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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59화 (159/222)

# 159

159화

“자네 미쳤어?”

“이, 이래선 안 돼! 모든 일을 충동적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물은 자신의 가택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은 씩씩거리며 찾아든 바위와 불을 상대하고 있었고.

“……화들 내지 말고 앉게.”

바위와 불도 예전만 못했다.

한참 탐욕에 절여져 있을 때는 이렇게 따지지도 않았을 위인들이었다.

그들의 눈동자에 물의 추기경의 모습이 비쳤다.

하루 사이에 조금 센 머리, 희미해진 표정 등.

모든 것을 내려놓자 외관도 변한 것이었다.

“대체 어쩔 생각인가?”

“생각?”

“자네가 꽃을 따라가서 뭐 어쩔 생각이야?”

“생각, 생각이라…….”

물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갑자기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다.

“모르겠는데?”

“……뭐?”

“아무 생각 없다고…… 아! 그래, 그 생각이 있었군.”

“그렇지, 말해 봐!”

“꽃이…… 바스카리에 찾아온 꽃이 지지 않았으면 해.”

“…….”

“나는 후회하고 있어…… 내 지난날들을.”

불과 바위가 물었다.

“자네의 야심은?”

“바스카리의 전권을 손에 넣고…….”

“바스카리의 전권을 손에 넣어 세상을 물의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게 하겠다? 헛소리였어.”

“뭐라고?”

“그건…… 의미가 없어.”

촤라락.

잔에 담겼던 물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휘오오오.

주전자에 담겼던 물이 물의 추기경을 맴돌았다.

달라진 그의 기세에 불과 바위가 움찔했다.

“자네…….”

“소리가…… 물의 소리가 들려.”

“어떻게 된 일인가?”

물의 추기경은 어제 어스름이 깔린 저녁에 일어났던 일을 불과 바위에게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나는 바스카리가 추락하며 절망했다. 또한, 바스카리가 다시 떠오르며 구원받았지.”

“허, 헛소리!”

“불이여, 그리고 바위여. 그대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

“……하지 마.”

“나와 꽃이 돌아오는 날, 함께 죗값을 받자. 함께하자.”

“웃기지 말라고!”

쨍그랑!

빈 잔을 집어던진 바위가 으르렁거렸다.

“미친놈! 신관이라는 놈이 신은 믿지 않고 어설픈 것에 홀려서는!”

“흐흐흐…… 바위여, 지난 세월이 우습지 않은가?”

“뭐?”

“바스카리를 다시 떠오르게 할 수 있는 건 금도, 권력도 아니었어. 그런데 왜 그것을 몰랐을까?”

“…….”

“내 어머니께서는 나를 홀몸으로 기르셨다. 작은 몸으로 나를 성수에 몸을 담그게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지.”

“제발, 그만해…….”

물이 말했다.

“내 아들아, 너는 세상을 더 환히 빛나게 할 것이며 물의 따사로움을 모든 이에게 알릴 것이다.”

“그만!”

“너는 모두를 품에 안을 것이다, 나의 아들아.”

바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는 가겠네. 죽든지 말든지.”

“죽어? 그래, 죽을 수도 있겠군. 그건 생각 못 했어.”

물이 갸우뚱하며 답했다.

그리고 되물었다.

“한데…… 그게 대순가?”

콰아아앙!

바위가 문을 대차게 닫고 방을 나갔다.

방에는 물과 불이 남았다.

불이 물었다.

“물, 자네는 내 평생지기 친구였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자네와는 참 많이 다투었지.”

“또한, 서로를 믿었다.”

“아니, 그것은 믿음이 아니야…… 그런 건 믿음이 아니었어. 서로를 의심하는 게 어찌 믿음이겠나?”

“왜 이렇게 변한 거지? 고작 하루 사이에?”

“시간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들이지. 통제할 수 없고 아무리 막아도 세계의 시간은 멈추지 않으니까.”

물은 답했다.

“믿음을 설파하는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되네. 시간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 어제, 나는 경험했다. 그 작은 파문이, 내 안에 던져진 작은 의문이 나의 근원을 뒤바꾸었어. 그것도 아주 짧은 순간에.”

“하하하…… 내가 여태 진정한 대신관을 못 알아봤군그래.”

“불…… 어찌할 생각인가?”

“물이여, 너는 어찌할 생각이지?”

“꽃을 도울 거야. 그를 돕는 게 내 남은 바람이다.”

불이 물을 빤히 쳐다봤다.

“죽을 거야.”

“죽겠네.”

“꽃을 돕기 위해?”

