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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39화 (139/222)

# 139

139화

용의 소리는 가까웠지만, 탄타르빌까지는 거리가 멀었다.

일행은 날이 너무 어두워지자,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최별이 물었다.

“게릭, 궁금한 게 있어요.”

“푸히히히, 물어봐!”

“용인들은 왜 모든 용이 죽었다고 한 걸까요?”

“그 거짓말쟁이들은 자신들을 속이는 거야. 탄타르빌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가 들리지 않겠냐고! 세게이아를 마지막으로 용은 이제 없다고 생각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겠지.”

“그러니까요, 탄타르빌에 가까이 가지 않는 것도 그렇고 왜 일부러 용을 외면하는 걸까요?”

“그건…….”

성진은 왠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행동해 왔는지.

“탄타르빌에서 진상을 확인하는 게 무서운 게 아닐까 싶습니다.”

“네?”

“게릭, 용인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탄타르빌에 도달한 적이 없다고 했죠?”

“그래! 그 겁쟁이들은 탄타르빌이 멸망한 그날 이후로 내가 만든 도시에 단 한 번도 다가간 적이 없지.”

“어쩌면 그들은 과거의 잘못을 마주하기 두려운 걸 수도 있습니다.”

“헹! 저들이 저지른 잘못을 마주하기 무서운 거겠지! 네 말이 맞아!”

“또다시 그 상황을 겪는 것도 마찬가지죠.”

“…….”

일행이 잠시 고민을 거쳐 성진의 말을 알아들었다.

최별이 호응했다.

“그러니까, 또 그 용을 마주하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모를 수 있다는 거죠?”

“네, 그들은 자신들이 용에게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용인들은 스스로를 믿는다고 포장했지만, 그들의 신앙과 주술 그리고 가치관은 용을 섬기는 것에서 비롯됐다.

그들은 용을 신격화하고 있었다.

타간이 비웃었다.

“멍청한 녀석들…… 그따위 도마뱀이 뭐라고…….”

“어떤 종족이든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원시적이라는 소리를 듣지! 종의 최정점에 섰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지금은 과거에 얽매여서 나아가질 못하니까!”

“뭐, 맞는 말이네요. 용인들이 우리를 돕진 않겠죠?”

게릭이 노발대발하며 최별에게 화를 냈다.

“그런 놈들은 믿을 수 없어! 친구의 죽음을 외면한 녀석들에게 영광스러운 복수를 함께할 자격이 주어져선 안 돼!”

“침착하세요. 일단 전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그, 그야 그렇지…….”

-난쟁이 엄마 최별. ㅋㅋㅋ

-최별 : 착하지~ 기다려~

-누가 최별을 괴물로 만들었는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하루 묵을 장소를 찾다가 일행이 들어간 작은 동굴에는 먼저 자리 잡은 손님이 있었다.

“어? 너희는 뭐야?”

게릭이 평소에도 사용하는 간이 은신처라고 안내한 장소였는데, 어째서인지 모르는 존재들이 있었다.

용인들이었다.

머릿수는 둘.

상대는 갑자기 등장한 일행에 놀라 허둥지둥 변명했다.

“저, 그…… 주인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사죄드리겠습니다.”

“감히, 용인들이 내 쉼터를 마음대로 써?”

“하지만 비가 쏟아져서…….”

“비는 아까 그쳤는데…… 오호라…….”

게릭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는 이 용인들이 왜 자신의 쉼터에 몸을 숨긴 건지 눈치챈 것 같았다.

“너희…… 들었구나?”

“…….”

“세게이아의 자손의 울음을. 그래서 지레 겁을 먹고 발이 안 떨어지는 거지?”

“…….”

게릭이 말한 내용이 어느 정도 맞았는지 용인들은 불쾌해하면서도 부정하진 않았다.

“푸히히히히! 이것 보라고! 이 겁쟁이들은 용 앞에만 서면 벌벌 떠는 족속들이야!”

