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회
정원탑132.
학생회실에는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피르티 말로는 학생회 멤버는 다수라고 들었는데.
에우드와 드로와가 거기에 신기함을 느끼며, 기웃기웃 주변을 둘러본다.
“다들 강의도 있고. 업무도 있고. 휴식시간도 있고. 항상 여기에 박혀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지. 피르티도 잠깐 교수 연구실 측을 돌고 있다.”
드로와가 방금 피르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모양이다.
드로와는 살짝 부끄러워하며 에우드 쪽에 붙었다. 가림막으로 쓰려 한 걸까.
그보다, 정작 하워드는 휴식시간하고는 상당히 멀어 보인다만.
거기서 딱 보자 느껴지는 것이-
‘이 사람, 아버지처럼 자기가 가장 열심히 하는 타입이야.’
에우드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가레스였다.
가레스도 항상 업무에 치일 때가 많았으니까.
그나마 조안과 알베르토가 일을 도와주긴 했지만, 한계는 있다.
‘황금의 기사’라는 이름 앞으로 오는 일은, 오로지 가레스만이 처리할 수 있고.
또 가레스는 자기 일 때문에 자기 사람이 힘들어하는 걸 보기 싫어한다. 덕분에 업무가 겹겹이 쌓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저번에 라다루스가 그랬었지.
하워드도 일반 학생들을 위해 학생회장직을 맡았다고.
10대 귀족, 할란드 가문의 자제이니 말이다.
원래라면, 지금쯤 다른 귀족 아이처럼 파벌을 만들며 지냈을 수도 있다.
게다가 할란드 또한 라인으로는 ‘메트리 세력권’이다.
메트리 세력권인 10대 귀족은, ‘할란드’와 ‘라그나릴’.
어쩌면 하워드는, 트루스와 공동전선을 펼쳤을지도 모르는 인물인 거다. 라다루스처럼 그냥 따로 활동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런 걸 내려놓고 학생회장이 되었다는 건, 그의 됨됨이를 볼 수 있는 요소였으리라.
“-이걸로 서류가 수리되었다. 내일 공식적으로 너희는 파벌이 될 거다.”
악시우스를 책상에서 밀어낸 후, 하워드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는 것은 무언가 가득 든 목재함.
에우드가 살짝 보자, 수많은 열쇠가 있었다.
“자, 받아가도록. 미리 들어가 보는 게 나을 테지. 에우드, 아지트의 위치는 알고 있나?”
“아, 넵.”
이전에 빌렸던 불사조 장식의 열쇠.
에우드는 그것을 하워드에게서 받았다.
“아마 정리해야 할 것도 많을 거다. 20년 전 가레스님이 사용하던 장소니까. 너희 남매가 가장 잘 알다시피, 그분이라면 정말로 적당히 쓰다 나왔을 수도 있으니.”
“푸하하핫! 가레스님 적당주의니깐!”
하워드의 말에 악시우스가 크게 뿜어버렸다.
에우드도 차마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
가뜩이나 가구도 없고.
지금 당장도 들어갔다간 콜록콜록에 벌레벌레 러쉬를 받을 것이다.
다만- 적당주의라.
이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즉.......
“하워드 회장님하고 악시우스 선배도 아버지를 뵌 적이 있었던 건가요?”
“-물론 알고 있고말고.”
하워드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아카데미 입학 전에는, 가레스님의 업무차 가끔씩 뵈었으니까. 덕분에 여러 이야기를 들어왔지. 세력권 때문에, 많이 뵈지는 못했지만.”
“나도, 하워드랑 비슷하게 몇 번.”
에우드가 포에닉스 저택에 왔을 땐, 이미 하워드와 악시우스가 이곳의 재학생이었을 테니까.
에우드가 모르는 것도 어쩔 수 없으리라.
“그런데 분명 예전엔 포에닉스 아지트로 가는 약도가 있었던 거 같은데. 이상하군. ......뭐, 위치는 알고 있다고 하니 상관없나.”
하워드는 아까의 목재함을 뒤돌아보며 살짝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아지트에 갔다 온 건 학생회장에게 비밀이었다. 게다가 약도는 지금 에우드가 가지고 있다.
에우드는 말실수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악시우스는 하워드가 방금 받은 서류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어라.......? 셀레나양이나 티아나양이 아니라, 에우드군이 리더로 되는 거구나!”
