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머더 메이지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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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결국 사버렸어, 이 언니 진짜! 낭비하지 마! 아빠한테 이를 거야, 정말!”
연금술 재료가 가득한 가게에서, 티아나는 아까 일을 떠올렸는지 다시 역정을 냈다.
셀레나가 여지도 없이 사버린 티아나 전용 검술 부츠 때문이었다.
셀레나는 대단하게도 티아나의 옷이나 신발 사이즈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는 것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대략적인 길이 정보를 읽을 수 있다나.
심지어 에우드의 사이즈도 알고 있었다.
에우드는 그것이 로로나와 비슷한 눈임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로로나 또한 뭔가를 볼 수 있는 눈이었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재료 산다고 가지고 온 용돈 다 쓰는 티아나가 더 낭비.”
“이건 필요경비! 어쩔 수 없잖아, 희귀한 재료는 비싼걸!”
“필요 없는 약재들도 계속 사는 거 모를 줄 알고.”
“미리 준비해두는 거거든?! 썩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에우드도 연금술 가르쳐 줄 거니까 다~ 필요하다, 뭐!”
“어라, 거기서 나.......?”
갑자기 자신에게 돌아온 화살에 에우드는 흠칫 놀랐다.
잠깐 창밖을 슬쩍 보고 있었기에 더 놀라버렸다.
셀레나는 에우드 옆까지 의자를 끌고 오더니, 어느새 등받이가 아니라 에우드를 기대고 있었다. 웨이브 머리가 에우드의 목을 따끈따끈하게 간지럽힌다.
셀레나로선 연금술에 대해선 딱히 큰 흥미를 느끼진 않기에, 에우드에게 기대 막대사탕을 핥는 것이다.
사실 셀레나도 엘리리도 꽤나 지쳐 있었다.
둘 다 일반인하곤 전혀 다른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현재 가게는 티아나가 정한 마지막 루트.
그 이전까지 벌써 열 곳 정도는 돌고 온 상황이니까.
“아니 뭐........ 작업보단 낫긴 하죠. 아무렴. ........후아암.”
엘리리가 점원에게 받은 시원한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지친 몸에 냉기가 스며들자 편안한 하품을 쏟는다.
에우드도 설마 이 정도까지 오래 돌아다닐 줄은 몰랐다.
어쩐지 광장에서 순서를 정하는 데에 오래 걸린다 싶었다만.
체력이 많은 에우드라 해도 가게를 이만큼 돌면 지치긴 한다.
정신적인 이야기로 말이다.
그래도 스트레스에 익숙한 에우드이기에 그리 큰 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러니까 내가 되도록 안 따라가려 했던 거야.”
새로이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
셀레나는 처음부터 티아나의 쇼핑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이전에 몇 번 따라갔다가 된통 당했다고.
“그, 그래도! 이걸로 이제 끝이거든?! 나도 살 건 다 골랐거든?! 자! 계산해주세요!!”
자기도 좀 찔리기는 하는지, 티아나가 말을 더듬는다.
이어서 카운터로 쫑쫑쫑 걸어간 티아나는 사려는 물품이 적힌 종이를 내려놨다.
“그래그래, 잠깐만 기다리렴.”
티아나가 근 1년간 상당한 단골이었던 덕에, 이 가게 사람들은 티아나와 상당히 친했다.
게다가 셀레나도 가끔씩 함께 왔었나 보다. 물론 셀레나는 올 때마다 탈력적으로(표정만이 아닌 체력적으로도) 있던 모양이지만.
덕분에 셀레나가 에우드에게 붙어있는 건 점원들에게는 꽤 신기한 모습인 듯하다.
가게의 점장인 할머니는 티아나와 셀레나를 정말 귀여워했다.
마치 손주를 봐주는 것 같았을까. 가게 사람들도 비슷하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사실 비단 이 가게가 아니더라도, 에우드의 두 누나는 거리에서 꽤 인기가 많다.
