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146화 (146/222)

# 146

146화

***

성진과 송하린이 넘겨받은 서류를 보다 말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반으로 갈라졌던 인파들은 아예 벽 쪽으로 붙거나 지부에서 나갔다.

‘누가 온 거지?’

일단의 무리가 지부 건물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자력이라도 발생하는 것처럼 그 주변으로는 사람이 꼬이지 않았다.

“옳지, 저기 보인다! 쟤네들이야?”

“도련님, 그런 것 같습니다.”

성진과 송하린에게 삿대질을 하며 건방지게 이야기하는 상대.

상대는 어린아이였다.

후하게 봐 줘야 열다섯이나 넘겼을 나이.

송하린이 속삭였다.

“귀족 가의 자제 같습니다, 형님. 죽일까요?”

“앞 문장이랑 뒷 문장이 연결이 안 되는데요?”

“아, 말버릇이었습니다.”

성진은 이 상황이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아 미켈을 쳐다보았다.

미켈은 성진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귀족 가의 자제에게 말을 붙였다.

“오슈아 님, 이곳은 모험가 협회입니다. 누군가를 찾으신다면 따로 인편을 보내셔서…….”

“닥쳐, 어딜 요정 놈이.”

“……네?”

“내 물건을 찾으러 왔다. 건방지게 일개 지부장 놈이 어디서 끼어들어?”

미켈은 울컥하고 분노가 치밀었지만, 상대는 어린아이였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이 어린아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어른들이 개입할 것이다.

꼬투리를 잡히면 모험가 협회가 견제당할 명분이 될 수도 있었다.

오슈아 대넌은 미켈의 생각을 읽고 더욱 활개를 쳤다.

“여기 그 블랙 오팔들이 왔다며?”

“그게…….”

“대답해, 저 거지들이 블랙 오팔이 맞아?”

-거지? 지금 우리 흑백쌍존 보고 거지라고 했냐?

-물론 하린이가 돈이 없긴 해, 하지만 구걸은 하지 않아!

-물론 초모 복장이 X밥 같아 보이긴 해! 하지만 거지는 심하잖아!

-니네 누구 편이냐? 니들 혹시 성이 대넌 아니냐? ㅋㅋ

-킹받네, 얼른 헤이~ 모두들 안녕! 내가 누군 줄 아니? 하면서 등장하라고. ㅡㅡ

성진은 대강의 상황을 이해했다.

아무래도 저 오슈아라는 귀족 소년은 자신들을 고용하기 위해 온 것 같았다.

물론, 정중하게 요청해도 모자랄 판국에 저렇게 강짜를 부리는 건 어린아이답다고 느껴졌다.

곤란해하는 미켈에게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진이 나서겠다는 신호로, 미켈은 안도했다.

이렇게 되면 모험가 개인의 문제이지 협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소 매몰차게 보일 수 있지만, 카멜롯에 뿌리가 있는 단체가 귀족과 문제를 만들어 좋을 것이 없었다.

그와 반면에, 흑백쌍존은 카멜롯을 떠날 것이니 마음대로 굴어도 되었다.

오슈아가 손짓했다.

“이봐, 이리로 오지.”

“싫은데.”

“뭐?”

성진의 옆에 있던 송하린이 앞으로 나섰다.

“꼬맹이, 혹시 생명 보험이라도 있는 것이냐?”

“그게 무슨 소리지?”

“목을 너무 내놓고 다니는 것 아니야? 걱정돼서.”

송하린이 살짝 터진 삿갓의 틈새로 눈빛을 쏘아 보냈다.

이쯤에서 겁을 먹고 물러나 주면 아주 좋겠다고 생각하며.

꿀꺽.

하지만 마른침을 삼킬 뿐, 오슈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더니 자신의 수하 중 유독 흉악하게 생긴 셋을 밀쳐 앞으로 내보냈다.

“싸워! 싸우라고! 내가 어떤 사람인 줄 가르쳐 줘!”