“마, 말씀이 지나치…….”

“어이, 내 집에서 나가라.”

최별과 송하린이 말했다.

“게릭, 밤이 깊었어요. 하루는 쉬었다 갈 필요가 있어요.”

“이이…….”

“고난을 마주한 자를 외면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그냥 하루 이곳에서 묵게 해 주는 건 어떻소?”

게릭이 버럭 소리치고 밖으로 나갔다.

“마음대로 해!”

“어디 가세요?”

“산책!”

성진이 그를 따라나섰다.

-아 ㅋㅋㅋ 중립 기어 친구 포지션은 꼭 이런 거 따라 나와야 해.

-초모 : 야야ㅋㅋ 쟤가 원래 그래, 화 풀어.

“게릭, 이야기 좀 하시죠.”

“제길!”

깡!

박혀 있는 병기의 자루를 걷어찼다가 애꿎은 발등만 다쳤는지 게릭이 발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야! 아파라!”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린 겁니까?”

“몰라.”

“네?”

“모른다고. 얼마나 살았는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게릭은 고대 난쟁이 중 유일한 생존자일 확률이 높았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 모두가 성진이 모르는 역사일 것이다.

“나는 내 형제에게 추방당했어. 마도 공학을 무분별하게 탐했기에 내 형님이 그렇게 결정했지. 사고가 일어나서 꽤 죽었었거든.”

“그렇군요.”

-게릭! 이 멍청한 녀석! 네 실수로 얼마나 많은 이가 비통하게 죽었는지 아느냐!

-하, 하지만 이건 위대한 진화를 위한 한 걸음이야! 비록 희생이 좀 있었지만…….

-희생? 좀? 게릭, 네 눈에는 허망하게 죽어 간 저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 것이냐? 얼마나 무고한 시체를 더 쌓아야 멈출 것이야!

-……보이지 않아.

-뭐?

-나한테는 이게 더 중요해. 우리는 충분히 더 위대해질 수 있어!

-……너에게 실망했다, 게릭. 넌 일족의 미래를 짊어질 자격이 없어. 널 별의 도시 탄타르빌에서 영원히 추방하겠다.

-누구 마음대로! 내가 만든 도시야! 누구 때문에 난쟁이들이 이렇게 번영하는데!

-나 탄타르빌의 왕, 게야르의 뜻이다. 나는 이제 널 보고 싶지 않다, 동생아.

-후회할 거야!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내가……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탄타르빌 위험 대응 자동화 체계는 이제 거의 막바지라고! 내가…… 내가…….

-동생아…… 후회는 내가 아니라 네가 할 것이다…….

성진은 그의 오래된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저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푸히히히히! 그리고 난 추방당했고 동면에 들어갔어. 형은 내가 만든 도시 방어 체계를 멸망하는 순간까지 사용하지 못했지.”

“…….”

“……내가 왜 용인을 싫어하는지 알아?”

“모릅니다.”

게릭은 울었다.

그의 어깨가 조용히 들썩였다.

“나를 보는 것 같아서야. 난쟁이들의 최후를 외면하고 방조한 그들의 모습이! 꼭, 꼭……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왜 그러십니까?”

“그러면 안 됐어…… 그런 짓을 저지르면 안 됐다고…… 게릭 이 멍청이! 쓰레기! 고블린 같은 놈!”

“게릭.”

“형님…… 형님은 늘 현명했어. 그 뚱뚱보 게야르 놈이 한 말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고…… 내가, 내가 후회할 거라는 것도 그놈 말대로 됐잖아!”

게릭은 횡설수설하다가 결국 진실을 말했다.

그는 품에서 작은 보석 하나를 꺼냈다.

성진은 그것에 관해 물었다.

“그게 뭡니까?”

“탄타르빌 위험 대응 자동화 체계. 그 관리자 열쇠야.”

“……그런데요?”

“탄타르빌의 방어 체계는 완성 직전이었어. 단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우리는 위대해질 수 있었는데…….”

