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91. 의지
“크흑…카아아악!! 크아악! 죽…여버리겠어!]]
콰아앙!
투쾅! 카아앙-!!
시간이 흘러 갈 수록 전황은 은가람에게 더더욱 불리해져만 갔다.
처음에는 확연한 사람의 목소리와 같던 우앙 천 후에이의 목소리는 점차 마물의 그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쯧……!”
은가람은 미간을 잔뜩 좁히며 방어에 일념해야만 했다.
이제는 빈틈을 찾아 낼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그의 주변으로 점차 침식되어 가는 우앙 천 후에이의 사념.
마치 주변의 공간 자체를 좀먹어가듯, 그것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어차피 이대로 가다간 답도 없어. 결국 해 보는 수 밖에…!’
금방이라도 그를 집어삼킬 듯한 사념.
일반적으로 마인의 사념에 침식되는 것은 결국 그와 동화되어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끝내 마인에게 집어삼켜지는 것.
때문에 지금처럼 사념의 형체화가 이루어 진 마인을 단신으로 상대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몸을 앞으로 던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감싸는 검붉은 빛의 사념들.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은 입을 닫아 은가람이 빠져나갈 구멍을 막아버렸다.
그렇게 한 순간에, 은가람과 우앙 천 후에이를 감싼 검은 색의 구체가 생겨났고─
은가람의 세계는 칠흑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
“하아…… 결국 저질렀구만.”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짓거리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살면서 이 꼴통의 심연으로 들어오게 될 줄이야.’
싸늘한 한기가 주변을 감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 속에서, 내 몸만이 희미하게 비쳤다.
입에서 흘러나온 입김이 잠시간 머물렀다가 사라져 갔다.
-인정을 받아야 해…
-나도… 언젠가는
잠시간 잦아들었던 목소리는 더욱 더 심하게 나를 괴롭혀 왔다.
이대로 있다가는 제정신으로 있지 못하리라.
‘사실 그게 본 목적이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 이후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인류는 ‘우앙 천 후에이’라는 전에 없던 끔찍한 재앙을 맞게 될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나는 걸음을 옮겼다.
-인정?
-누구에게?
-거기 누구……
-당연하잖아? 그야……
“어이, 꼴통.”
“……”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어두운 공간 한 가운데에 웅크려 있는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되었을 정도의 나이일까.
고개를 들어 나를 발견한 놈은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잔뜩 인상을 썼다.
“꺼져 버려! 너 같은 새끼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왜? 난 여기에 있으면 안되냐?”
“너 같은 놈은 딱 질색이야! 그냥 사라지란 말야!”
쿠우웅……!
악을 지르는 그의 목소리와 함께 공간이 크게 진동했다.
온 몸으로 느껴지는 무거운 중압감.
그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나는 입을 열어 물었다.
“내가 왜 질색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왜 싫냐고. 이유가 있을 거 아냐?”
“……”
녀석은 잠시간 나를 바라보더니, 조금씩 시선을 떨궜다.
“…그냥 싫어. 너 같은 놈은 질색이야.”
“얼마 전에, 내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어?”
“…그건 그래. 그래도 싫어. 고맙지만, 그래서 싫어.”
그렇게 말하며 녀석의 키가 조금씩 성장해 갔다.
“넌…내가 원하는 건 다 가지고 있잖아.”
“네가 원하는 게 뭔데?”
“……인정.”
녀석의 모습이 조금 더 변해갔다.
이제는 어느덧 10대 후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구한테 인정을 받고싶은 건데? 지금도 너를 인정하는 사람은 많잖아?”
“그건…… 알아.”
“몇 없는 S급의 헌터. 그런 너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텐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누구한테 인정을 받고 싶은건데?”
“……”
잠시간 입을 다무는 그.
한참이나 망설이던 그는 이내 서글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모님.”
“……”
“내가 조금 더 크게 된다면, 조금 더 큰 무대에 서서 세상의 인정을 받는다면…… 그 때는 나를 돌아봐 줄 줄 알았어.”
“그런데? S급이면 부모님도 충분히 인정하실 텐데.”
“하지만……”
끝내 말을 잇지 못하는 그.
“하아……”
낮게 한숨을 내쉰 나는 그가 분명 듣기 싫어할 말을 내뱉었다.
“이미 돌아가셨잖아?”
“……!”
