사님께서 원하신 건 돈이 아니었으니까요.”
한진영의 말에 게리 챈슬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왜 소송을 깨웠는지 혹시 아십니까?”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허탈해하던 게리 챈슬러는 한진영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한진영은 게리 챈슬러의 모습에 더욱 짙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실 소송을 깨울 필요까지도 없었습니다.”
“그래. 안 그래도 그게 궁금하기는 했네. 내 지분 10%가 없어도 블랙문을 확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을 텐데 도대체 왜 쓸데없는 1억 달러까지 써가면서 그 소송을 깨운 건가?”
“블랙문을 인수하는 게 목표라면 10%의 지분까지 가질 필요가 없었지요.”
한진영의 말에 게리 챈슬러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 말은 그럼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인가?”
“네. 제가 10%의 지분을 명예회장님에게서 뺏어 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한진영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게리 챈슬러 앞에 앉아 무릎을 손으로 털어내며 말했다.
“폰지 사기로 인해 나온 벌금이 약 2,000억 달러가 된다고 하더군요.”
“설마…… 내가 벌금을 내지 못 하게 하기 위해 내 재산을 모두 뺏어오기 위해 소송을 진행했다는 건가?”
“모두 뺏어오다니요? 그게 없어도 꽤 많은 재산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가진 재산의 대부분은 바로 블랙문의 지분이네.”
쾅!
게리 챈슬러는 말을 마치고 화를 참지 못한 상태에서 팔걸이를 손으로 내리쳤다.
“정말 나를 낭떠러지로 몰아붙이기 위해서 쓸데없는 돈까지 썼다는 말인가?”
“쓸데없다니요? 저에게 가장 가치 있게 쓴 1억 달러였습니다.”
한진영은 능글거리며 게리 챈슬러를 바라봤다.
게리 챈슬러는 떨리는 손을 들어 한진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길래 이러는 거냐? 나는 널 정말로 내 후계자로까지 생각했었다. 너에게 블랙문을 맡기려고까지 생각한 게 나란 말이다.”
“그러셨습니까?”
한진영은 게리 챈슬러의 말에 입꼬리를 올리고 뉘었던 몸을 똑바로 세웠다.
그리고 게리 챈슬러가 들어 올린 손가락을 똑바로 바라본 뒤 말했다.
“그렇다면 원하시는 대로 블랙문을 제가 맡게 되었으니 그리 화내실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너…… 너…….”
“뭘 잘못하셨냐고 물으셨지요?”
한진영은 팔걸이를 잡은 채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금 전 게리 챈슬러가 매만졌던 화분으로 걸어갔다.
“저를 거름으로 쓰려한 게 첫 번째 잘못입니다.”
“뭐?”
뚝!
한진영은 조금 전 게리 챈슬러가 손등으로 어루만졌던 나뭇잎을 손으로 꺾어냈다.
게리 챈슬러는 나뭇잎에서 나는 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여전히 귀는 한진영이 하는 말을 자세히 듣기 위해 세워진 채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를 후계자로 생각하셨다고요? 그럴 리가요? 오히려 저를 이용해서 지금 제가 앉아있는 자리에 앉으려 하셨을 거라는 것을 제가 모를 거로 생각하십니까?”
뚝!
한진영은 말을 하면서 이미 말라버린 잎사귀를 계속 꺾어나갔다.
“고객을 기망하려 한 것이 두 번째 잘못입니다.”
“내가 뭘 기망했다고 말하는 건가?”
“가상화폐가 뭡니까? 블록체인이 어떻게 활용되고 그 사례는 무엇이 있습니까? 개발 진척 상황과 미래 계획은 어떻습니까? 여러 종류의 가상화폐들이 존재하지만 앞으로 미래에도 이렇게 많은 가상화폐가 존재할 것 같습니까? 만약 줄어든다면 어떤 식으로 통합되어 갈 거로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전 재산을 가상화폐에 넣은 뒤 달러로 환전할 수 없다면…… 당신은 가상화폐에 모든 재산을 넣을 생각이 있습니까?”
한진영이 고개만 돌려 게리 챈슬러를 돌아보고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나 어느 질문에도 게리 챈슬러는 대답하지 못했다.
앞에 질문은 그도 정확히 아는 것이 없으며, 뒤의 질문에는 아니라는 대답밖에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게리 챈슬러의 모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비웃음을 흘리고 다시 나뭇잎을 꺾어갔다.
“잘 모르면 모른 채로 알게 되었을 때 투자하면 되지, 모르는데도 투자를 한 건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것도 고객을 속이는 짓을 하면서까지 말입니다.”
“내가 뭘 속였다는 말인가?”
“연이율 30%! 정말 그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셨습니까?”
게리 챈슬러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한진영은 질문을 던졌다.
게리 챈슬러는 한진영의 질문에 지금까지와 달리 잔뜩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상화폐 시장이 멀쩡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거야.”
“멀쩡? 20%의 변동폭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오는 시장이 멀쩡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악재 하나에 30%가 하락했다가 호재 한 번에 100%가 오르는 시장이 고객들의 돈을 받아 투자하기 적합한 시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게리 챈슬러는 한진영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닫았다.
한진영은 등 뒤에서 아무런 대답이 나오지 않자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든 잘못이 있습니다. 블랙문이 파산 직전까지 몰리며 전 세계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애초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지요.”
