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가 뒤늦게 그것을 물었다.?172회
습격172.
제시카의 말대로였을까.
아니 근데 일단 급하기도 했고.
물불 가릴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조력을 받긴 했는데.
역시 이 상황은 무려 로로나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디에스양. 어떻게 이곳에 계신 건가요.......!”
로로나는 유펠하이넴의 차기 당주에게 예를 갖추면서도, 한편 그것을 물었다.
오늘은 분명 왕도 행사의 날.
가레스와 소일처럼, 디에스 또한 왕도에 가는 날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상황 발생으로부터 30분 채 지나지 않았다.
이변을 전하기 위해 보낸 전서구는, 왕도는커녕 다른 도시로도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즉슨, ‘이변을 알고 조력을 하러 왔다’가 아니라는 의미인데.......
그러자 디에스는 조금 입가를 오물오물거리며 답했다.
“아, 그게 사실.......”
“사실?”
“오늘은 땡땡이로 좀.......”
““땡땡이.......””
“어, 오흠.(삑사리)”
디에스는 말을 잇다가 삑사리 난 헛기침을 내버렸다.
사실 디에스는 당주가 아닌 ‘차기 당주’인 만큼, 행사 참여가 강제되는 건 아니니까. 이번 행사 참여는 현 당주인 아버지에게 미뤄두고 왔다는 모양이다.
디에스가 이번 해부터 교수직을 맡은 만큼, 그녀의 아버지도 이번 해엔 그걸 허락했다고.
그리고 시간의 여유가 생겼으니. 아카데미에서 새로이 친해진 제시카와 슈가를 만나기 위해, 포에닉시안에 관광차 왔다- 여기까지가 디에스의 설명이었다.
다만 로로나가 느끼기에는.......
‘쓰읍...... 내 직감으로는 그 이유만은 아닌 거 같은데.’
디에스의 설명엔 약간의 ‘숨기는 부분’이 있던 것 같았다.
뭐라 해야 할지. 진실은 맞는데, 진심은 살짝 안 들어간 것 같다 해야 할까.
그래도 지금은 로로나도 구태여 건들지는 않았다.
일단 디에스에게 큰 악의나 거짓말은 느껴지지 않는다.
디에스도 로로나의 마안은 알고 있을 테니까, 뭔가 대놓고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 테지.
또 뭐가 되었든, 방금 조력을 해준 건 확실했으니 말이다.
조금 뒤 중년 남성 한 명도, 도보를 뛰어 디에스 쪽으로 향해왔다.
“디에스 아가씨, 저한테 말은 하고 행동을 하셔야지, 진짜......! ......아앗!?”
“저분은 분명.......”
“아, 제 보좌 집사인 엘토예요.”
엘토. 디에스의 전담 집사이자, 현 아카데미 교수진 중 한 명이었다.
디에스를 쫓아왔던 엘토는, 로로나의 모습을 보자 더욱 빨리 뛰어와 예를 갖췄다.
“갑작스런 방문에 사과드립니다, 로로나님. 먼저 연락을 드리고 찾아왔어야 했는데....... 저희 아가씨가 너무 막무가내로 행동하셔서.......”
“아니에요. 무엇보다 방금도 디에스양 덕분에 정말 큰 도움을 받았어요.”
엘토의 성실한 예의에, 로로나도 함께 그것을 받아간다.
그리고 그 짧은사이, 로로나는 엘토 정장을 살짝 봤다. 약간 어두운 빛인 집사용 정장을 보자, 그 위에는 의외로 많은 핏자국이 튀어있었다. 허리춤의 검에도 또한.
아마 이 남자 또한, 거리의 몬스터들을 함께 토벌해준 걸까.
로로나는 디에스와 엘토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
후에 꼭 이 가문에게 공식적으로 감사를 전해야 하리라.
그렇게 빠르게 10대 귀족 간 예의를 약식으로 처리한 후.
엘토가 조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로로나에게 그것을 물었다.
“로로나님. 혹시 저희 디에스 아가씨가 방금 실례를 저지르지는-”
“실례네 엘토 진짜!”
엘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디에스가 재빨리 그의 어깨를 찰싹 때린다.
“-이런 식으로 혹시 실례를 저지르셨다면, 언제든지 저나 저희 당주님에게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실례 안 저지르거든?! -아마도......!”
엘토는 로로나에게 꾸벅이며, 상당한 진심을 담아 말했다.