“큭큭큭…… 도련님도 참…… 블랙 오팔이라고 해 봐야 칼 맞으면 ‘아!’ 하고 더 깊게 들어가면 피 흘리며 죽어요. 뭐 하러 저런 후줄근한 놈들에게 목을 매는 겁니까?”

“너 그래서 블랙 오팔이야? 말대꾸할래?”

앞으로 내보내진 셋 중 가장 야비하게 생긴 사내가 가슴팍에 달린 버튼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딴 버튼 색이야 의미 없다니까요? 실력이랑 큰 상관이 없어요. 저희가 사람 죽이고 다닐 때 쟤들은 놀러 다녀서 색이 다른 거라고요.”

“그래서, 너희들이 더 세단 거야?”

“붙어 봐야 안다는 얘기죠.”

-5분 후 : 아; 이건 좀 ㅋㅋ 에바 참치였네?

-1분 후 : 붙어 봤는데, 알 것 같습니다. ㅎㅎ

-개 꼴 보기 싫다. 유저들 강세였을 땐 귀족들도 덜 까불었는데 왜 저런대.

-귀족들 타락은 나름의 이유가 있음. 카멜롯 특성상 원탁의 기사들 >> 대귀족 >> 중귀족 >> 소귀족 체제. 원탁 후원하는 귀족들끼리도 세력 차이가 좀 있고 정작 원탁의 기사는 서로 충돌하지 않으니 갈수록 귀족의 힘만 커지는 거. 뭐, 힘 커지면 타락하자나.

-다 알겠는데 대귀족 중귀족 소귀족은 뭐야 니가 지은 거지? 족발집 하냐?

-여기 귀족 대짜 하나요~ ㅋㅋ

-님 너무 잘 아시네요, 혹시 귀족?

오슈아는 그 대답에 옆에 있는 중년 남자의 옷을 잡고 흔들었다.

중년 남자가 고개만 살짝 돌려 오슈아를 쳐다봤다.

무게감이 있는 것이 앞서 나선 세 사람보다는 높은 사람 같았다.

“있지, 사브론! 얘들이 한 말이 정말이야?”

사브론이란 남자는 각진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예외의 경우가 있을 뿐이지 등급이 높을수록 강한 것이 일반적이긴 합니다.”

“그것 봐요! 붙어 봐야 안다니까?”

“사브론은 어떻게 생각해? 얘들이 이길까?”

“모릅니다. 상대가 기세를 숨기고 있어서. 그보다 꼭 싸워야만 하는 겁니까?”

“쟤들이 반항적이잖아! 아버지는 내가 어디 가서 무시당하고 오면 화를 내셔! 그러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 주는 건 귀족의 의무야! 그리고…….”

철그럭.

이마에 용 각인이 새겨진 사람들의 목에 단단한 쇠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오슈아는 그것을 잡아당겨 그들의 몸을 잡아끌었다.

“쟤들이 이방인이라는 소문이 있어서.”

“……보는 눈이 많습니다. 그만하시죠.”

사브론이 오슈아의 행동을 만류했다.

그 행동으로 대넌 가문은 이방인들을 노예처럼 다루는 것으로 보였다.

-선 넘네, 이 색히들.

-사탄 잡코리아에 이력서 입력 중.

-아, 어쩌지 송하린이랑 초모는 사릴 텐데;

-사린다고? 살인을 잘못 말씀하신 거 아닙니까?

오슈아가 성진에게 물었다.

“너희들 동부의 흑백쌍존이랑 비슷하다는 소문이 있는데, 맞아?”

“맞아.”

“나에게 경어를 써!”

“싫어.”

성진의 단답에 오슈아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마다 손에 쥔 사슬이 흔들려 노예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너희 이방인이지?”

성진과 송하린이 삿갓을 벗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아무것도 할 줄 몰라! 그러니 귀족들에게 다스려져야 해!”

“우리를 다스리게?”

“그럼! 먹여 주고 재워 줄 테니 나를 섬겨! 그러면 무례하게 굴었던 것도 용서해 줄게!”

