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블랙 리자드숲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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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존자들을 쳐다봤다. 오랫동안 늪지를 헤맸는지 행색이 너저분했고, 자잘한 상처가 피부 바깥으로 드러나 있었다.
인원은 총 다섯. 빠르게 스킬을 써서 주변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잠시 휴식할만한 곳에 터 잡고 생존자들에게 식량을 제공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헌터님.”
처음 마주쳤던 여자가 연신 고개 숙여 인사한다. 나는 의료물자를 챙겨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발대의 남은 인원은 이게 전부입니까?”
“네······.”
“여러분 다섯이 끝이에요?”
“아, 한 명 더 있습니다.”
힐링포션을 마시며 생기를 되찾은 송예진이 대답했다.
“저희 파티 C급 헌터 하나가 시간을 벌기 위해 남았습니다. 리자드맨들에게 쫓기고 있던 상황이어서······.”
“그래요? 그럼 그 헌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게······ 저희도 잘 몰라요. 살아있다면 아마 저쪽.”
송예진이 여태 도망쳐왔던 방향을 가리켰다. 도준욱이 리자드맨의 추격으로부터 살아남았다면 그쪽에 위치할 테다.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늪지 더욱 깊숙한 곳이다. 블랙 리자드와 리자드맨이 밀집해있는 곳. 상당히 위험한 지역에 남겨졌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존자들의 상태가 생각보다 위급했다. 살아있는 걸 확인한 이상 한 명이라도 더 빨리 구출한다.
“저, 그런데 혹시······.”
“?”
“지원 병력은 두 분이 끝인가요?”
“네.”
“헌터 등급이······?”
“D급, F급입니다.”
잠깐 화색이 돌던 송예진의 얼굴이 다시 핼쑥해졌다.
*
“저,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내가 기본적인 치료를 마치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자 송예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사람 구출하러 갑니다.”
“예? 둘이서요?”
“네.”
“안 돼요! 그쪽엔 블랙 리자드맨과 블랙 리자드 킹이 있단 말이에요!”
그녀가 깜짝 놀라 필사적으로 내 옷깃을 붙잡으며 말렸다. 이들이 도망쳐온 곳은 리자드숲 보스가 나오는 지역이다. 일행을 쫓는 리자드맨 무리엔 블랙 리자드 킹이 섞여있었다.
“뭐라고요?”
“블랙 리자드 킹이요! 블랙 리자드 킹! 저희가 괜히 동료를 남기고 도망쳐온 줄 아세요? 그쪽으로 돌아갔단 죽어요! 보스가 우릴 쫓고 있다고요!”
두려움에 울먹거리며 말했다. 2주 가까이 대적해온 블랙 리자드 킹은 그녀에겐 사신 같은 존재였다. 이 4미터짜리 거대 몬스터는 지치지도 않으며 일행을 따라왔고, 일행은 헌터라는 말이 무색하게 도망 다니며 잔인하게 사냥 당했다.
그곳에 F급 헌터가 남겨진 헌터를 도우러 나서겠다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지원 나온 F급이 여기까지 무사히 도달한 것도 기적에 가까운데 더 앞까지 나아가려 한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최선을 다해 만류했다.
“저쪽으로 가면 블랙 리자드 킹이 나와요?”
“네! 4미터짜리 블랙 리자드 킹! 저희 파티 대장을 한 방에 부쉈던······!”
“진짜요?”
“진짜에요! 그러니까 저희도 어서 반대편으로 도망쳐야 해요! 여기로 따라올지도 몰라요!”
“잘됐군요.”
나는 흡족하게 웃었다. 블랙 리자드 킹을 찾아갈 수고를 덜었다. 늪지대를 환하게 불태우는 등 난리법석을 떨며 보스를 찾았는데, 자기가 알아서 온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예? 잘됐다고요···?”
송예진은 어안이 벙벙해진다. 내 말을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해본다.
“보스가 따라오면 좋죠. 보스만 잡으면 이 던전은 클리언데, 그럼 남은 한 명의 생존자를 애써 찾을 필요도 없겠군요. 던전공략이 끝나면 안전은 자연스레 확보되니까.”
헌터가 던전공략을 마치면 몬스터는 숨거나 도망치며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남은 생존자가 물러나는 몬스터를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 무슨 소리죠? 설마 블랙 리자드 킹을 잡겠다는 거예요?”
“예, 그렇습니다.”
“말도 안 돼요! 아무리 당신들 중에 D급 화염계 마법사가 있어도 절대 무리라고요! 블랙 리자드 킹이 만만한 줄 아세요?”
