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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66화 (166/222)

# 166

166화

***

남부 해적들의 은신처인 ‘진주 해협’.

이곳 말고도 많은 은신처가 있었지만, 진주 해협에서 열리는 노예 시장과 진귀한 약탈품들의 경매는 많은 해적들을 불러들였다.

“흐음.”

‘이끼 인어 해적단’의 중급 간부인 제프리는 수하들과 함께 외곽의 경계를 서고 있었다.

남부 해적 연합의 오랜 규칙 중 하나로, 각기 다른 해적단들이 돌아가며 경계를 섰는데 오늘은 그의 차례였다.

귀찮긴 했지만, 자주 처하는 상황도 아니라 그는 수하들과 카드놀이를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죽을래.”

“그럼, 제가 먹겠습니다!”

“스읍…… 오늘은 운이 왜 이럴까.”

“배에 오르면 폭풍이 그치고 섬에 정박하면 그 섬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행운의 제프리 님께서 무슨 약한 소리십니까요?”

“너희 짰지?”

“아, 아닙니다!”

“쳇, 그런데 왜 이렇게 띄워 주는 거야?”

수하들은 안 띄워 주면 제프리가 삐질 것을 알기에 한 행동이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됐고, 나는 좀 쉬련다. 안 붙는다, 안 붙어!”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조금만 쉬었다가 따라 나가겠습니다요!”

“뭘 따라 나와, 따라 나오기는.”

“에이, 말만 그렇게 하시고 또 혼자 순찰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알면.”

“맥주를 마셨더니…… 물만 빼고 당장 따라붙겠습니다.”

“그래, 할 건 해야지. 선장 눈치 보는 것도 내가 하리?”

제프리는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지만, 그의 선장이 시키는 일은 제대로 완수하는 성격이었다.

할 땐 하고, 놀 땐 놀고. 그의 좌우명이었다.

제프리는 잎사귀를 말아 만든 담배를 물고 혼자 밤공기를 마시며 진주 해협의 외곽을 거닐었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규모가 큰 은신처의 안쪽에서 들려왔지만, 살인만 일어나지 않으면 문제없는 곳이라 내부 순찰은 1~2명이 도맡아 했다.

사실, 살인이 일어나도 상관은 없었다.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으니까.

“음……?”

럼에 취한 제프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야, 내가 말없이 접근하면 다음엔 어쩐다 했어?”

지금까지 쌓아 온 원한이 적지 않은 그는 항상 조심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제프리는 누군가 자신의 뒤에 서면 등골이 오싹해지며 극도로 예민해졌다.

아마도 볼일을 마치고 온 그의 수하겠지만, 이런 사소한 점에서 거슬리면 결국 그에게 찍히는 것이다.

“대답을…….”

부우웅!

파공음이 들리자마자 제프리는 벼락같이 허리에서 곡도를 꺼냈다.

늘 럼과 독성이 강한 담배에 찌들어 있는 그였지만, 항상 일말의 경계심을 품고 있었기에 보일 수 있는 민첩함이었다.

카아아앙!

“윽…… 어떤 개…….”

제프리는 자신을 공격한 이가 볼일을 보고 따라붙겠다던 수하가 아니라는 사실에 일단 안도했다.

수하에게 배신당해 죽는 삶은 해적에게는 정말 볼품없는 죽음이었으니까.

그는 젖은 장화를 신고 꽁꽁 묶여 판자를 걸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몸의 긴장을 끌어 올리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팍!

제프리는 발로 상대를 밀치고 모습을 확인하기도 전에 반대쪽 손으로 뇌격식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해머가 뇌관을 때리며 마석이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퍼엉!

콰아앙!

폭발에 상대의 머리가 박살났다.

흡족한 눈으로 자신의 파괴 행위의 결과물을 바라보던 제프리가 안색을 굳혔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모래로 이루어진 무언가에게 원한 살 만한 일을 한 기억이 없었다.

해변에 소변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등 뒤를 노리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제프리 님, 무슨 소립니까!”

제프리는 수하가 격발음에 뛰쳐나오자 그를 잠시 흘겨봤다가 다시 모래 병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땅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라면 흔적이 있을 것이다.

