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화 〉28화 -던전 브레이크 (28/114)



〈 28화 〉28화 -던전 브레이크

쪽수가 많다고 해서 언제나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한 명이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경우, 그로 인한 피해는꽤나 컸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공격을 피하려는 녀석의 도주로를 막아 다치게 하거나, 실수를 가장하여 누군가를 공격 경로로 밀어버리기도 했다.

‘뭐, 반대로 내가 그런 일을 당해봤자 내가 죽지는 않겠지만.’

이래봬도 나름 잔뼈가 굵은 헌터지 않은가?

진정한 고수는 트롤에 대한 대처법도 알아야 하는 법.

‘물론, 내가 그 트롤러의 입장이긴 하지만……’


더군다나 지금은 그 제약이 꽤나 많이 풀려 있었다.

지금 상태라면 혼자서도 A급의 던전을 쉽게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

누군가 나를 방해한다고 해도,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었다.


“젠장할, 이대로 당하고 있을까 보냐!”

단기간에 네 명의 인원이  자리에서 사라지자, 제임스는 이를 갈며 스킬을 준비했다.

그의 곁에 있던 다른 헌터 역시도 그와 힘을 합쳤다.

‘오오, 저런 방법도 있지.’

생각외로 비상한 그들의 전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감탄을 흘렸다.

“잠들어버려라, 이 괴물 자식아!”

스스스슷-
콰아아!


세 명의 손 끝에서 하나의 마법진이 그려지며, 굵은 안개 한 줄기가 흐림두르스를 향해 날아갔다.

[죽인…다……인…간……]


쿠우웅…

마법에 저항하던 흐림두르스는 이내 서서히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수면마법에 제대로 당한 것이다.

까다로운 상대의 경우 이런 전략은 꽤나 자주 쓰이고 있었다.

‘사실 나 같은 경우는 압도적인 힘으로 눌러버렸지만 말이지……’


바닥에 쓰러진 거구의 몬스터를 바라보며, 제임스 일행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곧바로 내게 다가와 멱살을 틀어쥐었다.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뭘 하다니? 내가 뭔가 잘못하기라도 했나?”

“지금 그걸 몰라서물어?!”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상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내가 확인하지 못한 사망자 역시도 존재할 터.

그가 화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나는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도와주려고 했던 것 뿐인데? 뒤진  지들이 실력이 안 되서 그런 거지.”

“개 같은놈…!!”


본래 의도야 어찌됐든, 표면적인 명분이 있었기에 그는 거칠게 내 멱살을 놓았다.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는 그.

나름 조용히 말한다고 했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들의 대화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바로 죽여버려. 보상을 주는 척하면서 찌르면 저 놈도 어쩔 수 없을 거다.’

‘그렇다고 순순히 당해 줄까요…?’

‘그러니까 마지막 일격을 잘 쳐야지. 클리어 이후라면 우리 능력치도높아질 테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거야 너희들 생각이고─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급성장을 이룬다고 한들, 여기의인원으로 나를 죽이는 건 불가능했다.

사실 내가 지금 마지막 일격을 가하면 완전히 상황은 뒤집을 수 있는 상태였고.


‘하지만 일단은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하게 둘까.’


여기서 그들이 죽어버리면 던전 브레이크는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던전 브레이크의 조건을 그들이 쥐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급성장을 이뤄서 던전의 수용량을 초과시키는게 내 목적이었다.


“열심히들 해 보라고.”

나는 그렇게, 조용히 응원을 보냈다.

잠시 후, 어느 정도의 정비를마친 그들.

곤히 잠들어있는 흐림두르스의 머리에, 강력한일격이 가해졌다.


“흐아아앗!”

콰아아앙!!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없이 목숨을 잃는 흐림두르스.

이내 입구의 맞은편에 밖으로 향하는 출구가 열리며 눈 앞에 여러 개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흐림두르스를 처치하였습니다.]

[기여도_0.2%]
[비율에 따라 보상이 증가합니다.]


[분배된 보상]
[최하급 링의 발톱_1 개]


짧게 끝나버린 메시지를 바라보며,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더럽게  안 했네.’


의도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유죄라고 해도 할  없다.