“내 죽음이 그의 도움이 된다면.”

“……물,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말하게.”

“나는 믿음을 모르는 사람이야. 신관임에도 불구하고, 웃기지?”

“전혀.”

“그런 내가…… 너를 보니 믿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군.”

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마디 말을 남겼다.

“제안은…… 생각해 보겠네, 친구로서.”

물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고맙네, 친구.”

“그러니까 꼭 살아 돌아오게.”

“노력해 보지.”

불의 전신이 벌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물은 그가 가여웠다.

둘은 경쟁자였고 서로의 치부도 알았다.

하지만 그도 한낱 인간이라는 걸 물은 알았다.

심판의 날이 다가오자 두려운 것일지도 몰랐다.

똑, 똑, 똑.

“아버지! 저예요!”

“들어와라, 실바.”

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는 작았다.

남들보다 늦게 얻은 남자아이, 중년의 자신은 이 존재를 사랑했다.

“걱정돼요…….”

“이 아비가 말이냐?”

“네, 굳이 안 가셔도 되는 일을…….”

“가야 한다.”

“왜죠?”

“실바, 사람은 살면서 뭔가를 깨닫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는 지금 뭔가를 깨달으셨나요?”

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구나. 내가 이 스칸다에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위해 오롯이 준비된 존재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서워요,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떡해요?”

“인간은 누구나 죽는단다.”

“그게 아버지라면, 그게 지금이라면 저는 슬플 것 같아요.”

물은 빙긋 웃었다.

“내가 죽더라도 날 위해 울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이건 기쁜 일일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무척 기쁘구나.”

“무서워요……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실바, 이 아버지는 마지막 용기를 내보련다. 힘껏 걸음을 내딛는 아버지를 응원해다오.”

“……응원할게요, 아버지는 스칸다에서 가장 용기 있는 분이세요.”

물은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머리가 조금 더 셌다.

“내가 혹여 죽게 되더라도, 걱정하지 말거라.”

“네?”

“그렇게 된다면, 물이 되어 언제나 네 곁을 지키마.”

“저는 아버지가 좋아요.”

“……나도 실바 네가 좋다. 나의 아들. 아빠가 꼭 영원히 지켜 줄게.”

***

성진은 지금, 준비를 마치고 꽃의 교단 거주 구역에 앉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약이 다가와 물었다.

“무얼 하고 계신 겁니까?”

“아, 준비를 좀 하고 있었습니다.”

“준비?”

“나무를 심으려고요.”

“그거 재밌겠군요.”

작약이 성진의 옆에 꼭 붙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어, 교수님? 왜 안 가시지…….

-카드만 주시고 가세요. 제발유ㅠㅠ

“꼭 가셔야 하는 겁니까?”

“제가 안 가면 큰일이 난다고 하잖습니까.”

“신기하게도 초모 님의 곁에는 늘 그런 일이 일어났죠.”

“그러게요.”

“이번에도 보란 듯이 해내시길 기원합니다.”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땅에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후우우웅.

바로 나무가 솟아오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잠시 후, 성진이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에서 새하얀 빛이 퍼져 나왔다.

작약은 막대한 신성력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무, 무슨 일을 하신 겁니까?”

“제가 떠나면 바스카리가 추락할 수도 있다고 하니까요. 신성력의 여분을 남겨 놓고 가려고 합니다.”

“가, 가능합니까?”

“확신은 못 했었는데, 아마도 가능한 것 같습니다.”

우드득, 우득.

갑자기 땅이 불거지더니 나무가 솟아났다.

딱 묘목 정도의 크기.

하지만 느껴지는 생명력으로 봐선, 내일 아침엔 더욱 거대하게 자라있을 것 같았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우리도 놀랐다. ㅋㅋ

-이제 이러다 초모 없어도 다들 잘 사는 거 아니야?

성진이 묘목을 매만졌다.

작약이 그에게 물었다.

“혹시라도 신성력을 도둑맞을 우려가…….”

“그럴 일은 없습니다. 나무가 곧 신성력이고 나무의 생명이 꺼지면 신성력도 사라집니다.”

“……경계를 세워야겠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묘목의 이름은 무엇으로 지을까요?”

“이름까지 지어야 합니까?”

“뭐든 이름이 있으면 부르는 사람도, 듣는 나무도 좋아할 겁니다.”

“그럼…….”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별로 하죠.”

-별로라고?

-나무한테 실례야!

“별…… 말씀이군요. 좋은 이름입니다.”