“목에 저런 쇠고랑을 채우면 되는 건가?”

“그럼 더 좋고!”

“싫어.”

앞서 나선 3명 중 1명이 말했다.

“이거 보시라니까요. 뻣뻣하게 굴 거라고 했죠? 저희가 나설까요?”

“그래, 그래야겠어.”

“대신 봉급을 좀…….”

“좋아! 아버지에게 말해 볼게!”

“핫하! 역시 화통하셔!”

스릉.

앞서 나선 야비하게 생긴 셋이 걸음을 내딛으며 칼을 뽑았다.

샴쉬르 형태의 검은 날이 벼려져 있어 흉악했고 은은한 피 냄새까지 맴돌았다.

그 모습에 미켈이 나서려 했지만, 송하린이 손을 내밀어 그를 제지했다.

송하린은 도갑을 휙 던져 근처의 탁자에 올렸다.

뽑혀 나온 천마도에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

오슈아가 감탄했다.

“예쁘다! 더 마음에 들어!”

“도련님, 조금만 참으십시오. 저희가 이 자식들을 가져다 바치겠습니다.”

“훌륭해!”

순수한 악이었다.

선을 배우지 못했기에 저렇게 자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진은 송하린에게 당부했다.

“머리는 베지 마세요.”

“나머지를 전부 베겠습니다.”

“…….”

관중이 소곤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블랙 오팔인데 토파즈가 덤비는 건 좀…….”

“토파즈치고는 강한 놈들이야. 해적 출신이라 그렇지. 해적으로 이름 날렸을 때는 셋이서 사파이어 모험가도 쓰러트리고 했다던데?”

“비열한 짓거리를 했겠지.”

“그거야 보면 알 거고.”

성진은 해적 출신이라는 말에 귀상어가 떠올랐다.

잘 살펴보니 상대는 모두 생선의 얼굴을 닮았다.

광어, 메기, 복어.

팟.

메기와 복어가 먼저 파고들고 광어가 틈을 노렸다.

캉!

카앙!

송하린은 한두 번의 손짓으로 그것을 어렵지 않게 튕겨 냈고, 이어진 광어의 공격엔 장풍으로 맞섰다.

팡!

“큭…… 더 몰아붙여! 다리를 노리라고!”

일대다의 전투는 무조건 다수가 유리했다.

칼은 하나였지만, 수비해야 하는 부위는 하나가 아니었다.

캉!

챙!

송하린이 무표정하게 공격을 튕겨 내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광어가 다른 생선들과 함께 공격해 오는 순간이었다.

후우…….

송하린의 눈에서 귀기가 흘러나오고 천마도가 미친 듯이 나부꼈다.

파파파팟!

“……어?”

“어어…… 마, 막았…….”

천참만륙(千斬萬戮).

송하린이 방금 구사한 초식은 너무 잔인하고, 상대와 대등할 경우 성공하기 어려운 초식이었다.

생선 삼 형제는 도광이 번뜩였다고 느낀 순간 온몸이 넝마가 되었다.

후아앙!

성진이 손을 뻗자 신성력이 그들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육편(肉片)이 되어 흩날릴 뻔한 상대의 몸이 거짓말처럼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광어가 히죽 웃었다.

“사, 사술이구나! 이번엔 어림도…….”

“힉! 히이이이익!”

“왜, 왜 그래?”

“오, 옷이랑 칼이…….”

생선들의 칼은 처참하게 조각나서 바닥에 파편을 떨어트렸고 옷은 갈기갈기 찢어진 것도 모자라 피에 젖어 있었다.

마치 꿈을 꾸었는데 온몸의 피가 빠져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을 지켜보던 모험가들이 기함했다.

“맙소사…….”

“봐, 봤어?”

“앞부분만…… 그것도 다 못 봤어.”

“저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은 또 뭐야? 방금 무슨 빛이었지?”