아까까지 돌아다니면서 에우드는 그것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단골이라던가, 또 도시를 다스리는 귀족 일가라던가.
그런 신분 관계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였다.
포에닉스의 두 아가씨는 이 도시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도련님도, 나중에 연금술을 배우게 되면 모르는 걸 물어보렴.”
자신에게도 누나들과 똑같이 대해주는 것에, 에우드는 살짝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이라 불리는 건 여전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옆에서 에우드에게 기대던 셀레나가 막대사탕을 입에서 쏙 뺐다.
“아니야, 할머니. 에우드는, 이제부터 계속 나랑 검의 길을 걸을 거야.”
“어머, 그랬니?”
“응응. 에우드는 정말 강해. 나보다 강해. 썩힐 수 없어.”
에우드에게 기댔던 몸을 일으키며 셀레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셀레나의 검술 실력은 가게 사람들도 알고 있었는지, 그 말에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만 티아나는 셀레나에게로 눈을 부릅뜬다.
“언니 마음대로 데려가지 마! 어제까지 에우드랑 제대로 말도 안 한 주제에!”
“이제부터 얘기하면 되는걸. 검으로.”
“에우드는 연금술의 길을 걷는 게 좋아! 내가 잘 가르쳐줄 테니까!”
새 남동생의 길에 대해 셀레나와 티아나가 또 티격태격.
“아이참, 두 분 다 가게에서는 소란 피우시면 안 되죠! .......어?”
그렇게 엘리리가 서둘러 두 소녀의 말싸움을 정리하는 도중이었다.
에우드는 조용히 다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간간히 있던 행동에 엘리리는 그것을 살짝 물어본다.
“에우드 도련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러자 에우드는 깜짝 놀란 듯 엘리리 쪽을 봤다.
곧바로 고개를 붕붕 젓는다.
“아뇨. ........아무 일도 아니에요.”
에우드는 살짝 모호하다는 듯 답했다.
엘리리가 거기에 갸웃할 여유는 별로 없었다.
“얘, 에우드! 에우드는 어느 쪽이야?!”
“갸악!?”
티아나가 갑자기 에우드를 붙잡고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셀레나도 참 할 말 많아 보이는 표정으로 에우드에게 쫑쫑 걸어온다.
“에우드는 연금술에 쓸 시간 없어. 나랑 같이 검을 휘둘러야지.”
“검은 검이고! 연금술은 연금술이지! 연금술에 얼마나 재밌는 게 많은데! 사탕도 많이 만들 수 있고!”
결국 또 에우드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덕에, 가게 점원들까지도 두 자매를 말려간다.
점장 할머니는 그런 꼬마아이들의 행동이 어찌나 귀엽게 보인 건지.
“다들 친하게 지내네.”라고 흐뭇하게 말하며 티아나가 사기로 한 재료들을 가져온다.
나중에 들어보자, 덤도 엄청 가져왔다고 한다.
“난 둘 다 좋은데.......”
“에우드, 기각이야.”
“하나 고르라니깐!”
“히이이이........”
두 누나의 닦달에, 에우드도 난감히 말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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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 재료들이 많다 보니 급하지 않은 것들은 가게에서 옮겨주기로 했다.
그에 더해, 그 전에 쇼핑한 다른 물건들도 함께 옮겨주겠다고 제안했다.
구입한 물건이 의외로 많았기에 정말 고마운 이야기였다.
또 배송지가 포에닉스 저택인 만큼 자택 위치를 헷갈릴 일도 없으리라. 이 연금술 가게에선 자주 이렇게 도움을 준다고.
처음엔 티아나가 산더미처럼 쇼핑을 해오는 걸 보며, 점장 할머니가 도와주기로 했다던가.
정확히는 티아나의 막무가내에 동행하는 사람들이 힘들까 봐 제안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도 있어서, 티아나는 매번 이 가게를 마지막에 오는 것이다.