송예진이 겁에 질려 소리쳤다. 이 F급 헌터는 블랙 리자드 킹을 너무 우습게보고 있었다. 도망치는 것도 힘들 지경인데 잡으러 가겠다니, 그게 제정신인가.
그러나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블랙 리자드 킹을 잡으러 가는데 생존자들을 이끌고 가는 게 좋은가 아닌가.
여기 온 목적이 생존자 구출에도 있는 이상 이들을 최대한 많이 살려야 한다. 여기에 놔두고 가면 늪지대에 서식하는 다른 리자드들에게 습격당할 위험이 있었고, 데리고 가면 보스를 사냥하는 중간에 리자드 무리에 당할 위험이 있었다.
두 가지 중 뭐가 현명한 선택일까.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데리고 간다.
눈에 보이는 곳에 있을 땐 보호할 수 있지만 눈에 안 보이면 보호할 수 없다. 리자드 무리에 당하더라도 내 옆에 있을 때 당해라.
허리춤에 꽂아둔 헌터소드를 빼냈다.
“블랙 리자드 킹을 사냥하러 갈 겁니다. 순순히 따라오시죠.”
“네?”
나는 그녀에게 검을 내밀었다.
“저희 뒤에 없으면 지켜드리기 힘듭니다. 살아남고 싶거든 얌전히 따라오세요.”
“······?”
송예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F급 헌터가 자기에게 검을 내밀며 협박한다. 지켜줄 테니 따라오라고.
이 납치범 아닌 납치범을 보며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망설였다.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하하. 재미있네요. 오랜만에 웃었어요.”
“농담 아닙니다.”
“?”
나는 왼손을 들어 [파이어볼]도 만들었다.
*
“하하하하! 너 진짜 보통 놈이 아니구나? 우리 형님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겠네!”
최기철이 사태를 보고 무릎을 구부리며 웃었다. 웃느라 흔들리는 몸통을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간신히 유지한다.
한재복이 벌인 일은 가관이었다.
생존자들에게 따라오라고 협박했고, 반발하는 헌터들은 전부 검으로 제압했다. F급 헌터에게 당한 사람들은 한국헌터등급 측정체계의 정확성에 관해 의심이 생겼다.
“너처럼 막무가내는 처음 본다. 안 따라온다고 전부 검으로 해결해버리다니. 이게 정녕 21살짜리 F급 헌터가 맞나? 어디서 폭군노릇 하다 헌터가 된 거 아냐?”
“······.”
“어, 뭐야. 진짜야?”
내가 정색하며 눈을 흘기자 농담을 지껄이던 최기철이 화들짝 놀라며 말을 더듬는다. 폭군이란 말은 사실 어느 정도 정확했다. 지난 회차. 나는 아포칼립스 시절의 리테일 길드를 이끌며 종종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 급박한 순간에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고, 그럴 땐 무력으로 해결을 보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이 가장 중요한 시절이었다. 또한 가장 효율적이기도 했다. 빠른 선택, 과감하고 대담한 행동은 그때 만들어진 습관이다.
“진짜겠냐.”
“아, 그렇지. 하하.”
내가 무심하게 말하자 최기철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인다.
“예진 씨. 우리 이거 따라가도 되는 거야?”
뒤따라오던 헌터들이 쏙닥거린다. 그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충격을 딛고 머리를 맞대며 토의한다.
“그게······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 다 F급 헌터에게 져버려서.”
송예진은 D급 검사이지만 한재복의 검을 세 번도 버티지 못했다. 부끄러워하며 작게 속삭인다.
“저 F급이 강하긴 해. 저렇게 강한 F급은 처음 봤어. 마법도 사용하는 것 같던데, 진짜 센 게 아닐까.”
“아직 갱신이 안 돼서 그렇지 사실 C급에 가까울지도...”
“저 마법사도 굉장히 강했어. 아까 늪지 불태우는 거 봤냐? C급 마법사의 화력이었다고.”
“그럼······.”
헌터들의 눈에 희망이 생긴다. 이들이라면 어쩌면 블랙 리자드 킹을 잡을지도 몰랐다. 반신반의하며 쫄래쫄래 일행을 따랐다.
“히익, 나타났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의 비명과 함께 그들이 등장했다.
블랙 리자드 킹의 무리. 선발대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집어넣은 인간형 도마뱀의 본대였다.
검은 그림자가 덮인 수풀 뒤로 수십 마리의 도마뱀들이 스산하게 드리웠다.
취익.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창과 활을 치켜세운다. 인간처럼 무기를 사용한다.
“대결 잊지 마라. 블랙 리자드 킹은 내가 잡는다.”
최기철이 나를 보며 호기롭게 말했다. 지팡이를 두 손으로 잡고는 마력을 끌어올린다.