성진은 별 나무에 신성력이 충만한 것을 확인하고 자신을 찾은 일행과 함께 그날, 조용히 떠났다.

그들이 떠난 사실은 바스카리의 주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바스카리가 부유하지 않았다면 주민들이 혼란스러워했겠지만, 다행히 별 나무의 존재로 인해 바스카리의 고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성진의 존재를 연호하며 찾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몸이 좋지 않고 신성력의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 얘기하자 사람들은 걱정하며 물러났다.

별 나무는 참 신기한 존재였다.

어느새 자라 푸른 이파리들이 우수수 돋아 있었다.

이방인들은 이 나무의 존재를 비밀로 하며 엄중히 감시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별 나무를 찾아 왔다.

작약은 그를 알았다.

“실바 님.”

“저기, 나무를 봐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감사합니다!”

이방인들은 실바를 쳐다보다가 길을 터 줬다.

실바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후에 별 나무에 다가가 속삭였다.

“나무 님, 나무 님. 바스카리에서 가장 신성한 존재가 당신이라는 걸 압니다. 제 소원을 들어주실 수 있나요?”

작약이 다가와 말했다.

“물론이지요.”

“어…… 제 소원을 들으시려고요? 그러면 부정 타는 데…….”

“듣지 않아도 압니다. 비밀로 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마도 물의 추기경의 안녕을 원할 것이다.

작약은 자리를 비켜 주기 위해 몸을 틀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불이시여.”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사실상 미신이나 가깝지.”

“신성모독입니다.”

“잘됐군. 신성력도 바닥나 가는 판국에. 나를 구속할 텐가?”

“……기도하러 오셨군요.”

“그래, 기도하러 왔네.”

작약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났다.

그에게 자리를 비켜 주어야 했다.

불이 조용히 말했다.

“그것을 알면서도 기도를 올리는 이유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지.”

작약은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별 나무로 돌아왔다.

그곳엔 1명이 남겨져 있었다.

“아직 안 가신…….”

작약은 다시 몸을 돌려 나갔다.

별 나무는 성진이 남긴 희망이었다.

그 앞에는, 바위의 추기경이 혼자 남아 무언가를 빌고 있었다.

작약은 아마도 이날, 별 나무를 찾은 셋의 소원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송하린이 크게 외쳤다.

“으아아아아! 덥습니다!”

베어가 당부했다.

“목소리를 낮추지, 이목을 끌게 될 거야.”

“이 사막에는 아무도 안 산다며?”

“사람은 살지 않지. 정말로 모래뿐인 곳이니까.”

“그럼 마수가 사나?”

“드러난 물이 아예 없으니 그것도 어려울걸.”

“뭐야, 이목은 무슨! 끌 이목이 없잖아!”

“그렇군.”

“아저씨?”

-베어 아저씨 넘 차캨ㅋㅋㅋㅋ

-송하린 표정 봐라.

-아니, 이 새끼가? 하는 표정. ㅋㅋ

-베어 아찌는 저게 습관이 돼서 그래. 조용조용 다니는 게.

촤라락.

물이 일행의 곁을 맴돌면서 더위를 식혔다.

그 모습을 본 송하린이 깜짝 놀랐다.

“제법이네, 물.”

“감사합니다.”

“신기하군. 사람이 이렇게 하루 만에 바뀔 줄은 몰랐소.”

“저도 신기합니다.”

성진은 그에게 물었다.

“물, 이름이 있습니까?”

“있었습니다.”

“제가 이름으로 부를까요?”

물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물이라고 불러 주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습니까?”

“제가 닮고자 했던 것으로 불리면 꼭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사막의 밤이 깊었다.

지형은 불친절의 극치였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모래바람이 그들을 괴롭혔다.

우드득.

물론, 성진의 능력으로 순식간에 나무로 된 집이 완성됐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휘이이이잉.

밖에서 모래바람이 계속해서 부는 와중, 송하린과 베어는 미리 잠이 들었다.

성진과 물의 불침번 교대 시간이었다.

물은 바로 잠들 생각이 없었는지 성진에게 말을 걸었다.

“꽃이시여, 협회에서 표기해 준 지도에 따르면 내일쯤엔 그곳에 당도합니다.”

시초의 유적까지 지척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바스카리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위치였다.

문제는, 안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지만.

“충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사막엔 사람들이 살지 않죠. 제가 추기경을 물려받기 전, 신관이 막 되었을 무렵의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말했다.

“저는 바스카리를 떠나 잠시 이곳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말입니까?”

“제게 신성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했지요.”

물의 어조는 누군가에게 고백하듯이 나긋나긋한 어조였다.