뭐, 디에스가 상당한 말괄량이라는 건, 로로나도 예전부터 대충 눈치챈 사실이긴 했다만.
그래도 디에스의 내숭을 지켜주기 위해, 로로나는 서둘러 거기에 동의를 표했다.
“로로나님!”
곧이어, 다수의 전서구를 다루던 플로라가 아나트, 레니안느와 함께 앞으로 나왔다.
디에스와 엘토는 ‘메트리 가문’의 따님이 있는 것에 놀란 반응을 보였다. 레니안느는 작은 고개를 꾸벅, 디에스에게 전했다.
“거리 상황은 이제 8할 정도 종료! 포에닉스 헌터대도 곧 광장 쪽에 돌입한다고 해요!”
“그렇군요. 그럼 남은 토벌을 빠르게 끝내고 도시 정상화를 진행시키죠. 파손된 시설들의 신속한 보수도 필요해요, 건설 길드 쪽에도 연락을 넣어주세요. 또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게, 케인즈 쪽에서 이야기를 전해주시고요!”
“네, 로로나님! 아, 그리고 에우드님한테서도 방금 보고가 왔어요!”
“막내한테 보고요?! 우리 막내, 안 다쳤대요?!”
““-!!(제시카, 디에스 동시에 부릅)””
막내의 보고 쪽지 소식에 로로나와 제시카는 물론, 디에스까지 눈을 반짝이며 반응했다.
엘토는 ‘글러 먹은 아가씨들’의 솔직한 반응에, 잠시 한숨을 내쉬어간다.
‘그러고 보니, 글러 먹음 직전인 그 메이드분도 여기 있을 텐데.......’
엘토로선 그 메이드가 가장 멀쩡할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만만찮음 글러 먹음이었으니 말이다.
어느덧 포에닉시안에 모여버린 ‘글러 먹음 레이디스 3’를 생각하자, 엘토의 위가 살짝 아팠다.
마음껏 욕망을 분출하고 정상화되라고 냅뒀더니...... 다들 더 심해지고 있다.
유펠하이넴의 미래는 어둑어둑하다.
* * *
에우드는 와이즈에게 계속 하늘 위에서 탐색해달라 했다.
당연하겠지만 ‘마석과 마법진’이 숨겨져 있는 곳은, 구석진 골목들이 대부분.
세 사람 모두 와이즈를 따라 거리 곳곳을 뒤져갔다.
그런 식으로 발견한 마석과 마법진이 벌써 10개.
하지만.......
그 모두, ‘팽창된 마석’과 ‘마력이 다 된 마법진’이었다.
몬스터를 소환할 마력이 있는 마석은, 아직 발견치 못했다.
“혹시 이제, 몬스터들이 추가로 나타나진 않는 걸까요......?”
“그랬으면 정말 좋겠지만요......”
에우드는 키루미나의 말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았다.
정말로.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마력을 담은 마석은 남아 있지 않다’- 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에우드도 그런 가능성을 생각지 않은 건 아니다.
몬스터를 소환하는 마석이 아무리 곳곳에 숨겨져 있다 해도다. 분명 숨길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다.
주모자가 누군지 몰라도, 보통은 ‘들키지 않을 정도의 양’만을 숨겨놨다고 보는 게 맞다.
그리고 이미 거리에는 상당한 수의 몬스터가 소환됐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변수가 너무나 가득하다.
상당히 뒤늦게 나타난 ‘거대 미노타우로스’처럼, 아직 발동되지 않은 마석이 존재할 수도 있다.
함부로 단정을 지을 수가 없다.
물론 설령 남아 있지 않아도, 이 텅 빈 마석과 마법진은 무언가의 단서가 될 수도 있으니까.
이대로 탐색을 이어가는 게 맞을 것이다.
또 인원이 추가로 모이면, 보다 확실히 조사할 수도 있을 테고.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였다.
서쪽 거리 건물들의 옥상을 넘으며, 와이즈가 안내하는 다음 골목으로 향하려 할 때-
“꺄아아아아악!!”
[그르르르르!!]
다른 한쪽에서 다시 비명이 들려왔다.
소리의 출처를 파악하기론 서쪽 길목. 다른 이들의 소리가 전혀 안 들린다는 건, 이미 피난이 끝난 장소일까.
