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36화
“구으으으···.”
퍼어엉!
퍼어엉!
성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몬스터는 샷건에 전혀 피해를 받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니, 오히려
화르르륵···!
불길이 더욱 거세지기까지 했다.
‘에너지를 튕겨내? ···아니,’
정확히는 에너지를 흡수한 거다.
그 증거로, 몬스터의 손에 불길이 가득 맺혔다.
성진은 곧 저 불길이 자신을 향할 것을 알고 맹금의 시야를 발동했다. 마치 총구를 박차고 나온 탄환처럼 불꽃은 성진에게 쇄도했다.
움직일 수 있을까?
당연히 몸은 움직였다. 뉴런 각성이 발동해 불꽃을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타격 수단을 찾아야 한다.’
몸을 날려 근처의 보급창고 뒤편으로 엄폐한 성진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눈치챘다.
“혀엉···.”
이민상이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가! 가서 경고해.’
성진은 어쨌든 손으로 대충 신호했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이 자리에 이민상이 있어 봐야 걸리적거린다. 성진이 재차 손으로 가리키자 이민상이 머뭇거리는 발걸음을 떼서 등을 돌려 쉘터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구으으으···.”
스릉-
신조 살해자가 검집에서 빠져 나왔다.
“구으어···”
콰아아-!
“큿···.”
성진이 있던 자리에 불꽃이 떨어지며 얼음을 녹여냈다. 물론 다시 단단하게 얼어붙었지만.
‘접근할 수 있을까?’
전투에 나선 성진의 머릿속엔 오로지 전투뿐이다. 다른 어떤 가치도 들어올 수 없다. 그 점이 성진을 특별하게 하고 올빼미를 특별하게 만드는 첫 번째 출발점이다.
푸슛-!
거미줄을 사출해 창고의 지붕에 올라갔다.
성진은 그대로 질주했다. 이대로 공중에서 단박에 목을 취할 셈이었다.
지붕에서 도움닫기를 해 베어낸다면 충분히 닿을 거리다. 성진의 사이오닉이 반응했다.
보랏빛 눈과 검에 맺힌 은하수가 성진을 증명했고, 검은 몬스터의 목으로 떨어져 내렸다.
성진의 감각이 경고했다.
‘위험해!’
성진은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았다. 검이 뱀처럼 휘어 몬스터의 목 대신 손에 부딪혔는데, 이상한 소리가 났다.
깡!
사이오닉을 휘감은 검이다. 그 검이 방금 튕겨 나갔다. 사이오닉이 부족해서?
‘아니, 뭔가 있어.’
성진은 펄스의 파동에 주목했다.
분명히 저 몬스터가 휘감고 있는 불길은 펄스였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사이오닉을 막아낼 수 없다.
‘잠깐···.’
불길?
성진은 잊고 있던 사실 한 가지를 떠올려냈다. 바로 수르트였다. 그 불의 거인이 작아진다면 바로 이 몬스터가 아닐까?
‘수르트? 아니야.’
그 정도 펄스 파장이 아니었다.
공략하기 위해 지혜를 짜내는 성진에게 이번엔 몬스터가 육탄 돌격을 감행해 왔다.
성진은 검을 휘둘러 걷어내려 했다.
깡-!
“큭···.”
육중한 힘이 팔을 타고 흘러왔다. 넘실대는 불길에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사이오닉을 휘감고 있어서인지 그 뜨거움은 상쇄가 되었다.
즉, 몬스터가 휘감고 있는 게 순수한 원소가 아닌 펄스라는 걸 반증하는 셈이다.
하지만, 힘은 힘이다.
성진이 중심이 흔들려 창고까지 밀려 들어갔다.
콰아앙-!
창고의 외벽이 떨어져 나가며 성진이 바닥을 굴렀다.
먼지가 자욱이 일어났지만, 성진의 이목을 붙잡진 못했다.
콰아아-!
연계해서 들어온 불길을 몸을 날려 피했다.
에너지 병기에 면역, 사이오닉 펄스에 저항.
