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73화 (73/222)

# 73

73화

안티의 머리가 떠오른 것이 신호가 되어 전투가 시작됐다.

기이잉-

기이잉-

총기의 장전 소리.

곧 포화가 쏟아질 것이다.

성진의 조준 시가 발동했다.

‘둘. 먼저 처치한다.’

허리춤에서 소드오프 샷건을 뽑아 장전 중인 적에게 곧장 사격했다.

휘릭-

타아앙!

펑!

“죽여!”

타아앙!

펑!

정확하게 장전 중이던 안티 두 기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지직···

다시 샷건을 허리춤에 꽂고 장검을 휘둘렀다.

서걱-

깔끔한 사선 베기.

안티의 골반에서부터 어깨까지가 흔들림 없이 잘려나갔다.

‘별 기대는 안 했지만···.’

암전된 상황에서도 안티들은 성진의 위치를 잘만 찾았다.

반으로 동강 난 안티의 뒤에서 주먹을 뻗어오는 다른 안티.

부웅-

가뿐하게 고개를 옆으로 젖혀 피해내고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상대의 머리를 붙잡았다.

‘이 정도···.’

파지직-!

혹시 몰라 전류를 조금 과하게 주입했다.

감전된 동물처럼 온몸을 움츠러들인 안티.

성진이 머리를 쥔 손을 놓자 그대로 허물어졌다.

기이잉-

또 다시 장전음.

성진은 바닥을 미끄러져 아까 소드오프 샷건에 머리가 터진 안티의 소총을 집어 들었다.

투두두두-! 투두두-!

성진은 안티가 사격을 시작하기 전, 기둥 뒤로 엄폐했다. 상대도 에너지 탄환이기 때문에 도탄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성진이 엄폐한 기둥을 총탄이 두들기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하나?’

기이잉―

‘둘이다.’

선택지가 줄어들기 전에 성진이 행동에 나섰다.

그는 몸을 던지듯이 날려 기둥에서 벗어났다.

잔영을 따라 총탄이 빗발쳤다.

투두두두-!

한 바퀴를 구른 성진이 고개를 듦과 동시에 사격했다.

투두-! 투두-!

펑!

펑!

기관단총을 점사로 끊어 쏘았다.

시청자들의 눈에는 눈대중으로 쏜 것처럼 보였지만 정확하게 안티의 머리에 적중했다.

투두-! 투두-! 투두-!

기관단총의 빛이 번쩍일 때마다 안티의 머리에서도 빛이 터져 나왔다.

붉은 눈들이 번뜩이고 굉음이 가득했던 지하에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성진이 쓰러진 안티의 품을 뒤적거려 기관단총의 배터리를 교체하고 여분으로 한 두 개를 더 챙겼다.

철컥-

“맙소사···.”

“다, 당신 누구요?”

“전투형 휴머노이드인가? 아니··· 아닌데.”

“손성일 어른 때문에 온 겁니까?”

“뭐가 됐든 우리 좀 여기서 꺼내주세요! 빌어먹을 안티 새끼들! 우리를 다 죽일 거예요!”

성진이 격리된 공간 앞에 섰다.

단단한 유리 벽 너머로 사람들이 동물들처럼 수용되어 있었다.

성진이 패널에 전류를 방사했다.

파직···

유리를 힘주어 옆으로 밀자 약간의 저항감과 함께 유리가 밀렸다.

다들 초췌한 안색이었다.

다행히 영상에서 보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있는 것 같았다.

‘이런···.’

문제는 몸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이들에게 전투는 무리였다.

- 헐; 늦었나?

- 이것도 최대한 빨리 온 거지;

- 애초에 그 안티 머리에 있는 게 노이즈 잔뜩 껴서 얼마나 오래된 기억인지도 정확하지가 않자너;

- 안타까운 거지, 뭐

성진은 서둘러 일어서는 이들에게 말했다.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안티가 몰려올 겁니다.”

“우리도 싸우겠네.”

“혼자서 정리하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무장은 하고 계세요.”

“이, 이보게!”

바닥에 손을 짚어 전기 신호를 퍼트렸다.

‘오고 있네.’

최심처의 소란을 듣고 서둘러 내려오는 안티들.

위층에 남아 있는 안티의 숫자는 지금까지 처치한 안티의 수와 비슷했다.

기이잉-

소총의 배터리 잔량이 다시 차올랐다.

타닥···

안티 한 기가 먼저 성진이 있는 층까지 도달했다. 안티는 성진의 모습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머리가 터져나갔다.

투두-!

펑!