“그건- ........형식적인 거지만요.”
“아하하, 떠밀리셨죠, 에우드님.”
파벌 리더를 적는 칸에는, 두 누나가 아닌 에우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떠밀렸다는 드로와 말대로, 에우드로선 의도한 건 아니었다.
원래라면 처음 학생회 쪽에 불릴 때처럼, 셀레나가 리더역을 맡는 것이 맞겠지만.......
(“솔직히 리더 역은 귀찮은데....... 자, 티아나의 턴.”)
(“잉?! 언니, 나한테 미루기야?!”)
(“나는 여동생에게도 기회를 줄 줄 아는 언니야.”)
셀레나가 그걸 귀찮다고 해버렸다.
그렇다고 티아나가 맡자니, 티아나 본인 왈 무가 파벌의 리더는 가장 무력이 강한 인물이 해야 한다고 일축.
그렇게 대화가 흐르자-
(““역시, 막둥이가 하자.””)
(“엑.”)
어느새 두 누나의 시선이 에우드 쪽으로 향한 것이다.
플로라 쪽에서도, 파벌 리더에 이름을 올리는 건 에우드가 더 좋다고 말을 더했다.
(“오늘 신규 멤버를 직접 선언하신 만큼, 중책은 지고 계셔야 해요, 에우드님~!”)
아나트를 끌어들일 때, 에우드의 선언이 컸으니까.
파벌 이야기를 할 때의 플로라는, 의외로 가차 없는 면이 많았다. 상인으로서 공과 사를 지킬 때 같았을까.
어쨌든 그런 식으로 에우드는 파벌 리더가 되버렸다.
물론 말만 리더고, 실제론 삼남매가 함께 리더역을 수행할 것이다. 이른바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해야겠지.
악시우스는 삼남매의 상황이 재밌다는 듯 킥킥 웃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내 쪽에선 어제 일로도 할 말은 많다만. 포에닉스 파벌. 아니, 메트리 파벌도 그렇고. 특히 너희 둘- 광견이든 악마든 다 매년 난리를 치니........”
하워드가 어제 콜로세움에서 있던 일을 말했다.
당연히 학생회장인 만큼, 보고는 다 받았겠지. 거기에 아나트가 뭐라 반박하려는 순간이었다.
“그건 명백히 앨리스 가름 쪽의 잘못이에요. 먼저 건든 것도, 먼저 막말한 것도 그쪽이었고.”
“.......에우드.”
“아나트 선배한테 뭐라 하기 전에, 트루스 쪽한테 말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에우드가 아나트의 앞에 나서 말하자, 아나트는 빨개져서 입을 꼭 다물어버렸다.
하워드는 잠시 침묵한 후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피해는 바닥 조금 손상된 거 말곤 없으니 딱히 크게 뭐라곤 안 하겠다만.”
그런데 잭스의 기절은 피해로 치지 않는 걸까.
피해 보고에 어느새 쏙 빠져 있었다.
“하아........ 이쪽도 저쪽도 말썽을 피우니까. 다들 라다루스 정도로 얌전하면 정말 고마울 텐데.”
“그러니까 말이야, 하워드 말이 맞아. 포에닉스도 메트리도. 정말, 신입생 파벌들이 학기 초부터 난리도 아니라니깐?”
“야, 네놈이 말할 처지는 아니지.”
악시우스는 하워드에게 큭큭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만 얼마 있지 않아, 악시우스는 슬쩍 문 쪽으로 향해갔다.
“뭐, 그럼 난 말할 건 아까 다 말했고. 일단 먼저 돌아가도록 할게, 하워드. 네 일을 계속 방해하기도 그렇고. .......‘얘기했던 건’ 좀 생각해주고.”
“그래, 제발 빨리 돌아가라. 너 때문에 일을 진행하는 속도가 반절로 줄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 에우드군. 드로와양. 그리고-”
악시우스는 아나트 쪽으로 싱긋 웃었다.
“아나트양도. 잭스한테는 조금 살살 대해줘?”
“그 망할 오빠 일은 됐습니다, 악시우스님. 참견 마세요. 다음 주 파벌 대전에나 신경 쓰시죠.”
“아하하, 미안미안!”
가볍게 사과를 말하곤, 악시우스는 학생회실 밖으로 나갔다.