“발자국…….”

발자국이 찍힌 곳을 쭉 살피던 그가 최초의 발자국이 찍힌 곳을 쳐다봤다.

그곳엔 균열이 일렁이며 모래 병사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너무 놀라 피우던 담배를 그대로 삼켰다.

텁.

푸후우.

독한 연기를 뿜은 그가 수하에게 말했다.

“종을 울려라, 다 나오라고 해.”

모래 병사들이 천천히 진주 해협의 불빛을 바라보며 접근해 왔다.

아무래도, 그는 오늘 자신의 운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

스칸다는 이날 밤을 기점으로 종말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었다.

균열이 일어난 지역은 복구가 거의 불가능했고 잿빛 땅으로 변하면서 작물이 자라나지 않아 사람이 살기 어려웠다.

그런 균열이 전 대륙으로 퍼져서 동시에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대처한 단체는 지혜의 고리였다.

“서둘러라! 한시가 급해!”

“일단 모든 연락망을 가동해라! 지금부터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상황 파악에만 집중해! 하나라도 놓치면 끝장이야!”

“태양성은! 태양성은 아직 연락이 없는 것이야?”

“바스카리에 파견 나갔던 마법사들은 왜 귀환이 늦는 거야!”

“성국에서도 균열이 발생해 발이 묶였다고 합니다!”

“차라리 잘됐군! 거기서 상황을 전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카이덴을 비롯한 마탑주들은 눈에 귀기가 피어올랐다.

“누가 남을 것인가?”

“카이덴, 자네가 남게. 허리도 안 좋지 않은가?”

“알았네. 부탁함세.”

“부탁은 무슨…… 자, 가지! 나는 서부 전송진으로 가겠네. 보급망이 끊기면 큰일이니까.”

“그럼 제가 맹과 합류해서 움직이죠.”

카이덴이 진지한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했다.

이 대규모 균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막대한 힘의 파동이 이유 없는 사막 쪽에서 퍼져 나왔으니까.

“시초의 유적…….”

“거기뿐이겠지.”

“누가, 정확히 누가 가 있다고 했지?”

“협회 쪽 베어랑 추기경 둘, 그리고 흑존이 가 있다고 들었네.”

“추기경 둘이면…….”

“초모, 아니 꽃의 추기경과 물의 추기경이야.”

“넷이서 이만한 힘을 막을 수 있을까? 그쪽으로도 힘을 보태야 하는 것 아니야?”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다만 어차피 바스카리에서 지척이니 성국이 먼저 손을 뻗칠 걸세.”

“그렇겠군. 알았네! 어서 가 보게!”

같은 시각, 태양성에서도 대규모 균열이 발생했다.

“꺄아아악!”

“살려 줘!”

팟!

팟!

순간 바람의 기운이 거세게 몰아쳤다.

목에 크게 흠집이 난 모래 병사는 몸을 기우뚱거리더니 이내 바닥과 부딪혀 박살이 났다.

디고어가 혀를 날름거리고 말했다.

“자다가 무슨 봉변이야?”

“여기! 여기 좀 살려 주십시오!”

“간다, 가!”

병사들의 외침에 디고어가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태양성의 주민들은 서둘러 균열과 거리를 벌렸다.

지휘부의 순발력 있는 대처가 아니었다면 피해는 더욱 커졌을 것이다.

“빨리! 빨리 움직이십시오!”

“케이 님!”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모래의 군대는 끊임없이 전진해 왔다.

습격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균열을 닫으면 모든 게 끝나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곧, 태양성의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작은 여자아이가 사시나무 떨듯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아이는 난리 통에 엄마의 손을 놓쳤고, 그대로 낙오되어 폐허가 된 건물에 숨어 있었다.

모래 병사는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더 두려운 것이 그녀의 숨결을 느꼈다.

바위 거인이 그녀가 있는 폐허를 향해 거대한 손을 뻗어 뭉개려 했다.

그으으으어어.

부우웅.

“흐아아아압!”

콰아아아앙!

그때, 아이는 자신을 구하러 온 기사가 그 공격을 막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란슬롯 님!”

