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8 제 17 장 - 오해 =========================================================================
“달려오는 오크 세 마리부터 일점사 합니다.”
박승락이 모두에게 잘 들리도록 소리쳤다.
휙휙휙!
사실 일점사 할 것도 없었다. 박승락은 자신이 말하고 자신이 던지 투창으로 몬스터의 가슴이나 복부를 뚫어버리고 일찌감치 공격을 끝냈다.
그러자 최동원 팀장은 박승락의 원거리 공격이 너무 강력하다고 생각해서 차례를 바꾸기로 했다.
“이번에는 손해민 대원이 공격을 이끌겠습니다. 최소한으로 공격을 해주세요.”
“네.”
손해민을 수정구가 달린 망치를 가볍게 쥐고 달려드는 고블린 세 마리를 향해 주먹만 한 불덩이를 만들어 날렸다.
휘익 휘익 휘익!
그러자 소울은 그가 날린 불덩이들이 고블린을 맞추기도 전에 쇠뇌의 조준을 끝내고 쇠뇌의 방아쇠를 하나씩 당겼다.
핑 핑 핑!
소울의 쇠뇌가 고블린들의 배와 가슴에 박혀 들어가자 양병호가 빠르게 달려가서 그들의 목을 베어 버렸다.
확실히 소울을 제외한 E급 능력자 이상으로 만들어진 파티라서 그런지 최하급 소형 몬스터들이 감당할 수 있는 공격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렇게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을 쓸고 다니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학익진을 시험해봤다. 최동원 팀장과 대원들의 전투헬멧에 달린 카메라와 측정 장치를 통해 모든 전투기록이 하나도 남김없이 저장되고 있었다.
“냉동 컨테이너 차량을 불러야겠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최동원 팀장의 말에 소울은 놀라서 양병호에게 다가가서 물어봤다.
“냉동 컨테이너 차량을 부르면 오는 겁니까?”
“이렇게 몬스터를 많이 잡은 경우에는 오기도 합니다. 거리도 그리 멀지 않고 매일 이곳에서 쏟아지는 몬스터의 사체의 양도 적지 않으니 몇 대는 아예 이곳에서 상주를 하다시피 합니다.”
소울은 이것저것 해보다 전부 안 되면 몬스터 부산물 사업을 해볼까 했는데 이미 자신 보다 먼저 뛰어든 회사가 자리를 착착 잡아가고 있었다.
‘하긴 난 냉동 컨테이너 차량 1대도 살 능력이 안 되니……. 이러다가 나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그 짐꾼 되는 것 아냐?’
소울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최근에 읽었던 판타지 소설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핵심 캐릭터가 능력자임에도 별 볼일 없는 능력으로 인해 능력자 파티가 사냥한 몬스터 사체를 나르는 짐꾼이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현실은 판타지보다 훨씬 더 판타지스럽다.’고 말이다.
소울은 새로운 인기 직종으로 짐꾼이 생길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절대 자신이 짐꾼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려면 어떻게든 3개월 안에 방법을 찾아서 제대로 된 능력자로 살던가, 아니면 몬스터 관련 사업을 하던가 해야 했다.
냉동 컨테이너 차량은 생각보다 금방 왔다.
몬스터가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일단 차량의 크기가 상당히 커서 감히 달려들 생각은 하지 못하는 듯 했다.
뭐 달려든다고 해도 차량에 부착된 장갑이나 철망 그리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으니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냉동 컨테이너 차량이 가장 위험할 때는 바로 멈춰있을 때였다. 이럴 때는 차량을 부른 능력자 파티가 책임지고 보호를 해줘야 한다.
수십 마리의 고블린과 오크 사체를 냉동 컨테이너 차량에 싣자 담당직원은 인수증을 써주고 부리나케 달려서 사라졌다.
괜히 근처에서 머뭇거리다 엄한 놈한테 걸려서 목숨을 잃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북상(北上)합니다.”
최동원 팀장의 말은 구룡산 정상을 향해 직선으로 올라가겠다는 말이었다.
밀림을 연상시키는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선 사냥법 연구팀 A조 파티는 급격히 늘어난 야생동물들을 쳐다보며 위화감을 감추지 못했다.
“구룡산이 맞는데 들어오면 마치 아마존 같단 말이야. 정말 구룡산 맞는 거야?”
