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6 제 67 장 - 타초경사(打草驚蛇) =========================================================================
“칸슬로 님, 이거 당장 오늘 밤부터 문제가 생기겠는데요? 다른 부족과 만나서 얘기를 좀 나눠봐야겠습니다.”
“아마 소용없을 겁니다. 잠깐 다른 부족의 주술사와 얘기를 나눠봤는데 우리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레이칸 족장과 칸슬로 주술사의 대화를 듣는 순간, 소울의 머릿속에서 뭔가 번쩍 전구가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아까 해골바가지가 뭐라고 했지? 약육강식이 히물레야 산맥의 법이라고 했지. 그럼 뭐야? 밤에 서로를 죽여 없애는 것을 허락한다는 뜻이잖아. 몬스터들이 서로를 공격하는 것은 알라야 분지에 식량이 모자라서다. 배가 부른 몬스터는 굳이 다른 몬스터를 공격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아.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만 이거 잘하면 일이 아주 재미있게 되겠는데. 이번 기회에 서로를 공격하게 중간에서 장난질을 좀 쳐볼까?’
소울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비스크는 소울이 짓는 미소가 어쩐지 섬뜩하기 그지없게 느껴졌다.
“일단 전사회의를 열겠습니다. 칸슬로 님도 참석해주시죠.”
“당연히 그래야지요.”
레이칸 족장은 부족의 야영지에 도착하자 곧바로 부족 전사회의를 열었다.
전시(戰時)에 열리는 전사회의는 말 그대로 부족에서 인정한 전사만 참여할 수 있었다.
사백이 조금 넘는 레이칸 부족 중에 전사는 소울과 비스크를 합쳐 오십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레이칸 부족의 전력에 사할을 차지하는 핵심정예였다.
레이칸 부족의 천막 중 가장 큰 천막인 족장의 천막 안에 모인 오십여명의 전사들은 모두 부리부리한 눈빛을 빛내며 레이칸과 칸슬로를 쳐다봤다.
먼저 레이칸 족장이 앉은 채로 입을 열었다.
“오늘 전사회의를 개최한 것은 어제 있었던 트롤과 오우거의 기습이 오늘 저녁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위험 때문이다.”
“일이 잘 안된 모양이군요?”
“그렇다.”
엘리트 전사이자 부족의 이인자로 군림하고 있는 타르칸이 자신의 머리를 긁으며 묻자 레이칸 족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두 사람이 말의 물고를 트자 전사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하지만 소울이 볼 때 하나같이 임시방편이 아니면 피해를 조금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불과했다. 근본적인 문제인 야영지 이동이나 방어를 위한 적극적인 선제공격은 누구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소울은 일단 끝까지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가 잠시 휴식시간을 갖자 칸슬로와 비스크를 불러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방법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야영지를 방어에 유리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제일 급선무입니다. 그 다음 주변에 위협이 될 만한 놈들을 거꾸로 기습해서 타격을 줘야 합니다.”
“지금 그게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알고 있나?”
“그렇습니다.”
소울이 존댓말을 하자 칸슬로는 조금 불편했지만 그래도 다른 전사들의 눈이 있어서 반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사방으로 정찰병을 보내 반경 30km 안에서 있는 언덕이나 계곡, 협곡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같이 평평한 들판은 웨어울프 보다 덩치가 큰 중대형 몬스터들에게 아주 유리한 지형입니다. 그런 지형이 없으면 최소한 나무가 많이 있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으음, 알겠다. 의견을 내면 내가 적극적으로 한번 밀어붙여보겠다.”
“고맙습니다. 칸슬로 님.”
“그런데 위협이 될 만한 놈들을 거꾸로 기습해서 타격을 줘야 한다는 말은 뭔가? 선제공격을 하자는 건가?”
“잠정적으로 위협이 될 만 한 놈은 아예 먼저 선제공격을 가해서 적당히 밟아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부메랑처럼 위협이 되어 날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오우거나 트롤 같은 놈들을 선제공격할 능력이 없지 않은가?”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야영지를 옮겨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선제기습공격을 시작해야합니다. 그리고 꼭 우리만 싸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지들끼리도 치고 박을 수가 있는데 말이지요.”
“아!”
칸슬로는 역시 머리가 좋은 주술사답게 소울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는 즉시 부족의 전사 몇을 불러서 트롤과 미노타우로스, 오우거와 드레이크를 싸움 붙일 작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부족의 전사 중 한명인 미구엘이 칸슬로의 말을 듣더니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좀 치사하긴 하지만 가장 효과가 좋은 고전적인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가?”