[파이어 블레이즈]
[파이어 월]
[파이어 애로우]
사방팔방 늪지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수분을 머금은 축축한 숲이나 화력이 워낙 강하니 결국 불길에 휩싸였다.
‘이건 괜찮네.’
[파이어월]
나도 광역마법 하나를 앞에다 펼쳤다. 최기철이 스킬을 새로 하나 꺼낼 때마다 내 스킬도 하나씩 늘어나니 기분이 좋았다.
꾸이익- 꾸엑- 키엑-
리자드맨들이 다양한 소리를 내며 덮쳐온다. 불에 휩싸인 놈은 불에 타며 광분하고, 불을 피한 녀석은 잽싸게 화재를 피해 불타지 않은 곳을 골라 디디며 뛰어왔다.
[파이어월]
[파이어월]
우리는 그러건 말건 지형을 불로 가득 채웠다. 여러 겹의 불의 장벽이 생기며 일대를 포장했다.
“우와...”
뒤에서 지켜보던 헌터들이 감탄한다. 그들도 이렇게 싸우고 싶었을 거다. 화염계 마법사만 멀쩡히 살아있었다면.
이제야 실현된 뜨거운 전장을 바라보며 뒤늦게 병장기를 꺼내들었다.
파직, 쿠에엑-
퍼억, 쿠악-
불을 빠져나온 리자드맨과 헌터들이 맞붙었다. 방패로 창을 막고 둔기로 머리통을 깨며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는다.
[연속 베기]
앞서서 검을 휘두르는 헌터가 있었다. 한재복.
그는 검을 빠르고 정확하게 돌리며 도마뱀들을 썰어버렸다.
그건 전투가 아니었다.
학살이었다.
불을 피해 빠져나온 리자드맨들이 고개를 내밀자마자 여러 갈래로 나누어버리니 전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일방적인 살육의 향연이었다.
헌터들은 덕분에 상처입고 기가 죽은 리자드맨 몇 마리만 힘을 합쳐 공격하면 되었다.
크게에엑!
낮고 소름끼치는 포효가 늪지대에 깔렸다. 붉은 색으로 번쩍이는 풍경 속에 4미터 블랙 리자드 킹이 모습을 비추었다. 동족이 학살되는 장면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휘익, 우지지직!
옆에 있는 주름진 나무를 하나 뽑아 던지자 주위에 있던 불타는 나무건, 리자드맨의 시체건, 살아 움직이는 리자드맨이건 모두 나무통에 짓이겨져서 굴러갔다.
나를 향한 공격이었다.
바닥을 박차며 뛰어올라 피해냈다.
“블랙 리자드 킹 나왔다! 내가 잡는다!”
최기철이 던전 보스를 발견하자마자 크게 소리치며 지팡이를 다잡았다.
블랙 리자드 킹을 향해 갖은 스킬들을 난사한다.
‘저러다 한 대 맞으면 골로 갈 텐데.’
나는 오히려 최기철을 걱정했다. 우리끼리 대결에 정신이 팔려 서두르다간 블랙 리자드 킹의 공격에 한 대 맞고 즉사할 거다. 지난 회차에도 앞뒤 안 가리고 몬스터에게 까불다가 죽은 놈이었다.
화르륵.
블랙 리자드 킹이 대형 방패를 들어 올려 최기철의 마법을 막았다. 도마뱀의 비늘 대신 축축한 나무방패가 잠시 타오르다 그친다.
퉤엑!
대형 리자드맨의 침. 사람을 태워 죽이는 산성액이 최기철에게 쏘아졌다.
“으윽!”
급히 실드를 형성해 타액을 막은 최기철. 실드를 유지하느라 마나가 급속도로 빠져나간다. 산성액이 실드를 태워버리고 있었다.
콰앙.
“으아악!”
서슴없이 다가온 블랙 리자드킹이 3미터짜리 창을 휘둘러 최기철을 쳐냈다.
최기철은 실드에 마력을 쏟으며 힘차게 저항했지만 위력에 밀려 실드와 함께 날아갔다.
“으아, 안 돼!”
“마법사님이!”
“괜찮으세요?!”
헌터들이 놀라서 땅바닥에 나뒹구는 최기철을 보호했다. 그들은 화염마법사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블랙 리자드 킹의 상대가 되지 못하자 기겁하는 모습이다.
내가 앞으로 나섰다.
주위에 얼쩡대는 리자드맨들을 베어 넘기고 블랙 리자드 킹을 향해 다가갔다.
뭘로 잡을까.
고민의 순간이다.
블랙 리자드 킹을 사냥할 방법은 충분히 생각해두었다.
어떤 스킬을 사용하느냐가 문제일 뿐, 진다는 가정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