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두 누나에 대해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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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계셨습니까?”
“뭐, 딸이 그런 표정이면 알 수밖에 없지 않나.”
아버지이기 때문인가.
셀레나의 표정은 언제나 비슷하긴 하다만, 가레스에겐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이겠지.
“........벽, 이라고 해야 할까요.”
알베르토는 그게 좀 더 간단하면서도 종류가 다른 이야기임을 알고 있었다.
셀레나의 재능은 독보적이다.
말을 배우는 것보다도 빠르게 접한 것이 검.
귀족가의 장녀로서 수많은 것을 배우면서도 계속해서 쥐고 있던 것이 검.
포에닉스 가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걸 드러내듯, 재능과 애정과 흥미, 모든 것이 검에 치중되어있다.
그 여파인지 둘째인 티아나는 완전히 포에닉스와 역행하고 있다만.
이미 또래엔 셀레나의 상대가 없다.
성인 헌터들조차 손쉽게 이겨버릴 정도였다.
지금으로선 그녀를 이길 수 있는 건 A급 중 최상위의 헌터, 혹은 S급의 헌터일 테지.
그 때문인지, 셀레나는 현재 어떤 벽에 도달해버렸다.
“셀레나 아가씨에겐 라이벌이 없으니까요.”
셀레나라는 천재는 또래와의 ‘절차탁마’라는 것을 겪지 못하고 있다.
특유의 재능으로 인해 또래의 검사들에겐 만족할 수 없었다.
그건 보이지 않는 벽에 홀로 몰려 있는 것과 같다.
벽을 부수고 싶어도, 넘고 싶어도, 그럴 수단이나 방법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천재성으로 인한 상승욕의 상실이겠지.
물론 셀레나의 눈앞엔 알베르토가 있다.
‘힘의 사용처가 한정적’이지만 가레스 또한 존재한다.
뭣하면, 가문의 인맥으로 각 유파의 최상위 검사들을 소개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론 부족하다.
“아무리 저나 당주님처럼 ‘강한 존재’가 앞에 있어도, 막상 같은 나이대가 아니면 실감이 안 나는 법입니다. ‘당연히 차이가 난다’고 생각해버리니 말이죠.”
나이 차이가 극심하게 나는 이상, 거기선 진정한 의미의 절차탁마를 찾을 수 없다.
지금 셀레나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자신보다 강한 검사’가 아닌 ‘자신과 동등한 또래’다.
물론 셀레나는 이대로 있어도 계속해서 강해질 것이다.
넘쳐나는 재능의 뒤엔 향상이 당연하게 따라온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향상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인다면 아무리 천재라도 언젠간 역전당한다.
셀레나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진짜 강자들’에겐 닿지 못할 수 있다.
후에 나이조차 의미 없어지는 시기엔 그 격차를 되돌릴 수 없으리라.
.......이것은 분명 시간문제다.
지금도 곳곳에서, 셀레나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나이를 채우고 실력을 키우며, 점점 개화를 맞이해가고 있다.
예를 들어 그 ‘메트리 가의 삼남’처럼.
예를 들어 멀리 ‘할란드 가의 장남’처럼.
그렇기에 셀레나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알베르토와 가레스 보이지 않는 벽을 부숴줄 필요가 있었다.
“그럼........”
가레스는 알베르토의 집무실 책상 위에 걸터앉으면서 말했다.
“만약에 셀레나가, 검을 익히기 시작한 에우드와 싸워본다면?”
알베르토는 거기서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가레스가 에우드를 데려온 것에 ‘처음부터 거기까지 계산되어있음’을 깨닫는다.
“그게 목적이셨습니까.”
“지금쯤 마주했을지도 모르겠네.”
이 포에닉스의 당주라는 자는 언제나 훨씬 저 멀리를 내다 볼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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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나가 뭔가 알 수 없는 벽에 부딪힌 듯 나아가지 못하는 게 벌써 얼마나 됐을까.
오늘 내일로 검술 수업을 쉬게 된 것도, 셀레나에겐 마냥 기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모든 행동 패턴이 검에 집중되어있는 셀레나다. 휴식이란 건 검을 휘두르지 않는 시간으로도 충분했다.
그 이상으로, 지금은 그냥 쉬는 채로 보내고 싶진 않았다.
결국 스승 알베르토와 평소 수련하는 시간에 똑같이 훈련장에 찾아온다.
다만 아무리 검을 휘두른다 해도, 뭔가 갈피가 잡히지는 않았다.
당연히 셀레나도 깨달았으리라.
지금 마주한 벽은, 검을 그저 휘두르고, 새로운 검술을 배운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그렇게 답답한 상태로 하염없이 검을 휘두를 때였다.
그 소년- 얼마 전에 데려왔다던 ‘동생’이 훈련장에 찾아온 것이다.
셀레나로서는 마냥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었다.