“나도 들어올 때마다 섬뜩하다니까.”
소울은 그들의 말에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꽤 많이 들어가네요. 이 정도면 대략 3km 가까이 올라온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구룡산 남북의 길이가 그것보다 훨씬 짧을 텐데.”
“정말? 그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유지광과 박현종이 나름 속삭인다고 말했지만 전투헬멧을 쓰고 있는 이상 같은 파티원들에게는 다 들렸다.
최동원 팀장은 지금 무슨 생각으로 침묵을 지키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소울도 그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구룡산 왼쪽 끝에서 대모산 오른쪽 끝까지 해봐야 가로 길이 5.5km에 불과하다. 세로 길이는 더 짧아서 대략 2.5km 정도다.
그런데 파티는 이미 그 거리를 지나친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구룡산을 가로질러 북쪽에 있는 개포동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수해(樹海)가 펼쳐져 있었다.
‘이건 뭐지? 차원의 균열이라는 것이 설마 다른 차원의 세계와 연결되는 거였나?’
소울은 아직 정보가 부족해 확신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소한 차원의 균열이라는 것이 절대 평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 나는 지금 차원의 균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로구나. 어쩌면 난 지금 다른 차원의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울은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비록 자신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차원의 균열 안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을 하니 겁이 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나마 좀 위안이 되는 것은 아까부터 까망이가 머리카락 속에서 나와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자신에게만 보였다.
까망이는 이런 밀림 같은 울창한 숲의 공기가 마음에 들기라도 하듯 훨씬 활기찬 모습이었다.
[까망아! 너 여기가 좋니?]
[규!]
[그래? 여기가 좋구나. 어? 너 지금 내 말에 대답을 한 거야?]
[규!]
[이럴 수가, 우리는 이렇게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였구나?]
[규!]
[하하하! 좋은 것을 발견했네?]
소울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앞으로 까망이를 소리 내서 부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소환사와 소환수는 영적으로 하나로 묶인 사이라고 하더니 역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전방에 몬스터가 있습니다.”
“모두 멈추세요.”
눈이 좋은 박승락의 말에 최동원 팀장은 즉시 파티의 진행을 멈췄다.
“양병호 대원이 가서 살펴보세요. 우리는 이쪽 수풀로 들어가서 잠시 숨어 있도록 합시다.”
“네.”
민첩계 근딜인 양병호가 바람처럼 달려가 전방으로 사라졌다.
그 사이 파티는 우거진 수풀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물을 마셨다.
최동원 팀장은 자신의 전투헬멧을 만지더니 곧 모두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양병호 대원이 보는 것을 우리도 모두 볼 수 있을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말, 아!”
의문을 제기하던 대원들은 곧 자신의 전투헬멧을 통해 들어오는 화면을 보더니 입을 닫았다.
‘호오, 이런 것도 가능한 거였어?’
소울은 전투헬멧이라는 것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근데 저 놈들은 뭐죠? 오크들이 저러고 있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손해민의 말에 최동원 팀장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깊이 들어왔나 봅니다. 양병호 대원이 오면 조용히 물러나도록 합시다.”
“네.”
최동원 팀장의 말에 모두 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소울은 최동원 팀장의 말에 박수라도 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위험하다 싶으면 당연히 퇴각을 해야지. 양동주 조교 같이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면 위험하잖아.’
그는 양병호의 전투헬멧을 통해 들어오는 화면을 보면서 살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오크들의 모습이 마치 영화에서나 봤던 로마 군단의 백인대(Centuria) 같은 무장(武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해민이 소울의 생각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마이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굉장히 위험한 놈들입니다. 무장을 보니 로마 군단의 백인대(Centuria)와 흡사합니다. 투창과 타워실드, 갑옷으로 무장한 중장보병이 50마리에, 검과 원형방패를 든 경무장 보병이 30마리 그리고 궁병도 20마리나 있네요. 제일 위험한 놈은 이 백인대의 백부장(百夫長, centurion)으로 보이는 거구의 오크 전사입니다.”
손해민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최동원 팀장이 그의 생각에 맞장구를 쳤다.
