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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24화 (24/222)

# 24

24화

성진은 다시 1층으로 돌아갔다. 쥐들이 벙커에 숨어들었다. 그들을 찾아 모조리 죽이기 위해 구석진 곳부터 수색에 들어갔다. 성진은 우선 의미를 잃은 취사장을 찾았다. 오랫동안 찐 감자를 생산하는 것 외에는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 공간이다.

‘기감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

이곳은 아니었다.

걸음을 옮겨 식자재 창고에 들어섰다. 말이 식자재지 한동안은 거의 텅텅 비다시피 했던 장소다. 그래도 최근에는 식량 수색조의 노력으로 공간을 채워가던 창고. 성진의 기감에 뭔가가 걸려들었다.

‘다수다.’

철저히 허기를 달래기 위한 움직임이었는지 인간을 노리거나 식자재 창고를 노리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성진으로서는 좋은 일이다. 한곳에 모여있으면 그만큼 수색하는 시간이 줄어들 테니까.

“케륵···.”

소리를 들어보니 아까 전 마주친 블루 고블린인 것 같았다. 애초에 연제구에 그렇게 많은 소형 몬스터가 있을 거라곤 성진도 생각하지 않았다.

불 꺼진 창고였지만 바스락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고블린들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고블린들도 성진이 와 있는걸 한동안 눈치채지 못하다가 성진이 이들이 벗어나지 못하도록 문을 닫자 그제야 돌아보았다.

“케르륵···.”

스릉-

고블린들이 성진을 에워싸며 압박해왔다. 무리 생활을 하기 때문인지 지능이 높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다수의 이점을 활용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자잘한 이점 따위는 성진에게 아무 장해를 주지 못했다.

스걱-!

선두에 있던 고블린의 머리가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그것을 시작으로 고블린들이 달려들었다. 전부 입에 뭔가를 묻히고 있었다. 아무래도 식자재 창고를 건드리고 안에 적재된 물건을 바로 입으로 가져간 듯.

성진이 이들을 위해 애써 고생하며 가져온 물건이 아니었으니, 검에는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스윽-

다섯이 동시에 달려들면 둘에서 셋은 반드시 동강났다. 그렇다고 남겨진 다른 고블린들의 공격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고.

성진이 왼발을 뒤로 빼자 고블린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상대적 약자를 상대하면서도 효율적인 움직임만을 보였다.

쉬익-!

“키에엑!”

고블린들이 이제야 무슨 상황인지 자각한 건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케, 케륵···.”

쾅-!

성진은 고블린의 머리를 벽에 부딪혀 터트리거나 발길질을 가해 그대로 짓뭉갰다. 높아진 성진의 스탯은 이미 중형 몬스터와도 버금갈 지경이었다.

- ㅗㅜㅑ;; 19금 딱지 붙여야 하는 거 아니냐

- 넘모 자닌해요 ㅠㅠ

- 응 그래도 된다

- 응 나도 그냥 해본 말임

- 버-억 하던 고블린들 똥 맞음ㅋㅋ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피비린내가 코를 마비시켰다. 성진은 식자재 창고에서 벗어나 수색을 계속했다. 공용 샤워장, 에너지 탱크, 보일러실, 색터의 수면실 등 전부 성진의 눈을 피해갈 순 없었다. 포식자의 피 냄새를 맡은 건지 소형 몬스터들도 곧장 덤벼들지 않았다. 숨어서 최성진이 지나치기를 기다리거나 기습을 노리는 몬스터도 있었지만, 성진의 입장에선 그저 조금 귀찮아졌을 뿐이다.

‘내가 셌다’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현재까지 83마리;]

- 와 진짜냐?

- ㅎㅌㅊ유저였으면 벌써 다리 후들거리겠네

- 벙커 무슨 개미굴이냐 ㄹㅇ 왤케 많이 들어왔어

- 그래도 거의 끝나가네. 이제 거의 다 끝난 듯

‘여보’님이 5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우리도 아버님 댁에 로봇 청소기 하나 놔드려야겠어요]

- 내 로봇 청소기의 성능이 너무 쩐다

- 외출했다 돌아오면 싹 다 청소해놓음;

- 문제는 다 죽임

- 로봇 살인머신;

성진은 4층까지 청소를 완료했다. 그의 발달한 감각과 기감에 걸려들지 않은 거로 보아 청소는 깔끔하게 마무리된 것 같다. 전투가 끝나고 색적 레이더를 가동해 확인까지 해야겠지만. 이제 남은 건 최상층인 수뇌부가 있는 곳이다.

성진은 가벼운 한숨을 쉬고 최상층으로 향했다.

****

한중령은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벙커의 전투 상황을 확인했다. 벙커의 전투병력이 패배했을 때를 대비해 미리 방한 슈트를 입은 장의원과 한중령. 방한 슈트를 입으면서도 장의원의 입은 쉬지 않았다.