검을 다룰 땐 되도록 방해받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에우드가 검을 들었을 때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에우드는 ‘드림랜드’ 출신이라고 했다. 자신과 다른 것을 보고 자란 소년이다.
게다가 아직 얼마 되진 않았지만 알베르토 스승님에게 가르침 받는 아이.
지금까지와는 다소 다른 이질적 존재다.
그렇기에 셀레나가 시합을 신청한 것이겠지.
사실 딱히 뭘 엄청 기대한 건 아니다.
하물며 동생(몇 살 차이인지는 기억하지 못했다.)이다. 그저 약간의 자극을 바란 것뿐.
하지만 이것은, 앞으로의 셀레나에게 있어 상당히 정답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에우드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난감했다.
그래도 셀레나와 에우드는 가짜라곤 해도 일단 ‘누나’와 ‘동생’ 사이.
지금 이것을 거절했다간 추후 더 어색해질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에우드도 방금 ‘감이 잘 안 잡힌다’라고 말했으니까.
셀레나가 거기에 신경 써서 시합을 걸어준 거라면 더욱이 거절해선 안 된다.
에우드는 셀레나에게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셀레나님.”
“응.”
에우드의 승낙에 셀레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인 후 열 걸음 정도 거리를 벌렸다.
쫑쫑거리는 걸음이 역시 티아나와 비슷했다.
다만-
스윽.
에우드에게 전해졌다.
셀레나가 검을 겨눈 순간부터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었다.
그 위압감은 드림랜드의 강력한 괴물들에게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이건 강자의 영역이었다.
“일단 승부 조건은 유그라시아 식으로.”
“........유그라시아 식이 뭔가요?”
“유효타 두 번을 먼저 따는 쪽이 승리.”
즉 상대에게 두 번 먼저 공격하면 이긴다는 것. 아무래도 유그라시아 식이라는 게 이 나라의 경기에서 사용하는 룰인가 싶었다.
에우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셀레나는 옷에 넣은 무언가를 꺼냈다.
철색의 작은 동전- 유그라시아의 화폐였다.
“시작은 이게 떨어지고서부터.”
그 말을 전하곤 곧바로 동전을 하늘로 튕긴다.
티이잉-!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동전.
곧바로 동전은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태앵-!
파아아아아아앙!!
동전이 떨어진 즉시였다.
셀레나 쪽에서 먼저 돌격했다.
순식간에 근접한 쌍방. 에우드는 그 속도에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타아아아악!!
목검과 목검이 부딪친다.
갑작스런 공격에 에우드의 검 균형이 순간 무너졌다.
그것을 노린 셀레나의 정확한 공격이 에우드의 상단을 순식간에 파고든다.
피하려 했지만 그 속도는 상당.
촤아아아악!!
멈칫한 순간, 에우드의 목 옆으로 단숨에 유효타가 먹혀버렸다.
“-!!!”
그때, 1타를 딴 셀레나는 마음속으로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을 했다.
에우드가 기대한 만큼 강하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물론 기대 자체가 또 크진 않았으니까, 셀레나로선 별로 실망할 것은 없다.
.......그렇다면 오래 끌 필요는 없다.
셀레나는 바로 승부를 내기 위해 재차 공세를 쥐려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읏?!?!”
셀레나가 에우드에게 유효타를 먹인 그 순간부터 갑작스레 공기가 뒤집혔다.
파아아아앙!!
그와 동시.
셀레나의 이어지던 공격을, 에우드의 목검이 급격히 튕겨냈다.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에우드의 엄청난 반응속도에, 셀레나는 순간 놀란 눈치를 보였다.
하지만 곧바로 기세를 거두지 않고 연속적인 찌르기 공격을 가한다.
촤작- 촤자자자자자자자자작!!!
엄청난 속도로 들이닥치는 공격.
한 번 검이 내질러지는 순간 이미 다른 곳에 검이 내질러진다. 그것이 고속으로 반복된다.
일순 공격이 겹치듯 그야말로 화살의 무더기와도 같은 연격이었다.
태앵-! 카가가가가가가가각!!!
‘뭐라고?!’
하지만, 유효타를 내줬던 것이 거짓말처럼 에우드는 그 연속 찌르기를 순식간에 막아냈다.
곧장 목검을 휘둘러 반격. 셀레나와 에우드 사이에 3합의 충돌이 급격히 벌어졌다.
그리고 3합 째의 검이 멎는 즉시 셀레나는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촤아아악!!
.........
‘버텼어? 아니, 반격까지......?!’
방금 벌어진 맹공.......
셀레나가 이제까지 해온 대로라면 그대로 승부를 끝냈어야 할 공격이다.
그 공세를 버틸 수 있는 이는 또래 중에서도 거의 없다. A급 헌터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에우드는 유효타를 한 번 맞은 뒤로부턴, 단 한 합의 공격도 용납지 않았다.