“나도 손해민 대원과 같은 생각입니다. 비록 오크는 최하급 소형몬스터로 분류되어 F급 능력자라면 충분히 일대일로 싸워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로 무장을 한 상태라면 당연히 한 단계 위의 등급으로 봐야합니다. 모르긴 해도 E급 능력자에 필적하다고 봐야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오크 백인대가 맞는다면 백부장뿐만 아니라 분명히 십부장도 있을 겁니다. 백부장과 십부장은 분명히 오크 중에서도 남다른 덩치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전사 급 오크들일 것입니다. 그럼 등급 자체를 기본적으로 E급으로 잡고 저런 무장에다 전략, 전술까지 능하다면 D급 능력자로 보는 게 타당할 겁니다.”
손해민의 말에 최동원 팀장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완전부정하지는 못했다.
“오크가 D급 능력자에 필적한다는 말은 쉽게 믿기지가 않네요. 하지만 저 오크 백인대가 정말 유기적으로 움직일 만큼 훈련을 잘 받은 놈들이라면 어지간한 파티는 순식간에 전멸당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건 당장 돌아가서 대한민국 능력자협회에 보고를 하고 전 능력자들에게 경고를 해야 합니다.”
오크는 일반적으로 지능이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유기적인 전략, 전술에는 능하지 않다. 하지만 소울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양병호의 전투헬멧을 통해 보이는 저 오크 백인대의 움직임이 자신이 알던 오크들이 아닌 것 같았다.
그의 뇌리에 강렬한 경고등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양병호 대원이 돌아왔으니 모두 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히 자리를 뜹시다.”
“네.”
최동원 팀장은 최소한 오늘은 더 이상 사냥법 연구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사사삭 사사삭…….
다행히 바람이 뒤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자신들의 냄새가 오크 백인대가 있는 곳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소울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부지런히 최동원 팀장을 따라 달려갔다.
“이제 적당히 거리를 벌렸으니 파티가 낼 수 있는 최고속도로 달리겠습니다.”
“네.”
파티가 낼 수 있는 최고속도라면 구현계 능력자인 손해민과 소환계 능력자인 소울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말한다.
그동안 소울이 열심히 훈련을 받은 보람이 있어 손해민이 달릴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달려도 여유가 좀 있었다.
손해민은 호흡이 턱에 차있었지만 그래도 파티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사히 헌릉로가 보이는 도로로 나올 수 있었다.
“헌릉로를 가로질러 바로 훈련장으로 갑시다.”
“네.”
그들은 최동원 팀장의 말에 조금 더 힘을 냈다.
그리고 빠르게 헌릉로를 가로질러 숲을 지나 훈련장으로 복귀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 군용막사에 들어가 잠시 쉬고 계세요.”
“네, 팀장님.”
최동원 팀장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바로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런데 그가 사라지는 속도를 보니 소울은 절로 침이 삼켜졌다.
양병호는 민첩계 근딜이니 그렇다 쳐도 D급 강화계인 최동원 팀장이 움직이는 모습에 잔상(殘像)이 생기는 것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
‘역시 레벨이 깡패라더니, 등급이 깡패였어. 휴우! 나도 등급이 올랐으면 좋겠다.’
소울은 부러운 생각을 잠시 접고 사냥법 연구팀에 배정된 커다란 군용막사에 들어갔다.
어느새 자기보다 먼저 들어와 있는 대원들이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과 음료수를 꺼내 마시고 김밥과 유부초밥을 꺼내 먹고 있었다.
소울도 소비한 열량을 채우느라 물과 김밥 한 줄을 먹으며 의자에 편하게 앉았다.
“오늘은 일이 그냥 이렇게 끝났으면 좋겠다.”
“그러게 말이야.”
“꿈이 참 크십니다. 아까 그 오크 백인대를 보고도 쉴 생각을 해요?”
유지광과 박현종의 부푼 기대에 손해민이 찬물을 끼얹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오크 백인대가 있다면 당연히 천인대(千人隊)도 있지 않겠습니까?”
손해민의 말에 유지광이 박수를 치며 대답했다.
“그럼 만인대(萬人隊)도 있겠네?”
그러자 박현종은 한 술 더 떴다.
“설마 만인대 위에 오크 군단(legion)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손해민은 유지광과 박현종이 아직도 깨닫지 못하자 속으로 머릿속에 근육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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