마치 할머니가 손주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그 마음이 푸근하게 다가왔다.

“낮의 태양은 뜨겁고, 밤의 모래바람은 추웠습니다. 그 간극에 서서 사막을 주유했죠.”

“힘든 것은 그게 다였습니까?”

“아닙니다. 더 많은 게 힘들었어요. 사막에 이는 용권풍(龙卷风)을 본적이 있으십니까?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거대하게 몰아치는 그 악마는 저를 발가벗겼죠.”

실제로 발가벗긴 것은 아닐 것이다.

비유를 그렇게 들었을 뿐.

“얼마 남지 않았던 식량을 잃고, 다리를 절뚝이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뭔지 아십니까?”

“알려 주세요.”

“그렇게 다치고, 그렇게 두려움에 떨고, 그렇게 무너졌을 때…… 그럴수록 오히려 제 신성력은 강해졌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이치지요.”

“물.”

“어디가 길인지도 몰랐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모래밖에 없던 이곳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질 무렵에 저는 바스카리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다행이네요.”

“저는 그렇게 물이 되었습니다. 아아…… 이제야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

“어째서 잘못된 길을 걸었을까요? 그 길로 걸어간 제 발자국도, 두 다리도, 앞을 못 보는 어리석은 저 자신마저도 싫어졌습니다.”

성진이 담백하게 말했다.

“사막에서 살아 돌아오기 위해 걸었던 그 길도, 신성력을 잃고 방황하셨던 그 길도 결국엔 당신의 선택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도 있음을 알았어야 했는데…… 꽃이여, 바스카리엔 당신이 필요합니다.”

“바스카리는 제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희망이 필요할 뿐이죠.”

물이 해맑게 웃었다.

그 미소가 깨끗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백지 같은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타락했던 것인지 모를 정도로.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밤이 지났다.

아침이 되어 걷고 걸은 그들은 지도에 표시된 지점까지 도달했다.

-어젯밤 나눈 얘기에 운 사람?

-<<<<<<<

-물저씨! 당신 맘에 안 들었지만, 내가 용서할게!

-그래, 그간 저지른 죗값만 받아!

-(무기징역을 구형한다.)

-헐.

물이 성진에게 물었다.

“보시다시피 여전히 모래뿐입니다. 어떻게 시초의 유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아는 것은 오래전 쓰러진 그들뿐이라고 들었습니다.”

협회가 자신들이 떠나기 전, 그렇게 말했었다.

성진은 물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오래전 쓰러진 그들을 불러와야겠네요.”

***

[제목 : 님들아, 아니 이상한 꿈을 꿔 버렸어요.]

글쎄, 음탕이랑 왕이나랑 합방하는 꿈을 꿔 버렸지 뭐람? 말이 안 되잖아요? 나란 밀수는 정말…… 엣큥!

-호에에에에!

-그것은 꿈이 아닙니다.

-엥?

-공지를 보셔야 합니다.

[제목 : 이럴 수가! 해적 방송의 거악 둘이 합체를 시도하다니!]

그래서 누가 본체더냐?

-야, 얘네 천재더라. 욕 안 먹게 싹 빨 수 있게 설계했어.

-어케?

-자기들은 30퍼만 먹겠대.

-엥? 왕이나 30 음탕 30?

-아니, 둘이 합쳐 30

-뭐여 70은 어디 가는데? 장가갔냐?

-70은 그 좋은 친구들한테 주겠대.

-와, 여론 몰이 오졌네. ㅋㅋ 빌드업 지렸고.

[제목 : 사실 왕이나와 음탕은 싸우는 척했던 것 아닐까?]

둘이 사실은 사이가 좋은 거지. ㅋㅋ

아, 설레. ㅋㅋ

-둘이 홍대 놀이터에서 현피 떴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진짜? 누가 이김? 코피 누가 먼저 남?

-둘이 이번 일로 합정에서 술 마시다 왕이나가 꼭지 돌아서 소주 병 3개로 대갈통 깼다는 소리도 있던데.

-왕이나 : 삼병류…… 삼천세계!

-루머야, 실제로는 화해했대.

[제목 : 그러게 왜 싸웠어.]

솔직히 초반에 둘이서 올빼미 방송 도방하는 거 열 올리다 결국에 시들해졌잖아.

안 그럼? 올빼미 스칸다 넘어가면서부터 컨텐츠가 시청자보다 처지니까 빌빌 기었잖어.

-사람이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지!

-어허? 이 싸람이?

