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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48화 (148/222)

# 148

148화

바스카리 크라우드 펀딩.

최근 어딜 가더라도 그에 관한 얘기로 가득했다.

“나도 일단 게시물 올리긴 했는데, 내가 맡겼던 곳은 망한 것 같던데.”

“근데 그게 일반적이야. 그래도 나는 땅에 묻어 놔서 다행이다.”

“야, 근데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일일이 찾아서 본대? 산골짜기에 숨겨 둔 애들도 있을 거 아니야?”

“야화 못 봤냐? 걔들이 이런 일 전문이라잖아. 보니까 올라온 글 일일이 정리해서 걔들한테 넘기면 알아서 되찾아 온다는 것 같던데?”

“그게 돼?”

“된대.”

상황은 직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과장님, 바스카리 펀딩 하셨어요?”

“나는 스칸다 때 만렙도 못 찍어서 그런 거 할 계제가 못 돼.”

“에이, 그래도 참여하는 데 의의를 두는 거죠. 안 그래요, 황 인턴?”

“다들 추억에 젖어서 하는 거죠, 뭐. 김 대리님도 스칸다 좋아하셨어요?”

“하하…… 나야 완전 빠져 살았지. 그래도 중간에 정신 차리고 이직 준비해서 여기 온 거야. 아니었으면 지금도 집에서 방송만 보고 있었을걸?”

“집에 아직도 캡슐 있지 않으세요?”

“그러게. 이제 게임은 손도 안 대는데, 못 버리겠어. 추하지?”

“뭐가 추해요. 남자는 말입니다, 추억을 먹고 사는 생물이에요!”

“그런가? 황 인턴은 펀딩 참여했어?”

“예, 가진 게 돈뿐이라.”

“오, 자신감……. 스칸다에서 뭐 했었는데?”

“상인이었어요. 경제학과 재학 중이라 무턱대고 뛰어들었었죠.”

후룹.

김 대리는 인스턴트커피를 다 마시고, 빈 커피 잔에 다 피운 꽁초를 집어넣었다.

“상인이라, 돈 좀 만졌어?”

“네. 섭 종 때까지 좀 만졌었어요.”

“아이디 뭐였는데?”

“원래 아이디 같은 건 말 안 하는 게 낫지 않나요? 너무 창피해서…….”

“에이, 뭐 어때서 그래.”

“‘돈앞에친구없다’였어요.”

“…….”

“대리님?”

“돈친이었다고? 황 인턴이?”

“네, 돈친이라고 불리긴 했었는데요? 왜요?”

“아니. 이런 미친…… 돈친 존나 유명했잖아. 내 주변에 네임드가 있었다니…….”

“그래 봐야 상인인데요, 뭐. 흑단백석이나 성채남보석 모험가들이랑 비교하면 그냥 장사꾼이죠.”

“그, 그…… 그…… 펀딩에는 뭐 냈어?”

“펀딩요? 부동산 문서 몇 개랑 나머지 재산 있는 곳 위치 넣었는데요.”

“누가 훔쳐 가면 어쩌려고?”

“성채남보석 셋 말고 스칸다에 있는 사람이 있나요?”

“어, 없지.”

“그럼 훔쳐 가는 게 아니라 받아가는 거죠.”

“세상에…… 아니 그 많은 돈을 왜 펀딩에 갈아 넣는 거야?”

“크라우드 펀딩은 리워드가 존재하죠. 아시잖아요?”

크라우드 펀딩엔 리워드가 존재한다.

투자한 만큼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돌려받는 게 있었다.

바스카리 크라우드 펀딩의 리워드.

황 인턴이 그것을 이야기했다.

“바로, 보람…….”

“점심 잘 먹고서 뭔 헛소리야.”

“그냥 어차피 못 쓰는 돈, 쓰면서 생색이나 내는 거죠. 재밌잖아요?”

***

디스토피아에서도 바스카리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제목 : 아내가 이상한 사이트를 들락거리는 것 같다.]

뭐 하냐고 물어보면 ‘우리 오빠한테 보내는 거야, 신경 쓰지 마.’라고 하는데 대체 누구지?

너희 뭐 아는 거 있니?

-컨셉 잡지 마라, 짜증나니까.

-ㅈㅅ;

-이젠 이런 똥글까지 올라오네. ㅋㅋ

[제목 : 현재까지 파악된 펀딩 참여자]

예상 환수 금액 낮은 쩌리들은 제외하고 진짜배기들만 정리하면 역시나, 모험가들이 많았다.

또 생각 외로 상인들의 참여율은 저조했는데, 그래도 돈친을 비롯하여 그와 친분이 있는 몇은 참여했다.