아직 미처 피하지 못했거나. 다른 곳에서 흘러들어온 이가 남아 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셋 중 한 명이 움직이는 게 옳겠지.
그리고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건, 아마 에우드 뿐.
소거법으로, 에우드는 재빨리 그것을 판단 내렸다.
“제가 갔다 올게요! 둘 다, 먼저 와이즈랑 같이 골목 쪽을 확인해주세요!”
“에우드!?”
“도련님!!”
“와이즈, 탐색 이어줘!”
[구구우우웃!]
에우드는 키루미나와 슈가를 두고, 재빨리 소리가 난 곳으로 이동했다.
높고 낮은 포에닉시안 거리의 옥상을 밟아, 엄청난 속도로 현장에 다가간다.
이윽고 도달한 곳은 한 구석진 골목.
요 3년, 외출 땐 대부분 광장 쪽을 다니던 에우드다. 덕분에 방금까지 돈 골목도 그렇고. 이곳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지 못하는 장소였다.
에우드는 솔직히 이번 사건으로, ‘포에닉시안에 모르는 구석이 아직도 많구나’를 실감했다.
그리고 거기서, 에우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플로라?!”
“에우드님-?!”
“왜 여기 있는 거예요?!”
비명을 내질렀던 여성의 정체는- 다름 아닌 ‘플로라’였다.
그 앞으로는 세 마리의 맹수가 다가오고 있다.
사냥을 하듯, 세 마리가 점점 플로라를 향해 다가간다.
분명 사벨 팬서라 불리는 몬스터. 평균 위험도 B의, 에우드에겐 상당히 익숙한 몬스터들이었다.
일단 ‘플로라가 왜 여기 있는지는 둘째치고’.
에우드는 슈가에게 빌렸었던 나이프를 재빨리 꺼냈다.
휘리리리릭- 촤아아아아악!!
[그륵?! 갸르르르륵?!]
하강과 동시에, 사벨 팬서 한 마리의 목을 나이프로 꿰뚫었다.
익숙했던 만큼, 사벨 팬서의 사살 포인트는 이미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곧바로 목을 꿰뚫은 나이프를 원형으로 휘둘러, 목을 완전히 끊어버린다.
사벨 팬서의 목과 몸이 서로 분리되어 땅에 떨어졌다.
뒤이어 다른 두 마리가 에우드에게 달려든다.
동료가 당한 것에 특유의 날카로운 울리며, 발톱을 내질렀다.
물론 당하지 않는다. 단숨에 몸을 낮춰-
촤아아아아악!!
츄아아아아악!!
두 마리의 목도, 똑같이 절단해낸다.
플로라를 공격하려 했던 사벨 팬서들은, 발톱 끄트머리조차 닿지도 못한 채 모두 숨통이 끊어졌다.
끈적한 피의 격류가, 골목의 바닥 위로 퍼져나간다.
“하아.......”
에우드는 피로한 손목을 빙글빙글 돌렸다.
역시 포에닉스 헌터복- 혹은 키루미나 말대로 보호장구라도 있었으면 조금 나았으리라.
“흐아.......! 에우드님 덕분에 살았어요.......!”
플로라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감사를 전했다.
다리의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까지 주저앉아버렸다.
“아니에요. 그보다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어머니랑 아나트 선배는? 레니안느는요?”
에우드는 나이프를 휘둘러 서둘러 피를 털어냈다.
“그, 그게, 난전이 이어지다 보니 갈라져버리고....... 그러다 도중에-”
플로라는 힘 빠진 눈길로, 자신의 뒤에 있는 뭔가에게 시선을 향했다.
“아직 팽창하지 않은 마석......!?”
“도중에 저걸 발견하고 골목에 들어왔다가, 방금 몬스터들에게 몰려버렸어요.......”
그건 방금까지 계속 찾아다녔던 마석과 마법진.
마력이 가득 머금어진 마석과, 그것을 품고 있는 마법진이었다.
“에우드님, 빨리 저걸 제거해야 해요! 자칫하다가 몬스터가 또 소환되면.......!”
“........!!”
에우드는 플로라의 말대로, 우선 그녀를 지나쳐 마석 쪽으로 향했다.
분명 마석과 마법진은 하나의 세트.
마석을 마법진에서 떨어트리면 마법 반응- 소환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무려 몬스터를 부르는 마법이다. 그 정도로 복잡한 마법은, 결코 마석만으로 이뤄지지 않으니 말이다.