“이거 야단났는데……. 동부 놈들은 뒷생각은 안 하고 일을 저지른다던데.”

생선 삼 형제가 혼이 빠진 듯 뒤로 돌아 오슈아에게 갔다.

“못 이깁니다. 아니, 저…….”

“정신 차려! 왜 그래!”

“괴, 괴물들입니다. 도망쳐야 합니다.”

“마, 맞아요! 도망쳐야 살 수 있습니다!”

“다치지도 않고선 무슨 헛소리를…….”

생선 삼 형제의 옷이 피로 젖어 있다는 걸 그제야 눈치챈 오슈아가 입을 다물었다.

싸움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오슈아는 사브론에게 물었다.

“사브론, 어떻게 해야 해.”

“도망쳐야 합니다.”

“싫어. 왜? 우리가 진 거야?”

“졌습니다.”

“아직 사브론은 지지 않았잖아?”

“……저까지 나서길 바라십니까?”

“사브론은 제일 강하잖아! 저런 놈들쯤은 사브론이 나서면 순식간에 해치울 거잖아, 응? 그렇지?”

사브론이 몸을 낮추고 오슈아에게 경고했다.

“오슈아 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십시오.”

“응, 들을게.”

“저는 오늘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게 뭔데? 세 가지나 돼?”

“첫째, 오늘 오슈아 님이 이곳에 와서 새로운 이방인 노예를 길들이겠다고 한 것을 말리지 못한 것. 둘째, 오슈아 님이 힘으로 저들을 제압하겠다고 한 것을 말리지 못한 것. 셋째, 저들의 무력을 곧바로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게 무슨 잘못이야……. 이해가 안 돼.”

“잘못하면 우리는 지금 여기서 죽습니다.”

“아,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을걸…….”

사브론이 고개를 저었다.

“대넌 가에 저보다 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마 가주님께서는 이 사태가 좋지 않게 끝난다면 주변 귀족들까지 끌어들이겠지요. 그래선 카멜롯이 발칵 뒤집힐 겁니다.”

“사브론…….”

“제 잘못입니다. 제가 오슈아 님을 꾸짖지 못해 이 사단이 일어났습니다. 돌아가면 벌을 받겠습니다.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죠.”

생선 삼 형제는 오슈아의 옆에 바싹 붙었고 사브론이 앞으로 나섰다.

송하린은 살기를 풀고 그를 쳐다보았다.

사브론이 말했다.

“무례했습니다. 사과한다면 받아 주시겠습니까?”

“사과?”

“사과 안 해! 안 할 거야! 나는 그런 거 안 배웠어!”

“오슈아 님!”

오슈아가 울음을 터트렸다.

성진이 송하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앞으로 나섰다.

분노한 송하린은 사태를 원만히 끝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과라…… 대가를 치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진은 자신의 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제 목입니까?”

“아뇨, 대넌 가에 붙잡힌 이방인들을 해방하는 겁니다.”

“……수가 꽤 될 텐데요.”

“그러니까 하는 말입니다.”

“싫어! 안 줘! 못 줘! 내 거를 왜 줘야 해!”

오슈아가 다시 사슬을 잡아끌었다.

“으으…….”

“아파요…….”

순간, 성진의 눈에 살기가 치밀었다.

그것을 본 사브론이 소리쳤다.

“오슈아! 이 망아지 같은 자식!”

“뭐, 뭐? 사브론 지금…….”

“상황을 똑바로 보아라! 너는 지금 목숨을 구걸해도 모자라다! 어찌 이리 생각이 없느냐!”

“나한테 왜 그래…… 너희가 잘못했잖아…….”

사브론이 한숨을 쉬고 오슈아에게 말했다.

“오슈아, 대넌의 아이야. 네 선조에게 은혜를 입고 너를 섬겼다. 너는 끝까지 나를 모욕하는구나. 좋다, 네 선조를 봐서 나는 내 의무를 다할 테니 네 목숨은 네가 챙기거라.”

사브론은 사파이어 버튼을 달고 있었다.