뭐라도 받긴 받은 게 다행이지.

파차앙-!

피잉- 핑!


그런 나와 달리, 마지막 일격을 가했던 제임스의 몸 위로는 한 줄기의 빛이 강타했다.

단지 그 뿐이 아니었다.

나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빛의기둥이 임했다.


‘이걸로 확정이구만.’


그리고 그에 나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굳이 간파 스킬을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저런 빛의 의미는  하나.

대상의 능력치가 대폭 상승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으니까.


짝-짝-짝-

나는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아이고, 렙업 축하합니다, 제임스 씨?”

“……”

“자, 그러면 약속한 보상을 주시죠?”

─물론, 없겠지만.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켰다.

내가 여기까지온 궁극의 목적.

겉보기에는 별  아닌 것 처럼 보이는 하나의 단도.


그러나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질은 가히 사기적이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이 아니라 잠시 후…… 그러니까, 던전 브레이크 이후에 출현하게 된다.

“흥! 그딴 건 없다. 정말 아쉽게 됐어?”


예상했던 대로, 그런 답변이 돌아왔다.

비릿한 미소와 함께.

그에 나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럴 리가? 분명 누군가에게 드랍되었을 텐데?”

“지금 우리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거냐……?”

“거짓말! 내겐 계약서가 있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면 후회할 거야?”


 속에 넣어 뒀던 계약서를 꺼내 보이며, 나는 그렇게 따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반응이 달랐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

“뭐라고?”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이 입매를 말아올린 것이다.

그의 곁에 있던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무기를 쥔 손에 힘을 불어넣으며, 조금씩 적의를 일으켜 갔다.

“그깟 계약서 쯤…… 주인이 죽어버리면 아무런 소용도 없지, 아마?”

“지,지금…… 너희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고작해야 무기 하나 욕심내다가 친구들을 배신하고…… 그렇게 노렸던 물건도 얻지 못한데다가 불쌍하게 목숨도 잃게 생겼군.”


“이,이런 제기랄……!”


입으로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앞에서는 내가 그리도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제임스가 당신을 배반했습니다.]

[그의 의지에 따라 제임스_외 7명은 동료에서 제외됩니다.]

[모든 동료가 당신을 배반했습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제임스!’

[모든 제약이 해체됩니다(15분)]
[모든 스테이터스 증가 40 (영구).]


드디어!

한시적이나마 모든 제약이 풀렸다.
거기다 보너스 스테이터스까지!

나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그런 내게, 제임스는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후후…… 그러게 줄을  섰어야지. 눈 앞의 작은 것에 욕심 부린  자신을 원망해라!”

“뒤.”

무기를 치켜드는 그에게 웃어보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뭐?”

“니들 뒤쪽을 보라고, 이 등신들아.”

“……?”


일제히 뒤를 바라보는 그들.

거기에는 게이트 밖으로 향하는 출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자식이 무슨 개수작을……?!”


쩌저적-
쩌적……!


그리고, 그 입구에 조금씩 균열이 가해지고 있었다.

“축하해, 던전 브레이크의 주역이 된 걸 말야.”

“뭐……라고?”

“던전 브레이크……?”


던전 브레이크──

결코 가볍게 들을 수 없는 그 단어에 제임스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개소리 하지 마라! 이미 던전은 클리어됐어! 지금  던전이 붕괴될 일은절대로 없다는 말이다!”

“글쎄, 저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


내가 가리킨 곳은 보스룸의 천장.

출구에서부터 이어져 온 균열이 돌로 만들어진 천정을 가득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 사이로 새빨간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저……저게 어떻게 된……??”

“이럴 리 없어…… 이럴 리 없다고!!”

쩌저적!

콰르르륵!
콰앙!


던전의 내부에서 바라보는 던전브레이크의 장면.

타워를 오른 이후로는 처음인가.
나름 감회가 새로웠다.

“어디, 잘 해 봐.”

“이……이런 미친 새끼가!”


공포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판단력을 흐리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막는다.

제임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무기를 빼어들고, 내게 달려든 것이다.


“지금은 날 신경 쓸 때가 아닐텐데.”
“죽어!!”

스걱-

 손 끝에서 흘러나온  줄기의 그림자가, 그의 허리를 관통했다.