근접전 불리.
상황은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어째서 이런 몬스터가 쉴드의 빈틈으로 스며든 건지.
성진은 아까 샷건을 내려놓고 왔다. 근접하기 마땅치 않으니, 원거리에서라도 견제하기 위해 권총을 빼내 들려고 했다.
하지만 재차 달려드는 몬스터 때문에 뒤로 하염없이 물러나야 했다. 달려드는 황소를 피해내는 투우사처럼 이리저리 잘 빠져나갔지만, 그것도 곧 한계에 부딪힐 것 같다.
“···흣!”
성진이 회피하자 몬스터가 보급품이 쌓여있는 곳을 들이받았다.
콰아앙-!
“구으으으···.”
그때, 쌓여있던 보급품에서 무언가 터졌다.
펑!
치이익···
“구으아아아아!”
성진은 갑자기 날뛰는 몬스터를 관찰했다.
‘뭐지?’
성진은 몬스터의 펄스가 잠시 꺼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특히 들이받으며 터진 무언가를 뒤집어쓴 부분은 아예 검은 피부가 드러나 있었다.
성진은 터진 게 무엇인지 알아챘다.
데구르르 굴러와 군화에 부딪힌 그 물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소화용 분진 탄’
군수품은 아니었지만, 화재를 제압하는 데 사용하는 분진 탄이다. 성진이 동그란 캡슐 모양의 물체를 쥐고 가볍게 던졌다.
펑!
“구으아아아아!”
역시나 통한다.
일단은 펄스를 잠재우는 정도에 그쳤지만, 성진은 몇 가지 실험을 해볼 요량이었다.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 들었다.
기잉-
탕!
화르륵!
“구으으아!”
역시, 에너지를 흡수한다. 그렇다는 얘기는 에너지 흡수는 펄스가 아닌 몬스터의 기본 능력이라는 얘기. 그럼 이건 어떨까.
성진은 한결 여유로워진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돌진해오는 몬스터에게 발에 걸리는 캡슐을 툭- 차서 맞췄다.
펑-!
“구으으으아아!”
스릉-
이제, 마지막 실험만을 남겨두고 있다.
분진을 뒤집어쓴 몬스터에게 성진이 빠르게 다가섰다. 화염의 펄스가 잠시 꺼진 몬스터는 당황하여 팔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성진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한차례 휘둘러졌다.
깡-!
베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성진이 의도한 거다.
‘펄스가 꺼져도 사이오닉을 둘러야만 벨 수 있어.’
확인 완료.
성진이 튕겨 나간 검을 그대로 수평으로 휘둘렀다.
“구······.”
스걱-
오싹한 절삭음이 들려왔다.
몬스터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툭···
가로로 베고 지나간 그 자리엔 은하수의 잔영이 남아 있었다.
휙-!
철컥-!
성진은 가볍게 털고 납검했다.
쿠웅···
머리가 없어진 몬스터의 몸은 허무하게 뒤로 넘어갔다. 성진은 쓰러진 몬스터의 머리통을 들어 올렸다. 뭉개진 찰흙처럼 생긴 얼굴. 이족 보행을 하지만 이목구비랄 것이 없었다. 이 몬스터는 대체 무엇인 건지···.
그때, 성진은 몬스터의 등판에 붉은빛이 감도는 것을 확인했다. 빛은 검은 피부의 몬스터의 내면을 비출 정도로 밝았는데 잠시간 반짝이다 사라졌다.
성진은 서둘러 몬스터를 뒤집어 가슴팍을 열어젖혔다. 역시나 사이오닉을 이용해 헤집어야만 했다.
몬스터의 가슴 속에는 커다란 원석이 박혀 있었다. 성진은 조심스럽게 그걸 빼내었다.
붉은빛으로 맹렬히 타오르는 그 보석을 성진은 코트의 품속에 넣었다.
이게 무엇인지는 나중에 확인해도 될 일이다.