“네가 그렇게 붙잡고 있는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건 아냐.”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최고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제는 어느덧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우앙 천 후에이.
“최고가 된다면 분명, 인정해 주셨을 테니까……”
그는 표독스런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난 네가 마음에 안 들어! 나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도 싫고, 마법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싫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순간에 내가 네놈 덕분에 살아났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엿같다고!”
악에 바친 소리를 지르는 녀석을 보며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제야 조금 편하네, 꼴통.”
“이런 씨발…! 애초부터 네놈이 왜 이런-”
“한 가지만 묻자.”
“……?”
“그러면 마인이 되면서까지 나를 이기는 게 맞을까?”
“강해지는 게 뭐가 나빠?! 어차피 넌 이해 못하겠지!!”
“그런 걸, 너희 부모님이 바랐을까?”
“……!”
쩌적-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공간에 조금씩 금이 가며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장담하는데 넌 그 힘에 잠식될 거다. 그게 마인의 특징이야. 네가 사람으로 살아오며 중요하게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게 된다고.”
“……”
쩌저적- 쩍!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녀석의 사념.
추악하게 굳어져 주변을 가리던 그것들은 점차 깨어져 나가더니, 이내 ‘챙강-’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그제서야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된 그의 눈.
하나는 인간의 것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마인의 그것을 하고 있었다.
*
‘사념은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여겼는데……’
멀찍이서 은가람을 지켜보던 연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 마인에 관해 완전히 무지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뒤쪽 세계의 일은 그녀가 꿰차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마인 중에서 저만한 사념을 가진 개체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마인을 상대로, 은가람은 멀쩡하게 사념을 깨고 나온 것이다.
‘역시나 ‘천재’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든 분이네요.’
물론, 지금이야 손을 잡고 있기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잘못 판단했더라면, 그래서 그를 적으로 돌렸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 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우선은 상황을 지켜보도록 할까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마력을 집중해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결국 네가 선택하는 거야. 마인이 된다면 지금의 나는 죽이겠지.”
“……”
“하지만 그 이후에 네게 남는 것이 있을까?”
[그,건…!”
혼란스러운 듯 인상을 잔뜩 찡그리는 우앙 천 후에이.
은가람의 말에 수 초 동안 그렇게 갈등하던 그는 이내 두 눈을 굳게 감았다.
“……후우우……”
잠시 후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떠진 그의 두 눈은, 선명하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영향이 저토록 강력할 수가 있다니……’
마인화가 거의 끝나 가던 사람을 되돌려 놓을 정도.
정말이지 말로는 설명하기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그녀였다.
은가람의 말에 잠시 미간을 좁히던 우앙 천 후에이는 발끈하며 말을 내뱉었다.
“…쳇! 괜히 남의 일에 참견은.”
그러나 그런 그의 어조에 이전과 같은 그림자는 남아있지 않았다.
“먼저 끼어든 게 누구였더라~?”
“쯧……! 됐다. 말하는 내 입만 아프지. 김 샜어. 난 돌아간다.”
그렇게 말하며 우앙 천 후에이는 발걸음을 돌렸다.
승자가 없이 끝난 싸움.
어쩌면 은가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도망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야.”
그런 그의 발목을, 은가람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고개를 틀어 뒤를 바라보는 우앙 천 후에이.
은가람은 한쪽 입매를 말아올리며 말을 건냈다.
“어깨 펴고 살아, 새끼야. 넌 강하니까. 괜히 열등감에 빠져 살지 말고.”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참견하지 마.”
“…왕천휘.”
“알아서 불러라.”
다시 돌아서는 그.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그럼에도 ‘은가람’이라는 사람에게 패배한 것은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서걱-!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
순식간에 그의 등 뒤로 접근한 은가람이 자신의 단도로 우앙 천 후에이의 목을 그어버린 것이다.
단 한 치의 망설임조차 느껴지지 않은 일격.
비록 적으로 만난 사이기는 했으나, 조금씩 상황이 소강되어 가고 있었기에 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땅을 박차고 나갔다.
*
“은가람 헌터!”
“……?”
“여,연?!”
갑작스레 등장한 연의 모습에 은가람과 샤오레이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에요?! 우앙 천 후에이는……”
중국의 유일한 S급 헌터이다.
그렇게 말하려던 연의 말을, 은가람은 가볍게 끊었다.
“적이지. 마인이 될 뻔 하기도 했고.”