“바로 새끼를 유인 및 납치해서 다른 몬스터의 본거지에 던져놓고 오는 것이죠.”
“으음, 그게 좋겠군.”
칸슬로는 미구엘의 생각에 적극 찬성의 뜻을 표했다.
“보통 중대형 몬스터의 새끼들은 어미들이 철통같이 지키는데 누가 가까이 접근해서 유인을 해옵니까?”
하지만 미구엘의 옆에 있던 바키나가 슬쩍 의문을 표하자 모두의 얼굴에 수심이 들어찼다. 이건 마치 쥐들이 모여 회의를 하다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고 결의를 하는 모양새였다.
“그게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들키지 않고 가까이 접근할 수만 있다면 유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소울은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다가 유인책이 궁금해지자 비스크의 옆구리를 찔렀다. 비스크는 하는 수 없이 소울을 대신해 물어봐야했다.
“어떻게 유인한다는 겁니까?”
“비스크, 그걸 몰라서 물어? 저놈들이 사람의 피에 환장하는 거야 다 아는 사실이잖아. 여긴 사람이 없으니 대신 우리의 피와 살을 먹으려는 것이고…….”
미구엘의 말에 소울은 그제야 이들이 어떤 식으로 중대형 몬스터들의 새끼를 유인하겠다는 말인지 알아챘다.
‘사람의 피였구나. 그게 중대형 몬스터들의 새끼들에게 아주 달콤하게 느껴지나 보군. 그렇다면 내 피를 뽑아서 까망이에게 주고 유인해오라고 하면 되겠어.’
소울은 자신의 피를 뽑아야 한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긴 했지만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마음으로 이 유인작전을 자신이 맡기로 했다.
“중대형 몬스터들을 유인하는 것은 나와 비스크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사들은 언제 어디서 어디로 유인해야 할지 정보를 모아주세요.”
“굉장히 위험한 일이 될 텐데…….”
“불리는 소환마스터입니다. 소환수를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미구엘과 바키나는 소울 대신 나선 비스크의 말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울이 다시 한 마디 덧붙였다.
“이번 기회에 우리 부족에 위협이 되는 놈들의 숫자를 적당히 줄일까 합니다. 그러니 대상을 골라주세요.”
“그건 일단 전사회의에서 야영지를 옮기는 문제를 의논한 다음에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흐음, 그게 좋겠소. 자 다들 모이라고 해주세요.”
칸슬로가 얘기의 마무리를 짓기 위해 잠시 천막 바깥으로 나가 바람을 쐬고 있는 자들을 불러 모으라고 했다.
속개된 전사회의는 생각보다 훨씬 거칠고 격렬하게 이뤄졌다.
다혈질인 웨어울프들 답게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는 법을 몰랐다.
하지만 칸슬로가 의견을 내고 미구엘과 바키나, 소울과 비스크가 동조를 하자 족장이 그걸보고 결단을 내렸다.
“좋다. 듣고 보니 야영지를 옮기는 문제야 말로 우리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문제다.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서 우리의 안전이 위협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먼저 부족의 생존을 지키고 난 후, 우리를 욕하는 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자.”
“좋습니다.”
“찬성입니다.”
“그렇게 합시다.”
“이번에 단단히 본때를 보여줍시다.”
“다 쓸어버리자고.”
…….
반대를 할 때도 열정적이지만 찬성을 할 때도 열정적인 웨어울프들이었다.
전사회의에서 야영지 이동이 결정되자 그들은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부족 최강의 전력인 엘리트 전사들은 일반 전사들을 이끌고 야영지를 통째로 이동시킬 마땅한 장소를 찾기 위해 동서남북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사이 남은 자들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야영지에 설치한 천막을 철거하고 이동할 채비를 했다.
야영지를 떠날 준비가 끝나자 북쪽으로 갔던 일행이 제일 먼저 돌아왔다.
“여기서 10km 떨어진 곳에 돌로 된 언덕이 있습니다.”
“자세하게 설명을 해봐라.”
레이칸 족장의 말에 칸슬로와 소울 그리고 비스크가 다가와 전사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설명을 듣는 사이, 동쪽으로 갔던 일행이 돌아왔고 서쪽과 남쪽으로 갔던 일행도 모두 돌아왔다.