에우드가 검을 잘 다룬다-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셀레나의 공격을 막는 검술은 이류다. 아직 어설픔이 존재한다.
즉........ 에우드 본인이 순수하게 강한 것이다.
이건 같은 또래와는 전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와 신체능력이다.
셀레나는 검을 다시 바로 쥐었다.
예상 못 했지만 이대로 휘둘릴 수는 없다.
공세를 다시 붙잡아 유효타를 노려야 한다.
“-!!”
그 순간, 셀레나가 행동하기도 전에 눈앞에서 에우드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니다. 사라진 게 아니었다.
에우드는 단숨에 사각으로 치고 들어왔다.
파아아아아앙!!!
좌측 셀레나의 시야가 안 닿는 쪽으로 엄청난 속도로 근접.
사각을 재빨리 눈치채 셀레나는 검을 휘둘러 공격을 막아낸다.
퍼어어어어억!!
그 위력은 마치 검술에 맞대응하기보단 ‘거대한 주먹’을 상대하는 충격이었다.
그러자 에우드는 자신의 몸을 급격히 숙였다. 그리곤 엄청난 속도의 하단 발차기.
휘리리리릭!!
여기까지 오자 셀레나는 뒤늦게 깨닫는다.
이 ‘동생’은 결코 검사가 아니다.
분명 알베르토가 가르쳐준 검술은 들어가 있다.
여러 유파가 뒤섞여 있음은 알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걸 휘두르는 형태가 아예 보지도 못한 것들투성이였다.
정석은 단 한 조각도 없다.
사교계에서 보였다간 곧바로 ‘야만한 싸움’이라 불릴 태세다.
목검을 들고 있는 것조차 ‘둔기’ 내지 ‘공격수단’을 추가한 것뿐.
에우드의 기술은 절대 검술의 범주가 아니다.
셀레나는 에우드의 하단공격을 짧은 점프로 피해 신속히 검을 내리꽂았다.
하지만 하단으로 숙였던 에우드의 몸은 어느새 뒤로 빠져 있다.
파아아아앙!
그리고 셀레나가 내리찍는 목검을 빗겨 쳐낸다.
에우드의 신체 속도는 셀레나의 검과 맞먹을 정도로 빨랐다.
“........너, 뭐야.....?!”
셀레나는 완전히 공기가 반전된 에우드를 향해 묻는다.
물론 검을 휘두르는 것을 절대 멈추지 않는다.
이대로 공세를 빼앗기면 안 된다. 베기의 연격을 에우드를 향해 광란으로 휘둘러간다.
촤자자자자자작!!
휘리리리리리릭!!
그럼에도, 에우드는 동물과도 같이 그 공격을 피해간다.
분명, 분명-
이걸 피하는 데에만 해도 벅차야 하는데!
“큭-!”
셀레나가 아주 조금 공격에 초조해져 버린 그때-
촤아아아악!!
셀레나의 뺨이 에우드의 목검에 긁혔다. 급속도로 들어온 찌르기는, 셀레나도 일시적으로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유효타로 확정되는 일격이었다.
에우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셀레나가 뒤늦게 뺨 끝으로 눈을 돌렸을 땐, 이미 자신에게 파고드는 에우드의 검이 보였다. 이어지는 연격. 정확히 숨통을 노려오는 공격이다.
셀레나는 자신의 전신의 속도를 끌어올려 거기에 대응해 목검을 휘두른다.
방어- 아니, 지금 방어했다간 방어하는 채로 뚫린다.
에우드의 눈을 보자 지금 그가 오로지 공격만을 바라보고 있음을 직감한다.
반격에 대해선 전혀 고려치 않는다. 그저 상대에게 이빨을 꽂기만을 노린다.
그 공격에 셀레나의 위기경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본능적으로 알린다.
-공격을 교차시켜야 한다.
막으려고 행동하는 순간 막는 행동 채로 돌파당한다. 그렇다면 서로 자멸을 노려서라도 공격을 가해야 한다.
“-하아아아압!!”
이 순간 셀레나는, 수년 만에 처음으로 전력으로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으리라.
촤아아악-!!
그렇지만 닿지 못했다.
격진하던 에우드의 몸이, 순식간에 회오리치듯 움직여 셀레나의 일격을 회피했다.
‘말도 안 돼!?’
셀레나가 아직 목검을 거두기 전임에도, 이미 에우드의 목검이 다시 셀레나를 향하고 있다.
늦었다. 이건 당연히 안면에 유효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휘리리리릭!!
“꺅........!”
다가오는 검의 압력에 셀레나가 비명을 지르기 직전이었다.
.......토옥.
에우드는 셀레나의 코앞에서 슬쩍 목검을 멈췄다.
“.......어, 어?”
방금까지 에우드에게서 몰려왔던 압박이,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괜, 괜찮으세요........?”
셀레나의 귀로, 무사를 물어보는 동생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