“머저리 녀석들··· 너도 저 녀석들 따라갔으면 벌써 죽었을 거다. 안 그러냐?”

“···예, 맞습니다.”

대답하기 싫었지만, 장의원은 자신의 말이 무시당하면 길길이 날뛰었다. 의원 시절부터 있던 버릇이다. 슈트의 바이저만 올려놓은 상태로 둘은 대화했다.

“그래, 올빼미라는 놈은 제법 날뛰더구나. 그래서, 너는 이번 위기를 저들이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아닙니다, 막아낼 수 없을 겁니다.”

“아니, 막아낼 수 있다.”

“예?”

“운이 따르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래서? 올빼미는 떠날 것이고 남겨진 사람들은 다음번 위기에 확실히 무너질 거야. 멀리 봐라, 성오야.”

한성오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자신도 모르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과연 그럴까요?”

“뭐?”

“저들이 다음에는 확실히 꺾이는 겁니까?”

“······.”

한중령은 올빼미가 오고 나서 변화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눈에 띄게 밝아진 얼굴, 그리고 희망을 입에 담기 시작한 사람들. 과연 이들이 올빼미가 떠난다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풀 죽어 지낼까? 한중령은 줄곧 의심해오던 질문을 꺼내고야 말았다.

“우리는 올바른 판단을 내린 겁니까?”

“성오야.”

“예.”

“그게 뭐가 중요한데?”

“예?”

장의원은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툭툭 쳐서 나오게 한 후 스스로 불을 붙였다.

“후우··· 성오야, 내가 너를 그 지옥 같은 고아원에서 왜 꺼냈는지 아느냐?”

“모릅니다.”

한중령은 장의원이 후원하는 그 많고 많은 아이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정작 간택을 받은 자신도 왜 자신인지는 알지 못했다.

“네 눈에는 생기가 없었어. 그 어린 나이에도 말이야.”

“그게 무슨···.”

“아, 쉽게 말해줄 걸 그랬나? 그래, 너만 그랬어. 자아가 없었다는 말이야.”

“······.”

“그래서 내 말을 그렇게 잘 듣던 아이였는데, 저 올빼미가 오고 나서는 부쩍 말대꾸가 늘더니 이제는 생각이란 걸 하는구나.”

“죄송합니다.”

“아니다, 사람이란 게 머물러 있으면 도태되는 법이지. 너도 그런 과정인 거야.”

한중령이 장의원이란 사람에게 드는 감정은 여러 가지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아버지였고, 인생의 지침을 제시해주는 대부였으며 그의 인생 전반을 지지해주는 기둥이었다.

“성오야, 다시 시작하자. 우리가 알아낸 벙커의 위치는 우리만 알고 있어.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새로운 곳.

하지만 흉터를 씻는다고 흉터가 사라지진 않는다. 백성을 버린 군주가 두 번이라고 다를 것인가. 한중령은 모르겠다. 장의원은 한중령의 생각을 읽었는지 불쾌한 기색이었지만 억지로 한중령에게 웃어 보였다.

“슬슬 가자, 성오야.”

“예. 의원님.”

이들은 쇼파에서 일어나 수뇌부용 승강기로 걸음을 옮겼다. 대부분 존재조차 모르는 승강기다. 승강기 외부에 그리워진 암막을 걷을 때쯤,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케르륵···.”

“의원님?”

“성오야, 무슨 소리 못 들었냐?”

“뭔가 이상···.”

그 순간, 승강기의 반쯤 열린 문에서 고블린들이 쏟아져 나왔다. 얼핏 봐도 다섯은 넘어 보였다.

“케르륵!”

“의원님! 제 뒤로 오십시오!”

“성오야!”

한중령이 에너지 권총을 빼내 들었다.

****

성진이 상층부의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안에서 소란이 일었다.

“의원님!”

“죽여! 다 죽이라고!”

안에서 사달이 일어난 게 분명하다. 성진은 남은 몬스터가 이곳에 있음을 확신했다.

쾅-!

성진이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철로 이루어진 문이었지만 성진이 뒤로 물러났다 차는 걸 반복하자 곧 이음새가 터져나갔다.

콰앙!

콰앙!

콰아앙-!

마침내 문이 쓰러지며 열리고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내부는 아비규환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고블린도 고블린이었는데 한중령의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성진은 재빠르게 권총을 뽑아 고블린을 조준했다.

탕! 타앙!

남은 고블린들의 머리에 정확히 명중했다. 고블린은 뒤로 튕겨 나가더니 그대로 절명했다. 그슬린 머리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 패줌 뭐야!

- 와; 제로백 오졌다

- 무안 양파 같은 사나이;

- 한중령 근데 왜 저래?

