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110. 가짜 또라이 vs 진짜 또라이
“─이 미친 시발놈이, 뒤질라고.”
황재웅의 턱에 정확하게 플라잉 니킥을 안착한 은가람이 그렇게 내뱉었다.
느닷없이 공격을 얻어맞은 황재웅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너,넌 뭐야!?”
“뭐긴 뭐야, 정의의 용사지 이 씨봉새야.”
“?????”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황재웅.
누군가 자신에게 이렇게 함부로 대한 것도 얼마만일까.
보통이라면 S클래스인 자신에게 한 수 접고 들어오는게 당연했다.
이렇게 당당하게 싸움을 걸어왔던 적은 전무했던 것이다.
‘아니…… 있긴 했지.’
그가 생각하는 보통의 사람의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
아주 당당하게 ‘강해보이는데, 나랑 싸우자’라고 했던 여성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
그러나 은가람은 그가 사색에 빠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의 머리채를 붙잡아 올린 것이다.
“아!아아아! 뭐하는 거야?!”
“뭐하는 거야? 지금 내 금쪽같은 제자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런 말이 나오지?”
“제자……?”
의아한 표정을 짓던 황재웅은 그제서야 기억났다는 듯이 탄성을 내뱉었다.
“아! 설마 그 떨거지들? 그야 내가 손 보긴 했지. 설마 그 놈들……”
“일단 맞고 시작하자.”
“????”
은가람은 붙잡은 그의 머리채를 끌어당긴 후, 반댓손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손바닥으로, 얼굴 전체를 덮듯이.
짜악!!
“끄악?!”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황재웅이 비명을 질렀다.
“자, 그건 그 3인방에 대한 것들. 특별히 싸게 쳐 줬다.”
“……? 아니, 대체 넌 그놈들과 무슨 관계이길래 이러는 거냐고!”
확!
“??”
신경질을 내며 은가람의 손을 뿌리치려던 황재웅.
그러나 그것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은가람은 살짝 그의 머리를 놓으며 그의 손을 피했다가, 곧바로 다시 머리채를 붙잡았다.
“아아…!아! 아니, 남자가 머리채는……!”
“까고 있네. 내가 누구냐고 했지?”
“그,그래! 뭐, 그 3인방의 선배다, 이거냐?”
“아니? 오히려 학번 따지면 내가 더 후배일텐데?”
조기졸업이 아니었다면, 입학시기는 그가 더 늦었으니까.
그에 황재웅은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대화 전체가, 대체 무슨 맥락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니가 잘못한 건 그딴게 아냐. 오히려 그 3명한테 교육을 시켰으면 고마워 할 일이지.”
분명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S클래스인 그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예리한 살기를.
본능적으로 자신과 같은 S클래스 학생임을 직감한 그는, 조금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되물었다.
“…그런데……?”
“그거랑 별개로, ‘내 교무실’을 그런 식으로 만든 건 댓가를 치러야지?”
“내……교무실……?”
학생이 아니었던가?
그런 의문이 든 황재웅.
그렇다면 상대는 교사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그는 자신에게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찌됐건 자신은 월영의 학생.
그것도 S클래스의, 전도유망한 학생이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지금 교사의 신분으로 제게 이러신다는 거죠……? 감당하실 수 있으세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되묻는 그.
그는 자신이 페이스를 잡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래, 이 씹새끼야.”
“……???”
은가람에게 그런 ‘사소한’ 문제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짜악!
* * *
“누구……시죠?”
“뭐야? 너희들은……?”
교무실이라고 적힌 자그마한 교실 안.
그 안에 모여서 열심히 공부에 빠져들고 있는 세 명을 바라보며 황재웅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는 2학년 A클래스 학생들인데요…”
“누구신지 여쭤 봐도 될까요?”
혹시 은가람이 보낸 사람은 아닐까.
그런 생각에 한층 조심스러운 세 명.
하지만 황재웅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어우…… 교실 참 좁다. 그런데 여기 모여서 무슨 작당들을 하고 있어?”
“작당이 아니라 자습 중인데요.”
“그러는 그쪽은 누구시죠?”
목연우의 질문에 그는 교실 한쪽에 위치한 은가람의 자리에 걸터앉으며 대답했다.
“글쎄. 그걸 내가 말해줄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
“……네…?”
“그나저나, 여긴 대체 뭐야? 은가람……? 누구지?”
은가람의 서랍과 책상을 뒤적거리는 황재웅.
별로 특별하게 중요한 건 없었지만, 그것이 세 명에게는 그리 달갑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여기는 엄연한 교무실입니다. 저희는 제대로 허가를 받고 사용하고 있는 상태구요.”
“특별한 용무가 없으시면 나가주시겠습니까?”
“싫은데? 교무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끽해봐야 동아리 같은 거겠지.”
세 명의 말을 무시하며, 그는 서랍을 뒤적거렸다.
