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4 제 16 장 - 소환수 =========================================================================
“이름이 뭐니?”
“규!”
“능력은 어떤 것을 가지고 있어?”
“규!”
그가 무엇을 물어보아도 대답은 모두 한마디였다.
‘이제 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소울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소환수라고 하나 소환했는데 말이 통하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히 소환수를 소환하면 본능적으로 뜻이 통할 거라고 했는데…….’
그는 자신이 뭘 놓쳤는지를 생각했다.
‘혹시 내 피가 모자랐나?’
소울은 바닥에 떨어진 혈액팩을 가져다가 남아있는 몇 방울의 피를 검은 덩어리에게 떨어뜨렸다. 피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그에게 흡수되어 사라졌다.
“규우!”
뭐라고 하는 소리인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소리를 들어보니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고민이 되어 이빨로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아!”
갑자기 통증이 느껴지자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만져봤다.
언제 깨물었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이 조금 찢어져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휴지로 닦으려고 가다가 혹시나 해서 검은 덩어리에 피 묻은 손가락을 댔다.
“규규!”
이번에는 뭔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검은 덩어리와 자신사이에 잠깐 전기가 통한 느낌이었다.
‘혹시 이게 피로 하는 소환수와의 계약 같은 건가? 그렇다면 이제 내 소환수의 이름을 정해야 할 차례인가?’
소울은 자신의 손 안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검은 덩어리를 보며 이름을 생각했다.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버터풀, 야도란, 피죤투, 또가스…….
머릿속에 수많은 이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문득 이 소환수의 몸 색깔이 검다는 것에 필이 꽂혔다.
“그래 너의 이름은 까망, 까망이야!”
“규규규!”
화악!
소울이 검은 덩어리에게 ‘까망’이란 이름을 지어주자 갑자기 검은 덩어리 안에서 빛이 환하게 터져 나왔다.
그는 눈이 부시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한 손을 들어 그 빛을 가렸다.
손을 치우자 아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의 검은 덩어리, 아니 까망이가 되어 있었다.
까망은 마치 폭신폭신한 검은 털실 뭉치 같은 모습으로 변해있었는데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면 중앙에 검은 눈동자 같은 것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소울은 까망이를 손으로 살짝 쥐어봤다.
몽실몽실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새털뭉치를 손에 쥔 것 같은 폭신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까망이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불러보았다.
“까망아!”
“규!”
까망이의 대답소리가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이제는 그가 자신의 목소리에 확실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내 이름은 이소울이야. 너의 이름은 까망이야. 알지?”
“규!”
“너를 이 세계로 소환한 게 나야.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규!”
“무럭무럭 성장해서 나의 강력한 소환수가 되어줘! 알았지?”
“규!”
소울은 그가 자신의 말을 100% 이해를 하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왠지 마지막 대답에는 힘이 전혀 실리지 않게 들려왔다.
달밤에 체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4시를 향하고 있었다.
까망이를 소환하고 나름 대화라는 것을 해보느라 벌써 시간이 아침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소환수가 나타나서 그런지 소울은 일단 까망이를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소환계 능력자의 능력은 소환수의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소환수의 능력이 뭔지 알아야 그에 맞춰 자신의 능력을 개발할 텐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걸 모르니 뭘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일단 기초훈련을 받으러 가야하니 조금만 더 자자.’
현장에서 피곤에 쓰러져 고생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당분간 까망이의 전투력은 0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까망아! 나 조금만 잘게. 너도 좀 쉬도록 해.”
“규!”
소울은 까망이를 손에 쥔 채 침대로 가서 몸을 뉘였다.
대자로 편하게 누워 까망이를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놓자 까망이가 그의 가슴을 운동장이라고 생각하는지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규규 소리를 냈다.
‘색깔은 새까만 녀석이 그래도 나름 귀엽게 노네.’
소울은 잠시 까망이가 자신의 온몸을 돌아다니는 것을 쳐다보다 눈을 감았다.