마석의 위험성을 모르는 만큼 바로 제거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임시적인 조치는 취할 수 있었다.
에우드는 우선 서둘러 마석을 마법진에서 떨어트리려 했다.
그리고-
진짜 상황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휘리리리리릭!
채애애애애애애앵!!!
에우드의 뒤에서, 나이프가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졌다.
나이프가 휘둘러지기 직전 그것을 알아챈 에우드는, 능숙히 슈가의 나이프로 칼부림을 막아낸다.
당연하지만 에우드의 뒤에는 지금, ‘그 존재’ 단 한 명밖에 없다.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플로라가, 어느새 생기 없는 움직임으로 에우드에게 칼을 휘둘렀다.
얇은 팔에서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 할 검압,
에우드도 순간 반응이 더 늦었다면 상처를 입었을 속도.
최소 A급 헌터의 힘으로 휘둘러진 것이었다.
“누구야, 너.”
[“아핫. 아하하핫.”]
에우드가 생각해도 이상하긴 했다.
위화감은 이미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다.
플로라는 절대 경솔한 행동을 하는 아이가 아니다.
‘난전으로 갈라졌다?’ 절대 그럴 일이 없다.
몬스터에게 몰리는 상황에 비명을 지르기보다도, 처음부터 몬스터에게 몰리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계산하는 성격.
애초에 방금 전서를 돌린 것도 플로라다. 플로라는 현재, ‘임시 연락망’을 구축하여, 로로나와 헌터들을 돕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딴 ‘단순해 빠진 어린아이 판단력’ 따위, 포에닉스 파벌의 참모는 절대 내보이지 않는다.
그 이상으로-
‘이 플로라를 닮은 뭔가’는, 결코 인간이 아니다.
플로라인척 하는. 그 이전에 인간인 척하는 무언가다.
칼을 휘두르고 있음에도 살기가 없다.
인간과 똑같이 행동함에도 생기가 없다.
무엇보다 인간이면 당연히 가지고 있을- 그 머더 메이지조차 가지고 있었을 ‘인간의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상 무성의 슬라임. 혹은.......
골렘 따위를 상대할 때와 같은 감각이었다.
그러나 또 반대로, ‘방금 들었던 목소리만큼은’ 인간과 동일. 소름끼칠 정도로 플로라와 비슷했다.
카가가각......! 카각......!
검날과 검날의 대치를 이어가면서, 그 소녀는 에우드에게 방긋 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 웃음에도 생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로 너무 빨리 알아채요. 축복이 너무 넘쳐요. 한방이라도 먹이고 눈치챌 거 같았는데. 아- 기껏 이 여자애의 모습을 한 것도 의미가 없어졌잖아요.”]
플로라를 닮은 뭔가가, 태연자약하게 그것을 말했다.
‘축복.......’
또다시 그 단어가 들려왔다.
학기 초 베르네이에게 들었던 말.
아니, 여기선 베르네이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겠지.
3년 전 머더 메이지도. 얼마 전 파라노이아도, 그걸 입에 담은 적이 있었으니까.
“‘교단’이냐. 뭔데 네가 플로라의 모습을 한 거지.”
[“별로 상관없지 않아요? 그런 거?”]
에우드의 물음에, 눈앞의 존재는 그저 더욱 빙긋 웃을 뿐이다.
[“서로를 알아가는 데엔, 입장 같은 거 신경 쓸 필요 없잖아요.”]
카가가가각!!
카가가가각......! 카아아아아앙-!!
플로라(?)는 곧장 나이프를 크게 휘둘러 뒤로 물러난다.
스파크를 일으키며 대치하던 양측의 나이프가 서로 떨어진다.
“......그래. 맞는 말이긴 하지.”
거리가 벌려진 즉시. 에우드는 슈가의 나이프를 겨누며, 단검술의 자세를 잡아간다.
“뭐가 됐든 일단 조지고 나서 이야기하면 되니까.”
[“아하핫, 역시.”]
눈앞의 존재에게서 미세하게 끼릭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근육이 팽창되거나, 투기를 모으는 소린 아니다.
흡사 ‘무언가의 기계나 나무 조각’이 맞물리는 소리였다.
콰아아아아앙-!!
사전 동작조차 준비되지 않은 질주가, 에우드의 앞으로 들이닥쳤다.
[“-‘4년 전’이랑 변한 게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