성진이 위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자 박쥐가 가득한 동굴에 들어온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온통 붉은 눈.

“인··· 간···.”

“죽어!”

벽을 등지고, 엄폐한 다음 사격을 시작했다.

안티가 몰려들었기 때문에 머리에 맞춰진 조준선을 기준 잡고 횡으로 긁듯이 사격했다.

투두두두-! 투두두!

펑!

펑! 펑!

반동이 있어야 마땅한 성진의 팔은 미동조차 없었다.

철컥-

···

철컥-

두 번의 재장전이 이루어진 후, 전투는 종료되었다.

더 이상 느껴지는 안티의 기척은 없었다.

- 근미래 좀비물 ㄷㄷ

- 처음 만난 안티가 비정상적이었네;

- 안티 : 인간! 죽어!(뇌없음)

- 근데 총기 반동 없으면 사기 아님?

- ㄱㅊ 총기 없어도 사기임 ㅇㅇ

- 올~ 그럼 괜찮지

- 키~야! 역시 빼미 형

성진은 채팅창의 반응과는 달리 전투의 과정이 불만족스러웠다.

‘능력의 활용이 단조로워.’

펄스의 경지도 상승했고, 유전자 조작 또한 더 다양한 사용 방법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피부를 강화해 에너지 탄에 저항한다든지, 혹은 펄스의 방어력을 믿고 과감하게 싸우는 것처럼.

상대의 대응이 허술했기에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지만, 앞으로의 전투를 생각했을 때는 능력을 좀 더 폭넓게 활용해 봐야 한다.

‘기회가 되면.’

지금은 구출이 우선이다.

성진이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사람들이 잔뜩 경계하고 있을 게 분명하니, 미리 소리를 내었다.

“끝났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내려가겠습니다.”

성진이 내려가자 다들 안심했다.

“망할 붉은 눈은 아니군. 안티가 내려오면 어쩌나 했는데.”

“생존자는 이곳에 계신 분들이 전부입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곳을 어떻게 알고 오신 겁니까? 역시 손성일 어른과···.”

“아닙니다. 부탁을 받았습니다.”

성진의 말에 초췌한 안색의 사람들의 눈에 궁금증이 차올랐다.

“부탁? 누구의···.”

“우리 말고 생존자가··· 설마···.”

“이, 이봐요! 유리! 부탁을 한 사람··· 아니, 부탁한 게 혹시 휴머노이드였습니까?”

성진의 팔을 붙들면서 다가오는 중년의 남자.

이 중에서 가장 상태가 심각한 남자였다.

“맞습니다.”

“유리가··· 유리가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사람들이 아직 불안한 건지 두리번거렸다.

“···다른 안티가 찾아오지 않을까요?”

“무서워요··· 여기서 도망치고 싶어···.”

성진이 사람들에게 물었다.

“안티를 피해 머무를 만한 다른 장소를 알고 계십니까?”

두 사람이 답했다.

“내 은신처로 가지.”

“제 연구소가 근처입니다.”

다리를 저는 노년에 가까운 남자와 정유리의 생존을 기뻐한 중년이다.

“이보게 수열, 연구소가 여기서 얼마나 가깝나?”

“옥계동이니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됩니다. 이 정도 인원이 머물만한 설비 정도는 충분히 되어있습니다.”

“내 은신처는 보문산인데··· 거처야 안티 놈들이 찾아오지 않을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니 자네 연구소로 가지.”

“그러죠. 다들 슈트를 입읍시다!”

****

‘베라에 민트초코먹는당’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부럽쥥? 석교동 전투, 이제 민트 초코와 함께!]

- 구웨에에에엑;

- ? 왜요?

- 민트 초코를 왜 먹음 ㅡㅡ 양치함?

- 와 이걸 민트 초코를 먹네;

- 전하! 민트 초코에 민심이 흉흉합니다! 한 말씀 해주시지요

- 민트 초코를 싫어하다니, 너희들 민춌니?

‘난파인애플피자!’님이 3,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이름하여 하와이안 피자! ㅎㅎ 라지 사이즈 먹는듕]

- 님 저랑 맞짱 떠요 010 - 1234 – 5678

- 후··· 나 말리지 마. 말리면 말리꽃

- 위에 저 민트 초코랑 손 붙잡고 퇴장해주세요

- 두 분 이쁜 사랑하세요

성진이 이들이 슈트를 착용하는 동안, 일행을 데려오기로 했다. 다행히 별문제 없이 벙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행과 합류했다.

