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161화
김상혁이 먼저 좋은 친구들의 탄생에 관해 이야기했다.
“저희를 단지 게임 때문에 만난 사이로 오해하고 계신 분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맞아요, 우리는 원래부터 친구였어요.”
최혜연이 말을 붙이자 김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게 참, 말하려고 하니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천천히 하세요. 힘든 일이실 텐데.”
김상혁이 비 오듯 흘리는 땀을 닦고 한숨을 돌렸다.
“저, 혜연이, 재민이를 포함해서 총 6명이 좋은 친구들이에요.”
“어째서 그렇게 지은 거죠?”
“그냥, 달리 생각나는 말이 없어서…….”
“아, 추궁하는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다들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정재민이 대신 답했다.
“다 학교 친구들이었어요.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까지.”
“와, 엄청난 인연이었네요?”
“엄청난 건가요?”
“……아, 아닌가?”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닌가?
-아님 말고~ ㅋㅋㅋ
최혜연이 빙긋 웃었다.
“동네 친구였어요. 동네가 아주 작았거든요.”
“작다 뿐인가, 시골 중의 시골이었지.”
“교통편도 좋지 않아서 타지에 나가지 않는 이상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 같은 곳을 나와요.”
“그런 지역들이 더러 있긴 하죠. 그럼 다 처음부터 친했나요?”
좋은 친구들 셋은 서로를 바라보다 무심히 답했다.
“아니요.”
“아뇨.”
“전혀.”
***
김상혁은 개구쟁이였다.
동네의 골목대장, 어디에나 있는 흔한 아이.
“하지 마!”
“싫은데?”
까불거리기가 한도 끝도 없었고 동네 아이들이나 선생들도 이미 포기한 수준이었다.
“야!”
“으아아아!”
“선생님! 상혁이가 또 선익이 울렸어요!”
“내가 언제?”
이선익.
큼지막한 보청기를 달고 있는 아이.
그는 보청기가 없으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농아인이었다.
김상혁은 이선익을 자주 놀려 댔다.
이선익은 동작이 컸다.
무언가를 항변하기 위한 동작이든, 김상혁의 장난에 놀란 동작이든 간에.
“우하하하하하하!”
“상혁아! 친구한테 그러면 안 되지!”
어렸던 김상혁은 꾸짖는 여선생에게 정색하며 대꾸했다.
“아닌데요?”
“뭐라고?”
“얘랑 나 친구 아니라고요. 친구 아니에요.”
“…….”
아이들도 김상혁의 말에 웃으며 호응했다.
“맞아요, 쌤! 상혁이는 선익이 싫어해요!”
“둘이 맨날 싸워요! 상혁이는 선익이 진짜 싫어해!”
김상혁은 이선익이 싫었다.
이선익은 언제나 김상혁 앞에서 약자였다.
지금도 바닥에 떨어진 필기구들을 필통에 주섬주섬 주워 넣는 이선익.
그는 그것들을 다 담고 나서 김상혁을 향해 히죽 웃었다.
친구 중 1명이 크게 외쳤다.
“선생님! 선익이 웃어요! 이상해!”
이선익의 미소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사실, 이선익의 모든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미소는 물론이거니와 말과 행동 그 모든 것들이.
물론, 이것들은 김상혁이 이선익을 싫어하는 이유의 아주 일부분이었으며 김상혁이 이선익을 미워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핑계였다.
“다녀왔어요.”
휑한 방 안.
김상혁이 사는 집은 황량했다.
이 시기, 지방과 서울의 균형 발전을 이룩하고자 했던 정부의 정책들은 전부 실패했고 지방과 서울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김상혁이 사는 동네의 가정들은 전부 상황이 좋지 못했다.
김상혁의 가정도 그러했다.
김상혁의 어머니는 그의 아버지와 사이가 나빴다.
그것도 아주.
-엄마는 상혁이랑 함께 못 살아.
-같이 살면 안 되는 거예요?
-응.
김상혁이 무언가를 제대로 인지하고 받아들이기도 전에 그의 어머니는 그렇게 떠났다.
아버지는 일용직에 종사하시니 평소에는 집에 잘 계시지 않았다.
“아으아아아.”
밖에서 이선익의 소리가 들렸다.
분명, ‘다녀왔습니다’를 말한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았다.
도통 뭔 소리를 하는지 김상혁은 알아들을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둘은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다.
