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33화 - 기생충 서식지
“준비를 조금 해야겠군.”
“아무래도 코사 노스트라 정도라면 가진 힘이 만만치 않을 테니까요.”
“섣불리 건들였다가는 곧바로 발을 뺄 녀석들이니까. 조심스레 접근할 필요가 있어.”
“회장님 능력으로는 힘든가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해제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아. 다만 이용할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렇게 말한 그는 잠시 후 말을덧붙였다.
“하지만…… 들키지 않고그를 조사할 수있는 녀석이라면 있다.”
“네?”
“너도 잘 아는 사람이지.”
──차현화.
얼마 전 그를 만나러 갔을 때, 그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그야말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현화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그랬기에 나는 현화 쌤에게 물었던 것이다.
그녀는 잠시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더니 물었다.
“너, 외국 다니는데 재미 들렸냐?”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닌데요. 어차피 질리도록 다녀 봤고.”
“언제?”
“이전 생에서요?”
“……말이나 못 하면.”
거짓말은 아니다.
그저 진실을 교묘하게 숨겼을 뿐.
내 말을 그저 장난으로 치부한 그녀는 자신의 커피를 마저 마시벼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인데?”
“아무래도 얼마 전 호주에서 현진에게 이상한 게 들러붙은 것 같더라구요.”
“이상한 거……?”
“일종의 정신 지배 스킬 같은데…… 워낙 교묘해서 알아보기가 쉽지 않아요. 자칫 잘못하다가 놈들이 눈치챌 가능성도 높았고.”
“흐음……”
그에 그녀는 잠시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한참동안 뭔가를 중얼거리는 그녀.
좀처럼 상념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다시금 쓰던 논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지금 알 수 있는건, 일종의 감시와 정신지배 계열의 스킬이란 것 뿐이지?”
“아, 그리고 그 상대가 코사 노스트라 라는 것 정도죠.”
“코사 노스트라 라…… 재미있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허공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에는 흥미로워 하는 감정이 고스란히담겨 있었다.
‘두려움도 아니고 흥미라…… 참 대단한 사람이야?’
사실 그녀의 능력 정도라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이현진 좀 데려올 수 있어? 내가 불렀다고 하지 말고.”
“네?”
의아하게 묻는 내게 그녀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코사 노스트라 놈들이라면 내 얼굴을 보자마자 낌새를 눈치챌 게 뻔하거든. 적당히 아무 이유나 붙여서 데려와. 그 후에는 내가 알아서 하면 되니까.”
그렇게 말하고는그녀는 다시금 커피잔으로 시선을옮겼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화 쌤 정도라면 문제는 없겠지.
“그럼, 데려올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네? 왜요?”
“……쓰던 건 마무리하고 가지?”
“……쳇.”
안 통하네.
*
“아, 또 왜 그러시는데요?”
한참 동안이나 논문에 붙들려 있던 나는 그 뒤로도 열 일곱 장이나 더 골머리를 앓은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길로, 나는 기숙사에 있는 현진의 방으로 찾아들었다.
오늘 기말고사가 있었기에 따로 수업이 진행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행이 이번에는 방에 있었다.
“왜 그러긴? 요즘 훈련이 뜸했잖아?”
“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오늘 막 필기 끝났는데……”
“실기가 남아있잖니? 우리 친구, 맞고 싶나요?”
“이……! 이 폭력 교사!”
“칭찬 고맙다.”
여느 때와 크게 다름없는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는 연구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녀석이 연구실의 문을 열었을 때-
“……?!”
챡!
그의 눈에 무언가가 날아와 부착되었다.
양쪽 눈을 완전히 덮는 검은색의 천.
그 위에는 기하학적인 도형이 어지러이 그려져 있었다.
“이……읍?!”
그리고 녀석이 입을 열기 전에, 나는 입을 틀어막은 후 문을 닫았다.
현화 쌤의 괜찮다는 신호가 전해지고 나서야 나는 녀석의 입을 풀어주었다.
“푸하! 이, 이게 뭐에요? 또 뭔데요?!”
“아아, 눈에 그거 떼지 마라? 눈알 뽑히기 싫으면.”
물론 눈알이 뽑힌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타의적으로 사실이 될 가능성은 있었지만.
“네에?! 아,아니…… 대체 제가 뭘 잘못했다고……”
억울하다는 듯이 내뱉는 그를 현화 쌤은 진정시켰다.