- 넷이 숨어있는 거 개 커엽네 ㅋㅋ

- 나무꾼님 도와주세요! ㅋㅋㅋ

- 사슴 ON

정유리가 가장 먼저 입을 뗐다.

“보았습니까, 주인혁? 휴머노이드는 미신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응원의 힘은 미신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벌써 두 번이나 성공했습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서 이렇게 주먹 꼭 쥐고 있었잖아. ···형, 어떻게 됐어요?”

“해결했어. 안티는 모두 처리했어.”

“형!”

“형! 진짜···.”

“올빼미, 어떻게 그 많은 안티를 처치했는지 의문입니다. 나의 이러한 의문은 해소될 수 있습니까?”

“글쎄···.”

- 잼머노이드 3인방: 쥐앤장 믿고 있었다고 올빼미 형!

- 얘네는 근데 뭐 하고 있던 거야 ㅋㅋ 포즈가 이상하던데

- 응원한 거 아님? ㅋㅋ 유리좌가 하던 거

- 그걸 왜 주인혁이 하고 있는뎈ㅋㅋ

- 팩트) 주인혁도 은근히 즐긴다

- 3인방이 4인방이 되는 순간 ㅋㅋ

일행 중 정유리와 손동원만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했다. 주인혁이 그런 둘을 돌아보다가 정유리를 보고 말했다.

“뭐 하냐?”

“주인혁. 갑자기 아버지를 보는 게 조금 무서워졌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뭐? 손동원이랑 둘이 뭐 하냐?”

“이것은 손동원 때문입니다. 혼자서만 생각해야 하는데 저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손동원은 반성해야 합니다.”

“나? 나 때문이야? 알겠어, 미안해.”

“손동원은 사과했습니다. 나는 용서하겠습니다.”

“사과? 용서? 별 거지 같은··· 안 오면 두고 간다?”

“주인혁,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정유리가 잠시 멋쩍게 서 있다가 주인혁에게 물었다.

그녀는 입술을 부자연스럽게 좌우로 찢었다.

“즈인흑, 으뜻습니끄?”

“응, 건치네.”

“인공 치아입니다. 그게 아니라 미소를 묻는 겁니다.”

“미소? 미소는 왜?”

“부녀간에 재회할 때는 딸이 미소를 짓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각종 매체에서는 그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웃기고 있네. 그냥 가.”

“그래도 됩니까?”

“그래, 네가 뭔 표정을 짓건 간에 반겨주시겠지.”

정유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주인혁, 혹시 학습한 겁니까?”

“무슨 소리야?”

“나는 방금 위로받았습니다. 당신은 위로에 재능이 있습니다.”

“···그럼 됐고. 들어가자.”

성진과 일행이 다시 벙커에 들어섰다.

마침, 슈트의 착용을 끝낸 생존자 무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아버지.”

“유리야!”

슈트를 착용한 정수열이 발을 절뚝이며 정유리에게 다가왔다.

정유리가 밖에서 연습한 미소를 억지로 지어 보이려는데, 정수열이 그녀를 껴안았다.

“살아있었구나··· 다행이다··· 다행이야.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나는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다. 무사하니 됐어···.”

정유리가 미소를 지으려 했다.

어쩐지 평소보다 자연스러워 보였다.

손동원이 뒤에서 머뭇거리다 앞으로 나왔다.

“아버지···.”

“동원이구나. ···무사하니 됐다.”

“···예.”

양쪽 다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어 보였지만, 끝내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정수열이 뒤를 돌아보고 얘기했다.

“갑시다! 안티가 따라붙기 전에 연구소에 도착해야 합니다. 자세한 얘기는 그곳에서 합시다.”

“우리가 거기까지 갈 수나 있을까요? 무장하긴 했는데···.”

“못 가면 여기서 죽어야지. 그리고 저 양반 못 봤어? 안티 머리를 달걀 부수듯이 박살 낸 사람인데, 저 사람만 믿자고.”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떨어진 소총들을 대충 주워들어 무장했다.

그리고 급한 대로 배터리와 식량을 때려 담은 배낭을 짊어진 채로 벙커를 나섰다.

나설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무리의 이동속도가 조금 처졌지만 연구소가 벙커에서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생존자들이 수군거렸다.

“신기하게 몬스터가 안 나타나네. 다들 자러 갔나?”

“여기까지 오는 데 한 마리도 못 봤어. 참, 사람이 살려고 하니까 세상이 살라고 하네···.”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성진의 위압 때문이었지만, 구태여 설명하지는 않았다.

주택가에서 떨어진 개인 주택의 넘버 락을 해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창문 하나 없는 집이었고, 내부에 침입 흔적은 없었다.