‘소울넷에 접속을 해서 탄탈라스에게 까망이에 대한 것을 물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지금은 시간이 좀 부족하구나. 주말에 물어봐야겠어.’
소울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천천히 잠에 빠져 들었다.
“규!”
까망이는 소울이 잠들자 그의 얼굴과 머리 위를 잠시 굴러다니며 지켜봤다.
하지만 더 이상 소울이 움직이지 않자 까망이는 그의 몸에서 침대로 내려왔다.
그리고 침대 아래쪽으로 떨어져 마나집적진이 그려진 은판이 있는 곳을 향해 굴러갔다.
마나집적진이 그려진 은판 위에 있던, 소환마법진이 그려진 은판은 금이 간 것을 확인한 소울이 살펴본 후에 옆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었다.
그래서 마나집적진이 그려진 은판은 지금 다시 열심히 새롭게 마나를 모으고 있었다.
까망이는 뭔가 자신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기운이 모이는 은판 주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그러다가 은판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가 보았다.
“규규!”
은판 위에 올라온 까망이는 기분이 좋았다.
그곳에는 자신에게 힘을 더해주는 근원적인 기운이 모여들고 있었다.
까망이는 겨울철 양지바른 창가에서, 고양이가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잡고 누운 것 같이 은판 위에 얌전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규규규!”
기분 좋은 기운들이 계속해서 원판 위로 모여들고 있었다.
까망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나른한 소리를 내며 침대 위를 쳐다봤다.
자신을 신세계로 소환해서 이렇게 좋은 기운까지 먹여주는 고마운 주인이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소울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창가에는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점점 밝아지며 하루가 새롭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까망이는 은판에 앉아 소울이 자는 모습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소울과 까망이의 인연이 시작됐다.
* * * * *
“자, 오늘도 실전 같은 기초훈련에 매진해보겠습니다.”
6조 조장인 양동주 조교의 말에 모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하루 몬스터를 잡아봤다고 다들 여유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출발합시다. 포메이션은 어제와 동일하게 마름모꼴로 합니다.”
“네.”
양동주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포메이션을 이뤘다.
확실히 100번의 연습보다 1번의 실전이 중요하다는 말이 맞았다.
단 하루의 전투 경험이 그들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바꿔놓은 것이다.
6조는 성막주가 맨 앞에서 앞장을 서고 소주용과 위소휘가 양옆 그리고 소울이 맨 뒤에서 걷는 것으로 포메이션을 구성하고 곧바로 훈련장을 나서서 북상했다.
헌릉로를 가로질러 새말에 들어온 그들은 샘마을길을 따라 마을의 가장 북쪽으로 들어왔다.
양지 어린이집을 지나 비닐하우스 몇 개를 지나자 그곳부터는 바로 울창한 수풀이었다.
“이거 너무 들어가는 것 아닌가?”
“그러게 말이야. 조심해야겠어.”
소주용과 위소휘가 그새 친해졌는지 말을 트고 있었다.
소울도 그들과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미안한 얘기지만 자신들과 같은 F급 파티는 더 깊이 들어가면 감당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양동주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들을 구룡산과 대모산 중심을 향해 끌고 갔다.
캬아오 크르륵 크라락…….
갑자기 전방에서 몬스터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양동주는 그들보다 조금 앞서서 가고 있어 전방의 몬스터가 고블린 무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고블린 10여 마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뒤쪽의 공터로 유인해서 처리합시다.”
“10마리면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제가 돕겠습니다.”
위소휘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해봤지만 양동주는 급하면 자신도 전투에 참여하겠다며 서둘러 물러설 것을 종용했다.
양동주의 말에 다들 할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 조금 뒤로 물러나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이소울 대원이 유인해주세요.”
“네? 어떻게 제가 유인을 합니까?”
소울은 갑작스런 양동주의 말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냥 다가가서 쇠뇌를 한방 쏴주고 오면 됩니다.”
“…….”