양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 둔 채로.
안하무인격인 그의 태도에 경재석이 한 마디를 쏘아붙이려고 할 때였다.
“응? 누구세요?”
때마침 강헌권이 교무실 안쪽으로 들어선 것은.
“어? 헌권이 형.”
“오늘도 역시 와 있었네, 다들.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야?”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그의 말에, 황재웅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넌 또 뭐냐? 여기 대체 무슨 동아리야? 수업중에 이러고 있어도 돼?”
“동아리가 아니라 교무실인데? 그쪽은 누구길래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웃는 표정으로 되받아치는 강헌권.
그에 황재웅이 헛웃음을 흘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금 나한테 반말했냐?”
“너도 했잖아? 딱 봐도 10살은 어려보이는데 말야.”
“언제부터 헌터가 나이로 실력을 따졌나~?”
“그렇다고 싸가지로 따지지는 않잖아?”
“……”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상대의 태도에 황재웅은 조금씩 자신의 마력을 풀어나갔다.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로 기선제압에 들어간 것이다.
‘내가 누군지 확실하게 알게 해 주마!’
어쨌건 자신은 월영의 S클래스 학생.
웬만한 학생들은 한 트럭으로 와도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강헌권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지금 이건, 싸우자는 거지?”
“……?”
안색이 조금 흐려진 세 명과 달리, 강헌권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의 기운을 받아내고 있었다.
정면으로 받아쳐 오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자신의 공력을 흘려내고 있던 것이다.
황재웅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잡혔다.
‘이 녀석은…… 쉽게 볼 수 없겠는데?’
물론 자신이 질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진다면 그리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할 터.
확실하게 이기지 못하는 싸움은 그리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 기를 죽여버리면 그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꺼냈다.
“왜들 이러실까? 대체 여기가 뭐길래, 그렇게 꽁꽁 숨기려고 하는 거지? 수상한데?”
“쯧……! 수상한 건 아무리 봐도 그쪽이거든요?! 애초부터 누구냐는 말에 왜 대답을 못하시죠?”
최하림의 외침에 그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정말로 모른다고? S클래스 3학년의, 이 ‘황재웅’을 말야?”
“……?”
“자, 그러면 이제 내 소개는 끝났을 텐데? 이 정도면 ‘내 행동에 참견하지 말라’는 말도 알아들었겠지?”
그런 말과 함께 다시금 은가람의 책상으로 손을 뻗는 그.
그러나 이번에는 목연우가 그의 행동을 막았다.
스릉-!
긴 창으로 그의 손을 막아낸 것이다.
“이건 뭐하는 걸까~?”
“같은 학생이시라면, 이 이상의 무례함은 저희가 용납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기간이 길지 않았다고는 해도, 가람이 형님은 엄연한 월영의 교사. 이런 식으로 가람 형님의 책상을 멋대로 뒤지는 것은 삼가주시죠?”
“흐음~? 그 ‘은가람’이라는 놈은 대체 어디 있길래? 그 녀석이 이 동아리의 교사 역할이야?”
“말했듯이, 여긴 동아리가 아니라─”
콰앙!!
최하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에서 공격이 뻗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인벤토리에서 검을 뽑아낸 황재웅이, 은가람의 책상 자체를 박살내 버린 것이다.
그와 함께 서랍과 책꽂이에 있던 자료들 마저도 조각조각 찢어진 채로 바닥에 흩어졌다.
“자, 이제 어쩔건데?”
당당한 표정의 그를 향해 무기를 꺼내 드는 세 명.
황재웅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 저 쪽의 나이 많은 형씨 말고, 너희 셋이서 나와 함께 붙어보는 거지. 만약 너희들이 이긴다면 제대로 무릎 꿇고 사과하도록 할게.”
“그 말, 책임지셔야 됩니다.”
“대신! 내가 이기면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지 마라? 내가 뭘 하든 말이지.”
* * *
“그래서 그 녀석들을 병원에 입원시키셨다?”
“그,그게 뭐가 잘못됐지?! 그 놈들이 먼저……”
“새끼, 정신 못 차리네.”
나는 다시 한 번 손을 들었다.
그러나 이전까지와는 달리, 녀석은 교묘하게 몸을 틀어 내 손을 빠져나갔다.
“핫! 고작 그딴 실력으로 무슨 놈의 교사? 교사 행세를 하려면 제대로 실력부터 갖추라고!”
“……”
면상을 두 대나 얻어맞아서 새빨간 손자국이 난 주제에 말이 많네.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몇번이나 말했다면서? 왜 말을 못알아 쳐먹냐?”
“웃기고 있네~! 그게 어딜 봐서 교무실이냐? 그냥 처음부터 동아리라고 하지?”
말이 안 통하는 녀석을 향해 나는 인벤토리에서 교사증을 꺼내 보여줬다.
“자, 이러면 됐냐?”