“……예?”
“봤잖아? 먼저 나를 죽이려 든 건 이 녀석이었어.”
“하지만… 돌아가려던 참이었잖아요?! 그렇게 죽일 필요까지는……”
“그렇다고 살려 둘 필요도 없지 않나?”
“……!”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은가람의 말에 연은 말 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차가운 심성을 가졌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으니까.
충격에 빠진 그녀를 아랑곳않고, 은가람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미 저 녀석에게 구속이 된 놈이야. 언제 돌발행동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S급 헌터나 되는 녀석이 멋대로 설쳐댔다간 더 큰 일이 날텐데.”
“그…런가요……”
마지못해 대답하는 연.
비록 우앙 천 후에이가 코사 노스트라와 손을 잡기도 했고, 바로 조금 전 까지 마인화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는 중국의 막대한 전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코사 노스트라와의 관계 역시도 그리 긴밀하다고는 할 수 없었기에, 충분히 교화의 여지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가차 없이 죽인 건…… 역시 한국이 아니라서 그런 거겠죠.’
그렇게 단정지으며 그녀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이지 이기적인 사람이네요, 은가람 헌터는.”
“……??”
그제서야 은가람의 표정에 무언가 미심쩍은 빛이 감돌았다.
조금 전 우앙 천 후에이를 단칼에 죽여버린 그.
스스로도 망설임이 없었지만, 유난히 손 끝에 힘이 실려 있었다.
‘정말로…… 내가 한 게 맞긴 한가…?’
그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굳게 닫힌 손에 쥐여진 칠흑색의 단도.
바로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여기던 사실들에 하나 둘씩 위화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굳이 왕천휘를 죽일 필요가 있었던가……?’
그랬다면 애초부터 현혹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을 텐데.
분명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그는 우앙 천 후에이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사념체를 깨부수며 한층 성장한 그라면, 회귀 이전의 모습과 비교해도 훨씬 더 강해질 테니까.
그토록 싫어하던 ‘왕천휘’라는 호칭에도 태연하게 넘겼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내적으로 크게 성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무리 회귀 이전의 놈이 짜증났다고는 해도…… 결코 죽일만한 상황은 아니었어.’
그렇다면 대체 왜?
그에 대한 결론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어머, 정말로 죽이기 싫었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
“……?”
묘하게 변한 듯한 연의 목소리.
온 몸에 오한이 도는 것을, 은가람은 느낄 수 있었다.
“정말로, 단 한 순간도 그런 생각을 품지 않았던가요~? 아닐텐데? ‘죽인다’는 말만 속으로 64번 한 거, 알아요?”
연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연이 아니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을 한 여성도, 자신의 손을 빌려 우앙 천 후에이를 벤 것도……
“……이 개같은 초월자 새끼가……!”
그를 선택한 이기적인 초월자의 짓이었다.
[설마하니 사념체에 직접 잡아먹힐 줄은 상상도 못했어~? 뭐, 덕분에 나는 너의 바람을 들어줄 수 있었지만 말야.]
멈춰 버린 시간 속.
연의 모습을 뒤집어 쓴 초월자를 바라보며, 은가람은 이를 빠득- 갈았다.
“내 바람이라고……? 웃기지 마!”
[하핫~? 부정할 순 없을 걸? 그렇게 생각했잖아? 64번이나 그랬다는 건-]
“개같은 사념 때문에 정신이 없었잖아! 그게 아니더라도, 그거야 한창 싸우고 있을 때의 이야기지!”
목에 핏대를 세우는 은가람.
그러나 초월자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던졌다.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
“뭐……?”
[난 틀린 말 안 했어? 전후사정이야 어쨌든, 초월자의 권리로 너에게 힘을 줬던 거라고. 바로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너는 충분히 납득하고 있지 않았나? 쿡쿡……]
“이런 개자식이!!”
쿠우웅-!!
“큭……!”
욕설을 내뱉으며 칼을 휘두르려던 은가람.
그러나 초월자가 더 빨랐다.
일순간 은가람의 몸이 정지한 것이다.
표독스런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은가람을 향해, 초월자는 조소를 흘렸다.
[난 이만 돌아가 볼게. 앞으로도 잘 해 보라구, 우리의 사랑스런 선택자씨.]
그런 말을 남기는 초월자.
멈췄던 시간이 다시금 흘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