성진은 쓰러진 한중령에게 다가갔다. 한중령의 방한 슈트에 피가 뿌려져 있었다. 고블린의 피도 있었지만 한중령의 피도 섞여 있었다. 꽤 많은 피를 흘렸는지 한중령의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아니, 안 괜찮아···.”

쿨럭거리며 한중령이 밭은기침을 내뱉었다. 성진은 그의 머리를 살짝 들어 올려 쿠션에 기대게 했다.

“곧 사람들이 올 겁니다. 그때까지만 참으세요.”

“아니, 난 틀렸어. 안 좋은 곳을 찔린 것 같다, 올빼미. 괜히 헛된 희망을 주지 마.”

성진도 알았다. 한중령이 이대로 죽을 것이라는 걸. 임무 중에 그의 동료도 이렇게 잃었던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쿨럭··· 장의원··· 의원님이 날 놓고 가셨지 뭔가? 깜빡할 게 따로 있지···.”

장의원이 최후에 한중령을 내팽개치고 혼자서 도망갔을 인물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망할 늙은이···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

“그만 말하십시오. 출혈이 심합니다.”

“···아니, 말이라도 해야겠어.”

성진이 만류했음에도 한중령은 말을 이어갔다.

“장의원에게 저번에 말했던 벙커의 GPS가 있어··· 쿨럭! 하아··· 그걸 찾아.”

“각성자가 가득 찬 벙커를 깨우라는 겁니까?”

“···그래, 상황이 나빠져 봐야 죽기밖에 더하겠어? 컥··· 이런 세상에선 발버둥 치지 않으면 그대로 가라앉는 거야···.”

우스운 이야기였다.

이제껏 염세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온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올빼미··· 나는 잘못 살아왔다···.”

“······.”

“빌어먹을··· 너무 늦게 알았어. 조금 더··· 내 생각대로 살아볼걸.”

그 말을 끝으로 한중령의 동공은 초점을 잃고 탁해졌다. 슈트가 기분 나쁜 기계음을 울렸다.

- 사용자 생체 활동 정지. 에너지 절전모드로 전환합니다.

성진은 식어가는 시체를 내버려 두고 승강기를 타고 내려갔다.

‘한중령’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좀 아쉬운 인물이네; 왜 장의원 같은 사람을 만나서]

- 얄·궂·다

-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는 거임;

- 내가 게임에서 교훈까지 얻을 줄이야ㅠㅠ

- 장의원은 근데 어디 갔지?

-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그 노인네가 가긴 어딜 가

성진이 승강기에서 내려 밖으로 향했을 때, 시청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장의원은 후문으로 빠져나가려는 생각이었는지 아직 후문 인근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쓰러져서 미동 없는 상태로.

‘뭐여 시방’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진짜 멀리 못 갔누]

- 뭐야? 죽은 거야?

- 죽었다고? 벙커에서 나오자마자?

- 슈트만 쓸 줄 알아도 바로 죽진 않을 텐데?

성진은 천천히 장의원에게 다가갔다. 고블린들이 물어뜯었는지 슈트가 보기 흉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성진은 깨진 바이저 속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곳저곳이 물려 파인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확실히 장의원이었다.

- 와;; 꿈에 나올 것 같다

- 악당답게 끔찍하게 죽었자너~

- 입만 산 사람이었네;

‘웃기는 건’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슈트만 제대로 써도 고블린 한두 마리는 충분히 상대 가능함;]

- ㅇㅈ 갓직히 노인이어도 활동량 보정 때문에 소형 몬스터는 컷 가능했는데;

- 슈트도 쓸 줄 모르면서 여태 나불댄 거였네

- 벙커 나가자마자 10리도 못 가서 당해버렸구연~

성진은 장의원이 전투 수납함에 담아 온 물체를 꺼내 들었다. 버튼을 누르자 깜빡이면서 현재 있는 위치와 목적지를 점으로 표시하는 기계였다. 기계가 정확하다면 벙커는 그렇게 먼 거리에 있지는 않았다.

씁쓸한 표정으로 GPS를 손에 쥔 성진이 돌아섰다. 성진이 벙커로 돌아오자, 진지의 전투도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정병철이 성진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성진이 물었다.

“끝난 겁니까?”

“그래, 믿기지 않게도.”

“사망자는요?”

“지원한 민간인은 반 정도, 군인들은 다섯.”

“꽤 많이 죽었네요.”

“많이 죽어? 벙커가 아직 무사한 게 기적인 거지. 뭐, 죽은 사람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오밤중에 갑자기 시작된 전투는 아침나절까지 이어졌다. 기어코 아침 해가 뜨고 나서야 몬스터들이 벙커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성진과 전투원들은 전사자들을 수습하여 벙커로 향했다.

똑똑···

“누, 누구십니까?”

성진은 아직도 겁에 질려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피난 구역의 문에 대답했다.

“올빼미입니다.”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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