모험가들은 옥따리 새끼들과 흑단백석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차원의 벽만큼 펀딩액에 차이가 있었다.

거기에 더해 흑단백석과 성채남보석간의 차이는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기자님이세요? 정리를 기자처럼 했대?

-통계청에서 나오셨나? 올해 출산율은 몇이래요? -0.7까지는 봤는데.

-아, 출산율 나한테 걸리면 순식간에 치솟게 할 수 있는데. ㅋㅋ 제발 기회 좀 달라고 ㅠㅠ 연애하게 해 주세요.

-흑단백석이랑 성채남보석은 솔직히 업적 차이지 실력은 크게 차이 안 날걸? 물론 나긴 난다만…… 글고 걔들이 펀딩액 최대로 해도 상인들 넘을 수 없긴 함.

-왱?

-걔들은 걸어 다니는 상단이잖아. 귀속된 무구가 지랄 맞게 비싼 거지 정작 지닌 건 얼마 안 될걸?

-낄려고 냅 둔 비귀속 무구들은 존나 비싸긴 하겠다. ㅋㅋㅋ

-그럼 ㅇㅈ이지 천장 뚫을 걸. ㅋㅋ

[제목 : 상인들은 들어라, 이 후레자식들아.]

이 색히들 또 스칸다 재오픈할 줄 알고 돈 안 푸는 거 보소. ㅋㅋ 모를 줄 알았냐? 빨리 돈 풀어라. 안 그러면…….

내가 조금 화날지도 모르니까…… 큿소…… 또 분노해서 세계를 부숴 버릴 뻔했잖아?

-찐.

-킹카.

-상인들 간 보는 거 모르는 사람 있냐?ㅋㅋ 돈친이 이상한 거지.

-ㅇㅈ 솔직히 상인들이 괜히 상인이냐? 이래저래 다 따져 가면서 그 자리까지 간 건데 펀딩에 처박기에는 좀…… 난 상인은 아니야.

-이상 상인들 검거 완료했습니다.

[제목 : 펀딩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기세 ㄷㄷ]

물론 저 중에 반은 거를 정보고 또 그 절반은 사라진 돈이겠지. 그래도 남은 것만 건져도 롸끈하게 바스카리 입성하는 거 아니냐?

-야 ㅋㅋ 놋데월드 퍼레이드처럼 삼바 복장으로 입장 가능.

-초모 탭댄스 추면서 입장해도 멋있다고 할 걸. ㅋㅋ

-뭐 하냐고 돈 내노라고 방구석 폐인들아!

-ㄴ(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야, 이거 협회까지 동원해서 찾아야 할 듯?

***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가 최근에는 게시물이 너무 많아져 곤란할 지경이었다.

닉네임 인증을 해야 했기에 허위 정보는 일차적으로 걸러졌고, 입수 난도가 높은 펀딩은 후 순위로 밀렸다.

-그니까 이 돈이 어디에 쓰인다고?

-신도들 생활비라잖아. 바스카리 입성한 신도들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금액!

-야, 근데 모이는 속도 살벌하드라. ㄷㄷ

-돈친 거 부동산이 에바야. ㅋㅋ 어케 그 부동산이 아직도 살아 있냐?

-부동산 살아 있는 거 보니까 다른 사람들 부동산도 살아 있을 거 같은뎅.

성진은 카멜롯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바스카리 내부에 존재하는 사제회는 성진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사제회에 자신에게 우호적인 세력도 존재할 순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이었고 암살 위협이 있던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아군이 누군지도 모르니 더더욱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상황.

답답한 마음을 이겨 내려 외성의 성벽을 올랐다.

성벽 위쪽에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성진을 보고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미 최별이 성진과 송하린을 자신의 손님이라고 말한 것 같았다.

끼룩, 끼룩.

‘어?’

들려오는 새소리가 이상했다.

매일 아침이나 낮에 정원을 거닐면 들려오는 새소리와 확연히 달랐다.

성진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새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여 성진에게 똑바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병사들도 그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손가락질할 뿐 별다른 행동을 하진 않았다.

새가 점점 가까워지자,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왤케 커?

-마수 아니야?

-마수 맞음. 근데 뭐지?

-아는 사라암?

성진은 새가 마수라는 것을 깨닫고 대응하려다 잠시 멈칫했다.

새는 조심스럽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고 별다른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뭐지?’

성진이 살짝 물러나자 새가 성벽에 내려섰다.

끼룩, 끼룩.

새는 천으로 둘러싸인 물건 하나를 성진 앞으로 내밀었다.

“주는 거야?”