“선익아, 왔어? 학교는?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냈어?”
김상혁의 심장이 멎어 버릴 뻔했다.
방음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집.
김상혁은 처음으로 이선익의 말을 귀담아듣고자 했다.
곧이어,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 잘했네. 손 씻고 와, 밥 먹자.”
다행히,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되었다.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김상혁의 아버지가 제대로 된 곳에 자리를 잡았고, 가정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
이 동네 아이들의 부모님은 다들 왕래가 잦은 편이라 어느 정도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부모님들은 아이들도 자신들처럼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랐다.
탁!
“으아아아아아아아!”
“하하하하하하!”
하지만 이선익을 향한 김상혁의 괴롭힘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김상혁의 키는 성장기인 만큼 적당히 자랐다.
반면, 이선익의 키는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 중학생의 나이에도 이미 190cm를 넘겼다.
동네에서는 장군감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거나 운동을 시켜 보는 것은 어떠냐고 그의 어머니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빙긋 웃을 뿐이었다.
아마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장애가 있는 몸으로 남들과의 경쟁에 뛰어들기에는, 세상이 각박하다는 것을.
또, 그 과정에서 이선익이 상처를 받을 게 분명하다는 것을.
김상혁이 이선익의 보청기를 잡아뗐다.
이선익은 크게 고통스러워하며 귀를 감싸 쥐었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이선익은 김상혁을 무서워했고 파손된 보청기도 벌써 몇 개에 달했다.
그때마다 김상혁에게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이 모든 게 김상혁의 짓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때였다.
퍽!
“윽…….”
누군가 김상혁의 얼굴에 주먹질했다.
제법 묵직한 충격에 김상혁이 날아가 책상들을 쓰러트렸다.
쾅!
콰과광!
“아, 시발.”
“비겁한 새끼.”
“뭐?”
“비겁한 새끼라고, 김상혁.”
김상혁이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와 함께 웃으며 이선익을 괴롭히던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함께하지 않았다.
-아, 난 좀…….
-이제 재미없어.
-불쌍하잖아.
학급 아이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벌써 선생님에게도 여러 번 주의를 받았고.
최근에는 김상혁과 어울려 다니던 아이들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김상혁에게 위기감이 엄습해 왔다.
이런 작은 동네의 특성상 주도권을 잃으면 영원히 약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만다.
왕따가 되는 일은 흔치는 않았지만, 친구 하나 없이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
김상혁에게 주먹을 날린 상대는 심대형이라는 아이였다.
반에서 1명씩은 있는 바르고 좋은 아이.
자신과는 상극이었다.
김상혁은 갑자기 발작하듯 상대에게 말했다.
“야! 너도 병신이냐?”
“뭐?”
“맞잖아! 병신은 병신끼리…….”
상대의 주먹질에 김상혁의 턱이 돌아갔다.
다행히 기절하지는 않았고 이후, 상대와 세차게 드잡이를 했다.
할퀴고, 뜯고 때리며 김상혁은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그저 악에 받쳐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이렇게 자존심 상하게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줬으면 싶었다.
결국, 그날 3명의 부모님이 전부 학교를 찾아야 했다.
심대형의 부모님들은 자기 할 말만 하고 가 버렸다.
김상혁의 아버지는 무릎까지 꿇으며 이선익의 어머니에게 사정했다.
이선익의 어머니는 그저 고개를 묵묵히 끄덕이며 알겠다고만 했다.
아버지가 담배를 태우러 소각장까지 내려간 사이, 김상혁도 화장실에 다녀왔다.
참으로 기막힌 상황이 펼쳐졌다.
김상혁의 귀는 매우 밝은 편이었다.
문을 열려는 순간 이선익의 어머니가 말했다.
“선익아…….”
“아아…….”
“오늘도 웃었니?”
“아!”
“잘했어. 선익이는 사람들을 말로써 대하지 말고 미소로 대해야 해. 그게 엄마의 바람이야.”
“아아!”
“사랑하는 선익이. 엄마는 네 아버지가 네 이름을 선익으로 지은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
어쩐지 김상혁은 문을 열 수 없었다.
그는 가만히 서서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선의 날개는 언젠가 자라서 멀리멀리 날아갈 수 있을 거야. 선익이는 밥도 잘 먹고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자라기만 하면…… 언젠가는 선익이 말도…… 흑…… 누가…… 귀담아들어…… 흑…… 줄 거고…….”