의외로 점원들에겐 포에닉스와 가게의 유리한 커넥션이 생겨 딱히 나쁜 반응은 없는 듯했다. 오히려 배달을 갈 때마다 저택의 메이드나 집사들과 티 타임을 한 번 가진다나.
덕분에 점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합법적인 다과 휴식을 취하기 위해 당번을 자처하는 중이라 한다.
포에닉스의 수제 다과는 점원들에게 평가가 매우 높았다.
하긴, 매디와 마리가 만들어주는 다과는 미각이 약한 에우드도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배송을 부탁하고 상당히 가볍게 거리로 나왔다.
오늘 목표로 삼은 건 전부 끝이 났다. 사실상 남은 건 돌아가는 일 정도.
그 뒤로는 셀레나와 티아나가 바라는 곳을 노 다니는 게 대부분이었다.
거리의 악단 공연이라던가, 비둘기의 모이를 준다던가, 여러 볼거리를 찾아다녔다.
하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났다.
처음 도착했을 땐 정오였는데, 어느덧 해가 내려가기 직전의 움직임이 보인다. 햇빛의 기승도 거의 줄었다.
에우드는 드림랜드에서 나온 지 3주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런 시간에 따른 변화가 재밌었다.
“아마 1시간 정도 후면 곧 마차가 올 테니까요.”
엘리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셀레나에게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고파.”
셀레나가 챙겨왔던 간식은 다 먹은 지 오래였다.
하긴, 또 혼자 먹지 않고 나눠 먹었으니 당연할 것이다.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며 티아나가 툴툴거린다.
“어휴, 언니는 맨날 배고프대. 못 살-”
꼬르르르륵.
““.........””
“뭐, 뭐! 왜, 뭐!!”
출처가 자신인 소리에, 티아나는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언성을 높였다.
그래도 셀레나도 언니는 언니. 여동생의 공복 소리에 대해선 딱히 놀리지 않는다.
음식과 검술. 그리고 공복에 대해선 의외로 배려심 많은 맏언니다.
“그럼 뭐라도 먹으러 갈까요? 여기에 페리아랑 제가 같이 비번일 때 자주 가는 가게가 있어요. 살짝 허기를 채우는 데엔 적당할 거예요.”
엘리리는 페리아하고도 거리에 자주 온다고 한다.
덕분에 음식점이라던가 적당한 놀 곳은 다 파악하고 있었다.
오늘은 행선지들이 행선지들인지라 그 정보력을 피력할 기회가 없었다고.
“엘리리, 거기에 맛있는 거 있어?”
“으음- 이건 좀 소박한 메뉴긴 하지만, 저랑 페리아는 소시지 야채 꼬치 구이를 가장 추천하는데요?”
“갈래, 갈래.”
멍하니 있던 셀레나의 눈이 반짝.
아무래도 소시지 야채 꼬치 구이라는 게 취향에 딱 꽂혔나 보다.
그렇게 엘리리가 포에닉스 남매를 안내하려 할 때였다.
살짝 멀리서 마차 소리가 들려왔다.
“.......어? 잠깐잠깐, 지금 오는 거 우리 집 마차인데?”
티아나의 말에 모두 뒤를 돌아보자, 아침에 탔던 마차가 이쪽으로 향해오고 있었다.
마차를 몰고 있는 포에닉스의 마부는 이쪽을 보더니 매우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셀레나님, 티아나님, 에우드님~!”
마부- 헤기가 반가운 목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곧바로 마차가 네 사람 앞 가도에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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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기, 무슨 일이에요? 혹시 제가 돌아가는 시간을 잘못 말했었나?”
분명 방금 이야기 나눴듯 아직 한 시간이 남았을 텐데.
그런데 이리도 일찍 온 것에 엘리리는 혹여나 실수했나 싶어 기억을 되새겨본다.
“아뇨, 아뇨. 저희가 빨리 온 거 맞습니다.”
“‘저희’?”
그러자 마차의 문이 열렸다. 여기서 ‘저희’의 의미가 뭔지 알 수 있었다.