신기하게도 새가 성진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고개를 연신 끄덕이더니 뒤로 돌아, 왔던 방향으로 날아갔다.

성진은 보자기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영롱한 빛을 발하는 보석.

보석이 박힌 반지였다.

-엥? 청혼하는 거야?

-물론 초모가 올빼미긴 하지만, 이런 이종 교배는 옳지 않아!

-반지를 왜 준 거지?

성진은 반지를 들고 고민에 빠졌다.

분명 자신을 위해 선물해 준 것 같기는 한데, 쓰임새를 알지 못했다.

그때, 다이렉트 메시지가 도착했다.

삐익.

「어? 왔네, 왔어. 그거 그거잖아요? 그리핀 돌려보낸 곳. 거기서 선물 왔나 보네.」

-거인의 들판으로 가라. 가서 내가 보냈다고 하거라.

‘돈들어손내놔’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이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설을 길들이며 나머지 그리핀들을 데칸 산에서 거인의 들판으로 이주시킨 일.

거인이 선물을 보낸 것 같았다.

반지를 살펴보니 내용이 떠올랐다.

<다면의 진실>

-등급 : B급

-다면의 진실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진실한 존재가 된다. 다면의 진실은 사용자의 삶을 상대에게 보여 줄 수 있다. 상대는 확인한 진실을 의심하지 못한다. 사용자는 진실을 엿본 상대에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이게 무슨 소리지?

-킹게 무슨 갓리지?

-알쏭달쏭ㅋㅋ

-아는 사람 있습니까?

-여긴 사람이 없는데요?

‘딱 정해 드립니다.’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일단 껴요. ㅋㅋ 귀속시켜야 개꿀이지~]

-아, 맞다. ㅋㅋ 솔직히 팔 건 아니잖아?

-일단 끼고 생각하자고!

-이들은 사고방식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근데 문구 보니까 걍 장식용 같긴 한데 솔직히 써 봐야 알 듯? 그니까 착용. ㄱㄱ

성진도 같은 생각이었다.

능력은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다면의 진실을 손가락에 끼웠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성진도 그냥 성벽을 내려갔다.

오늘은 들를 곳이 있었다.

***

이방인 노예 셋이 자리한 공간.

똑, 똑.

“초모 님께서 부르십니다.”

“아! 자, 잠시만요! 바로 나가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세종의 일부.

이방인이라 불리는 자들 중, 운이 없던 자들은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지금 몸단장을 하는 이들도 그러했다.

아무리 깔끔한 옷을 입고, 은은한 향이 배는 향초를 바르더라도 이마의 용 각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는 이 각인이 원망스러워 피가 날 정도로 긁은 적도 있었다.

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노예가 되었다.

-돌아가고 싶어.

-무서워, 엄마.

-어디 있는 거야, 다들?

-잘, 잘 살고 있는 것 맞지? 내 몫까지…… 난, 난 괜찮아. 걱정하지 마.

밤마다 찾아드는 공포.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어쩌면 이 세계에서 삶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

-왜! 왜에에에!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해!

이방인들은 무가치하다.

그들은 스칸다에 무지했고 상대는 스칸다에 뿌리 내린 귀족과 해적, 그리고 수많은 악인과 이권 단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물론 좋은 대우를 받는 이방인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어려운 삶을 살았다.

대넌 가에 흘러든 3명의 이방인 노예도 그렇게 살았고. 희망은 없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방인의 소식으로 스칸다가 들썩였다.

노예인 그들에게도 소식이 들려올 정도면 이미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는 뜻이다.

-나랑 다른 사람이겠지…….

중앙과 동부, 그리고 서부에서도 들리기 시작한 그 이름들은 이방인 노예들의 머리에 새겨졌다.

초모, 송하린, 최별.

그들은 세계의 주민들보다 강한 힘을 가졌고 특별하다고 했다.

-왜, 왜 그들만…….

-왜 나는 고통받아야 해…….

협회에서 오슈아에게 모욕을 당할 때까지만 해도 상황을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순식간에 상황이 급변하더니 이방인 노예들은 어느새 초모의 보호 아래에 있었다.

자신들을 구해 준 이가 스칸다를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들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얼마나 놀랐던지.

신세연, 홍강인, 채윤희.

남성 노예 1명, 여성 노예 2명은 그날 이후로 구원받았다.

지금 그 셋은 초모와 대화하게 되어 무척 흥분한 상태였다.

어떤 얘기를 해 주실까, 또는 뭔가 바라는 게 있으신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윤희야, 쓸데없는 말 하면 안 돼! 알았지?”