철그럭···

슈트의 발자국이 고급 석재 바닥에 발자국을 찍어냈다. 자동으로 켜진 로봇 청소기가 그 발자국을 지웠다.

“다들, 이쪽으로.”

불을 켜지 않은 채로 침실로 들어가 스탠드를 조작하자 책장이 옆으로 밀렸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다 왔습니다.”

잠시 후, 모든 인원이 지하로 향하고 책장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자 성진 일행이 이곳에 오기 전과 똑같은 풍경이 되었다.

****

“나는 이곳에 처음 와 봅니다.”

“유리는 처음 와 보지? 유리도 이곳에서 태어난 거야.”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습니까?”

“그래.”

“신기합니다.”

“천천히 둘러보도록 하렴. 잠겨 있는 곳은 들어가지 말고. 아버지는 좀 피곤하구나···.”

생존자들이 슈트를 벗어던지기 시작하더니, 급하게 음식을 입에 욱여넣기 시작했다.

“우욱···.”

“급하게 먹으면 위가 놀랄 겁니다. 천천히들 조금씩만 드세요.”

“망할 안티 새끼들. 사람 밥은 먹여가면서 괴롭혀야지.”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친 인원들에게 성진이 물었다.

“원래 일행이 좀 더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얼굴에 검버섯이 잔뜩 핀 중년의 남자가 대답했다.

“있었지. 다 죽었어.”

“···안티에게 말입니까?”

“그럼 달리 누가 있겠나? 지금 대전에 살아남은 인간이라곤 우리가 전부일걸? 아니, 또 모르지. 어딘가에서 숨죽이고 살아가는 인간이 몇 명 정도는 있을지도···.”

그 말을 들은 정유리와 휴머노이드들이 우뚝 동작을 멈췄다. 불필요한 말은 삼가라는 듯 정수열이 손사래를 쳤다. 정유리가 정수열의 손을 쳐다봤다.

“아버지, 손톱이 없습니다.”

“금방 자랄 거야.”

“발톱도 없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발톱도 금방 자라. 유리야, 곪지만 않으면 돼.”

“······나는 기분이 이상합니다.”

정유리를 바라보던 정수열이 성진을 돌아봤다.

“어떻게··· 저희를 구해주신 분 성함을 이제야 물어보네요. 성함이···.”

“맞네, 맞어! 미안합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밥도 못 먹고 버틴 게 용한 거지. 감사는 지금이라도 하면 됐고. 고맙습니다.”

“올빼밉니다.”

정수열이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올빼미님, 제가 지금은 기운이 없어서 그런데 조금만 자고 얘기를 나눠도 될까요?”

“예. 쉬십시오.”

“감사합니다. 유리야, 무슨 일 있더라도 저분 옆에 꼭 붙어있어.”

“나는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 올빼미는 훌륭합니다.”

“그래, 우리 유리 똑똑하네···. 아빠는 좀 잘게, 괜찮지?”

“혼자서도 잘 있을 수 있습니다. 친구들도 있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손동원과 손성일 부자도 조금 쉬었다가 얘기하기로 한듯했다. 생존자들이 쉬도록 자리를 피해 주자 자연스럽게 성진 일행이 한자리에 모였다.

탁자에 의자가 놓여있는 공간.

이제는 이마저도 사치스러운 풍경이다.

다섯은 모두 의자에 앉았다.

- 흔한 설날 아이들 풍경 ㅋㅋ

- 사촌들 다 한 방에 몰아넣기 ㅋㅋ

- 사촌 동생 : 형, 이 장난감 가져도 돼?

다섯은 말이 없었다.

침묵이 5분이 넘도록 계속되자, 주인혁이 입을 열었다.

“초상났냐?”

“······.”

“좀 웃는 게 어때? 아까는 미소다 뭐다 연습하지 않았어?”

“나는 지금 기분이 이상합니다. 어쩐지 미소 짓지 못할 것 같습니다.”

“미소는 원래 못 지었잖아.”

“아까 한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주인혁은 위로에 재능이 없습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주인혁이 탁자 한쪽에 놓인 물건을 집어 들었다.

“이건 뭐야?”

“그것은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추정됩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제 사진을 찍어주셨습니다. 이곳에도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

주인혁이 계속해서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매만졌다. 뭔가 얘기를 꺼내기가 쑥스러운가 보다.

“그··· 좋게 생각해. 나나 저기 있는 양준호나 얼굴 맞댈 가족이 없잖아. 다들 무사히 살아있으면 된 거지 뭐.”