안에서 나온 건 메이드인 매디였다.
“세 분 다 잘 놀고 계셨나요, 혹시나 했는데 딱 찾았네요.”
“매디!”
아무래도 매디가 예측한 동선에 따라 마차를 몬듯하다.
들어보니, 매디는 장 보기를 위해 나왔다고 한다.
사실 식재라던가 자재들은 항상 포에닉스 저택 내에 구비되어있다.
그러나 이번엔 원정 준비를 하다 보니, 신선도가 중요한 재료의 구비가 조금 꼬였다고.
또 낮 동안의 원정 준비 중 필요 자재들이 추가로 발생하였다.
덕분에 매디가 직접 주문하러 온 것이다.
어차피 슬슬 포에닉스 아이들을 데려와야 했던 시간.
덕분에 헤기의 도움을 받아 마차로 함께 올 수 있었다.
마차 자체의 크기가 있다 보니 매디 한 명 추가된다고 문제일 건 없었고.
“걱정하지 마시고 더 놀고 계세요. 저도 일 때문에 여러 곳을 보고 올 거니까요.”
“그럼 같이 다닐까? 주문하는 거 나도 도와줄게!”
티아나는 곧바로 뒤를 돌아 에우드와 셀레나를 본다.
“여기 힘쟁이들도 둘 있어!”
“힘쟁이라니요....... 에이, 티아나님. 셀레나님이 배고파 보이시는데. 저 꽤 여러 곳을 다닐 거라 못 버티실걸요?”
티아나의 귀여운 배려에 매디가 정중히 거절한다.
매디가 여러 곳을 다닌다는 소리에 셀레나도 “.......그럼 그냥 간식 먹으러 갈래.”라며 천천히 의견을 피력했다.
“그럼 모두 이따가 봐요. 헤기, 연마재 여분부터 먼저 사야 하니까-”
그리고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야 매디는 깨닫는다.
에우드가, 아까부터 전혀 말이 없었다.
대화에 끼지 않은 채, 에우드는 계속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나 무서운 눈으로.
“......에, 에우드님?”
“........”
매디는 그 무서운 분위기에 서둘러 에우드를 부르려 했다.
---------촤아아아아악!!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 건 바로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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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매디가 눈을 돌리자마자 보인 것은 매섭게 날아오는 나이프였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매디는 깨닫는다. 날아온 여섯 자루- 그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인원의 수라는 것을.
모든 나이프가 각각의 인원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습격. 암살.
그리고 죽음.
순식간에 자신의 이마까지 날아온 나이프에, 매디는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 “죽었다.”라는 신체의 경보가 뒤늦게 울리고서야 매디는 현실을 깨달으리라.
하지만.
..........카가가가가가아아아아앙!!
채애앵!
탱그라아아앙-!
“........어, 어!?”
나이프는 닿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던 나이프들이 가도 위에 우수수 떨어졌다.
분명 닿기 직전이었던 게 맞다.
그런데 대처할 수 없는 속도였음에도 나이프는 바닥을 구르고 있다.
누군가 나이프를 막아낸 것이다.
엘리리는 아니다.
뒤늦게 뽑힌 소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고 있었으니까.
매디는 그제야, 이 사태에 대응한 게 누구인지를 알게 됐다.
막은 건 다름 아닌 에우드였다.
그것도 무기 하나 없는 맨손으로.
“히, 히이익........!?”
마차에 앉아있던 마부, 헤기는 온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이변을 감지한 말들 또한 울음소리를 내며 날뛰었다.
티아나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한다.
셀레나는 이미 적의를 띄며 티아나와 에우드의 앞에 섰다.
그렇게 혼란이 몰려오기 시작할 때, 에우드는 나이프가 날아온 건물의 옥상을 바라봤다.
“너였냐.”
아까부터 조금씩 느낀 살기의 정체를 향해 소년도 똑같이 살기를 번뜩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