“언니야말로. 난 입 꾹 다물고 시키는 거만 할 거야!”

“둘 다 걱정이다. 초모 님이 성격이 별나시면 어쩌지?”

“뭘 해도 썩어 빠진 귀족들보다는 낫겠지! 난 목에 그 쇠고랑 안 차는 것만 해도 자다가 기뻐서 막 소리 지른다니까.”

외팔이 수행원을 따라 이동하는 셋은 마음에 품은 어둠과는 달리 밝게 행동했다.

그들이 품은 어둠을 초모가 느끼고 기분 나쁘다 할까 두려웠기 때문에.

마침내, 초모와 꽃의 사제들이 있는 강당에 도착했다.

최별의 개인 공간이기도 하고 연무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이 강당은 원탁의 일원에게 배정된 장소였다.

초모의 주위로 꽃의 사제들이 서 있었다.

초모는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 의자와 같은 의자 셋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모가 자리를 권했다.

“앉으세요.”

“아, 예! 저…… 배정된 자리가 있나요?”

“시, 시키시는 대로 앉겠습니다.”

초모가 피식 웃었다.

“편하게 앉으세요. 따로 배정된 자리는 없습니다.”

“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앉을게요.”

젊은 나이의 셋은 초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자신들과 나이 차이가 그렇게 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저,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중요한 건가요?”

성진이 싱긋 웃으며 답하자 홍강인이 손사래를 쳤다.

“아뇨! 그럴 리가 없죠! 하나도 안 중요하죠.”

“그럼, 얘기를 시작해 볼까요?”

성진은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해 볼 것이 있었다.

***

“흑…… 흐윽…….”

“강도 높은 노동이 이어졌고, 휴식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거죠.”

“예! 그리고 또…….”

이방인 노예 셋이 귀족 가의 노예 생활을 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들은 성진이 그것을 관심 있게 들어주자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하소연했다.

“귀족 가의 노예뿐만 아니라 모든 노예들이 다 그런 것인가요?”

“귀족들이랑 해적 쪽이 심각하다고 들었어요! 또…… 그…… 포주들 손에 넘어간 언니들도…….”

“이런…….”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채연희가 눈물지었다.

“이, 용 각인 때문이에요. 이것 때문에 모두…… 흑…….”

“채연희 씨라고 했죠?”

“네, 오빠. 저,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글쎄요…… 고민하고 있기는 한데…….”

“버리지 마세요! 저, 저는 빨래도 잘 하고요. 또, 음…… 궂은일도 투덜거리지 않고 잘 해요! 얘, 얘들도 다 잘할 수 있어요!”

“맞아요! 저희 다 씩씩해서 시키는 일 다 잘해요! 야! 너도 말 해!”

“어, 어어. 형! 저 힘 세요! 짐 같은 거 제가 다 들 수 있어요! 내쫓지만 말아 주세요!”

-안쓰럽누. ㅠㅠ

-슬프긴 하다, 참.

-어쩌겠어! 다들 그렇게 사는 건데!

-님도 저기 가쉴?

-가불기 쓰네 이게;

성진은 잠시 침묵하다 얘기했다.

“당신들을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모든 이들을 그렇게 대할 순 없어요. 그러니 조건을 걸어야 합니다.”

“무슨 조건을…….”

“조건이 뭐예요? 뭐든 할 수 있어요!”

“스칸다의 주민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나요?”

“…….”

“그건 너무…….”

뿌리 깊은 증오.

이들이 힘을 가지게 된다면 가장 먼저 증오를 연료로 폭발할 것이다.

성진은 지금,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핵심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싫어요. 모두.”

“세연아!”

“거짓말 못해! 모두가 당한 만큼 갚아 주고 싶어! 그래야 해!”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혜의 샘에 다녀온 후, 환상 같은 미래가 그려졌다.

그곳에선 다툼 없이 힘을 합쳐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상태로는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왜 참아야 해! 내가, 내가…….”

“형, 형이 그렇게 대단해요? 남의 분노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로?”

감정이 격해진 그들이 성진을 몰아붙이려던 순간,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허…… 헉…….”

“아아악!”

“으으으으으…….”

이방인 노예들은 정신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처럼 동공이 탁해졌다.

그리고 중얼중얼 무슨 말을 외기 시작했다.

“안 돼…….”

“쉘터를…….”

“힘을 합쳐야…….”

-얘네 무슨 소리하는 거냐?

-이거 설마 그거 아니야? 다면의 진실인지 뭔지.

-아, 맞네! 그 효과인가?

-쉘터는 뭔 얘기야? 사용자의 삶을 보여 준다는 얘기가 그건가?