“우으아!”
이선익이 하고픈 말은 ‘울지 마’가 분명했다.
그 말이 김상혁의 귀에 선명하게 박히는 것 같았다.
선익의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이렇게 낳아 줘서. 선익이 많이 힘들지?”
“아이!”
아니.
“엄마는…… 조금 힘드네.”
그날 이후, 김상혁은 이선익을 괴롭히지 않았다.
활발하던 성격도, 개구쟁이였던 모습들도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는 방과 후에는 아르바이트했다.
돈을 모아 할 일이 있었다.
그 기간이 꽤 오래되어 제법 두둑하게 돈이 모였다.
결코, 평범한 중학생이 만질 만한 액수는 아니었다.
그리고 김상혁은 어느 순간부터 이선익을 뚫어져라, 보곤 했다.
이선익도 그 시선을 느끼고 쳐다보거나 고개를 갸웃거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로 둘 사이의 교류는 없었다.
김상혁은 이선익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최근, 그의 아버지에게 이선익의 아버지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선익이 아빠? 아빠도 잘은 모르지만, 애 엄마랑 선익이 버리고 떠났다고 하더라. 입에 담지도 못할 험악한 말까지 해 가면서. 그래서 선익이 엄마랑 선익이랑 고향으로 내려온 거잖아.
부모가 떨어져 산다는 아픔은 자신과 이선익이 공유했으니, 그렇게 공통점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
모든 게 무너졌다.
이선익의 어머니가 쓰러져서 결국, 이틀 만에 돌아가셨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학교 친구들은 이선익을 걱정했다.
이선익은 상주로서 자리를 지켰다.
여전히 보청기를 낀 모습에 살짝 어눌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이 사뭇 든든해 보였다.
그의 곁에, 심대형이 말끔한 차림으로 앉아 그를 위로했다.
심대형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김상혁이 이선익을 괴롭힐 때, 심대형과 이선익은 친구도 아니었건만 심대형은 이선익을 위해 제 일처럼 나섰다.
그는 그 후로 이선익과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어쩜 저런 사람이 있을까.
그에 비하면 자신이 초라했다.
상갓집에 찾아왔지만, 먼발치에서 그들을 보고만 있었다.
이름 없는 봉투에 ‘보청기’라고만 적어서 부조했다.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데, 이선익이 다가왔다.
김상혁은 화들짝 놀라 내달렸다.
이선익이 그를 잡으려 뛰었지만, 김상혁을 잡을 수는 없었다.
김상혁은 이선익보다 덩치는 작았지만 빨랐으니까.
도망치면서 김상혁은 생각했다.
‘난 왜 도망치는 거지?’
자신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헉…… 허억…….”
어쩌면 이선익의 어머니가 생각나서, 또 어쩌면 이선익이 자신의 탓을 할까 봐, 그리고 어쩌면 정말 자신의 탓일까 봐.
비참하게도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한 후회가 쏟아졌다.
김상혁이 어딘가의 난간을 붙잡고 서럽게 우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이선익이었다.
자신을 계속 쫓아온 모양이었다.
이선익은 자신이 준 부조를 가지고 왔다.
“이어.”
이거.
“오아어.”
고마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이선익의 정수리를 보며, 김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또 욕을 했다.
“병신 새끼야! 뭐가 고마운데? 머저리! 등신! 팔푼이!”
이선익이 자세를 바로 하고 빙긋 웃었다.
아마도 그의 어머니가 가르친 대로일 것이다.
“이…… 이…… 그거 너 써!”
김상혁은 이선익을 두고 도망쳤다.
혹시라도 그가 상갓집에 자신을 들일까 두려웠다.
그랬다간 선익의 어머니와 마주해야 하니까.
그 올곧은 눈과 마음이 담긴 흑백 사진을.
이선익은 근처의 친척 집에 맡겨졌다.
살던 지역이 연고지였던 만큼, 근처에 친척이 있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이성끼리 낯을 가리고 눈만 마주쳐도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이선익의 키는 계속 커져 어느새 2미터가 넘었다.
그는 비율도 좋고 힘도 좋아 고등학교 배구부에 들어갔다.
방과 후에는 학교에 남아 계속 운동을 했다.
그게 이선익의 뜻이었는지, 혹은 그의 친척이 정한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김상혁은 놀랍게도 심대형과 가까워졌다.