너무도 쉽게 하는 말에 소울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늘 저 양동주 조교가 생리하는 날인가? 왜 저러지?’
그는 양동주를 날카롭게 한번 째려보고는 앞으로 달려갔다.
‘소환계 능력자가 몬스터를 유인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하루라도 빨리 까망이의 능력을 찾아야 할 텐데…….’
소울은 자신의 머리카락 속으로 숨어 버린 까망이를 생각하자 절로 한숨이 났다.
까망이는 자신의 몸에서 조금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에 뜨이는 것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자신과 단 둘이 있으면 모습을 보이고 그의 몸을 굴러다니며 재롱을 피웠지만 다른 사람이 있으면 투명하게 변해서 자신의 모습을 감췄다.
그게 능력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까망이가 모습을 감춰버리면 자신밖에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지금도 소울이 혼자 앞으로 달려가자 그의 머리카락 속에서 나와 전투헬멧 끝에 반 정도 몸을 걸친 후에 전방을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물론 지금도 까망이의 모습은 오직 자신에게만 보이고 느껴졌다.
사사삭 사사삭…….
그의 발길에 채인 풀들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방에서 고블린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무리가 10마리가 넘어가자 다른 몬스터나 능력자들이 우스워졌는지 아니면 배짱이라도 생긴 건지 떠들썩한 모습이 방자하기 이를 때 없었다.
‘이렇게 시끄러운 고블린 떼는 처음보네. 그 이유가 뭘까?’
소울은 조심스럽게 나뭇잎 사이로 다가오는 그들을 살펴봤다.
그런데 평소에 많이 보던 고블린과는 달리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잘 차려 입은 덩치 큰 고블린 한 마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건 뭐지? 혹시 고블린 전사인가? 아니면 홉고블린?’
소울은 어느 쪽인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조심성이 많은 고블린들이 이 정도로 풀어질 정도면 홉고블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 컸다.
‘갑옷에다 칼과 방패를 들고 있으니 홉고블린이든 고블린 전사든 리더 급이 확실하다. 저 놈을 공격해서 꾀면 유인이 되겠군.’
소울은 미리 시위를 당겨 놓은 3연발 쇠뇌를 천천히 들어 올려 덩치가 크고 무장을 한 고블린의 얼굴을 향해 조준했다.
정면으로 걸어오고 있었고, 거리도 50m 밖에 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작은 표적임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핑 핑 핑!
하나씩 정확하게 조준을 해서 쇠뇌를 쏘았다.
쇠뇌 화살은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 덩치 큰 고블린의 얼굴과 몸에 명중했다.
‘실패다.’
소울은 결정적인 순간 목표로 삼았던 고블린이 급히 고개를 돌리고 방패로 몸을 가리는 바람에 허무하게 공중으로 튕겨나가는 화살을 보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유인을 하려는 것이라 조심스럽게 도망갈 필요가 없었다.
후다다다닥!
무조건 빠르게 달리면 장땡이란 생각에 소울은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힘껏 달려서 6조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도망쳐 왔다.
홉홉홉 고브고브…….
캬아오 크르륵 크라락…….
뒤쪽에서 고블린들이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울은 6조 사이로 달려와 고블린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는 6조가 서 있는 곳 뒤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 사이로 몸을 숨기고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위소휘 대원, 공격하세요. 성막주 대원 충격에 대비하세요.”
“네.”
“예.”
다들 양동주의 말에 잔뜩 긴장한 채로 전면을 바라봤다.
어느새 위소휘가 만든 얼음조각 2개가 정면으로 돌격해오는 고블린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퍽 캉!
날카로운 얼음조각 하나가 고블린의 가슴을 뚫어 버렸다.
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방패로 자신의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얼음조각을 막아냈다.
덩치가 크고 무장을 한 고블린이었다.
“무장한 홉고블린입니다. 뒤로 물러서세요. 이놈은 제가 맡겠습니다. 그동안 나머지 고블린들을 처리해주세요.”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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