“또 위로하는 겁니까?”

“그래, 위로다. 어쩔래?”

“제법입니다, 인마.”

“오류냐? 또 습기 어쩌고? 이번엔 안 속는다.”

“오류가 아닙니다.”

말을 곱씹던 주인혁이 그 의미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럼 그냥 욕한 거잖아?”

- 그걸 이제 눈치챘눜ㅋㅋㅋ

- 그렇게 인마에 젖어 들었다···

정유리가 얘기했다.

“친근감의 표현입니다.”

“친근감?”

“우리는 이제부터 친합니다. 이것을 부정하십니까?”

“하, 부정하면 어쩔 건데?”

“나는 조금 실망할 것입니다. 주인혁의 숙면을 빌어주는 인사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게 숙면 기원이었어?”

“그렇습니다.”

주인혁이 턱을 매만졌다.

“그건 싫은데···.”

- 싫었어?

- 수면 인사 때문에 고민한다고? 이거를? ㅋㅋㅋ

주인혁이 잠시 고개를 푹 숙였다가 말을 이었다.

“난 휴머노이드가 싫어. 알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뭐, 지내보니까 너희 정도면 나쁘지 않다 싶다. 이상하냐?”

“이상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이제 친합니다.”

“그래. 이제 우린 친한 거다.”

“다행입니다. 사실은 거절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양준호와 손동원이 한마디씩 얹었다.

“뭐, 인혁이 정도면 우리 휴머노이드의 친구로 받아줄 만하지, 애송이지만.”

“그래, 애송이지만.”

“···너희 사람 차별하는 거지?”

- 지옥노이드 3인방 : 아, 들켰네ㅋㅋ 야 적당히 하라니까 눈치챘잖아

- 혼란하다 혼란해 ㅋㅋ 휴머노이드가 인간을 따돌린다

- 올빼미 : 얘들아··· 나도 있어···

- 엥? 아직 안 가셨어요? 눈치도 없게···

성진이 희미한 미소를 걸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능하다면 온전히 지켜주고 싶은 아이들이다.

“이거 근데 필름 들어있나 본데?”

“그렇습니까?”

“사진이나 한 방 박자. 모여봐.”

“같이 사진을 찍을 정도로 친하지는 않습니다.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너 방금까지 앞으로 친해지자고 하지 않았어?”

양준호와 손동원이 성진의 뒤로 붙었다. 그 앞에 정유리와 주인혁이 자리했다.

“야 좀 웃어라. 아까처럼 건치 좀 보여봐.”

“싫습니다. 억지로 웃고 싶지 않습니다.”

“준호, 네가 찍어봐.”

“오케이.”

양준호가 사진기를 넘겨받아 손을 쭉 뻗었다.

주인혁이 양손의 검지로 정유리의 입을 좌우로 추켜올렸다.

“므흐는 급니까?”

“찍어.”

“됐다. 찍혔어.”

이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사진이 밀려 나왔다. 정유리가 사진을 받아들었다.

“어디에 잘 걸어 놔라.”

“알겠습니다.”

“그럼 나도 좀 쉬련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래도 친해지니까 잘 자라는 말은 듣네.”

- 절·대·지·켜·줘

- 이 친구들 새드 엔딩 내면 데자뷰랑 맞짱 뜹니다

- 맞짱 빌런 어서 오고~

- 근데 지면 웃기겠다 ㅋㅋㅋ

- 데자뷰: 힘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

모두가 흩어진 자리.

성진도 잠자리에 들기 위해 준비를 마쳤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자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하지만 성진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왜일까.’

스으윽···

성진이 한 차례, 자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지상의 주택 공간이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정수열 박사의 연구소까지 도달한 과정을 되돌아보았다.

크게 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긴 시간이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싸워대며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주인혁과 정유리가 친구가 되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렇기에 더더욱 확인해야 했다.

생존자들을 구출해낸 지금은.

성진은 여정 내내 중간중간 전기 신호를 퍼트려 색적했다.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다.

이상을 발견한 것은 이곳에 와서였다.

누군가 외부로 신호를 보냈다.

성진은 그것을 감지했고.

드르륵···

오랫동안 아무도 앉지 않았던 의자 두 개에 누군가 앉았다. 한 명은 방금 앉은 성진이고, 다른 한 명은 외부로 신호를 보낸 자다.

“···대답을 신중히 골라.”

성진의 앞에는 양준호가 앉아 있었다.

“준호야. 너···.”

지직··· 지지직···

양준호의 한쪽 눈이 깜빡이며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티야?”

그 빛은 피처럼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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