그는 모두를 차별 없이 대했다.
심대형은 김상혁이 어릴 적 저질렀던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것도 알았고, 또 그 때문에 다른 이들과 멀리한다는 것도 눈치챘다.
그는 기꺼이 그와 친구들의 다리가 되어 주었다.
덕분인지 가까이에서 그들을 봐 왔지만 조금 서먹서먹했던 최혜연과 송예지, 그리고 정재민도 김상혁이 변한 것을 알고, 금세 그와 가까워졌다.
김상혁은 확실히 리더의 자질이 있었다.
친구들을 늘 즐겁게 했고 대체로 그가 하자고 하는 일을 하면 모두 만족했다.
이 무리는 총 6명.
물론, 이선익도 함께였다.
그는 늘 한결같았다.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때리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저 웃었다.
김상혁과 이선익은 아직도 완벽하게 친해지지 못했다.
이선익이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김상혁이 그것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과거의 어린 그가, 지금의 김상혁을 괴롭히고 있었다.
‘네가 그럴 자격이 있어? 구제 불능 새끼.’
이런 식으로.
이선익은 수화도 익혀 보고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그곳에 적어 의사 표현을 하는 필담도 익혀 보았다.
다만, 그는 답답해 보였다.
완벽하게 자신의 뜻을 표현하지 못하고 상대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니 당연했다.
무리는 이선익을 위해 함께 노력했다.
수화도 함께 익혀 보고 구화도 시도해 보았다.
단, 오로지 김상혁만은 그것을 익히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김상혁은 이유는 모르지만 이선익이 어떤 마음인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알아들었다.
“아 아아이.”
“화장실 다녀온대.”
“헐.”
이선익이 김상혁의 말에 빙긋 웃었다.
친구들은 대단하다고 김상혁을 추켜세우며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다.
김상혁은 두리뭉실하게 대꾸했다.
그도 몰랐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까워진 무리는 이선익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다른 지역 고등학교 배구부와 이선익이 속한 배구부의 친선경기가 있었다.
결과는 대패.
이선익의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주요 원인이었다.
응원을 나왔던 김상혁 일행은 시무룩해졌다.
“먼저 노래방 가 있을게.”
“그래, 나랑 대형이가 선익이 데리고 갈게.”
“늦게 오면 뒈진다.”
“뒈질 것 같으면 아예 안 가야지.”
“아, 뭐래.”
김상혁은 이런 평온한 일상이 꿈만 같았다.
심대형과 몰래 체육관을 들여다보기 전까진.
짜악!
“시발, 병신 새끼가. 너 때문에 졌잖아!”
“우으아.”
“뭐라는 거야, 이 새끼?”
이선익의 보청기가 충격에 빠져 덜렁거렸다.
심대형이 옆에서 침착하게 동영상을 찍었다.
이선익의 표정은 기묘했다.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너 같은 새끼가 운동은 무슨…….”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김상혁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김상혁은 체육관 문을 박차고 들어가 내달렸다.
“으아아아! 개새끼야아아아아!”
“뭐, 뭐야!”
퍽!
단 한 대.
그는 이선익의 뺨을 때렸던 선배의 얼굴을 날아올라 후려쳤다.
그리고 그 후로는 죽도록 맞았다.
심대형이 뛰어들어 상황을 말렸다.
“으아아아아!”
퍽!
그때, 이선익이 팔을 휘둘러 선배를 단 한 방에 날려 버렸다.
심대형이 깜짝 놀라 이선익을 쳐다봤다.
심대형과 김상혁이 목격한 그 날의 이선익은, 화를 내고 있었다.
분을 이기지 못하는 표정을 하고서.
이선익은 그날, 배구를 그만두었다.
선배를 폭행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동영상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서로가 잘못했으니 깔끔하게 끝내기로 한 것이다.
“푸하하하!”
“야, 상혁이 얼굴 좀 봐. 누가 총 쐈어?”
“아, 하지 마.”
“봐봐, 좀.”
심대형이 배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
“상혁이 팔콘 펀치 지리더라. 그 배구부 선배도 맞자마자 바지에 똥 쌌어.”
“구라치지 마.”
“응, 구라야.”
일행은 다시 깔깔대며 웃었다.
이선익은 자신 때문에 김상혁이 맞은 게 억울했는지 한동안 씩씩대다가 지금은 그를 걱정했다.