“…….”

“형에게도 같은 게 있었어. 비록 미완성일지라도 이걸 사용했다면 분명 모두 죽지는 않았을 텐데……. 어쩌면 그게 형의 선택인지도 몰라. 피로 쌓아 올린…… 통제하지 못하는 힘 따위에 의지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뭐, 아니라면 이걸 사용할 틈도 없이 당했겠지.”

-……시발.

-그래서 멸망했구나.

-와;; 자괴감 어쩔;;

-자괴감이 문제냐. ㅋㅋ

-곤란하다, 참. 형제도 죽었잖아.

-시민들도 게릭이 구축한 힘을 믿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겠지.

-다투지 않았다면, 문제가 터지지 않았다면 하는 후회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완성했으면 탄타르빌에서 용 쫓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잖아.

게릭의 의안은 슬픈 얘기를 해도 울지 않았다.

반대쪽 눈에서 눈물이라는 후회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에 비하면 매우 건조했다.

“내가 모두를 죽였어…… 내가 세게이아의 아가리로 모두를 던져 넣은 거야…….”

“게릭…….”

“내 잘못이야…… 내가……. 내가 지킬 수 있었는데…….”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 그래.”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이제 탄타르빌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용을 사냥할 거야…… 탄타르빌은 싸울 수 있었다는 걸 보여 줄 거야. 비록 그것이 속죄는 안 될지라도 내 형님과 난쟁이들이 나약해서 무너진 게 아니라는 걸 세상에 보여 줄 거야…….”

게릭은 공허한 사람이었다.

성진에게는 그가 복수심과 후회에 불타 삶을 잃은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는 탄타르빌을 되찾을 겁니다.”

“그래, 부탁이야. 부탁해…… 나 혼자서는 그만한 용기가 없어.”

***

성진과 게릭이 돌아왔을 때는 용인들과 일행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최별의 음성이 가장 먼저 들렸다.

“그러니까, 용이 있다는 걸 짐작하긴 했다 이건가요?”

“그렇습니다. 실제로 그 울음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지만.”

“용인들은 왜 탄타르빌 근처까지 오지 않는 거죠?”

“그건…… 두려우니까요…… 용은 용인에게 있어 신입니다. 그들을 거스를 수 없고, 용이 행하는 일은 신의 뜻이죠. 마치…… 당신들이 두려워하는 자연재해처럼요.”

“음, 그렇게 말하니 알겠구려. 물론, 이해는 못 하겠소이다.”

게릭이 돌아와 말했다.

그는 송하린에게 다가갔다.

“여자, 이 칼은 마검이다. 알고 있나?”

“마검? 아, 마인지 뭔지 그런 느낌이 들긴 했소.”

“별의 용광로에서 탄생한 첫 번째 검이지. 뭐, 실패작에 가깝긴 했지만.”

“사부님의 칼을 실패작이라 하지 마시오. 뚜껑을 따 버리기 전에.”

“푸히히히히…… 해 줄 말이 있어서 그런 거야! 작전을 변경한다.”

“뭐요?”

게릭은 송하린의 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너희들은 용을 벨 수 없어.”

“그게 무슨…….”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은 온통 용의 비늘에 들지 않는 것들이다.”

“비룡이나 아룡들은…….”

“그것들은 용이 아니야. 하지만, 세게이아의 자손은 진짜 용이다. 비록 지능과 마력이 없고 본능만 남은 열등한 용이지만 그렇더라도 용은 용이야.”

“마, 마법을 쓰거나 하진 않겠지?”

“세게이아도 마법을 사용하진 못했어. 만약 그녀가 마법을 사용했다면 스칸다는 진작에 그녀에게 멸망했을 거야, 푸히히히.”

성진은 송하린의 천마도를 쳐다봤다.

천마도는 분명 신비로운 힘을 품고 있었고, 그 상대가 무엇이든 벨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마검은 용과 상성이 안 좋아. 푸히히히, 가져올 거면 차라리 성검을 가져오지 그랬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을!