“네가 잘못해서 그러는 거 아니니까 일단 진정해. 자, 여기 앉고.”
그리고는 그의 손을 잡아 연구실 소파에 앉혔다.
“며칠 전에 말했던 것 있지? 그걸 해결하려고 하는 거야.”
“며칠 전이라면…… 그 이상한 스킬? 그 때 해결된 거 아니었어요?”
“아니니까 지금 이러고 있는 거겠지?”
그렇게 설명하는 나.
그러는 동안 현화 쌤은 자신의 손 끝에 마력을 모아 현진의 눈 근처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현진이 탄성을 내질렀다.
“아……! 이제 보이네요?”
현화 쌤은 소파에 몸을 기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그래. 이거 만든다고 좀 고생했거든.”
“이게 뭔데요?”
“감각조정 아티펙트. 아마 너를 숙주로 한 녀석은 전혀 다른 광경을 보고 있을 거야. 적당히 이 녀석이랑 훈련하는 내용의 영상이 보이겠지.”
한 마디로 말해서 거짓 정보를 흘리는 장치라고 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최근에 가람이 형이 조금 이상했던 것도…”
“맞아. 그 쪽에서 낌새를 눈치챌 지도 몰라서 일부러 그에 대한 말은 끊었지.”
그의 입에서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려고 할 때마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괜히 잘못하지도 않은 녀석에게 따지거나, 면박을 주는 등.
나중에는 녀석도 자연스레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피했다.
“그래도 그 정도 눈치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제가 마냥 멍청하지는 않거든요?”
“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 그건 나도 그래.”
“……너무들 하세요, 진짜.”
이현진의 말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숨을 돌리던 현화 쌤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쪽 서랍에서 여러가지 기구들을 꺼내 왔다.
길다랗게 생긴 구조물을 현진의 주변에 설치한 후, 그녀는 깍지를 껴 앞으로 뻗으며 손가락 뼈마디를 맞췄다.
“자, 그러면 시작해 볼까?”
“뭐…… 뭘 하시는 거에요? 혹시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죠?”
“쫄지마, 이녀석아. 그냥네 몸에 들러붙은 기생충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보려는 것뿐이니까.”
자신의 눈 앞에 커다란 지도를 띄우며 그녀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현진의 몸 주변으로 설치된 구조물에서 은은한 마력이 흩어져 나오며 그의 몸으로 스며들고, 이내 다시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같은 작업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현화 쌤이 조금씩 숨을 몰아쉬기 시작할 즈음.
지도에 자그마한 점 하나가 떠올랐다.
“……찾았다.”
이탈리아였다.
*
“계획은 아무런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로 추적을 받은 것도 없고, 숙주에 대한 정보 역시도쌓여가고 있으니까요.”
[좋군.]
[그러면 그들을 데려오는데는 얼마나 걸리지?]
화면 너머로 들려오는 익명의 목소리에 남자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주름진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늦어도 이번 달 안입니다. 본래라면 조금 더 빠르게 데려올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주변의 의심을살 가능성이 크니까요.”
아직 어린 아카데미 학생의 신분.
그들에게 있어서 기말 시험은 꽤나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점을, 노인은 잘알고 있었다.
“실기 평가가 끝나갈 즈음이 가장 좋을 겁니다. 여행 핑계를 대기도 좋을 거고……”
[철혈 금강 그놈은 어떻게 되지?]
누군가의 질문에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건 아무래도 추이를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아무래도 조금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로서는그런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썩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는 코사 노스트라의 상위층.
어줍짢게 모든 것을 감추려는 것은 위험했다.
다행이 그들에게서 돌아온 말에는 책망이 담겨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당했던 스킬이니까…… 그에 대한 대비책도 어느정도 생각해 뒀을 것이다.]
“하……하지만 아직 역으로 추적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에이전트’라는제 이름을 걸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에 그들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후……]
[그래, 자네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냐. 다른 사람도 아닌 철혈금강에게 그런 짓을 했으니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하지.]
“……감사합니다.”
[한국에서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지. 너는 네 위치에서만 잘 해주면 돼.]
“알겠습니다.”
에이전트의 대답을 끝으로, 화면이 꺼졌다.
*
이탈리아의 피렌체.
현진에게 기생한 스킬의 근원지였다.