아이가 오물오물한 입으로 기사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는 그녀에게 있어 목숨을 구해 준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 영웅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듯 당황하여 그녀에게 소리쳤다.

“안 돼! 나오면 안 된다!”

“네?”

“이런!”

그으으으어어.

여자아이는 화들짝 놀라 뒤를 보았다.

다른 바위 거인이 그녀를 발견했는지 발로 짓밟으려 했다.

“꺄아아아악!”

짧은 생명이 꺼지려는 순간, 굉음과 함께 먼지가 일었다.

콰직.

콰지직!

아이는 화들짝 놀라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려 했다.

붉은 갑옷을 입은 여인이 이글거리는 검으로 바위 거인의 발을 막고 있었다.

기긱.

기기긱.

여아는 망토를 휘날리는 사람이 이 태양성의 주인이라는 것을 단박에 깨달았다.

“아, 아서 님!”

“괜찮니?”

그녀는 그녀를 둘러싼 불길만큼이나 상냥했고 따스했다.

아이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자 아서는 거인의 발을 고함과 함께 들어 올렸다.

“으아아아아!”

콰지직.

거인이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몸의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아서로 불리는 최별은 그 틈을 타서 거인의 몸을 타고 불길의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콰앙!

몇 번의 휘두름으로 바위 거인을 박살 낸 그녀는 그 잔해에 올라 란슬롯을 쳐다보았다.

그도 바위 거인을 쓰러트리고 그녀를 마주 보았다.

“대피는?”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피가 끝나는 대로 균열을 닫는 작업을 하겠다.”

“예!”

***

대규모 균열은 별자리 관을 비롯하여 영원의 용광로, 그리고 맹도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각기 기지를 발휘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다.

하지만, 바스카리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규, 균열이! 부유성 한복판에!”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도들은 질서를 잃고 갈팡질팡 흔들렸다.

빛의 추기경이 테라스에서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빛이 뿜어 나와 한곳을 가리켰다.

“저, 저기는…….”

“저기로 가라는 말씀이신 것 같아!”

“하지만…….”

“달려어!”

빛이 가리킨 곳.

그곳은 꽃의 교단의 본거지였다.

“서둘러요!”

“헉, 허억…….”

“조용히!”

그림자의 추기경이 우르트의 추방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파를 그림자로 감쌌다.

모래 병사들은 주변에서 대규모 인파가 움직이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애꿎은 건물들만 파괴하고 있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꽃의 성역으로 모여!”

“거기 가면 해결되는 거야?”

“몰라! 다들 그곳으로 모이고 있어!”

신성력의 부재는 뼈아팠다.

몇몇 센티널로 모래 병사를 상대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바위 거인과 정예병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바람의 추기경이 광풍을 몰아치며 분전하고 있었다.

그는 최대한 많은 수의 센티널을 가동하여 효율적으로 균열을 막으려 했다.

바위의 추기경은 뒤뚱거리며 달렸다.

전례복은 밑단이 찢어져 볼품없어 보였다.

마치, 바닥난 그의 신성력처럼.

“누구를,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그는 정신이 나간 듯 소리쳤다.

삶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그를 혼란하게 했고, 그저 맹목적으로 달리게 했다.

“안 돼!”

“으아아앙!”

대피 행렬에서 함께 달려가던 아이가 넘어졌다.

바위의 추기경은 그곳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지금은 그도 살기 바빴다.

도와줄 힘도 없었고.

그런데, 행렬을 거슬러 오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의 아버지였다.

“리제! 아빠가 갈게!”

“아빠아아아!”

“아빠가 가! 울지 마! 아빠가 갈 거야!”

리제라는 아이를 발견한 바위 거인이 어느새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바위의 추기경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방금 마주친 소녀의 아버지는 흔들림 없는 눈을 하고 오직 소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안 돼!”

“리제! 아빠가 왔어!”

“아빠아!”

리제를 안아 든 아버지는 그녀를 다독였다.

하지만, 곧 그 위로 바위 거인의 손아귀가 내리꽂히고 있었다.

콰직!

다행스럽게도 누군가 그 손아귀를 막았다.

불의 추기경이었다.

화륵.