-Qu'ils mangent de la brioche!(대충 긁어 온 번역)

-그러게 ㅋㅋ 성검 가져올 걸. 아 ㅋㅋ 깜빡함!

-성검 마렵네. ㄷㄷ

-성검은 근데 어딨는 거임?

-내 다리 가운데에 있지.

-그건 고블린의 독 묻은 단검이고.

-……오크 정도로 해 줘.

-홉 고블린.

-미치겠군, 좋아, 4달러!

게릭이 뒷짐을 지고 거처를 서성였다.

그러다 타놀드와 형제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가져온 광석이 뭐라고?”

“에, 엘리움입니다.”

“……이거 재밌게 됐는데.”

“왜 그러십니까?”

“적당한 방법이 생각났어.”

게릭이 계획을 말했다.

“탄타르빌 위험 대응 자동화 체계가 발동하면 용을 쓰러트리진 못하더라도 상대할 순 있을 거야.”

“탄, 탄타르빌 뭐요? 그리고 쓰러트리지 못하면 소용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시간 벌이로 써야지.”

“시간 벌이?”

“아, 묻는 걸 깜빡했군. 이 엘리움으로 누구의 무기를 벼릴 건지.”

“저쪽의 저 청년이오.”

“흐음…….”

게릭이 성진을 보다가 꺽꺽대며 웃었다.

“이거 걸작이잖아! 아무래도 이 게릭과 탄타르빌에게 운이 따라 주는 것 같아!”

“무슨 말씀입니까?”

“별의 용광로에 대해 어디까지 알지, 후손들아?”

“난쟁이라도 벼려 낼 수 없는 전설의 무구를 창조하며, 왕족의 피가 흘러야 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습니다.”

“맞아. 거기에 부연 설명을 해 주지. 별의 용광로는 난쟁이를 필요로 하지만 너희가 직접 무기를 벼리는 게 아니야.”

“그, 그러면?”

“이 별, 스칸다가 벼리는 거지.”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별의 용광로는 스칸다와의 대화 창구야. 말하자면 거래를 하는 것이지. 그녀에게 광석을 넘기고 난쟁이의 피로 제사를 지내면 그녀가 광석을 병기로 만들어 돌려줄 거야.”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겁니까?”

성진도 당황했다.

이건 난쟁이들이 야금의 대가이건 망치질을 몇십 년, 몇백 년을 해 왔 건 소용이 없다는 얘기였다.

단지 몸을 빌려주는 것뿐.

“말해 줘도 몰라. 아무튼, 그 병기의 주인이 되는 자와 광석을 보고 스칸다가 병기를 내주는 거야. 이제 중요한 건 저 청년이 스칸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느냐는 건데…… 뭐, 내 기준에선 합격이지만…….”

“그, 그렇군요. 그런데 계획은 어떻게 변경되는 겁니까?”

“저 청년, 나, 그리고 너희 후손들은 곧장 별의 용광로로 향해. 그녀가 답을 주면 용을 쓰러트릴 무기를 건네줄 거야.”

“그럼 이 여인들은…….”

“당연히 시간을 끌어야지.”

“고작 둘이서?”

“탄타르빌 위험 대응 자동화 체계도 함께야. 물론 완전하지 않고 결손된 부분이 많아서 끽해야 가진 잠재력의 십분지 일도 발휘하지 못하겠지만.”

“타, 탄타…… 아무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인간 둘이서…….”

얘기를 듣고 있던 용인들이 놀라 물었다.

“요, 용에게 가는 겁니까?”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게릭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다 말했다.

“용을 죽일 거다. 너희 겁쟁이 용인들은 이번에도 멀리서 지켜보기나 하라고. 너희의 신이 추락하는 모습을…….”

성진은 용인들의 존재도 의문이 남았다.