한진영은 잎사귀를 꺾어내던 것을 멈췄다.
손에는 가득 죽은 잎사귀들이 들려 있었다.
한진영은 그것들을 손에 쥔 채로 게리 챈슬러에게 다가와 앉아있는 그의 품에 잎사귀들을 안겼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의자 앞에 서서 게리 챈슬러를 내려다본 채로 말했다.
“뭐 제가 재판관도 아니고…… 잘못하여 벌을 줬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이런 잘못된 상황에 저를 끼워 넣으려 한 게 제가 참지 못 할 일인 것이지요.”
“너를 끼워 넣어?”
“아니라고 하지 마십시오. 모든 일에 저를 이용하려 했다는 것을 제가 모르는 게 아니니까요.”
한진영의 말에 게리 챈슬러는 입을 살짝 떼었다가 다시 닫았다.
결과적으로 한진영을 이용한 경우는 없었지만, 한진영을 이용하려 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할 말을 잃어버린 게리 챈슬러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혹시 궁금해하실까 봐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명예회장님께서는 내일 바로 수감되실 겁니다. 법원에서 보석금을 정할 텐데 보석금이 대략 10억 달러쯤 된다고 하더군요.”
한진영의 말에 게리 챈슬러가 고개를 살며시 들어 올렸다.
한진영의 이야기를 들은 게리 챈슬러의 눈은 어느새 풀려 있었다.
조지훈은 게리 챈슬러의 눈빛을 확인하고 긴장하던 마음을 풀었다.
조금 전까지 넘실대던 분노가 이제는 더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지금 게리 챈슬러의 모습은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블랙문의 지분이 있었다면 보석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소송이 진행되며 지분은 묶인 상태이니 명예회장님께서는…… 보석금을 낼 돈을 구하지 못하실 겁니다. 10억 달러를 빌려줄 사람도 없을 테니 기대도 하시지 마시고요. 아 참.”
한진영은 돈을 빌려줄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하다 무언가를 떠올렸다.
“테라의 노아 스미스 이야기는 들으셨지요?”
한진영의 말에 게리 챈슬러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신다니 길게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노아 스미스에게 부탁하실 생각은 접어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노아 스미스는 이번 일로 얻게 된 채무를 변제하느라 꽤 많은 돈을 날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명예회장님을 위해 10억 달러를 내줄 여력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보석금을 내줄 생각도 없을 테고요.”
한진영은 마지막 말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나 비웃음이 담긴 마지막 말은 게리 챈슬러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자기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노아 스미스에게 부탁해야 하는 자기의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그래도 테라는 좀 나은 편입니다. 코인 그라운드는…… 파산하게 될 겁니다.”
“도와주지 않을 생각인가?”
“저는 자선 사업가가 아닙니다. 이유가 있어야 도와주는 데 그러기에 코인 그라운드는 마땅한 이유가 보이지 않습니다. 회사 가치의 몇 배나 많은 빚을 해결해 줘도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굳이 도와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요.”
조지훈은 한진영의 이야기를 듣고 며칠 전 한진영의 사무실로 찾아온 코인 그라운드의 타일러 버드를 떠올렸다.
그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한진영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원스 파이낸스가 파산하며 결정타를 맞은 코인 그라운드는 한 달을 버틸 여력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테라나 블랙문처럼 세이지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원한다면 모든 지분을 포기하고 물러나겠다고 이야기했다.
코인 그라운드만 살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타일러 버드였다.
그러나 한진영은 차가운 말로 타일러 버드를 매몰차게 대했다.
앞으로 금리 인상이 준비된 시장에 가상화폐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몇 년 후 다시 가상화폐 붐이 불어올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가상화폐가 무엇인지 잘 모르게는 한진영과 세이지 입장에서는 코인 그라운드의 채무까지 짊어지고 코인 그라운드를 인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타일러 버드는 눈물을 흘린 채로 한진영의 사무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연방수사국에서 코인 그라운드에 대한 범죄 사실 또한 살펴보고 있는 상황에서 한진영은 만약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보석금을 내주겠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타일러 버드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회장님을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남은 시간 너무 애쓰지 마시고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십시오. 빨리 받아들여야 마음이라도 편해지니 말입니다.”
한진영은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봤다.
약속된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미 게리 챈슬러는 이야기를 나눌 힘조차 없는지 어깨를 바닥에 닿을 듯이 떨구고 고개를 숙인 채로 땅바닥만 바라봤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동안 재미있었습니다.”
잘 지내라 혹은 다시 보자는 인사와 달리 그동안 재미있었다는 말을 남긴 한진영은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게리 챈슬러는 떠나는 한진영을 붙잡지 않았다.
그저 귓가에 재미있었다는 말만 맴돈 채로 땅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벌써 나오십니까?”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연방수사관은 생각보다 빨리 나온 한진영의 모습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장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계셔도 될 텐데…….”
“그에게 지금 현실을 알려주자는 목적을 달성해서 저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방수사관은 현실을 알려주는 목적을 달성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은 이렇게 면담을 요청한 사람의 경우 상대를 돕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활짝 웃고 있는 한진영의 표정을 보자 더욱 혼란스럽기만 한 연방수사관이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나온 마당에 억지로 다시 방으로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
연방수사관은 알겠다는 말로 대답하고 한진영을 다시 밖으로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