이선익이 필담으로 물었다.
-괜찮아?
김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김상혁은 생각했다.
이선익이 화를 내는 모습이, 그 표정이 더 좋았다고.
억지로 웃는 것보다는.
시간이 다시 흘렀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흩어져 살던 친구들은 일 년에 몇 번씩 모였다.
자주 보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사이가 나빠지거나 멀어지는 일은 없었다.
크리스마스와 주말을 낀 연휴.
모처럼 친구들이 함께 모였다.
술자리에서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는 친구들은 학창시절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김상혁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심대형은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 앞날을 준비했고, 최혜연도 마찬가지였다.
송예지는 유학 준비를 했고 정재민은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았다.
이선익은 친척 일을 도우며 지냈지만, 친척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많은 돈을 주지는 못했다.
술자리가 파해졌다.
술자리에서 가장 뜨거웠던 화두는 이 세계 스칸다에 대한 얘기였다.
곧 출시되니 함께 하자는 얘기.
이선익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캡슐 값이 어마어마했으니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해도 함께하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흘렀다.
검은 정장을 입은 김상혁이 어딘가에 와 있었다.
이선익의 어머니가 안치된 곳.
오늘은 그녀의 기일이었다.
김상혁은 일이 늦게 끝나 야근을 마치고 뒤늦게 왔다.
꽃을 놓기 위해 보는데 이미 5송이의 꽃이 놓여 있었다.
그는 그곳에 꽃을 얹었다.
그리고 흑백 사진을 바라봤다.
이제 김상혁은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올곧은 눈에 짓눌렸었던 그는 그녀의 눈이 참 맑고, 또 이선익과 닮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코가 오똑 해서 이선익과 닮지 않았지만, 입술은 닮아 있었다.
속눈썹이 긴 것은 아예 판박이였다.
김상혁은 그녀의 사진 앞에 향을 꽂았다.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그녀의 얼굴을 다시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얼굴은 흐릿해졌다.
김상혁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뿌예진 시야가 그녀의 얼굴을 더욱 흐리게 만들었다.
“흑…… 흐윽…….”
그를 바꾼 건 이선익과 그의 어머니였다.
자신은 이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
얼마 뒤, 이선익은 김상혁에게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삑.
-이거 뭐야?
-가져.
캡슐이었다.
천만 원을 호가하는 액수였고, 분명 김상혁도 몇 달은 돈을 쓰지 않고 모아야 살 수 있는 액수였다.
-싫어.
이선익은 과한 선물은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김상혁이 보내온 메시지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선물 아니야. 남은 보청기 값이야.
중학교 시절, 김상혁이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해도 그 돈을 다 메울 순 없었다.
당연히 고장 낸 보청기 값의 반은 건네지 못했었다.
이제야 그 돈을 이자까지 쳐서 갚았다.
시간이 흘렀다.
이 세계 스칸다의 정식 오픈.
6명의 파티는 새로운 세계에 모여 환호했다.
이선익은 기사, 김상혁은 궁수.
심대형은 마도사, 최혜연은 신관.
정재민은 도적, 송예지는 드루이드.
이선익은 늘 김상혁에게 말했다.
“애아 악, 이아 이.”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앞, 네가 뒤.
김상혁은 그 말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앞, 네가 뒤.
이선익의 넓은 등은 더없이 듬직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화내지 않는 사람이다.
친구를 위해 화내는 사람이었다.
스칸다 서버 종료를 단 며칠 앞두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불리었다.
좋은 친구들.
단 6명에 불과했지만 그중 2명은 활금강(活金剛)의 위치에 올랐다.
나머지 넷도 전원 성채남보석.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리었던 최상위권 모험가들의 경쟁에서 당당히 맨 앞에 놓인 파티의 이름이었다.
***
“꺼흑…… 어흑…….”
“음탕아…….”
-음탕아 ㅋㅋㅋ 추하다.
-화장 번진 것 좀 봐. ㅋㅋㅋ
-와 하나도 안 슬퍼(주르륵)
-이런 것쯤이야(펑펑)
-애도 아니고(입에 주먹을 넣는다)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가 왕이나가 능숙하게 다른 화제들로 넘어가자 조금 나아졌다.
사실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었다.
왕이나는 오히려 과거 얘기를 꺼낸 이때,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는 이때 묻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시초의 유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
김상혁이 한참 망설이다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