-그러면 스칸다만 통용되는 거 아니야?

-이걸 종말 이후까지 보여 주는 건가 설마?

“끄아아아아악!”

“헉…….”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 그들은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을 기었다.

성진이 다가가 그들을 일으키려 했다.

“괜찮으십니까?”

“흑…… 흐윽…….”

“어떤…… 어떤 길을 걸어 온 거예요…… 대체.”

“무서웠어요. 느, 늑대. 뱀……. 흑…….”

종말 이후부터 스칸다까지.

성진이 걸어온 길을 목도한 그들은 벌벌 떨었다.

“왜 도망치지 않는 거예요?”

“혼자라도 도망치면 되잖아요?”

“왜, 왜 사람들을…….”

성진이 답했다.

“혼자는 싫잖아요. 다 같이 돌아가야지.”

“오빠…….”

“집에, 집에 가고 싶어요…… 엄마가 해 주는 밥 먹고 싶어.”

성진의 삶을 목격한 이들은 무언가 굳은 결심을 한 듯, 성진에게 말했다.

“그럴게요.”

“일단 오빠 말대로 할게요.”

“네?”

“하겠다고요.”

“뭐를 말입니까?”

“흔들리지 않겠다고요. 집에 돌아가는 것에만 집중! 오빠가 바라는 게 그거잖아요.”

성진이 싱긋 웃었다.

“그래도 악인들은 마땅한 대가를 치를 겁니다. 아무튼, 약속한 겁니다.”

“네, 약속! 근데 그러면 뭐가 달라지나요?”

-다면의 진실이 발동합니다.

-사용자는 맹세에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성진은 메시지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것들이 달라지죠.”

“저희 이제 버리지 않는 거예요?”

“이제 마지막이에요.”

성진이 확답을 원한 이유는 지금부터 하는 일이 도리어 스칸다를 잡아먹을 수도 있어서였다.

맹세를 받은 것은 그것에 대한 안전장치였다.

성진은 이들을 한 차례 둘러보고 말했다.

“절 믿으세요?”

“그럼요.”

“오빠가 아니면 누가 우리를 집으로 데려가 주겠어요?”

“형, 뭐 때문에 그래요?”

그 순간, 성진의 몸에서 광채가 퍼져 나왔다.

후우웅.

“윽…… 이게 뭐…….”

“몸이…… 몸이 뜨거워요.”

“내 몸이…… 이상해…….”

성진이 발현한 능력은 계몽.

그것도 한 차례 강화되고 조건도 넉넉해진 상태의 계몽이었다.

성진의 몸에서 빛이 잦아들었다.

셋은 각자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채윤희가 신세연을 보고 말했다.

“세연아, 너 몸이…….”

신세연의 몸은 성진과 마찬가지로 빛나고 있었다.

후우웅…….

그녀는 중얼거렸다.

“뭔가, 뭔가가 느껴져. 그보다 언니도 이상해!”

“어?”

화르륵.

채윤희의 손에서 불길이 솟았다.

홍강인은 목에 핏대가 솟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몸을 은은한 붉은빛이 감쌌다.

“이게 무슨…….”

-확인 완료.

-스칸다 뒤집어엎을 준비 완료.

-나님 투게더 퍼먹다 숟가락 삼킬 뻔.

-ㅅㅂ ㅋㅋ진짜 사이비 교주 됐자나.

-사이비는 무슨. ㅡㅡ 진실로 믿는 자에겐 힘이 주어지리라!

-계몽 개사기 스킬이네 미친;;

-근데 초모 옆에 있어서 그럴 수도 있음. 용 사냥하고 주변 사람 능력 크게 증가시키게 변했자너.

-그래도 없던 능력을 깨웠자나;

성진이 미소 짓자, 힘을 깨달은 셋은 이것이 성진의 힘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풀썩.

이들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바닥에 붙였다.

성진이 이들에게 말했다.

“이 힘을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됩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반드시 따르겠습니다…….”

“지금은 세종으로 돌아가는 것만 생각하죠.”

오늘, 다면의 진실과 계몽의 힘을 확인했다.

계몽의 놀라운 점은 한번 깨우치게 해 준 힘을 빼앗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성진이 뒤에서 놀란 눈을 한 꽃의 사제들 중 1명에게 말했다.

“작약 님.”

“오오…… 말씀하십시오. 초모 님.”

“갱은 아직 카멜롯에 있죠?”

“당분간 이곳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행사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니까요.”

성진은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그의 한마디는 대륙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신변을 확보한 이방인들을 카멜롯으로 불러들여 달라고 전해 주세요.”

“인원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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