하지만, 신성력이 부족한 그는 힘겹게 불꽃을 일으켜 바위 거인의 손을 막고 있었고 곧 바스라질 것처럼 보였다.

불은 눈과 코, 그리고 입에서 피를 쏟아 내며 말했다.

“제발, 제발 제게 잠시 동안이라도 이들을 지킬 힘을…….”

불은 끝없이 믿음을 말했다.

모든 게 끝나는 스칸다의 황혼이 찾아오고 나서야 그도 무언가 깨달은 것이다.

바위 거인의 손아귀가 불을 밀어붙였다.

“안 돼!”

아이 어머니의 절규가 들리자, 불은 소리쳤다.

“아이를 데리고 얼른 가시게!”

“하지만…….”

“어서!”

“……당신을 믿습니다.”

불의 추기경이 피식 웃었다.

“쿨럭!”

그 순간, 불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나와 그의 전례복을 적셨다.

어째서 자신을 믿는단 말인가.

이토록 죄 많고, 후회가 많은 사람인데.

불은 결연한 표정을 짓고 거인의 손아귀에 맞섰다.

그때, 거인의 손아귀가 조금 가벼워졌다.

불이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바위.”

“혼자서…… 혼자서 뭐 하는 겐가!”

“……그러는 자네는 어째서 왔는가.”

“몰라! 모른다고!”

그들은 알았다.

아니, 모르지만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바위와 불이 신음하며 고통받을 때,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다.

“저기예요! 저기!”

그들은 바람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바람은 대피 행렬의 호위를 맡고 있었고 그가 이탈했다는 것은 그만큼 행렬이 위험해졌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오지 마! 가게! 사람들을 구해!”

“우리는 여기서…….”

그때, 우렁찬 고함과 함께 누군가가 뛰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으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앙!

곧이어 손아귀에 담긴 힘이 놀랄 만큼 가벼워진 것도 모자라 오히려 뒤로 고꾸라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불과 바위는 피를 잔뜩 흘린 몰골로 자신을 구한 이를 바라보았다.

이마에 용 각인.

꽃의 교단의 이방인들이었다.

붉은 기운을 두른 사내가 추기경들에게 말했다.

“가시죠. 힘을 합쳐야 합니다.”

“…….”

불과 바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방인들이 나서서 행렬을 보호하고 있었고, 센티널 또한 그들의 곁에 서서 큰 힘을 발휘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쩌면, 아직 바스카리는 무너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도, 도와주게.”

“우리를 좀 도와줘…….”

남자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추기경들은 생각했다.

믿음은 꼭 절대적인 존재에게 바치는 경의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믿음은, 서로 나눌 수도 있는 것일지 모른다고.

그들은 그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

몰타의 등장에 성진과 일행은 당황했다.

그가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유적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메이른?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어의 외침에 메이른이 황급히 답했다.

“저는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나머지 균열을 붙잡는 데 모든 힘을 써야 해요!”

“우리가 저자를 상대해야 합니까?”

“……제가 균열을 붙잡고 있는 동안 저자를 쓰러트려야 합니다.”

“미치겠군.”

유적이 변화하자, 몰타의 신형도 함께 이동했다.

그는 몇 줄의 계단을 더 만들고 그 위로 향했다.

“잡아야 해요!”

메이른의 말에 여섯은 서로를 쳐다봤다.

뒤에는 다리, 앞에는 몰타가 만들어 낸 계단.

다리를 막지 않으면 모래 병사가 당도할 것이고, 메이른이 그 칼날에 쓰러질 것이다.

또, 몰타를 쫓지 않으면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메이른이 붙잡고 있는 균열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움직인 것을 보면 더 큰 위험이 있을 것이다.

순식간에 인원이 분배됐다.

메이른의 곁에 베어, 물, 그리고 심대형이 남았다.

당연히 추격조는 흑백쌍존과 이선익이었다.

그들은 다리를 맡기고 순식간에 땅을 박차 몰타를 쫓아갔다.

지금은 서로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계단을 한참 올라 쫓아간 그곳엔, 몰타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아앙!

어두운 기운이 송하린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아앙!

이선익의 방패가 그것을 튕겨 냈다.