지금은 헐레벌떡 뛰어온 이민상과 다른 각성자들이 다가오고 있어 서둘러 숨겨야 했다.
“형! 어떻게 된 거예요?”
“해결했어. 쉴드는 어떻게 됐지?”
“호, 혼자서요? 아! 쉴드는 복구됐어요! 이게 그 불덩인가요?”
“그래.”
각성자들이 처음 보는 몬스터에 놀랐는지 다가오기를 망설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 다가와 성진에게 말했다.
“이게 안동광이랑 박재용 죽인 그 괴물인가?”
“네.”
“제길, 교주가 또 지랄하겠네. 어이, 올빼미라 그랬지?”
털털해 보이는 사내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성진에게 말했다. 같이 온 각성자들은 이미 아까의 몬스터를 끌고 사라졌다. 남자는 두리번거리더니 성진에게 귀띔했다.
“듣자 하니 민상이가 신세를 졌다고?”
“아닙니다.”
“까칠해서 그렇지 밝은 아이야. 이봐, 올빼미. 아마 이번 일로 교주가 당신을 찾을 거야. 좋은 의도든 나쁜 의도든 말이야.”
“······.”
“조심해. 교주는 위험한 사람이야.”
“교주를 잘 아시나요?”
“아니, 몰라. 각성자를 부려먹으면서도 정작 전혀 틈을 보이지 않아. 신도들이랑 뭘 꾸미고 있는 건지···. 아무튼, 고생했어.”
성진은 그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쉘터로 복귀했다. 이민상이 따라붙어서 이것저것 재잘댔지만, 성진이 볼일이 있다고 이야기를 다음으로 미뤘다.
성진은 민간인들에게 강민교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한 사람이 위치를 자세히 알려줘 다행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는 공용 취침실에서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성진은 그를 조용히 깨워 불렀다.
“하아암··· 무슨 일입니까?”
성진은 하품하는 강민교에게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었다. 강민교는 처음에는 시큰둥하다가 정체불명의 몬스터 얘기를 듣고는 표정이 변했다.
“에너지 병기가 안 통한다고요?”
“네, 오히려 흡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흐음··· 사체는요?”
“각성자들이 가져가더군요. 아마 교주에게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 그럼 상관없겠네요.”
‘상관없다고?’
“교주는 그런 거 확인할 방법이 없거든요. 아마 절 불러서 확인해달라고 할 겁니다.”
“사이가 안 좋은 거 아니었습니까?”
“저야 그렇긴 한데, 쉘터의 중요한 문제들은 저를 부르곤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음?”
성진은 품에서 아까 얻은 원석을 꺼내 들었다. 특이한 몬스터가 남긴 특이한 물건이었다. 자신이 당장 알 방법이 없으니 강민교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호오··· 혹시?”
“네, 그 몬스터에게서 나온 물건입니다.”
“으음··· 이건 연구소에 가져가서 확인해 봐야겠는데요?”
“네, 결과는···.”
“최대한 빨리 뭔지 알아내 보죠.”
“감사합니다.”
성진이 보석에 대한 정보를 넘겨받은 건 며칠 뒤였다.
****
종말 이후 최대 커뮤니티 디스토피아.
오늘도 방송에 미친 자들이 모여들었다.
[제목: 보면 볼수록 느끼는 건데]
올빼미는 임기응변이나 상황판단이 좀 특별한 거 같아. 그 소화용 분진 탄 바로 알아채고 던져서 패 죽일 생각하는 거 봤지?
- 속보) 부산 중구 일대에서 몬스터 볼에 맞아 죽은 파이리 발견··· 검경 수사 총력···
- 디지몬: 저, 저희는 방목형이라 풀어서 키우셔도 됩니다!(오들오들) 주머니 새끼들이랑은 질적으로 달라요!
[제목: 근데 난이도가 진짜 너무 널뛰는 거 아니냐]
에너지 병기는 77ㅓ 억~ 사이오닉은 튕겨내지 뭐 이딴 미친 난이도가 다 있냐
- 이게 올빼미가 자꾸 격파하니까 데자뷰가 어디까지 하나 보려는 듯;
- 사이오닉 하나만 있어도 밥 굶을 걱정 안 하는 게 정상인데 이제 내성까지 등장했쥬?