“그런데, 용인들은 탄타르빌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비를 피하려다가 너무 멀리까지 와 버렸습니다. 비가 그치면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 했는데 그만…….”

송하린이 투덜거렸다.

“열심이구려, 그 병기들이 뭐라고.”

“이것들은 아직도 주인을 섬기는 병기입니다. 병기는 주인의 마음과 힘을 담고 있다는 얘기를 아십니까?”

“처음 듣소만? 용인들의 이야기요?”

용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대주술사님의 말씀을 따르는 겁니다. 언젠가 그들의 새로운 주인이 나오길 바라면서.”

최별은 어깨를 으쓱하고 그 말에 답을 남겼다.

“낭만적인 생각이긴 하네요.”

-힝 ㅠㅠ 내 여자 친구 울리지 마. ㅠㅠ

-조교 : 지금부터 이 총기를 애인과 같이 생각하라.

-조교님, 저는 평생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보지 못했습니다.

-상상력에 제동이 걸렸다. ㅋㅋㅋ

게릭이 용인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용의 존재를 직접 느끼니 어떤 생각이 드시나?”

“……무섭습니다.”

“당연하지! 내 말은 신처럼 느껴지냐 이 말이야.”

“모르겠습니다. 혼란스럽습니다.”

“그럼 됐어. 어차피 저 용은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 버릴 생각이니까.”

“대, 대주술사님에게 부탁을 드려 보면 분명 도움을…….”

“큭큭큭…… 친구도 외면한 겁쟁이들이 잘도 와 주겠군.”

용인들은 말이 궁해져 반드시 얘기해 보겠다고 소심하게 웅얼거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

-아니, 아침에 치킨 집 왜 안 열어? 얼탱이 없네;

-네가 튀기든가.

-초모 용잡이 일정이 아침으로 잡혔으면 당연히 아침부터 대기하고 있어야지. ㅡㅡ

-울 동네도 안 열었네. 이 집 장사할 줄 모르네!

-오늘은 연차 내고 캡슐로 직접 1인칭 시점 하려고 왔다. ㅋㅋ

-개부럽 ㅠㅠ 난 못 뺐어!

아침이 되어 용인들은 떠났지만 성진 일행은 남아서 계획을 점검했다.

게릭이 탄타르빌 위험 자동화 체계를 성진 일행이 쉽게 이해하고 조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이틀이 소모됐다.

이것이 용인들의 거처에서 탄타르빌까지 걸어서 이틀 거리였지만 일행이 나흘째에 탄타르빌에 도착한 이유다.

“이제 곧이야.”

게릭의 표정이 무겁게 변했다.

그는 탄타르빌이 가까워질수록 말수가 적어졌다.

“빌어먹을…… 제길…… 제길…….”

악에 받친 욕설이 그의 입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도착했다.

별의 도시.

용에게 빼앗긴 고향.

탄타르빌에.

최별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도시 외관은 크게 무너지지 않았네요?”

게릭은 웃었다.

“하지만 속은 텅텅 비었지. 다 죽었어.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이 앞까지 찾아온 줄 몰라. 멀리서 용을 지켜보다 돌아갔지.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분명 다를 거야…….”

용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세게이아의 자손은 성진과 일행의 접근을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윽…….”

“크윽…… 귀, 귀가.”

“방금, 몸이 굳었어…….”

-야 ㅅㅂ 게릭 구라쳤다. 존나 크잖아. ㅋㅋㅋ

-많이 활발하게 생겼넼ㅋㅋ

-불 좀 뿜게 생긴 게 아닌데. 동방제과 다 태워 버리게 생겼잖아;;

세게이아의 자손은 탄타르빌의 가장 높은 건물에서 몸을 말고 있었다.

그 몸은 건물을 아무렇지 않게 무너트릴 정도로 거대했고, 등에 달린 날개는 다 펼치면 태양을 가릴 것처럼 보였다.