청옥(靑玉).

흑단백석 바로 아래의 강자에 속하는 등급이었다.

사브론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 성진에게 말했다.

“나는 섬기는 자로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당신을 쓰러트리려 노력할 것이고, 모든 수를 동원할 겁니다. 당신은 내가 이기면 우리를 보내 주어야 하고 내가 진다면 당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십시오.”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사브론!”

사브론은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잡았다.

건틀렛과 단검 한 자루.

자세를 낮춘 그가 호흡을 멈췄다.

팟!

순식간에 사라진 사브론.

훙!

성진의 뒤에서 나타난 사브론이 건틀렛을 낀 손으로 성진의 뒤통수를 후려치려 했지만, 성진의 손등이 그를 가볍게 밀어냈다.

단검이 성진의 사각(死角)에서 파고들었다.

성진은 단검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특이한 단검이라는 걸 눈치챘다.

손잡이가 가운데에 달려 있고 위아래로 날이 있는 구조였다.

휙!

휘익!

고개만 까딱여 어렵지 않게 피해 낸 성진이 손바닥을 곧게 펴 사브론을 가슴팍을 밀어내려 했다.

“헙!”

사브론은 위협을 느꼈는지 건틀렛을 당겨 와 성진의 손바닥을 막았다.

파앙!

이어 건틀렛에 전해지는 충격.

콰직!

콰지직!

사브론이 충격에 날아가 탁자 두어 개를 박살 냈다.

그리곤,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푸스으으.

-도적이네.

-연막 개 까다로운데;

-1:1 강캐 도적. 왜 저 사기 스킬 아직도 삭제 안 하냐?

성진의 주변으로 검은 연기가 회오리쳤다.

성진은 이런 경험이 한 번 있었다.

독흉과 검흉과의 싸움이 꼭 이런 구도였다.

물론, 성진은 그때보다 몇 배는 성장했다.

성진이 가볍게 바람을 일으켰다.

후아아아앙!

그러자, 엄청난 소리와 함께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응집력을 잃은 연막은 더는 사브론의 모습을 감추어 주지 못했다.

사브론은 당황하지 않고 단검을 집어 던졌다.

휭!

성진이 몸을 뒤틀어 단검을 피하자, 사브론은 건틀렛의 주먹을 꽉 쥐고 잡아당기는 동작을 했다.

단검이 쏜살같이 되돌아갔다.

그 경로에는 성진의 등이 있었다.

성진은 어쩔 수 없이 몸을 회전해 단검을 피했지만, 그것은 사브론의 노림수였다.

사브론을 시야에서 놓친 사이, 그의 손에 검은 안개로 둘러싸인 검이 쥐어져 있었다.

성진은 뒤틀린 자세를 바로잡고 천으로 휘감긴 검을 쥐었다.

그의 눈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사브론은 그 모습에서 지옥을 엿보았다.

어떻게 공격하든 모든 공격이 막히고 자신은 훈련용 짚단처럼 사선으로 토막 날 것 같은 감각.

그 두려움이 그의 공격을 멈추었다.

“헉…… 허어억…….”

텅.

사브론의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성진은 그를 베지 않았지만, 사브론은 호흡을 과하게 쓴 건지 그의 얼굴에 핏줄이 돋았다.

“뭐, 대체 뭐…….”

성진이 검을 쓰기 전까지는 사브론도 나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검을 쥐자 사브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전투가 끝났을 때, 사브론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송하린이 성진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오래 걸리신 거 아닙니까?”

“평화적으로 끝내려다 보니.”

“저였으면 바로 반으로 쪼갰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대신 나섰잖아요.”

오슈아가 사브론에게 뛰어갔다.

“사브론! 왜, 왜 그래!”

“오슈아 님…….”

성진이 오슈아에게 말했다.

“목숨은 살려 주겠다. 이방인들을 넘겨.”

“이…… 싫어, 싫다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만 그래! 귀족들은 다 이방인들 데리고 있다고!”