-근데 정신 차리고 이제 제대로 하는 것 같더라. 막 자극적이게 안 하고.

-그래 봐야 이미 떠난 민심 잡아올 수나 있겠어?

-그래서 이번 합방에 사활을 건 거지.

[제목 : 좋은 친구들 나온다는 거 실화냐?]

나 지금 설레서 치킨 최적 주문 시간 설계 중.

교촌 주머니인 나님 울부짖는다!

-다 나오는 건 아니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이랑 멘탈 멀쩡한 사람만 나온다는 듯.

-멘탈 멀쩡한 사람 없다던데.

-좋은 친구들 다 실친이었잖아. ㄹㅇ 합 미쳤었는데.

-올? 만나 보긴 했음?

-어쩌다 거기 오더하는 사람이랑 알게 돼서 빈자리 간 적 있음.

-헐, 님 성채남보석?

-ㅇㅇ

-와! 지랄 노요.

-믿든 말든. 암튼 걍 오더를 나한테만 하더라. ㅋㅋ

-님이 믿음직해서?

-아니, 다른 사람들은 말 안 해도 알아서 제 할 일 했음.

-님은 어케 했는데?

-도적인데 함정 밟음.

-이거 완전 쓰레기네.

-아 배 째져. ㅋㅋ 성채남보석이 왜 함정을 쳐 밟아.

-함정이 공명의 함정급이었다니까. ㅡㅡ

-고럼 ㅇㅈ

음탕과 왕이나의 합동 방송은 음탕이 소속된 업체의 스튜디오를 빌려서 진행되었다.

둘은 이미 화해한 지가 좀 됐고 오히려 사이좋은 언니 동생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언니! 왜 이렇게 늦었어요!”

“미안, 미안! 숍 갔다 오느라!”

“숍? 다녀온 것 맞아요?”

“한 듯 안 한 듯하지?”

“안 한 듯한데요?”

“이게…….”

“장난이에요.”

“알아.”

왕이나가 특별히 요청한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병창 님!”

“아, 오셨네요.”

“제가 많이 늦었죠?”

“괜찮습니다. 저는 방송하다 도망간 적도 있는데요.”

“……그런 적이 있었죠.”

조병창은 왕이나의 방송 중 탈출한 적이 있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 왕이나였지만,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일 뿐이었다.

특히, 오늘만큼은.

“저…… 다른 분들은?”

“저쪽에 모여 있을 거예요.”

“오늘, 잘 좀 부탁드릴게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 친구들이기도 하니까요.”

꿀꺽.

왕이나가 게스트가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아, 안녕하세요. 오늘 진행을 맡은 왕이나라고 합니다.”

어쩐지 조금 어두워 보이는 3명.

남자 둘, 여자 하나.

왕이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마치 푸릇푸릇한 신입 사원들을 보는 것 같았다.

“김상혁이라고 합니다.”

“최혜연이에요.”

“정재민입니다.”

왕이나가 과장되게 제스처하며 말했다.

“반가워요, 다들. 오시면서 불편하신 점은 없었어요?”

“네, 다들 친절하게 맞아 주셔서…….”

“전 괜찮았어요.”

“좋았어요.”

왕이나는 꼬박꼬박 대꾸하는 이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녀는 최근 방송을 접을까도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시청자 수가 떨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유는 그녀도 확신하지 못했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왕이나가 앞섶을 가리고 정중히 고개 숙였다.

그녀의 첫 번째 달라진 모습이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궁금하신 건 말할 수 있는 선에서 전부 말할게요.”

“많은 분이 관심 가져 주셔서 오히려 저희가 당황스러웠는데요.”

왕이나와 음탕이 맨 끝 좌우로, 조병창이 센터에, 좋은 친구들 3명은 그 사이에 앉았다.

채팅 창이 시끌벅적했다.

-여기가 민족 대화합의 장이라고 들었습니다.

-일단 구급차부터 부를까요?

-어글부터 쳐 내, 방장!!

-와 ㄹㅇ이다, 나 좋은 친구들 실물 첨 봐!!

이 소란함을 사랑하는 두 스트리머는 조용히 칼을 빼 들었다.

스칸다와 종말 이후를 사랑하는 시청자라면 안 보고는 못 배길 컨텐츠의 시작.

왕이나와 음탕이 동시에 작게 외쳤다.

미리 합을 맞춘 듯 자연스러웠다.

“그럼, 시초의 유적 이원 생중계, 시작합니다! 들리시나요?”

건너편에서 넘어오는 목소리.

그건 틀림없는 초모의 목소리였다.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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