비록 지혜를 가지지 못했지만, 그 압도적인 존재감만으로도 능히 생물의 정점이라 불릴 만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게릭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그는 후회하고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도시에서 보냈던 모든 날이 떠올랐다.

사거리에서 빵집을 하던 브렉트.

-제 빵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 겁니까, 게릭 님?

-당연히, 맛있으니까!

거짓말이었다.

브렉트의 빵은 맛이 없었다.

그런데도 매일 들러 그의 빵을 사 갔던 이유는, 그가 아침에 가게에 나와 있을 때의 미소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 빵 굽는 미소에 끌려 매일 그 가게를 찾았다.

“맛은 없는데…… 자꾸 생각나네.”

그리고 에밀리아의 꽃집.

-꽃이라니, 난쟁이랑은 좀 안 어울리잖아.

-무슨 말씀이세요? 난쟁이는 대지에서 났잖아요. 우리는 대지에서 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할 권리가 있어요.

-…권리? 그게 그렇게 되나?

-게릭 님은 매번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계시니까 낭만이 없는 거예요. 자요! 이거 꼭 연구실에 꽂아 두세요! 제가 드리는 거니까 함부로 시들게 하지 마세요! 그럼 때릴 거예요!

연구실에 가져와 소중하게 두었던 꽃.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그 꽃을 하염없이 쳐다보곤 했다.

나이가 들면 자신도 꽃집이나 차릴까 하는 생각 같은 걸 하면서.

이밖에도 그리웠던 사람, 미웠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했지만, 그들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탄타르빌이 멸망한 그날에 모든 게 무너졌다.

연기로 사라진 사람들, 게릭이 용서를 구해야 하는 한 사람만 남았다.

“혀, 형님…… 게릭…… 도, 동생이 왔어. 미, 미안해. 너무 늦었지?”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오해와 잘못된 관계는 후회를 낳았다.

“매일, 매일 그날을 후회해…… 내가…… 내가 사과했으면……. 무, 무리해서 일을 진행하지 않았으면…….”

게릭은 계속해서 훌쩍거렸다.

마치 그의 형이 도시 그 자체인양.

그의 말을 도시가 들어주고 있는 것처럼.

그가 뒤돌아 최별과 송하린에게 물었다.

“방법과 사용법은 들었지?”

“예.”

“정말…… 할 수 있는 거지?”

최별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고, 송하린은 짜증을 냈다.

“잔말 말고 시작하시오, 우리 형님이 기다리니까. 10초 정도야 버틸 수 있지.”

“10분이라고 했잖아요. 버티기만 하는 거라면 상관없어요. 뭐, 안전장치도 여럿 있다고 했으니.”

게릭이 보석을 탄타르빌의 외벽 가까이 가져갔다.

삐이.

-별의 도시 탄타르빌. 관리자 접근 확인. 용무를 말씀하십시오.

“위험 대응 자동화 체계 발동.”

-현재 도시의 위협으로 분류되는 개체는 총 1개체. 위험 지수 설정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새로 설정하시겠습니까?

“최대치로 설정.”

-위험 지수 최대치 ‘멸망’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즉각 대응을 권유하는 바입니다. 대응하시겠습니까?

“대응하겠다.”

-대응 방식을 결정해야 합니다. 전투입니까?

게릭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투가 아니야. 이건 전쟁이야.”

-전쟁 상황 설정. 총력전으로 전환합니다. 총 전력의 13% 운용 가능합니다.

기이이이이잉.

일행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탄타르빌이 별빛 찬란한 도시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맙소사…….”

죽었던 도시는 다시 숨결을 토해 냈다.

게릭의 눈이 빛났다.

“추방자가 돌아왔어.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어. 나도 나를 용서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무덤에서 까마귀를 쫓아내는 것 정도는 응원해 줄래?”

-탄타르빌은 당신의 승리를 응원합니다.

게릭이 울음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

“고마워. 형. 지켜봐 줘.”

-탄타르빌을 위하여.

“탄타르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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