“그들에게서도 받아 갈 거야.”

“안 돼! 못 줘! 아버지에게 말씀드릴 거야! 너희를 카멜롯에서 추방해 달라고!”

“오슈아 님!”

사브론은 오슈아의 옷깃을 붙잡지 못했다.

힘이 빠져 허공을 휘적거린 사브론은 협회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 문으로 들어오는 이가 누구인지도.

“가, 가주님!”

대넌 가의 가주, 오웬 대넌이 가신들과 함께 협회의 문을 넘었다.

그는 위엄 있는 말투로 사브론에게 상황을 물었다.

“사브론, 이게 무슨 추한 꼴이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저, 저 천박한 놈들이…….”

짜악!

“저…… 저!”

“아이고…….”

오슈아가 오웬에게 뺨을 얻어맞고 바닥에 허물어졌다.

“멍청한 녀석. 가문의 망신은 홀로 다 시키는구나.”

“아, 아버지…….”

“비켜라, 누가 이 망아지를 데리고 가거라.”

“예.”

오웬은 성진을 바라보고 말했다.

“자식 놈이 실례가 많았군.”

“애가 그럴 수도 있죠.”

-저거 조롱하는 건데. ㅋㅋㅋ

-나, 이거 봤어! 존윅 아니냐?

-아버지는 말이 통하려나?

오웬은 성진에게 말했다.

“이곳까지 오며 대강의 상황은 전해 들었다. 바라는 게 있나?”

“가문의 이방인들을 노예에서 해방해 주시죠.”

“……꽤 큰 걸 바라는군. 구원자 놀이인가?”

“그렇게 한가하진 않습니다.”

성진은 오웬을 경계했다.

지금은 체면 때문에 점잖게 행동했지만,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금세 얼굴에 철판을 깔고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

그 예상은 역시나 맞아떨어졌다.

“웃기는 군…… 천한 놈 따위가.”

“…….”

“이야기를 들어주니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으냐? 보는 눈이 많다고 내가 너 하나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계속하시죠.”

“널 카멜롯에서 추방해 주마. 그리고 영원히 이곳에는 발붙이지…….”

그때였다.

카멜롯에서 귀족의 말은 보통 그 누구도 끊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 위에 선 존재는 그것이 가능했다.

“이게 누구야, 대넌 가의 새로운 가주인가?”

끼이익.

문을 열고 등장한 사람은 최별이었다.

그녀의 붉은 갑옷은 그녀를 쉽게 알아보게 했다.

관중이 이번엔 큰 소리로 쑥덕였다.

“부, 불꽃의 기사다.”

“원탁이야! 원탁이 왜 이 일에…….”

“일이 너무 커지는 거 아니야?”

“설마, 저 모험가들이랑 아는 사이인 건가?”

“에이…… 설마…….”

-최별 잘나가긴 하네. ㅋㅋ

-초모랑 최별 입장이 바뀌었네.

-최별 창밖에서 몰래 훔쳐보다가 이때다 하고 들어온 거임. ㅋㅋ 빼박이다.

-로맨스 드라마의 한 장면이네, 위기에서 구해 주는 능력자.

-너만 보인단 마리야~ 널 사랑한단 마리야~

최별이 오웬에게 말했다.

“소란스럽기에 와 봤더니 재밌는 짓거리들을 하고 있네.”

“……최별 님.”

“보아하니 자식 관리를 잘못해서 일이 커진 것 같은데 내가 잘못 이해했나?”

“……말씀이 과하십니다. 베디비어 님이 아시면 언짢아하실 텐데요.”

“나를 겁주는 건가?”

“그럴 리가, 아직 정식으로 원탁의 일원이 된 것도 아닌 당신께 굳이 베디비어 님의 이름을 들먹여 겁을 줄 필요가 있을까요?”

“난 너희 귀족 놈들이 싫어.”

“피차일반입니다.”

“조만간 부패한 놈들을 깡그리 치워 주지.”