“......하아.”
“아나트님?”
악시우스가 나간 후, 아나트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왜 뜬금없이 악시우스가 여기 있던 거냐고.......”
“아나트님, 악시우스님이랑 무슨 일 있으셨던 건가요......?”
드로와가 걱정스레 아나트를 봤다.
“그리피너 가문이 예전에 토르랑이랑 사업차 만난 적이 있어서. ......어렸을 때, 저택에서 가끔 마주쳤었어. 하아, 여전히 저 사람은 거리감 어정쩡해서 싫다고.”
“아, 악시우스 선배하곤 꽤 오래 알고 계셨던 거군요, 아나트 선배.”
“애초에 아카데미에 있으면 결국 서로 알고 지낼 수밖에 없다고. 좋든 싫든.”
그건 참, 학교라는 것의 어쩔 수 없는 점일까.
에우드가 쓴웃음으로 보자, 아나트는 휙 고개 돌렸다.
.......여전히 아나트의 얼굴은 약간 빨개져 있다.
하워드는 방금 받은 서류를 정리한 후, 에우드에게 여러 가지를 말했다.
리더로서 들어야할 간단한 파벌 수칙이라던가.
연구 자료들도 제출해야지, 나중에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던가.
제발, 말 안 들을 건 알지만, 사건사고는 자제해달라는 말이라거나.
그런 주의사항들을 말한 후, 그것들을 적은 서류를 에우드에게 전한다.
“-그보다 에우드. 오늘 더 들어야 할 강의는 있나?”
“강의인가요? 아뇨, 오늘 강의는 모두 끝났어요.”
“그렇군. 딱 좋은 타이밍이다. 그럼 이쪽으로 한 번 가도록.”
하워드는 자신의 책상에 있던 한 쪽지를 에우드에게 건넸다.
“각 파벌 리더들은 모두 한 번씩 들르게 되는 장소다. 가볍게 생각하고 다녀오면 될 거다.”
쪽지를 펼치자, 거기엔 작은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리퀴아의 약도하곤 꽤 차이 나는 정교하고 간결한 약도였다.
하워드가 직접 그린 걸까.
“하워드님은 예전부터 그림에 상당한 소질이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드로와가 그것을 에우드에게 작은 목소리로 전한다.
다만 하워드에게 또 들렸던 건지. 하워드는 조금 멋쩍게 헛기침을 냈다.
“그런데 다녀오라니........ 여기에 뭔가 있는 건가요?”
“있긴 있지. 뭐, 별 건 아니다. 그냥 좀 ‘괴짜 같은 사람’이 있을 뿐.”
“괴짜 같은 사람?”
“가보면 안다. 위험한 건 아니니까, 걱정 말고. 그냥 적당히 이야기하고 오면 돼.”
누군가를 만나고 와야 한다는 건 확실한지.
다만 하워드의 태도로 봐선, ‘정말로 적당히’면 되는 걸까. 돌려 말하는 것도 아닌 거 같았다.
일단 약도에 적힌 곳으로 가는 건 리더 혼자라고.
누나들이 리더역을 미루자마자 이렇게 일이 생기다니. 에우드는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하워드는 학생회실에서 나가려 하던 세 사람을 잠깐 불러세웠다. 정확히는, 에우드를 불러세운 거였다.
“이건 에우드. 너희 가문의 헌터........ 투구의 난쟁이에 관해서다.”
그 이름에 에우드가 잠시 긴장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최대한 표정을 감추고 하워드를 바라본다.
“나중에 저택에 돌아갈 때, 그와 만나면 말해주지 않겠나.”
하지만 걱정과 달리, 하워드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3년 전에, 우리 헌터들을 구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한 명은 은퇴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남은 둘은 여전히 우리 가문을 위해 힘 써주고 있다.”
그리고 고개 숙여 정갈하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무덤 동굴에서 있던 이야기다.
에우드와 알베르토가 처음으로 구했던 3명의 헌터- 그들은 할란드 가문이었으니까.
은퇴를 한 건 분명 팔이 잘렸던 헌터를 말하는 거겠지.
“조력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학생회 이후부터, 내 쪽에선 포에닉스 가문과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으니. 이렇게밖에 감사를 전할 수가 없군.”