말끔하게 잘려나가는 그의 하반신.



그리고 그와 동시에, 던전이 붕괴했다.






콰직-
쿠웅……!

[키에엑……크르륵…!]
[캬아아아악!]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사,살려─”


심연의 끝에서 넘어 온 괴물들이 제임스 패거리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은 얼마 전에도 본 적 있었다.


“링이라, 귀엽네.”

평범한 링에 비해 세 배 이상 거대한 크기.

단지 그 크기 뿐만이 아니었다.

완력과 속도, 그리고 방어력.
머리 위에 솟아오른  개의 뿔까지.

 어느 하나 상식을 벗어나지 않은 게 없었다.


“으아아악!”
“끄으윽……!”

콰직!
우드득!


던전의 게이트가 완전히 깨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크르르……!]
[킁킁! 키이익……]

식사가 끝난 놈들은 갑자기 바뀌어버린 주변 환경을 둘러보더니, 내게로 시선을 모았다.


“여기까지 예정대로! 완벽하구만?”


처음 던전으로 들어가기 전과 똑같은 장소.

본래 입구였던 곳에 위치한 전혀 다른 균열을 바라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속에서는 강화된 몬스터가 한 두마리씩 몸을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저,저게 뭐야!”
“설마…… 던전 브레이크?!”

“공략에 실패했단 말인가……!”

“혀……협회에 누가 연락을!”


패닉에 휩싸인 주변을 바라보며, 나는 넣어 뒀던 두 개의 단도를 다시금 꺼내들었다.

“자, 그럼 똥개들아? 같이 놀아 봐야지?”

[캬아아악!!]


스아악- 콰차작!


*

“저……저게 뭐야?”


분명히 자신이 익히 알던 몬스터인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전혀 달라보이는 그 모습에, 이현진은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던전 브레이크’라는 것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더 그랬다.

그런 그의 곁에서 한아름이 입을 열었다.


“강화된 개체야. 던전 브레이크의 가장 무서운 점이기도 하고.”

단지 일반적인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기에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본래던전 안에서 서식하고 있던 마물들을 포함해서, 엄청난 물량의 몬스터들이 강화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강화? 뭐야, 그게?”


은서현의 말에 답한 것은 차현화였다.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비약적으로 힘이 증가했다는 거야. 통상 C급의 몬스터라도, 지금은 그 하나하나가 A급의 위험도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뭐라고……?”

그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균열을 바라보았다.

대충 세어봐도 백은 족히 넘어 보이는 몬스터의 수.

그 하나하나가 A급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을 막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지극히 당연한 은서현의 말.

그러나 현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일단 기다리자.”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지금 여기 있다가는 꼼짝 없이 다 죽을 거라고요!”


“괜찮아. 던전 브레이크를 혼자 막는게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일단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고.”

그렇게 대답하며 차현화는 은가람을 가리켰다.


“던전 브레이크를 혼자 막는다구요……?”

“하,하긴 현화 선생님이라면……”

“……”


어느정도 그녀의 저력을 아는 셋은 간신히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근데 저딴 녀석을 봐 줘서 뭐 하려구요?”

“그건 맞아요! 선생님이 조금만 늦었으면 저희는 죽은 목숨이었다구요!”

“이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그러나 은서현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누군가 제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믿기 힘든 눈 앞의 광경에 굳어버렸을 뿐이다.

그것은 현화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 역시도 마찬가지……

아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은가람과 차현화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그러했다.

[여기가 심연의 너머인가……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르는군……!]

균열에서 넘어 온 마지막 개체.

5미터의 가공할 크기를 자랑하는 몬스터는 놀랍게도선명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오……오각수……!”


그렇게 중얼거린 한아름.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절망’이라는  글자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머리 위에 자라난 5개의 뿔─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마리만 출현하더라도 도시 하나는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는 몬스터.

그것이, 지금 그들의 눈 앞에 군림하고 있었다.

 순간주변 일대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균열을 넘어  짐승들이 흘려 대는 낮은 울음만이 주변을 채워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절망하고 있었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마음 한 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침묵 속에서,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어이, 큰 똥개! 니가 마지막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