“그게 과연 최별 님 마음처럼 쉽게 되실까요?”

최별은 투구를 벗고 오웬에게 미소 지었다.

“소식이 늦구나? 이미 주사위가 던져졌어.”

“그게 무슨…….”

“최후의 증명이 시작될 거라고.”

오웬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최후의 증명이 시작되면 단 1명의 기사가 모든 권한을 넘겨받는다.

당연히 지지하는 기사가 패한다면 귀족도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그가 물었다.

“저, 정말입니까?”

“내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하겠어? 란슬롯, 그 남자도 오고 있다던데.”

“이런, 빌어먹을…… 가자! 돌아간다!”

“어이, 이방인들은 두고 가야지.”

“……가져가든지 말든지, 하지만 가문에 속한 이방인들 전부를 돌려주진 않을 것입니다.”

“뭐, 나중에 내가 알아서 받아 가면 그만이야.”

“할 수 있다면 해 보시지요.”

“할 수 있어. 늘 그랬거든.”

“……가자.”

오웬이 몸을 돌려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의 가신들이 사브론의 몸을 부축하고 협회를 빠져나갔다.

성진은 남겨진 이방인 노예들에게 다가갔다.

“웃…….”

“하, 하지 마세요…….”

몸을 잔뜩 움츠러든 노예들은 군데군데 멍 자국이 있었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의 목에 걸린 쇠고랑을 가만히 지켜보던 성진이 양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것을 순식간에 끊어 냈다.

쩡!

“저, 저게 가능해?”

“이럴 수가…….”

별도의 잠금을 해제하지 않고도 단단한 쇠고랑을 악력으로 풀어 버린 성진에게 관중이 환호했다.

“본때를 보여 줬네! 그 꼬맹이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고!”

“와, 그…… 어, 어떻게 이긴 건지 말 좀 들을 수 있을까?”

“그, 그보다 이름! 활동명을 좀 알고 싶어!”

원탁의 일원인 최별에게는 감히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지만, 성진의 선행 때문인지 성진과 송하린에게는 사람들이 다가갔다.

난장판이 되어 가는 모험가 협회 카멜롯 지부.

지부장이 통제하기 위해 나서려는 찰나, 누군가 불씨를 지폈다.

“뭐, 뭐야 이 내용은…….”

“뭔데 그래?”

성진과 송하린이 들고 나왔던 서류였다.

탁자 구석에 던져 놓았던 그 서류를 누군가 읽고 있었다.

“모험가 송하린, 최별 탄타르빌 정찰 건으로 포인트 복구. 원래의 등급인 스, 스타 사파이어 승급 예정.”

“뭐, 뭐라고?”

“모험가 초모. 마찬가지로 탄타르빌 정찰 건으로 포인트 획득, 또한 대삼림의 대공 네시온 처치 사건 정밀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됨. 비록 그 과정이 옳지는 못했으나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정상참작 가능. 따라서 스, 스타 사파이어 승급 예정. 위 셋은 모두 카멜롯에서 승급 행사를 진행할 것이고 현재 관계자가 카멜롯으로 향하는 중…….”

스타 사파이어.

성채남보석(星彩藍寶石).

별이 가득한 그 보석은 보는 이들을 매혹했다.

이 보석은 최상위 3명이 가지는 명예로운 활금강(活金剛)을 제외하면 협회의 가장 높은 등급이었고 과거의 대영웅들이 가졌던 등급이다.

성진은 마침내 그들과 같은 위치에 섰고 세계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가고 있었다.

군중은 미켈이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난동을 피웠다.

“스, 스타 사파이어! 제발! 하, 한 수만 알려…….”

“여, 여태까지 어떤 모험을 하셨습니까? 궁금합니다!”

“비켜 이 새끼들아! 줄! 줄 서라고! 질문은 한 번씩만 해! 저부터 해도 될까요? 혹시, 소속된 곳이 있으십니까?”

“너도 방금 두 번 했잖아, 이 새끼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