그들은 수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빠른 속도로 뛰어갔다 오느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바람이 불자 이들의 머리와 등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라왔다.
“다들 수고했다. 동쪽으로 갔던 전사부터 보고하라.”
“네, 족장님.”
결과적으로 동쪽과 서쪽은 지금 있는 야영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지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나마 다행히 남쪽으로 갔던 전사들이 20km 떨어진 곳에 작은 언덕을 하나 발견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고블린 부족이 들어서 있는 상태였다.
“결국 북쪽의 돌로 된 언덕이나 남쪽의 고블린들이 차지한 언덕으로 가야한다는 것이군.”
레이칸 족장과 칸슬로 주술사의 고민이 이어졌다.
소울은 어느 쪽으로 가도 결국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고민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그냥 돌로 된 언덕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남쪽의 언덕은 일단 거리가 20km나 떨어져 있어 시간 내에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다 이미 그곳은 고블린들이 차지했다고 하니 빼앗으려면 빼앗을 수도 있겠지만 고블린들의 숫자가 절대 만만치 않을 테니 우리 부족의 피해도 적지 않을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시간이 제일 위험한 적입니다.”
“음, 맞는 말이긴 한데…….”
“북쪽으로 가도록 합시다.”
“흐음.”
레이칸 족장은 남쪽 언덕이 아무래도 마음에 끌리는 모양이었다.
야간에 트롤과 오우거 무리로부터 기습을 당하고 보니 주변에 중대형 몬스터들이 산재한 북쪽의 돌로 된 언덕보다 아무래도 만만한 고블린들이 있는 남쪽의 언덕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칸슬로가 소울의 말에 찬동을 하자 결국 그도 자신의 생각을 접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자! 모두 북쪽의 돌로 된 언덕으로 가도록 하자.”
와아아아아아!
방향이 결정되자 즉시 엘리트 전사들과 일부 전사들이 먼저 북쪽을 향해 떠났다.
괜히 그 사이에 누가 끼어들기라도 하면 골치 아팠기 때문이다.
레이칸 부족이 10km 북쪽에 떨어진 돌로 된 언덕에 도착한 것은 두 시간이 훨씬 넘어서였다.
레이칸 족장과 엘리트 전사들, 칸슬로와 소울 등은 돌로 된 언덕에 도착하자 모두 꼭대기로 올라가서 주변부터 살폈다.
“최악이군. 동쪽에 오우거, 서쪽에 트롤, 북쪽에 미노타우로스, 남쪽에 드레이크라니…….”
“으음.”
레이칸 족장과 칸슬로 주술사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소울은 그들과는 보는 관점이 달랐다.
그는 주변에 포진한 몬스터들의 종류보다 먼저 지형을 살폈다.
예상했던 것보다 돌로 된 언덕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다.
높이도 아주 높지 않았고 북쪽을 제외한 삼면의 경사도 완만했다.
어떻게 보면 삼면을 열어 둔 형국이라 어떤 몬스터도 쉽게 침입할 수 있는 구조였다.
‘돌로 된 언덕이라더니 크고 작은 돌멩이가 아주 많네. 그리고 바깥쪽의 돌들은 풍화와 침식으로 쉽게 떨어지는구나. 일단 칸슬로에게 내 생각을 전해야겠다.’
소울은 미소를 지었다.
비스크는 자신의 주인이 혹시 미친 게 아닌가 하고 쳐다보다 소울과 눈이 딱 마주치자 놀라서 급히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칸슬로 님, 잠깐 이쪽으로 오시지요?”
“응, 그렇게 하지.”
소울은 칸슬로를 데리고 다니면서 돌로 된 언덕을 하나하나 지적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해줬다. 그러자 칸슬로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칸슬로는 쪼르르 달려가 레이칸 족장에게 소울에게 들은 얘기를 해줬다.
그러자 레이칸은 즉시 부족들을 불러서 하나씩 명령을 내렸다.
“일단 모두 언덕 중앙으로 모인 후, 북쪽에서부터 차례대로 천막을 치도록 해라.”
“중병기를 든 자들은 칸슬로 님을 따라서 통행로를 다듬어라.”
“엘리트 전사들은 즉시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져서 각 몬스터들의 숫자를 파악해라.”
“전사들은 셋으로 나눠 삼면을 방어한다.”
“나머지는 모두 돌멩이를 주어서 통로가 아닌 곳에 일정한 높이로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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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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