사실 할란드 가문의 감사 인사는, 이미 3년 전 공식적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가레스와 알베르토가 그것을 직접 받고 왔다.
하지만 하워드는, 자신의 감사 인사 또한 꼭 필요하다 여긴 것이다.
에우드는 이 하워드란 남자가 정말로 성실한 성격임을 실감했다.
“되도록, 투구의 난쟁이와 마주하고 꼭 인사하고 싶었는데. 요 3년 쉽사리 접촉할 수가 없더군.”
당연하다. 정체를 감추는 걸 전제로 했었으니까.
헌터 활동 이외의 외부 행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 하워드의 눈앞에 투구의 난쟁이가 있지만.......
“많이 바쁜 몸이니까요, 투구의 난쟁이는.”
“내 말이 그거다. 그렇기에, SS급의 힘을 인정받은 거겠지. 듣기론, 이번엔 잠시 고향에 다녀온다고 했나.”
“네, 한동안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그게 현재 투구의 난쟁이의 ‘형식적인 행적’이다.
투구의 난쟁이는 한동안 휴가를 받아, 먼 고향에 다녀오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어쨌든....... 나중에 포에닉스 저택에 돌아오면, 꼭 인사를 전해줬으면 한다.”
피곤했던 표정의 하워드가 감사를 담아 웃었다.
엄격한 모습과는 반대로, 의외로 그 속내는 나잇대 소년의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꼭 전할게요.”
물론, 이미 그 인사는 투구의 난쟁이에게 전해졌다.
* * *
이후 밖으로 나온 후, 에우드는 하워드가 말한 곳을 다녀오려 했다.
“그럼 드로와, 아나트 선배, 열쇠하고 이 주의문 서류, 잠시 부탁드릴게요.”
“네, 에우드님!”
드로와가 나서서 에우드에게서 그것들을 힘차게 받았다.
“다녀와, 에우드. .......근데 대체 어디로 가라는 거지? 에우드, 잠깐 아까 약도 좀 보여줄래?”
“네. 여기 있어요.”
에우드는 주머니에 넣었던 약도를 아나트에게 건넸다.
“여기....... 정원탑이네?”
“정원탑?”
“저기, 저~ 쪽에 있는 거.”
아나트가 저 멀리 가리키는 곳을 보자, 지나가면서 가끔 봤던 탑이 있었다.
그 높이만 치면, 포에닉스 저택의 2배 정도였을까.
관상용 꽃을 비롯해 수많은 마법 및 연금술용 식물을 키우는 장소라 한다.
식물을 다루는 강의를 듣는 경우, 저쪽을 강의실로 삼을 때도 있는 모양.
게다가, 그 근처에는 마법 및 검술의 대련장 또한 있다고.
말이 정원탑이지, 수많은 실습수업이 모여드는 장소였다.
이후 에우드를 비롯한 신입생들도, 정원탑엔 자주 들릴 거라고.
다만 역시 그 정도론 누굴 만나야 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만.
어쨌든 가는 건 에우드만이라고 했으니.
에우드는 아나트와 드로와를 뒤로 하고, 정원탑을 향하기로 했다.
........그리고 에우드가 정원탑으로 향하고서 조금 뒤였다.
“그럼....... 아지트 상태 나쁘다고 했지, 드로와?”
“아, 저는 다녀온 게 아니지만요. 그래도 먼지도 많고, 벌레도 많고, 상당히 심각한 모양이에요, 가구는 없고.......”
“가구는- 뭐, 일단 됐다 치고.”
아나트는 손을 한 번 스트레칭했다.
“그럼, 오랜만에 실력 좀 발휘해볼까.”
“실, 실력이요?!”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니, 드로와.”
실력 발휘라는 말에, 드로와가 갑자기 겁을 먹었다.
“싸우려는 거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보지 마!”
“아, 아아아! 전 또.......! 혹시 아나트님이 가입 기념으로 영역 확장에 들어가시는 줄 알고........!”
“그런 거 안 해!? 얘는 대체 날 뭘로 보는 거야?!”
“......공식전의 악마!”
“얌마!?”
정답을 말했다는 눈빛의 드로와를 보며, 아나트는 억울하게 소리쳤다.
“어흠, 뭐....... 사실 말하면 힘쓰는 건 맞지만.”
“!!!”
아나트는 곧바로 평소처럼 자신감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