- 근데 뭘까 진짜? 그 몬스터 수르트 삘 나지 않냐?
- 수르트 향 첨가
[제목: 올빼미 처음에 박형제한테 이지매 당할 때]
그 올빼미한테 개긴 용감한 형제들 보면서 이렇게 말했으면 졸라 멋있었을 텐데
올빼미 : 그 비웃음, 환호성으로 뒤바꿔주지!
- ㅋㅋㅋ 내가 유튜브 처음 시작할 때 그 대사 했는데
- 욜 ㅋㅋ 패기 보소. 비웃음 바뀜?
- 빅웃음으로 바뀜
- 바뀌긴 했넼ㅋㅋㅋ
[제목: 얘두라···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남자친구가 종말 이후에 미치더니 이제는 헤어지쟤··· 오늘 헤어지고 오는 길··· 훌쩍··· 좀 못난 놈이긴 했지만 정 많이 들었는데··· 이 슬픔, 얼른 접속해서 채광으로 달래야겠어. 석탄 생산량이 목표량보다 한참 모자라. 이대로라면 굴라크로 보내질 것 같아
- 뭐여 ㅅㅂ 쌍방이였누
- 다이나믹하다 ㅋㅋㅋ
- 난 ㄱr끔 눈물을 흘린ㄷr···☆
- 갠춘. 똥차 가고 벤츠 옴
- 지나감
- 가끔 치고 갈 때도 있음
[제목: 종린이인데 게임 누구한테 배우면 되여?]
사람들이 올빼미, 올빼미 거리는 데 이 사람 동영상 보고 배우면 되나여?
- 야, 야한 냄새가 난다··· 초보의 냄새가 나···
- 컴퓨터는 역시 빌게이츠한테 배우는 게 좋지
- 빌게이츠: 휴지통은 비우는 게 좋아, 안 그럼 들키거든
[제목: 와 오늘 근데 미로 랭커 아닌 스트리머]
다 같은 시간 방송이냐?
미췄다아아아
모두 이나 방송 보세요
- 아니, 음탕 방송 볼 건데?
- 응 니 타이어 짝짝이
- 응 너 조별과제 조장
- 너어는 진짜아···
[제목: 올빼미 대단한 점 하나 말해준다.]
어떻게 오늘까지 말이 나오냐?
오늘이 어떤 날인데
ㄹㅇ 종통령이긴 종통령이야;
- 맏따 맏따 어케 오늘까지 ㅋㅋ
- 한국인이면 올빼미 방송 챙겨 봐야지!
- 하지만, 오늘은 더 중요한 게 있어···
****
아침부터 샵에 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팅한다.
컬을 살려 매력을 올려볼까? 아니야, 오히려 심플하게 가는 게 더 이목을 끌 수도 있어.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앞섶이 꽤 깊게 파인 옷이다. 괜찮을까? 조금 과한 건 아닌지··· 아니, 괜찮아. 자신감 가지고 하자.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평소라면 절대 안 할 화장을 한다. 붉은 루즈, 두껍게 펴 바른 파운데이션. 그저 귀여울 뿐이었던 여성은 완전히 새로워진다.
의상이라는 갑옷을 입고 화장이라는 투구를 쓰고 전투에 임한다. 이곳은 총성 없는 전쟁이 일어나는 미로였으니까.
스트리머 음탕, 해적 방송의 여제인 왕이나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날이다.
아니,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등불이 한국 서버에 합류하는 날이니까.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유저들의 이목이 이곳에 모인다.
왕이나와 같은 시간대의 방송은 처음이라 시청자를 다 뺏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이제 무의미하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고, 전투는 기세가 중요하다.
적국의 왕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뿔 나팔을 불었다.
“···그럼, 종말에 안녕하세요!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