그의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아 그 안에 담긴 힘이 보통이 아닌 듯했다.

“형님! 저기!”

몰타가 균열을 열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성진과 다른 2명도 재빨리 그 균열로 따랐다.

균열을 통과하는 과정은 성진이 스칸다로 떨어질 때와 비슷했다.

막대한 힘이 몸을 덜덜 떨리게 했으나, 그들은 곧 어딘가에 떨어졌다.

그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깨진 유리창과 음산한 골목.

부서진 간판들과 인적이 없는 상가들.

이곳은, 종말 이후의 세계였다.

“종말 이후?”

이선익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성진과 송하린은 이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어째서 다시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몰타가 중얼거렸다.

“어째서…… 세계가 닫힌 것이지?”

“우아아아아!”

이선익이 상관하지 않고 금빛으로 변해 돌진했다.

몰타의 검은 기운이 주변에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를 들어 올려 그에게 던졌다.

후우웅!

콰아아아아앙!

차를 방패로 막아 내면서도 속도가 줄지 않는 모습의 이선익을 바라보며 몰타가 다음 행동을 취했다.

검은 기운이 구체로 뭉쳐 이선익에게 향했다.

콰아앙!

하나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이선익은 계속 돌진했지만, 2~3개가 더해지자 결국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

몰타에게 아까 그가 취한 행동처럼 차량이 두 대 날아왔다.

몰타는 무표정하게 차량에 검은 기운을 뿜었다.

콰아아아!

승용차 한 대가 산산이 부서져 파편으로 흩날리자 몰타는 이것을 던진 이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몰타가 다른 차량에 기운을 뿜으며 그들을 찾기 위해 감각을 끌어 올렸다.

콰아아아!

산산 조각난 차량의 파편 뒤에서 송하린과 성진이 등장했다.

그들은 각기 정광이 흐르는 눈을 하고 몰타에게 접근했다.

몰타는 그들의 접근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양손을 뻗었다.

후우웅.

“크으윽!”

송하린이 검을 휘둘러 그 힘을 베어 내려 했지만, 오히려 힘에 부딪혀 볼썽사납게 튕겨 날아갔다.

쾅!

콰앙!

하지만, 성진은 달랐다.

그가 천의 호흡을 운용하자, 검은 기운이 스르륵 사라졌다.

“무슨!”

몰타가 처음으로 당황하여 눈을 크게 떴다.

성진의 검이 백광을 뿌리며 휘둘러졌다.

서걱!

“큭!”

성진은 손에 뭔가를 베었다는 감각이 들자 후속 공격을 가하려 했지만, 몰타가 있던 곳이 일그러지더니 그가 사라졌다.

아쉬운 눈빛을 보낸 성진이 그가 있던 자리를 확인했다.

검은 팔이 펄떡이며 기어 다녔다.

콰직!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밟아 으깬 성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에 균열이 하나 더 생겼다.

송하린과 이선익이 서둘러 그에게 다가왔다.

성진은 손을 가볍게 휘저어 그들의 상처를 치유했고 절뚝거리던 둘이 금세 가벼워진 몸에 적응했다.

“쫓아가야 합니다.”

이선익과 송하린이 고개를 끄덕여 그의 의견에 따랐다.

그들은 재빨리 몰타를 따라 균열로 뛰어들었다.

엄청난 어지러움이 몰려 왔지만 그들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대비해야 했다.

과연, 바로 검은 기운이 그들을 습격했다.

“으아!”

이선익이 기운을 발하자 황금빛 방패가 만들어져 그 기운을 튕겨 냈다.

중심을 잡고 착지한 이들은 몰타를 노려봤다.

몰타는 아까보다 조금 작아져 있었다.

하지만 허전했던 팔 부위는 새로운 팔이 돋아나 있었다.

“……형님.”

다시 전투를 앞둔 와중, 송하린이 조용히 얘기했다.

“네.”

“여기, 어딘가 낯익지 않습니까?”

새소리와 벌레 소리.

그들은 숲에 와 있었다.

처음 보는 숲이었지만, 어쩐지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설마!’

송하린이 담담히 말했다.

“여기, 스칸다가 아니라 꼭 우리가 살던 곳 같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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