“뭐…야 이건?”
“교사증, 새끼야. 속고만 산 거냐, 아니면 머리가 모자란 거냐?”
“그런 것 따위는 얼마든지 위조 가능하거든? 하여간, 이래서 수준 낮은 것들은……”
“아, 좀 쉬려고 하니까 왜 이러냐?”
안 그래도 신월에서의 일로 지쳐 있는데 말야.
쉴 틈을 주지를 않네.
‘이것도 니놈 짓이냐?’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자, 억울하다는 어조의 말이 돌아왔다.
[내가 뭘? 이건 나 아냐! 아니, 그 이전에 너 바람 피운 것 부터 해명……]
심히 의심가는데.
바람같은 개소리를 시전하는 놈의 말을 가뿐히 무시한 나는 황재웅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쳐맞자.”
“뭐?”
까짓거, 생각은 있다가 하지 뭐.
나는 순식간에 녀석의 앞으로 접근한 후, 주먹을 휘둘렀다.
“느리다고!”
예상했다는 듯이 반격해 오는 그.
그러나 내가 한 수 더 앞섰다.
‘이런 놈들이야 뻔하지.’
공포 잔상으로 놈의 뒤로 이동한 후, 다시 한 번 손바닥을 펴 놈의 뒤통수를 후렸다.
따악!!
“꾸억!!”
“다 보인다, 새끼야.”
“이런 미친 놈이……?!”
슈아악!
순식간에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휘두르는 녀석.
확실히, 3인방의 실력으로 당해낼 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S클래스라는 말이 허세는 아니었다는 듯, 예리한 공격을 감행하는 그.
‘그래봐야 내 손바닥 안이지.’
지금의 나라면 어지간한 B급이나 A급의 헌터가 와도 단신으로 상대할 수 있었다.
1대1이라면 A급 상위 정도까지도 당해낼 수 있을 정도.
제 아무리 S클래스라고 한들, 경험이 뒷받쳐주는 현직 헌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으~디! 하늘같은 선생님한테 말이야.”
툭-
“어?”
가볍게 놈의 중심을 무너뜨린 후, 한 손으로 검의 궤도를 틀었다.
그리고는 반댓손을 들어 다시금 녀석의 안면으로 휘둘렀다.
“나 때는 새끼야, 선생님 그림자도 못 밟았어.”
짜악!!
간만에 교육 들어간다.
* * *
“하아……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는데 말이죠.”
교무실에서 이현 선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들은 없었다.
며칠 전, 갑작스레 나타난 황재웅에 대한 소식은 이미 아카데미에 퍼져 있었으니까.
아니, 단순히 ‘나타난’ 정도가 아니었다.
얼마 전 A클래스 1반으로 올라간 목연우와 경재석, 그리고 최하림.
세 명과 싸워서 셋 전부를 병원에 입원시켜 버린 것이다.
다행히 그리 큰 상처까지는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교사들의 표정에는 근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아카데미에 나오던데. 또 무슨 일을 벌일지 걱정이군.”
정운성이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말했다.
물론, 학생인 만큼 그들의 지도하에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황재웅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애초부터 헌터를 목표로 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그는 이미 헌터인 채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상태였으니까.
입학 당시 그의 등급은 B.
조금만 분발하면 A급 헌터 역시도 손쉽게 될만한 실력자였다.
그런 만큼 그에게 S클래스가 배정된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교사들의 말에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안하무인이었다.
“뭐…… 괜찮을 것 같던디?”
그들을 향해, 막 교무실에 들어선 한진우가 입을 열었다.
문 앞에 위치한 정수기에서 커피를 타 마시며, 그는 의아한 표정의 교사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글마 세 놈이믄…… 이어진 놈이 한놈 더 있잖여?”
“이어진 놈이라뇨…?”
“최근들어 급격한 성장을 겪었잖애? 그거이 다 은가람 그노마 자슥이 멘토링 혀 준 덕택이고.”
“근데…… 그 은가람은…”
지금 실종 상태잖아요.
그런 이현의 뒷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아까 그 또라이 놈이 온것 같댜.”
“네?!”
“뭐라고…요?”
“진짜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그들.
한진우는 입가에 감도는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말했다.
“이거이 바로 이이제이 아닌겨? 또라이는 또라이가 어뜨케 해 주겄지.”
그의 말에 환한 표정을 짓는 교사들.
비록 은가람이 한동안 월영에서 날뛰기는 했지만, 황재웅에 비하면 그리 피해를 줄만한 일은 하지 않았었다.
그랬기에 그의 귀환은 그들에게도 희소식이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김경원 교장에게는 더더욱.
그는 안도한 표정으로 미소지으며 말했다.
은가람 역시도, 일반적인 교사와는 달랐다.
“후훗…… 확실히 그렇겠네요. 은가람 ‘교사’가, 제대로 교육을 시켜 주는 것도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