그러나 현화는 곧바로 출발하지 않을 것을 확실히 못박았다.
“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나요?”
이미 이렇게 대화를 나눈 이상, 이현진은 어쩔 수 없이 그에 대해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현화는 그에 동의하면서도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안 돼. 리스크가너무 크다고.”
“리스크요?”
“사실귀국 이후로 날 본 건 처음이잖아? 다시 말해서, 아직 놈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확신하지는 못한다는 말이지.”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려는 은가람보다 먼저, 차현화가 입을 열었다.
“그래,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있겠지. 그래서 더 그런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자신의 휴가계획을 밝혔다.
“휴가요?”
“그래.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정기 휴가를 낼생각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그 때 동안 연구실은 잠겨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에 은가람은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어……? 그렇다는 건……”
“물론!! 너는 논문 제대로 쓰고 있어라? 이번 일 끝나면 검사할 거니까.”
“……쳇.”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그를 내버려 두고, 차현화는 말을 이었다.
“먼저 피렌체에 가 있을 거야. 웬만하면 그 안대는 벗지 말고.”
현진의 눈에 씌여진 검은색의 아티팩트를 가리키는 그녀.
현진은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한 달 동안 쓰고 있어도 괜찮을까요…?”
“눈에는 아무런 지장 없어. 전송되는 거짓 내용도 걱정할 필요는 없고. 내가 누구냐?”
“하긴……”
그에 납득하는 이현진.
옆에서 듣고 있던 은가람이 작게 덧붙였다.
“물론…… 다른 학생들이 이상하게 보기야 하겠지만.”
“에엑…… 마,많이 이상해요?”
“아냐. 나름 멋있어. 뭔가 중2병 걸린 것 처럼 간지도 나고.”
“……그건 칭찬이 아닌데요.”
“나도 알아.”
*
여느 때와 같은 C클래스의 훈련장.
이제 막 3단계 훈련을 끝마치고 나온 한아름은 놀란 표정으로 은가람을 돌아보았다.
“현화 쌤이 휴가를 가셨어?”
“그래. 아마 한 달 정도는 연구실이 잠겨 있을 거야.”
“그렇구나……”
묘하게 아쉬운 표정을 짓는 그녀.
기어들어가는듯한 목소리로,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이번 실기 시험…… 봐 주셨으면 했는데.”
“운성 쌤이 있잖아? 뭘 그렇게 아쉬워해?”
“그래도…… 같이 특별훈련도 갔다 왔으니까…”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 만큼,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나름 자랑하고 싶었던 그녀였다.
시무룩한 그녀를 향해,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운성이 입을 열었다.
“크게 걱정할 것 없다. 현화 선생님이라면 굳이 그 자리에 없더라도 충분히 네 변화를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직접 봐 주는게 좋은걸요…”
“정 그렇다면 내가 녹화해 줄 수도 있고.”
“……네에…감사해요, 운성 쌤.”
아쉬운 대로 그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
한아름은 정운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은가람과 함께 온 이현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현진이 넌 뭘 그렇게 달고 있는 거야?”
“이,이거…?”
눈에 띄게 당황하는 현진을 대신해서 은가람이 대답했다.
“마력 패턴이 조금 불안정해서 현화 쌤이 달아 주고 가셨어. 최근 실력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몸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나 봐.”
“맞아! 하하……”
“그래? 흐음……”
“왜,왜 그래……?”
식은땀을 흘리며 묻는 현진.
한아름은 그의 가슴에 직격탄을 쏴제꼈다.
“뭔가 중2병 중증 같아.”
“……”
“……풉…!”
“웃지 마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그렇게 항변하는 현진이었지만, 은가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정작 그 말을 건낸 한아름과 정운성 역시도 웃음을 터뜨렸고──
끼익……
“후우…… 뭐야?”
“아, 서현아! 고생했어!”
“이젠 혼자서도 잘 하네?”
“난 처음부터 잘 했거든?!”
은가람의 말에버럭 성질을 내던 은서현은 그의 곁에 있는 이현진을 발견하고는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퉁명스런목소리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뭐야, 저 중2병같은 안대는? 아직 철이 덜 들었냐?”
“……”
안대 속으로, 이현진은 눈물을 삼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서러움에 그대로 울어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하……인생……”
그저 그렇게, 그는 자신의 팔자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